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강남교회] 우리가 서야할 자리

2010년 12월 12일 설교자 전병금 목사

성경본문

요한복음 13:1-17절

봉사와 섬김은 얼른 들어서 같은 의미를 가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 근본부터 다릅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이란 말이 있습니다. 나를 죽이고 공공의 목표를 살려낸다는 뜻입니다. 동양에서는 공직자의 기본 자세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봉사의 대표적 귀감으로 분류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9.11 테러공격을 받았을 때 뉴욕시장을 맡았던 쥴리아니입니다.
그는 즉각 뉴욕시장 재출마포기를 선언합니다. 당시 뉴욕시장 선거운동이 한창이었습니다. 쥴리아니도 뉴욕시장 재선에 출마하여 선거운동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9.11 사태가 나자 시장출마를 포기한 것입니다.

이 사태의 처리 때문에 뉴욕시장 선거운동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사태수습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저런 사람이라면 미국 대통령을 한번 시켜줘도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봉사의 좋은 표본입니다.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당시 제자들 간에 상당한 알력이 있었습니다. 누가 무슨 벼슬을 할 것인가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에게 섬김이란 무엇인가를 제시했습니다.

세상의 왕들과 귀인들은 다 존경을 받습니다. 그 중에는 봉사의 귀감이 되는 사람도 있고 그 중에는 자기의 영화를 위해 달려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러나 너희는 그런 식의 자리에 초청 받은 자가 아니다 라고 분명히 예수께서는 선을 그었습니다. 그리고는 섬기는 자가 될 것을 당부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봉사와 섬김을 나누었습니다. 봉사는 십자가 사건 이전에 제자들이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그러나 섬김은 십자가 이후 제자들의 자세입니다.

십자가 이전에도 멸사봉공의 봉사의 정신이 제자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높은 자리에서의 멸사봉공을 외쳤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하고 봉사하는 것하고 양립할 수 있다는 게 봉사에서는 가능합니다. 그래서 서로 더 나은 봉사를 약속하며 서로 총리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봉사와 섬김을 구분했습니다. 섬기는 자는 높음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섬기는 자는 다만 낮음을 지향할 뿐입니다.
이러한 섬김의 모습을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심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섬김의 주님을 본받아 모두 섬김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 오셨지만 누구 한 사람 예수의 발을 씻겨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막 지대라 각 집에는 찾아오는 손님의 발을 닦아줄 하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찬을 하는 집에는 하인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라도 나서서 예수의 발이라도 씻겨 드려야 했건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에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에 올라오면서 제자들이 ‘누가 크냐’는 문제로 다투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하인이 하는 일을 나서서 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긴장된 순간 예수께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하나하나 일일이 씻으시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그 현장에 스승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미 예수의 최후가 그렇게 영광스럽게 끝날 것 같지 않음을 직감했던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에게서 혁명가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유대교 고위 지도자들이 예수를 잡아 총독에게넘길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동물적인 정치적 감각으로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처지에 돈이라도 챙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은 30에 예수를 팔기로 유대교의 최고 지도자들과 밀약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태연하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가장하고 제자들의 틈에서 최후의 만찬에 참석했습니다. 그는 이미 양심이 마비되어 있었고 위선과 가증의 탈을 쓰고 예수를 파는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13:2)고 했습니다.

마귀가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 생각을 넣어 줄 때 가룟 유다는 그 마음을 적극적으로 받아 드렸습니다.

악한 마음은 마귀가 강제적으로 넣어 준 것이 아니라 마귀의 유혹과 우리의 동의가 결합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려고 할 때 죄를 짓는 것입니다.

유다의 마음에 진리를 추구하는 것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목돈을 만지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마귀의 유혹이 왔을 때 다른 것을 생각할 여지도 없이 스승 예수를 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6:10)라고 경고한 바 있었고,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향하는 우리의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마귀이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6:11).

우리는 무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 생활에 매진해야 합니다. 마귀의 궤계는 말씀과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마귀의 세가지 유혹을 받았을 때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바울은 권면하기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1) Joy 2) Pray 3) Thank라고 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마귀와 대적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됩니다.

2. 베드로도 비신앙적인 모습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종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시작했을 때 제자들은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껏 누가 더 크냐고 말다툼하던 자기들 스스로가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일 다혈질적인 베드로가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6절)고 물었습니다. 이제 곧 왕이 되실 스승께서 부족한 죄인들인 자기 같은 것의 발을 씻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은 상당히 겸손하고 신앙적인 말 같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자기중심적인 왜곡된 질문입니다. 베드로는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신다고 강변함으로 예수의 깊은 뜻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거부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어느 집사님이 새벽기도를 열심히 했습니다. 새벽에 기도하다가 그 집사님은 기도가 끝날 즈음 무작위로 성경을 펼쳤습니다. 무심코 성경을 펼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성경말씀을 그날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살았습니다.

집사님은 그런 생활이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의해서 믿음을 키워갔고 힘을 얻어서 살았습니다. 그러니 자연 일도 잘 되었고 삶에 기쁨도 주어졌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 기쁨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떤 사람이 흉내내어 자기도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눈에 확 들어온 말씀이 마태복음 27장 5절이었습니다. “유다가 스스로 목 매어 죽은지라”

기분이 이상해서 또 다른 곳을 펼쳤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누가복음 10장 37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신심이 깊은 신자의 신앙생활을 무조건 따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뜻이 계시됩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발을 씻기지 않으면 베드로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매순간 자신의 삶 속에서 범하는 죄와 허물을 씻김 받지 못하면 예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1:9).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씻김 받지 못하면 우리는 죄를 용서 받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께 무릎을 꿇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용서하옵소서”라고 나서지 않으면 죄 용서 받을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내 발은 씻을 수 없다”고 고집한 것은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무력화시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겸손한 척 하면서 예수의 헌신과 봉사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으로서 교만한 일입니다.

선한 생활과 봉사와 희생으로 자신을 괜찮은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교만한 일입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며 무릎을 꿇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고 나가는 자만이 하나님께 용납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겸손히 나가야 합니다.

3. 한없는 사랑으로 섬기는 예수의 모습이 우리들이 서야 할 자리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만도 너무 큰 희생이셨는데 이런 분이 죄인들인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으니 이것은 상상을 넘어서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인들이나 하는 천한 일을 하심으로서 예수께서는 스스로 종이 되어 죄인인 인간을 섬기는 당신의 모습을 가장 겸손하게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배신의 마음을 가지고 태연하게 앉아 있던 가룟 유다의 발을 씻겨 주셨을 뿐 아니라 겸손한 것 같으나 인간의 의를 내세우는 베드로 같은 사람의 발까지 깨끗하게 씻어 주심으로서 당신의 사람들을 끝없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랑과 겸손으로 제자들을 섬겨주던 예수께서는 그 모습을 제자들이 닮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서야할 자리이고 신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신자들은 희생적으로 섬기는 자리보다는 지배적인 위치에 서기를 좋아하고 정복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제자들이 높은 자리를 탐하여 서로 다투기까지 하였는데, 예수의 그 섬기는 모습은 그들 스스로를 창피하게 만들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들은 남을 가르치기 전에 겸손하게 섬기는 모범을 보여야 하고 말과 행실이 일치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은 세상에서 먼저 허리를 동이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려고 하면 허리가 아프고 피곤하고 참을 수 없는 아픔이 올 수가 있습니다.
꼭 칭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로 오히려 핍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처럼 그 길을 가야 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세계적인 3대 테너가 있습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그리고 호세 카레라스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항상 한 무대에 올랐는데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 카레라스는 마드리드 태생인 도밍고를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사소한 일로 다퉜고 결국 결별을 선언했습니다.

1983년 카레라스는 백혈병이라는 치명적인 병으로 수년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카레라스는 백혈병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단체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후 그는 그 단체의 도움으로 부단히 치료를 받으면서 병이 많이 호전 되었습니다.
카레라스는 치료를 받으면서 그 자선단체가 너무 고마워서 누가 설립한 기관인지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의 원수인 플라시도 도밍고라는 것이었습니다.

도밍고는 자기와 원수로 지내는 친구 카레라스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 투입해서 자선 기관을 세운 것이었습니다.

1987년 어느 날 카레라스는 파바로티와 도밍고와 함께 큰 무대에 섰습니다. 그는 많은 청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내가 잘못했네. 나를 용서해 주게.”

도밍고는 지체하지 않고 말해주었습니다. “이 사람아, 친구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일세. 자네처럼 천상의 목소리를 타고난 사람이 노래를 못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네”

그 후 서로 지난 모든 감정을 털어 버리고 그 누구보다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로 승화되어 파바로티와 함께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보면 으슥한 산골짜기에 강도를 만나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제사장이 지나갔고 레위인도 지나갔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요 신앙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은 그를 돕다가는 무슨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만은 그를 불쌍히 여기고 구하려 주막에 데리고 가서 치료 비용까지 챙겨주면서 그를 도와 주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사마리아인들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보다는 덜 종교적이었는데도 사람을 구해 주었습니다. 돌보아 줄 비용까지 내면서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습입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 자리가 우리의 자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왕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죄인인 우리를 섬기신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최선을 다하여 주님과 이웃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운 겨울을 맞아 우리의 이웃을 둘러보고 섬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으로 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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