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마태복음 1:23
설교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1967년에 16살된 여학생이 다이빙을 하다가 그만 사고로 목뼈를 다치면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휠체어를 이용해서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죠니 에릭슨 타다(Joni Ericsson Tada)입니다. 그 후 그녀는 2년 동안 재활치료를 하였습니다. 심한 고통으로 인해 몇 번이나 좌절과 실망으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을 만난 다음 장애를 극복하고 입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작가로, 화가로, 웅변가로 그리고 JAF(Joni And Friends)라는 단체를 만들어 전 세계의 장애인을 돕는 활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자서전이 [Joni]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이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되어 그녀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습니다.
지금 그녀의 활동은 눈부실 정도로 대단합니다. 그녀는 미국 장애인 협회 협회장으로 장애인 법을 재정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녀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Joni and Freinds'라는 라디오 프로의 진행을 맡아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유명한 크리스챤 잡지인 'Moody Monthly'의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그녀가 쓴 책은 20여권에 이르는데 아주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녀는 전 세계의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으며 많은 사람의 후원으로 1년에 결산이 6억불이 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조니야말로 진정한 오늘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이 시대의 한 알의 밀알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치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니는 자신의 절망적인 처지에서도 예수를 만나 새로운 사람이 되어 온 세계에 빛과 소금이 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조니와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조니는 주님과 동행하여 많은 선한 일을 했습니다. 조니와 함께 계신 주님은 우리 모두와 오늘도 함께 계십니다.
이번 성탄절에도 성육신 하신 주님의 은혜가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넘치기를 바랍니다.
1. 예수의 오심은 인류 역사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예수의 부친 요셉은 약혼자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용히 끊고자 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약혼자가 잉태한 것은 성령에 의한 것이라고 하면서 “데리고 오는 것을 무서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며 구약의 선지자의 예언 즉,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1:23)를 이루는 것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 ‘임마누엘’을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본래 인간은 아담 타락 이후 다 하나님을 떠나 죄악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율법과 선지자들을 보내 주셨지만, 인간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도리어 그 율법으로 남을 정죄하며 더욱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선지자들을 아예 없애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은 하나님의 진리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악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장과 서기관과 율법학자들은 합작해서 예수의 오심을 방해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인간의 방해에 구애 받지 않으셨습니다.
예수의 오심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 임마누엘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러 오셨으니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축복으로 몰랐습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 저 멀리 동방박사들까지도 선물을 가지고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왔는데 막상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유대의 왕은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그 근방의 2세 미만의 어린이들을 죽였고, 종교인들은 메시야가 베들레헴에서 나신다고 성서를 해석하고도 아기 예수를 경배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현대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인들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분과 함께 사는 영광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천국의 삶입니다.
2. 예수의 오심은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이렇게 두세 사람이 모이는 곳이 예수 이름으로 모이는 소그룹입니다. 예수를 믿는 소수의 사람들이 모며 기도하고 신앙적인 교제를 나누는 소그룹 모임은 함께 모여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그곳에 주님이 같이 계십니다.
현대인들은 외롭습니다. TV, 영화, 인터넷, 노래방 등 외로움을 달래 주기 위한 현대 문명의 이기들이 엄청나지만 웬일인지 외로움은 갈수록 깊어만 갑니다.
전문가들은 현대 사회 건강문제 가운데 인류를 가장 괴롭힐 것으로 암이 아니라 정신질환을 꼽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추산에 따르면 2020년 사회부담을 초래하는 세계 10대 질병 가운데 우울증, 알코올 중독, 정신분열병 등의 3가지 정신질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한국의 자살률은 우리의 정신건강문제의 현주소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 사이에 우울증은 40%, 자살은 23%가 증가하는 등 현대 한국사회에서 스트레스성 정신질환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현대인들은 외롭습니다. 그래서 ‘군중 속의 고독’이야말로 현대인들의 자화상입니다.
한 조종사가 비행기 사고로 사막에 내린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다시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달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인간으로 알아주는 상대 앞에서만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그런 상대가 없는 곳에서는자신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따라서 그런 상대와의 만남만이 진정한 만남이라는 것을, 외로운 것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만남이 없어서라는 것을, 만남이 없는 모든 장소가 곧 사막이라는 것을, 사막은 도시에도 있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린 왕자]를 썼습니다. 그 조종사가 바로 생 떽쥐베리입니다.
군중 속에서 고독감을 느끼기에 현대인들은 오직 자신만 있습니다. 나만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나를 위한 기도입니다. 자기 가정만을 위한 기도입니다.
소그룹으로 모일 때에도 자신만을 위한 소그룹일 때 거기에도 고독은 존재합니다. 타인과의 공감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타인을 만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말씀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지 ‘나’와 함께 계시다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하신 주기도문에서도 강조되는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렇게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소그룹에서 나를 공개하고 이웃과 함께 할 때 거기에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살고 싶으면 이웃과 함께 해야 합니다.
소그룹도 이웃과 함께 하는 공동체 모임이어야 하고 교회도 이웃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이웃이 없는 교회, 함께 하지 않는 공동체는 교회가 아닙니다.
남과 함께 하기 위해 될 수 있으면 자신의 껍데기를 깨야 합니다.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함께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웃과 함께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음이 안 듭니다. 성격이 다릅니다. 신분이 다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내 모든 것을 깨뜨리고 그들을 이해하고 위해서 기도하고 마음을 함께 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여기에 기적이 있고 행복이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한국 교회의 모델 교회가 되는 것이 우리의 비젼입니다. 한국 교회 모델은 아무 교회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교회가 많습니다. 영성 깊은 목사와 지체 높은 교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교회도 많습니다. 교인 숫자가 엄청난 교회도 많습니다. 정말 대단한 교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함께 하는 교회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런 교회는 나만 생각하고 나만 바라보고 나만 편안한 교회가 아닙니다.
어떤 성도들은 지난번 설문조사에서 “교회에 노인대학 식사, 주일 식사를 위해서 사람을 고용해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고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이해는 됩니다. 요사이 여성들의 일이 많아져 피곤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편하게 신앙 생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을 섬기고, 이웃을 위해 희생이 없는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습니다.
한 부자 청년이 뜻한 바가 있어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에 가 보니 화장실과 욕실이 더럽고 냄새가 나는 등 너무 불결해서 불만을 품고 학장에게 갔습니다.
“교수님, 이렇게 더러운 곳에서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 좀 치워주십시오. 깨끗하게 해주세요.” “알았네. 내가 다 알아서 조치할 테니 가 있게.”
조금 뒤에 이 학생이 그 화장실에 가 보았습니다. 요란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씻는 소리, 닦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청소부를 데려다가 청소하는 줄 알고 들어가 보니 학장님이 직접 청소하고 있었습니다. 학장님이 기쁘게 청소를 하다가 이 학생을 보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들어오게. 이제 깨끗해질 테니 염려하지 말게.” “학장님, 청소부 데려다가 시키면 될 텐데 왜 직접 화장실 청소를 하십니까?”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니라네. 교회나 신학교는 일을 보는 사람이 먼저 하는 걸세.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네. 힘으로 하는 것도 아니네. 불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잘못됐다고 보는 사람, 쓰레기를 보는 사람 하나하나가 청소할 때 우리 삶의 주변은 깨끗해질 수 있는 걸세. 자네가 부잣집 아들로 여기 와서 보니까 좀 불결하게 보이지. 다른 사람은 별로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네. 그러니 느끼는 사람이 일을 하면 이 학교는 깨끗해질 수 있는 거라네.”
내가 편하고 나만 생각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힘들다고 그 힘든 것을 모두 돈으로 해결하려는 교회도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성도의 헌신과 섬김이 근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헌신과 섬김을 돈으로 바꾸자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져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노인대학에서 노인들을 섬기고, 주일에 식당에서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참여해 보십시오. 힘들게 보일 것입니다. 시간도 많이 빼앗길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노력이 없는 곳에 풍성한 열매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땀을 흘리지 않으면 진정한 섬김의 의미를 체득할 수 없습니다. 섬김은 이론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섬김에 대해 제자 훈련을 했다고 해서 섬김이 무엇인지를 알았다고 하는 것은 착각에 불과합니다. 섬김이 무엇인지 알려면 실제로 실천해야 합니다.
주차안내위원으로 봉사하면서 여름에는 더위와 겨울에는 추위와 실제로 싸워 봐야 하고, 식당에 가서 봉사하면서 엄청난 식기를 팔이 아프도록 닦아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봉사하면서 땀을 흘려 보아야 섬김의 진정한 의미를 체득할 수 있습니다. 섬김과 희생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입니다. 섬김과 희생은 머리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하는 것입니다.
땀 흘려 다른 성도들과 함께 일할 때 그런 서로의 땀 속에 서로에 대한 사랑이 묻어 납니다. 서로 열심히 일하며 서로를 섬길 때 진정한 공동체가 이룩될 수 있습니다.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오로지 하나님 나라는 땀 속에 있습니다. 서로를 위해 땀 흘려 본 경험을 여러분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위해 땀 흘려 본 사람들은 그러한 땀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서로를 위해 땀 흘려 보면, 고생이 고생이 아닙니다. 즐겁습니다. 힘든 일도 힘든 줄 모르고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서로를 잘 몰라 어색한 사람도 함께 일하다 보면 어느 새 친해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바로 땀의 비밀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우리가 착한 행실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재정 압박을 받으면서도 성탄절 헌금을 불우 이웃을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이것은 이웃을 위해 헌금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좋은 교회가 되려는 몸부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오신 성탄절에 주님을 영접하여 나의 껍데기를 벗고 이웃과 함께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는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피곤해도 섬김과 헌신으로 살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