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강남교회] 끝없는 사랑

2010년 12월 5일 설교자 전병금 목사

성경본문

요한복음 13:4-14절

설교문

중국의 관영 CCTV에 방영되어 큰 감동을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천위룽(55세)이라는 여인이 아들 예하이빈(33세)에게 간을 이식해준 이야기입니다.

아들은 13세 되던 해부터 선천성 간질환을 앓고 있었습니다. 2005년에 간경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간이식 만이 살길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하이빈의 어머니인 천위룽이 자신의 간을 주기로 하고 날짜까지 받았는데 그만 어머니가 지방간을 앓고 있어 이식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수술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날부터 그 어머니는 자신의 간을 건강하게 회복하여 아들에게 이식시켜 주기 위해 매일 새벽 5시부터 10km씩을 걸었습니다. 끼니마다 반공기도 안되는 현미밥과 함께 야채만을 먹는 식이 요법을 진행했습니다.

그녀는 “내가 한 걸음 더 걷고 한 술을 덜 먹으면 아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한순간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7개월 뒤인 9월 21일 어머니 천위룽은 재검사를 받았습니다. 몸무게가 8kg 빠진 것은 물론 거짓말처럼 지방간이 사라졌습니다. 의사들은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모성애는 대단했습니다. 이식수술이 진행될 때 국영 CCTV에서 중계차까지 동원하여 시시각각 중계를 했습니다. 병원도 1억 8백만원이라는 수술비 전액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건 식이요법과 운동을 통해서 결국은 그 아들을 살렸습니다.

우리 주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사역을 마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다 된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 곧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 단순한 사실을 믿음 가운데서 확실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생물학자 배스티언(S. L. Bastian)은 작은 나뭇가지나 덤불속에 집을 짓고 사는 어떤 거미류를 관찰하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이 거미는 나뭇가지나 덤불에 걸쳐 있는 울타리 속에 새끼들을 부화하는데, 만일 그 곳에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이 발생해서 새끼들이 놀라게 되면 어느 순간 어미 거미가 쏜살같이 달려와서 새끼들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어미 거미가 어떻게 새끼들의 동요를 그렇게 금방 알아채는지 궁금해진 배스티언이 보다 주의를 기울여 살펴 본 결과, 이 거미가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새끼들의 잠재적 위험에 대비해서 경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즉 각 새끼 거미에게는 가는 비단줄 같은 것이 붙어 있고 이것이 어미의 몸에 연결되어 있는데, 새끼들이 적들의 위협을 받아 몸을 심하게 움직이면 그들의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므로 어미가 즉시로 새끼들을 보호하러 달려올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호세아서 11장 4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미 거미가 명주처럼 보드라운 실로 자기 새끼들을 자기 곁에 두듯이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합니다.

우리도 끊어질 수 없는 영원한 줄로써 주님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견디기 어려운 위험과 곤란에 처해 있을 때 주님과 우리 사이에는 ‘사랑의 줄'이 있으므로 즉각적으로 주님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우리의 모든 환난에 친히 동참하시고,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서둘러 도움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영원히 매인 바 되었다는 사실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위안을 우리에게 줍니다.

오늘은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것, 아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마지막에 당신의 지상 생활이 막바지에 이른 줄을 아셨습니다. 3년이나 동행하면서 제자훈련을 받았음에도 제자들은 그 위급한 때를 모르고 있었고 어떤 제자는 스승인 예수를 팔아먹을 마음을 먹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여기서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은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완전하고 영원히,’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랑은 영적으로나 질적으로 결코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강권하시는 사랑(고후5:13-14)이요, 영원히 끊을 수 없는 사랑(롬8:35)입니다. 또한 예수의 사랑은 희생적인 사랑이요(갈2:20), 무제한적인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가진 예수는 당신의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는데도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그들에게 봉사하려고 하였습니다.

특히 주님은 자신을 배신하여 돈 받고 팔아먹을 가룟 유다를 정확히 꿰뚫어 보시면서도 그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마지막 떠나면서까지 사랑했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죄를 짓고 하나님께 실망을 끼쳐 드린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이미 벌 받았어야 옳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렇게 서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나님께 많은 죄를 지었어도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배반하면 안 됩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끝없는 사랑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신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주님의 사랑을 져 버리면 안 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끝까지 사랑해야 하고, 그 사랑을 먼저 우리 교회 가운데서 실천하여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사랑을 보고 주님의 사랑을 알게 해야 합니다.
 
프랜시스 쉐퍼는 그의 저서 [20세기말의 교회]에서 “교회는 죽어가는 문화 속에서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죽어가는 이 문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를 주목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과 내가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세상에 주고 계십니다. 그 판단의 기준은 다른 그리스도인을 사랑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라고 기도하십니다.

쉐퍼는 “여기서의 예수의 말씀은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하나가 되는 실례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께서 아들이신 예수를 보내셨으며 예수께서 주장하시는 것이 사실이며 기독교 신앙이 진리임을 믿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니다”라고 말합니다.

잃어버린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면서 혼자서 또는 다른 믿는 이들과 사랑으로 화합하지 못한채 증거하기를 시도하는 그리스도인은 중요한 자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바로 우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한 몸이 될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 사랑을 보고 그리스도를 찾을 것입니다.

2. 주님은 가장 낮은 자에게 내려오셨습니다.

유대는 풍습상 손님이 오면 신을 벗고 들어갔습니다. 사막지대이기 때문에 항상 손님의 발에 먼지가 많이 묻어 그 먼지를 씻어 버리기 위해 주인은 물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보통 그 집에서 가장 낮은 하인이 손님의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예수 일행이 어느 가정에 초청받아 가셨는데 아무도 예수와 그 일행의 발을 씻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의 발을 씻어 주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런 때는 제자들이라도 씻어 주어야 했을 텐데 제자들마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수건으로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거기에서 제일 낮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스승되신 예수께서 하셨으니 사람들은 예수의 그 겸손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께서는 대접을 받지 아니하시고 대접하는 자리로 내려 오셨습니다.종의 형체를 입고 죄인을 섬겼습니다(마20:28, 빌2:5-8). 하나님과 똑같은 분인 예수께서 이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긴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겸손하게 섬기는 자에게 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언제나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저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천한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신은 훌륭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만물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을 낮춰 겸손하게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빌립 네리는 16세기의 아주 훌륭하고도 지혜로웠던 그리스도인이었는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교황은 로마 부근 수도원에 있던 어느 수련 수녀가 갈수록 명성을 얻게 되자 네리를 시켜 그 이유를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그녀는 성녀로서 평판이 나 있었습니다. 네리는 노새를 타고 한겨울 진흙과 수렁 속 길을 달려 수도원에 다다랐습니다. 그는 사람을 시켜 그 수련 수녀를 오도록 하였습니다.
그녀가 방에 들어왔을 때, 그는 그녀에게 오랜 여행 때문에 진흙범벅이 된 그의 신발을 벗기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화가 나서 뒤로 물러나서는 그런 천한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토록 명성을 얻고 있는 자신이 그런 일을 요구받다니, 그녀는 생각만 해도 화가 났습니다. 네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수도원을 떠나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교황에게 말했습니다. “이젠 놀라실 것 없습니다. 거기는 성녀가 없어요. 왜냐하면 겸손이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온전히 전적으로 의탁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겸손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집니다. 그것은 친구로서, 용서와 자비의 주님으로서 그리고 인생의 모든 중요한 결정의 때마다 상담과 안내를 하시는 주님으로서 날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몸소 그러한 겸손을 행동으로 보이셨습니다. 신자는 바로 이렇게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차량안내위원, 주방봉사위원, 주일학교교사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주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의 발을 씻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 일은 이제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도리어 하나님께도 가장 가까이 서 있게 되었을 때 인간에 대한 봉사의 한계선까지 내려왔습니다. 노예들이 하는 일의 자리로 내려 오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서야 할 자리입니다. 가장 신앙적인 것이 바로 남을 돕고 섬기는 봉사의 자리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있어야 할 자리는 남을 돕고 섬기는 자리입니다. 낮아져서 다른 사람들이 도통 하려 하지 않는 일에 발 벗고 나서야 합니다. 이 자리가 주님이 원하는 자리입니다.

3. 주님은 매일 우리의 발을 씻기시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가운데 베드로 차례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 내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6-8)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절)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발을 씻는 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는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10절)고 하셨습니다.

이 성경 구절은 영적으로 난해한 구절입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중생한 자는 본질적으로 죄 씻음을 받아 구원되었지만, 일상의 삶에서 죄를 지었을 때에는 본질적으로 용서함을 받았다 할지라도 주님으로부터 매일 다시 씻김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죄사함을 받은 우리는 매일 발을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면, 모든 죄를 다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다고 교만하여 회개하지 않을 것이 아니라 주님께 나와 회개하고 또 회개하며 매일 씻겨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인들은 아무렇게 살면서 하나님께 회개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런 무책임한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고 비판을 합니다.
이 비판은 좋은 지적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죄 씻고 회개하면 된다고 또 죄 짓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만큼 죄를 짓지 않으려고 죄를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을 지켜야 합니다. 죄를 지으면 원통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죄를 범해도 우리가 회개하며 용서받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결하게 살아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하는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자리에까지 내려오고 그 어떤 죄와도 싸워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겸손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을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신의 목숨까지 내 줄 정도로 끝까지 사랑하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세상을 섬겼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과 겸손의 주님을 본 받고 전해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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