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하고 청하였다.(마르코 5,12)
1.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이 따로 있다.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4대강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강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세대의 강이 아니니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아 자손만대에 길이 물려주어야 하는 생명줄이다. 게다가 사람들만의 강도 아니니 하늘과 땅에 깃들여 사는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아껴야 하는 지구전체의 유산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한반도의 가장 큰 네 물줄기를 서슴없이 파괴하고 있는가?
2. 정부는 사업진행이 절반을 넘겼다며 그 어떤 우려나 호소도 국익에 반하는 일로 규정하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게다가 일반 대중을 물론이고 4대강 문제를 안타깝게 고민하고 행동하던 종교계와 시민운동 진영마저 자포자기의 기색이 역력하니 실로 큰 근심이 아닐 수 없다. 4대강공사의 모든 엔진은 ‘거짓’이라는 연료로 가동되고 있다. 시작부터 그랬고 마지막까지도 그럴 것이다. 다른 일도 아니고 산 것을 죽었다 하고, 죽이는 일을 살리는 일이라 강변하는데 우리 사회의 역량은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꾸짖거나 나무라지도 못하고 있으니 그 동안 피땀으로 일궈낸 민주주의의 성과가 정녕 무엇이었는지 의심스럽다.
3. 그 동안 우리는 매일 저녁 사람의 길과 우리의 미래를 물으며 미사를 봉헌하였다. 그러던 지난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사건이 벌어졌다. 그동안 위태롭게 유지되던 평화가 와르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참변의 책임이야 말할 것도 없이 북쪽이 짊어져야 할 일이지만 이번 사태는 이명박 정부의 통치역량의 총체적 한계를 드러내 준 사건이기도 했다. 강은 제 모습을 잃고 흙탕물로 변했다. 바다는 푸른빛을 잃은 채 검붉은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다. 생명을 그 자체로 경외하지 않고 돈으로 환산하는 천박함은 반드시 평화마저 무너뜨리게 되어 있다. 이것이 생명의 법칙이며 평화의 원리이다.
4. 회복불능의 자연파괴와 남북관계의 심각한 악화를 포함하여 진전은커녕 갈수록 뒷걸음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타개할 실마리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 우리는 오늘의 말기적 증상에 굴복하고 민주주의 퇴행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민주주의를 설계하고 틀을 세울 것인가 하는 중대한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5. 이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참다운 민주정부의 수립과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해, 더욱 근본적으로는 생명과 평화를 주춧돌로 삼는 ‘새 하늘 새 땅’을 위하여 매주 월요일마다 전국사제시국기도회를 봉헌할 것이다. 이천년 전 팔레스타인 땅에서 전쟁과 폭력의 악령을 몰아내시던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빌려 이 땅을 정화하고 강을 되살리는 일에 신명을 바치자.
2010년 11월 29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