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경동교회] 메시아를 기다리며

2010년 12월 19일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40:1-5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주님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일러주어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죄에 대한 형벌도 다 받고, 지은 죄에 비하여 갑절의 벌을 주님에게서 받았다고 외쳐라.”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아멘.

빌립보서 4:4-7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아멘.

누가복음서 1:46-55

그리하여 마리아가 말하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마음이 내 구주 하나님을 좋아함은, 그가 이 여종의 비천함을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할 것입니다. 힘센 분이 나에게 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의 자비하심은, 그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대대로 있을 것입니다. 그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 그는 자비를 기억하셔서, 자기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아멘.
 
설교문  
  
<메시아를 기다리며>

메시아를 기다리며, 이렇게 제목을 잡고 세 가지 본문을 봉독한대로 읽고 들었습니다. 이사야서 말씀, 빌립보 말씀, 누가복음 말씀, 모든 성경말씀이 보편적 진리를 갖고 있다고 믿기에 상황이 아무리 변해도 변화된 상황을 가지고 성경말씀을 보고 읽어도 큰 은혜를 받습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우리 마음이 어떨까, 준비한 게 있었는데 저한테 긴급 상황이 생기면서 뉘앙스가 약간 달라졌습니다. 제 신앙고백 겸 평소에 드리려고 했던 말씀을 섞어서 드릴텐데 제 고백 이야기가 나와도 조금 양해하시고 들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마지막 주일입니다. 누가 복음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들이 태어나는 것을 찬미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기도고, 시고, 간구입니다. 오늘 누가복음 본문입니다. 이 본문이 ‘마리아 찬가’로 알려져 있고, ‘Magnificat’이라고 합니다. 마리아 찬가의 내용으로 음악에서는 작곡도 하고 시도 읊고 설교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도 이 본문을 수차례 읽었고 감동을 많이 받았는데 이번에 읽으면서도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메시아가 오시는 것을 계기로 이렇게 주님께 노래를 합니다. “제왕들, 세상 사람을 밟고 군림하고 먹을 것도 안 주고 독재하는 제왕들, 권좌에서 끌어내시고, 돈 좀 있다고 권력 좀 있다고 높아졌다고 하는 사람들은 비참한 자로 만드시고, 교만한 자들은 흩으시고…” 제가 이 대목에 와서 이번에 아주 가슴이 찔렸습니다.

저는 제 몸이 철갑을 두른 줄 알고 나한테는 중병도 없을 거고 질병도 없을 거고 그냥 감기 정도 앓다가 지나갈 것이라고 확고부동하게 믿고 65년을 살아왔습니다. 제가 제 몸에 관해서 교만했습니다. 아주 교만했습니다. 그리고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는 했지만 나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 교만했는데, 어디까지 교만했느냐 하면 오만하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심판을 받습니다. 평소에 살아가면서 메시아가 오시면 오만한 자를 흩으시고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 말씀을 제가 이제 몸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지적 오만, 혹시 공부 좀 많이 하셨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까. 권력의 오만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재산의 오만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습니까?

우리한테 주어지는 오만, 교만, 아집, 이런 것들을 사실 우리가 질병이라고 말하지만 오늘 말씀의 핵심은 오만하면 창조주와 대화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만하면 몸을 주신 하나님과 이야기할 수가 없다. 오만하면 막힌다. 막힌 담이 된다. 담은 헐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과 인간이, 인간과 인간이, 또는 인간과 자연이 호흡하며 사는데 한 쪽이 오만하면 막힌다. 막힌 것은 뚫어야 한다.”

그래서 오늘 마리아는 여러 가지 중에서 “세상에 오만한 사람들아, 메시아를 기다리면 제발 하나님 앞에 겸손해라. 그리고 열어라. 함께 듣고 함께 노래하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메시아가 오시면 오만을 회개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겸손하고 싶습니다. 메시아가 오셔서 저를 주관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오늘 빌립보서 말씀은 이렇습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염려하지는 마세요. 그러나 항상 기뻐하고 기도와 간구로 또 감사한 마음으로 메시아를 맞아야 메시아가 옵니다.” 그런데 메시아는 오시는데 도적같이 온다는 말씀이 복음서에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달력에 따라서 오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달력에 따라 오시고 우리는 언제 오시는지 몰라서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오시는 것 때문에 도적같이 온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저한테 암이 도적같이 왔습니다. 지난 일주일 전에 제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적같이 온다. 질병도 도적같이 온다.’ 그 말이 맞는데 그러나 하나님이 오시는 그 날은 도적같이 오는 게 아니라 이미 알지 못하는 사이징조가 있습니다. 세상의 종말은 오기는 온다고 했지만 깨닫지 못할 뿐 하나님이 오시는 전조가 있습니다.

징조가 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의 징조를 구분하지 못하여, 깨닫지 못하여 올 때 도적같이 온다고 했을 뿐, 때의 징조를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속에서, 역사의 변화 속에서, 사람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뜻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데 지혜가 모자라서 깨닫지 못하고 있다가 막상 결과가 발표되면 도적같이 온다고 말합니다. 때의 징조가 있었습니다. 저는 무지했습니다. 무시했습니다. 그 징조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시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메시아로서 오시는데 도적같이 오지만 이미 때의 징조는 여러분에게 다 주셨습니다.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망한다고, 이렇게 살면 복 받는다고 다 알고 있습니다. 때의 징조를 깨달으십시오. 메시야는 징조 속에 오시고 마지막 오는 날 만이 갑자기 오실 뿐 메시아는 올 때를 이미 징조로 보여 주십니다. 예상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오심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슬플 때만 기도하지 마시고 기쁠 때도 기도하시고, 간구가 필요할 때만 간구하지 마시고 간구가 필요 없다고 느낄 때도 간구를 하십시오. 정말 힘들 때만 하나님을 오시라고 하지 마시고 축제가 벌어진 현장에도 하나님 오시기를 간구하십시오. 왜 하나님을 극한 상황에서만 부르십니까? 매일 일상 속에, 항상, 평시로, 메시아의 오심을 기뻐 맞으시는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어느 한 곳에만 메시아 오심을 기다리지 마십시오. 그래서 우리보고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항상 건강을 챙기시고 항상 깨어서 기도하십시오. 상식적인 이야기인데 그걸 모르고 살아갔는데 오늘 야고보서가 다시 말합니다. “항상 깨어 있으세요. 메시아는 항상 오고 계시고 지금도 오고 계십니다.” 몰랐으면 무지함을 게을렀음을 하나님께 고하고 메시아를 맞이하십시오. 아프거나 힘드신 분 계십니까? 메시아가 오실 징조입니다. 그 분이 오시면 메시아께 고백하고 받아들입시다.

이사야서 선지자는 한 술 더 떴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포로의 와중에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부족했고 정치적 독립도 못했고 마음도 상했고 몸도 상했고 나라도 잃었고 메시아가 오시면 무슨 일이 생깁니까?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모든 백성에게 위로를 베푸실 것이다. 위로라는 말은 정치적 변화, 심리적 변화, 세상적 변화, 이 모든 것을 가리켜서 위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 하나님이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역사에 개입하시면 백성이 위로 받습니다. 그것을 다 백성도 알았습니다.

어떻게 위로를 받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백성을 위로해 주시고 치료도 해 주시고 축복도 주시지만 그것들이 하늘에서 벼락처럼 떨어져서 축복 주시지 않습니다. 복 받기 원하고, 축복받기 원하며, 위로받기 원한다면 길을 닦으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닦은 길로 오십니다. 길도 안 닦았는데 낙뢰처럼 번개처럼 오지 않습니다. 길 닦읍시다.

무슨 길 닦으라는 겁니까? 하나님의 위로가 길로 오다가 계곡이 너무 깊으면 하나님의 위로가 어떻게 올 수 있습니까? 계곡에 빠지지 않습니까. 절망이라는 계곡, 암이라는 계곡이 있을 수도 있고 분노, 좌절, 무엇이든지 계곡이 있습니다. 그 계곡을 메우지 않고는 길이 닦이지 않잖습니까? 메우세요.

하나님의 위로의 차가 오고 있는데 인간이 가진 담벼락, 분노, 교만, 무엇이든지 산과 언덕이 너무 높아서 길을 차가 다닐 수가 없습니다. 산을 깎고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교만을 없애십시오. 길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오시기 위해서입니다. 산과 언덕도 깎고, 차가 다니기도 힘든 거친 길도 하나님의 위로의 차가 오기 위해서는 길을 잘 닦아야 합니다. 마음속에 대로를 닦아야 합니다. 좁은 길이지만 깔끔하게 닦아야 합니다. 거친 길, 평탄한 길, 험한 곳은 평지로 닦아야 합니다.

길의 높낮이, 옆과 앞과 모든 것이 평탄해서 하나님의 위로가 쉽게 오실 수 있어야 오시는 것이지 길도 안 닦고 준비도 없이, 자기 하등의 준비도 없이 하나님의 은총이 기적처럼 임해 달라고 하면 하나님의 기적은 없습니다. 안 옵니다. 길이 조건부는 아니나,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닦게 해서 오실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길 없이 하나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유보입니다.

오늘 성가대 찬양을 잘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양화된 음을 서로 합해서 화음을 하는 이 찬송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우리 사회도 다양하지만 서로 화하고 통해야 아름답습니다. 제 몸속에 있는 장기들이 어느 곳 하나 망가지지 않고 서로 화하고 통하고 연결되어야 잘 되어야 제가 건강한 것이지 한쪽이라도 막히면 막힌 담을 풀어야 합니다. 통하게 해야 합니다. 화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길닦이’입니다.

그런 노력 속에 하나님이 오셔서 하나님과 사람이 통하고 사람과 사람도 통하고, 사람과 자연도 통하고, 자연과 자연도 통하고, 몸속에 있는 장기도 통하고, 통하는 사회, 그것이 길 닦는 사회입니다. 메시아가 오기 위한 최적의 요건들입니다. 길 닦읍시다. 안 닦으면 하나님이 오시는 것을 유보하신다고 합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세상이 바뀌겠지만 메시아가 오시기 위한 우리의 결단은 이렇게 이사야서를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드리면서 제가 여러분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 제 일단을 고백합니다. 저는 그동안 목회하면서 아프신 분들 심방도 해봤고 마음으로 위로를 드렸는데 제가 몸으로 직접 질병을 앓아보지 않아서 암도 암 환자를 보기는 했지만 암이 얼마나 무서운지 들어서 알았지 제가 몸으로 충격 받지도 않아서 조금 떴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일부러 주신 것은 아니겠지만 기왕에 주신 거라면 “너도 최악의 상황에 가서 아픔이 뭔줄 알고 서로 진실된 위로의 인사를 서로 하고 목회를 해라.” 그런 교훈으로 알고 받겠습니다. 그리고 경험하겠습니다. 그리고 지지 않고 낫겠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복음을 떳떳하게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말구유간에 태어나셨다는 말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왜 수많은 걸 놔두고 구유에 태어나셨을까요? 구유는 가장 천한 곳입니다. 가장 밑바닥입니다. 누구도 가기 싫어하는 곳, 병으로 말하면 암입니다. 사회 신분으로 말하면 누구도 쳐다 보지 않는 비참한 신분입니다. 왜 하나님이 거기 가셨을까? 그 말은 하나님은 거기까지도 은총을 베푸신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갈 수 없는 최악의 상황까지도 갈 수 있습니다. 거기까지 가셔서 하나님이 잉태하시니 그분을 메시아라고 하십시오. 저희가 그 사실을 다시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이 경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게 하시는데 그 하나님이 저는 감사합니다. 그분 오셔서 여러분도 꼭 자기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약속한 것은 아닌데 한달 전에 미리 약속을 했던 연세대학에서 특별한 강연이 지난 주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발제한 게 있는데 ‘죽음을 당하지 말고 죽음을 맞이합시다.’ 이런 주제였습니다. 어느 분과 제가 공동 주제가 되었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몸도 이렇고 말씀을 전하게 되어서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제가 한 가지 은혜받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도 살아있고 저도 살아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생명이 죽음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죽음은 외부의 상황에 의해 제가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만 죽음인 줄 알았는데 막상 이런 형편이 되고 나니까 죽음은 내 속에서 생길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장기 하나가 망가지면 죽음입니다. 죽음이 항상 우리 안에 있는데 건강한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걸 모르고 살아있다고 교만하며 살 수 있습니다.

죽음이 있으나 그 죽음은 가능성으로 존재합니다. 우리 장기 하나가 죽을 수 있는데 죽음도 죽음을 항상 끌어안고 그 죽음이 우리를 항상 엄습할 수 있습니다. 생명 속에 죽음이 있어서, 정의 속에 불의가 있어서, 자유를 잃은 속에 부자유가 있어서 항상 같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죽음은, 절망은, 아픔은 이 모든 것은 항상 누구에게든지 가능성으로 상별합니다. 그걸 알고 살아가십시오. 그래서 항상 깨어있으라는 겁니다.

제가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죽음이 오면 맞이합시다. 당하지 맙시다.’ 그렇게 강연을 하고, 성경말씀을 다시 읽었습니다. 생명은 죽음을 끌어안고 삽니다. 가능성으로서의 죽음은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화 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생명 속에만 죽음이 존재합니까? 죽음 속에는 생명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우리가 믿는 메시아는 죽음 속에도 생명이 있다고 하십니다.

사람의 죽음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 생명이 되었습니다. 메시아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고 죽었다가 다시 영생이라는 생명을 만들어 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죽음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속에 생명이 움텄다니요. 골고다 언덕에 있으신 예수의 십자가 속에서 부활생명이 움터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부활생명이 잉태했습니다. 3일 후에 부활생명이 나와서 죽음을 다시 없앴습니다. 이 사실을 보면서 아무 죽음 속에나 생명이 가능케 됨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속에 있으면 부활생명이 죽음을 뚫고 움터남을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오시는 메시아는 거기까지 보장해 주시는 분, 그 메시아를 믿고 기다리며 오늘 이 순간에 주어지는 생명의 약속을, 약속된 생명을, 멋있고 즐겁게 사십시오. 기쁘게 사십시오. 그리고 가능하면 작지만 항상 기쁘게 살도록 하십시오. 메시아가 지금도 옵니다. 그분이 함께 책임져 줄 겁니다. 메시아 오심을 기다립니다.

어떻게 기다리시든지 여러분, 진심으로 기다립시다. 죽음 속에서도 아픔 속에서도 분노 속에서도 기쁨과 새로운 생명이 잉태될 수 있습니다. 메시아가 주시는 약속입니다. 약속을 믿으시면 힘 있게 살고 이 나라의 운명, 우리 사회의 운명, 가정과 각자의 운명을 하늘을 향해서 재구상해 보고 결단하는 메시아의 기다림이 여러분에게 복이 되길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