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기경의 과오, 우리가 사과드린다"
"교구장 독단이 교회의 중대 사안 결정짓는 것은 중세 봉건시대의 구습"
천주교 원로사제 20여 명이 정진석 추기경(서울대교구장)의 4대강 관련 발언을 비판하며 교구장직 용퇴를 촉구하는 한편 4대강 사업은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낸 성명의 취지에도 동감을 표했다.
원로 사제들은 13일 오전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시대를 고민하는 사제들의 기도와 호소'라는 성명에서 "추기경이 주교단 전체의 명시적이고 구체적 결론에 위배되는 해석으로 사회적 혼란과 교회 분열을 일으킨 것은 분명히 책임져야 할 문제"라며 "정 추기경은 동료 주교들과 평신도, 수도자, 사제에게 용서를 구하고 용퇴의 결단으로 그 진정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 이날 기자회견에는 김병상 몬시뇰, 문정현 신부 등 원로사제 10여 명이 참석했고 성명서에는 25명이 연대 서명했다. 원로 사제들은 전국 교구 원로 사제들의 연대 서명을 계속 받아나가겠다고 밝혔다. |
‘용퇴’의 의미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함세웅 신부(서울대교구)는 "추기경직은 명예직이니 자의적으로 물러날 수가 없고 서울대교구장 직에서 용퇴하라는 의미"라며 "이미 정 추기경은 은퇴연령이 4년 지났고, 이번에 주교단의 의사에 반하는 발언으로 교회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음을 자인했으므로 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 추기경에 대해 “평등에 기초한 봉사와 협의 대신 여전히 교구장의 독단이 교회공동체의 중대 사안을 결정지어버리는 것은 중세 봉건시대의 구습에 갇히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전문가의 영역을 운운함으로써 판단을 유보하는 핑계를 지어내고 결과적으로 엉거주춤한 중립지대로 피하는 태도는 신중할지언정 사랑의 자세가 아니다”라며 “일찌감치 종교권력의 이와 같은 일반적인 양태를 내다보신 예수님은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레위와 사제가 못 본 척 하더라’ 하셨다”고 성경 구절(루가 10,30-32)을 인용해 덧붙였다.
정 추기경의 발언 이후 사제단이 낸 성명에 대해서도 “사제단이 이견을 제기하였다고는 하나 이는 사회의 일각에서 오해하듯이 장상을 겨냥한 비난이나 반박으로 볼 일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교회공동체를 향한 그들의 사랑과 헌신의 열정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줄기차게 헌신해온 이 젊은 사제들의 충정과 호소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지지와 동감을 표했다.
은퇴를 앞둔 선배로서 후배 사제들에게도 “십자가의 자리와 거리를 두고 성당의 담장 안에서만 읊조리는 기도는 한낱 죽은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며 성찰을 촉구했고, 교회의 모든 지체인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이 “다 같이 사랑과 겸손의 마음으로 교회의 어려움을 치유하고 극복해나가자”고 말했다.
한편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허영엽 신부가 13일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 "정진석 추기경이 4대강 사업에 노골적으로 찬성을 하거나 정부 편을 든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에 대해 함세웅 신부는 “십계명에서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고 말했다고 남의 남편은 탐내도 되는 것이냐”며 되물으며 “말장난을 해서는 안 된다”고 일축했다.
사제들은 이번 예산안 강행처리에 함께 통과된 ‘친수구역활용특별법’을 “세계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악법”이라고 비판하며 “저희가 자연과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을 뵐 수 있도록 맑은 눈과 양심을 주소서”라고 기도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2010년 12월 13일자 고동주 기자 godongsori@nahnews.net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