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데스크칼럼]소경이 해가 안보인다 한들 해가 없겠는가

한 에큐메니컬 운동가의 부끄러운 뒷모습

한 동네에서 해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다. 한 앉은뱅이 소년은 해가 도시의 지붕에서 뜬다고 말했고, 산악지방 출신 대장장이는 해가 산과 골짜기에서 떠오른다고 했으며, 갤리선(galley船) 노예였던 한 염장이는 해가 바다에서 떠오른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논쟁은 차츰 커져 나중에는 해의 크기, 빛깔, 모양에 대해서까지도 제각각의 견해를 내세우며 다투기에 이르렀다.
 
이 내용은 이문열 소설 「사람의 아들」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동일한 해를 보면서 사람들은 각기 자신만의 인식의 스펙트럼으로 해석을 했고, 그 결과 각기 다른 결과들이 도출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들이 관찰한 대상은 동일하며 그 누구의 견해도 틀리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의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것 뿐이다. 얼핏 보면 우스워 보이는 이들의 논쟁을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이유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이같은 소모적 논쟁이 자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규정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한다. 이성은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상을 규정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작용하나, 단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 안에서 만이라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이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완벽히 분석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이 이성으로 하나님을 완벽히 분석할 수 없음이 분명할 때, 하나님을 믿는 믿음(신앙)에 대한 완벽한 분석 역시 가능하다고 확언할 수 없다.
 
에큐메니컬이 다양한 믿음의 형태를 인정하고 대화하려는 자세는, 인간이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다는 것 즉 한계를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다. 예수의 복음을 요한사도와 바울사도가 각각 다르게 그려낸 것처럼, 또 복음이 지역과 컨텍스트에 따라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의 모양을 띠게 된 것처럼, 다양성 속의 일치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가 신념의 문제인 만큼 우리는 종종 '내가 가진 신앙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 내 극보수는 가톨릭을 기독교 최대의 이단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렇다해도 좀 더 리버럴한 진영에서 그들의 보수적 견해를 함부로 비판할 수 없다. 그들의 종교적 신념, 믿음의 문제이기에 타인이 나서서 그것은 옳다그르다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에큐메니컬 운동가임을 자처하면서 기독교 내에서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자신이 믿는 모양과 좀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함부로 규정해버리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그러한 무리들을 돕거나 그들에게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최근 통합 사무총장 조성기 목사가 WCC총회가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게끔 여러모로 힘쓰고 있다. 일부 보수주의 진영이 WCC를 인정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발표한 상황에서, WCC총회에 복음주의권과 오순절권도 함께 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조 목사의 행보는 칭찬받을 만 하다. 그럼에도 최근 조 목사가 논란에 휘말리고 있는 이유는, 그가 한국교회에서 수많은 이들을 이단으로 정죄해 신앙의 자유 및 인권의 영역에서 큰 물의를 빚고 있는 이단감별사 무리를 두둔해주고 있다는 정황이 계속적으로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 처음으로 돌아가서, 소설 속 동네에서 벌어진 해에 관한 논쟁은 한 소경에 의해서 중단된다. 이 소경은 '두 눈으로 해를 너무 많이 연구하다가 뜨거운 햇살에 눈동자가 타서' 시력을 잃은 사람으로, 해에 관해 다투는 자들에게 "당신들이 말하는 해는 모두 거짓"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해란 그저 추상일 뿐이라고 말해버린다. 실체로서의 해가 타오르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속칭 이단 감별사라는 자들은 지금도 복음주의권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불법을 자행하며 중세의 마녀사냥식 이단사냥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을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끝도없이 판단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은 하나님을 보는 눈이 어두워져 자기 한계속의 추상적 하나님만을 보고 있는것이 아닌지 심각한 자성이 필요할 때다. 그리고 에큐메니컬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같이 타인의 신앙을 정죄하는 부류에 속하거나 그들에 동조하면서 연합, 일치, 평화라는 에큐메니컬 운동의 핵심가치를 허무는 교회의 분열을 조장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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