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을 납치 성폭행한 뒤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김길태(33)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뒤집고,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15일 부산고법 형사 2부(김용빈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피해자가 납치된 장소에서 발견된 김씨의 족적, 피해자 시신과 근처에서 발견된 휴지에서 나온 정액이 김씨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점, 목격자 진술 등을 거론하며 김씨의 모든 범죄 행위를 인정했다.
또 김씨의 심신미약 주장에 대해서는 "심신장애 유무와 정도는 전문 감정인의 의견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법률적 판단에 달려있다"면서 최종 정신감정 결과와 가족 및 친구의 진술, 김씨의 진술 그리고 범행 전후의 행동 등을 제시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데 대해 재판부는 "사형은 인간의 생명자체를 영원히 박탈하는 냉엄한 궁극의 형벌로서 문명국가의 이성적인 사법제도가 상정할 수 있는 극히 예외적인 형벌이어서 모든 양형조건을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사형선고는 수형자가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적인 살인이나 연쇄살인, 계획적인 살인과 같이 극도의 포악한 범죄 등을 저질러 이 세상에서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국가나 사회의 유지, 존립과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 경우에만 엄격히 제한적으로 허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김씨의 범행이 우발적이었다고 판단한 재판부는 그 이유로 김씨가 이전에 살인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으며 이번 사건에서도 생명권의 침해가 한 사람에 그친 것 등을 들었다.
아울러 재판부는 김씨의 범죄 행위에 대해 그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평도 내렸다. 재판부는 "김길태가 불우한 성장과정에서 비뚤어진 사회인식을 하게 됐고 사회적 냉대 등을 가족과 사회가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는 바람에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중범죄자가 됐다"며 "이러한 사회적 책임은 도외시하고, 피고인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판단했다.
반인륜적인 범죄 행위를 저지른 피의자도 문제이지만 그런 피의자를 방조하고 양산한 사회 구조악적인 문제도 함께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길태 사건과 관련해 본지가 앞서 보도한 바 있는 <'김길태' 이후 범죄자 인권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2010년 3월 11일자, 아래 관련기사 참조)에서 이해동 목사(NCCK 인권위원회 후원회 회장)는 범죄와 관련한 이 같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사회 전체적인 가치관의 문제이고 국민들의 도덕적 의식의 문제"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또 범죄의 근절을 위해선 사회적, 도덕적 불감증을 바로잡게 하는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종합적 대책이 필요함도 역설했었다.
한편, 재판부는 원심 판결에 대해 "(김길태와 관련한)정신과학 및 의학의 불완전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번 사건이 언론에 지나치게 많이 보도되면서 형성된 엄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원심의 양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부산지법은 지난 6월 25일 피의자 김길태에게 사형 선고와 함께 정보공개 10년, 전자발찌 부착 20년을 선고한 바 있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인간의 생명을 인간의 손에 붙이는 사형이라는 극형을 판단함에 있어 어떠한 외압도 작용해선 안된다는 점을 강하게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