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김근상 주교 "버린돌, 모퉁이 머릿돌 되게 할 것"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천주교 성직자 끌어안아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가 타교단 성직자 전입예식을 집전하고 있다. ⓒ김진한 기자
성공회가 천주교의 두 성직자를 끌어안았다. 6일 오전 11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된 타교단 성직자 전입예식에서 성공회 사제로 추천된 두 후보자가 경건한 마음으로 주교 앞에 나란히 섰다.

옆에 선 추천사제가 주교에게 "존경하는 주교님, 대한성공회 헌장 및 법규와 타교단 성직자 전입 규정에 따라 이 사람들을 추천하오니 전입을 수락하여 주시기를 청원합니다"라고 말하니 주교는 "이제 추천한 사람들이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사제로서 거룩한 교회를 섬기기에 합당한 성품과 믿음과 지식을 갖추어 주님과 신자들을 위해 헌신할 수 있음을 확신합니까?"라고 되물었다.

이어 추천사제가 "이 사람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며 깊이 살핀 즉 서울교구 사제로 전입하기에 합당하다고 믿습니다"라고 답하자 주교는 "교우 여러분, 대한성공회의 서울교구의 사제로 추천 받은 이 사람들에게 중대한 죄나 잘못이 있어 사제 성직을 수행하기에 합당치 않은 사유가 있거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와 그 사유를 분명히 밝히십시오"라고 했고,  장내가 조용하자 "교우 여러분, 이제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천주교의 두 성직자가 대한성공회 사제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이날 예식을 집전한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는 설교에서 "두 신부의 전입은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 뿐 아니라 우리 성공회에도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천주교에서 성공회로 전입한 두 신부가 겪었을 법한 사정들을 나눴다. 김 주교는 "두 신부는 이런 저런 이유로 가톨릭과 인연을 다하지 못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마음에 많은 상처를 입게 되었고, 큰 아픔이 있었고, 말 못할 괴로움과 고독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우리에게 자신을 받아달라고 손을 내밀었다"고 했다.

이어 "그들이 천주교 사제로서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 이 결단이 옳은지에서부터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갈등이 있었을 것"이라며 "자기 고백은 둘째라 하더라도 그간 자기를 지켜 본 가족, 친지, 동료들의 시선이 얼마나 따갑고, 괴로웠겠는가"라고 했다.

정체성에 혼란을 겪은 그들이 어려운 결단을 내린 데 대해 김 주교는 "그들은 결단을 내렸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이 사제장 직분은 누구에게도 거부되거나 유보되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었다"라며 "나는 이미 하나님께 바친 사제였다라는 그들의 뜻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아울러 김 주교는 성공회의 사제관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 그는 "저들의 성직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사람이 준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 두 사제를 여기에 세우게 되었다"라며 "이것이 바로 성공회의 정신이고, 이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관용의 신앙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생생한 미래이다. 또 이것이 바로 우리들을 살아 숨쉬게 하는 생명의 기운이다"라고 강조했다.

두 사제를 밀어낸 천주교에 대해서도 한 마디 했다. 김 주교는 "두 신부를 밀쳐낸 가톨릭에서는 성공회가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그들은 어쩌면 우리의 결정을 폄하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린다. 이번 일은 그들이(천주교가) 틀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들은 버렸지만 우리 성공회는 그들을 거둔다. 성서의 말씀대로 버린 돌을 모퉁이 돌로 만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 만드실 것이다"라며 "요셉은 버림 받았지만, 그가 가족들 모두를 구해낸 것 처럼 이 두 사람의 사역은 어쩌면 천주교를 바른 길로 가게 만드는 일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또 끝으로 "아시다시피 천주교는 아직도 성공회의 견신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서품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희 사제들은 천주교에 가서 성찬을 베풀지 못한다. 우리 성공회는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같이 숟가락을 빼앗거나 내려놓지 않겠다. 그들이 어떻게 대하든지 우리는 끝까지 형제, 자매를 대하듯 그들을 같은 밥상에서 맛있는 식사를 나눌 수 있도록 환대할 것이다"라고 하며 설교를 마쳤다.

▲전입자 최석진 신부와 구균하 신부를 애워싼 대한성공회 김근상 주교와 서울교구 사제들이 서로간 어깨에 손을 얹고 전입자의 앞날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있다. ⓒ김진한 기자

설교 후에 성공회 사제로 추천 받은 두 신부는 제단 위에 무릎을 꿇어 앉았고, 김 주교와 더불어 전입예식에 참석한 사제들 모두는 이들 두 신부를 애워쌌다. 이어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은 뒤 전입자를 위한 기도의 시간을 가졌으며 전입 사제에게 제의를 입히고, 성서와 성직을 각각 수여했다.

이날 천주교에서 대한성공회로 전입한 사제는 최석진(요셉) 신부, 구균하(요나로렌스) 신부였다. 최석진 신부는 1967년 10월 16일생으로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천주교 의정부교구 사제(1999년 11월´2007년 4월)를 지냈으며 2007년 호주 멜번신학대학 성공회 성직자 양성과정에 참가한 바 있다.

구균하 신부는 1973년 5월 3일생으로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천주교 부산교구 사제(2001년 12월∼2006년 11월)를 지냈으며 2004년 이태리 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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