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1월 추운 겨울 길거리 공사장에서 스티로폼 위에 잠을 자고 있던 두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면서 김광수 목사, 정채진 사모에 의해 시작된 사회복지법인 은행골우리집이 올해 17년째를 맞이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이 기간 아이들은 무럭 무럭 자라나 대학에 진학하는가 하면 직장을 구하고, 가정을 일꾸는 이들도 있었다. 부모의 학대에 시달리다 집을 뛰쳐 나온 아이들, 본드와 가스 흡연으로 긴 방황을 하며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 초창기 그런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김광수 목사는 지난 26일 주일 저녁 성남시에 소재한 그의 집에서 열린 은행골우리집 송년모임에서 그의 사역을 "3D도 아닌 5D였다"고 표현하며 힘겨웠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은행골우리집 송년모임에 참석한 은행골우리집 이사들과 이수교회 교인들. ⓒ김진한 기자 |
김 목사와 가까운 선후배 사이인 권영종 목사는 "아이들이 지금은 한없이 착해 보이지만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며 한 가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은행골우리집을 시작한 김 목사는 처음에 자신의 자식들과 가출한 아이들을 구별하지 않고 같은 집에서 함께 키웠다. 그러다 보니 삐뚤어진 성격을 갖고 있는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김 목사가 없는 틈을 타 그의 자식들에게 "넌 부모가 있어서 좋겠다. 난 그런거 없다"며 시기하고 질투하며 왕따를 시켰다는 것이었다.
가출한 아이들의 둥지가 되려고 노력했던 김 목사는 어깨에 힘이 쭉 빠질 법한 이 이야기를 자신의 자식의 입을 통해 직접 전해 듣게 된다. 배은망덕한 가출한 아이들을 향해 분노를 할만도 했지만, 김 목사는 다른 길을 택했다. 자신의 자식과 정채진 사모를 위해 다른 집을 구하고, 김 목사 자신은 다시 가출한 아이들 곁으로 돌아온 것. 본인은 내 자식과 가출한 아이들을 차별없이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그것을 깨닫지 못한 데에 대해 분노하기 보다는 더 큰 책임감을 갖게 된 김 목사는 '아이들을 더 사랑하자'는 제 3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렇게 가출한 이이들과 세월을 보낸지 17년. 이제 그룹홈을 만들어 집 3채에 각각 7명씩 아이들을 돌보는 규모로 은행골우리집은 성장했다.
▲은행골우리집 송년모임에서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김광수 목사. ⓒ김진한 기자 |
김 목사는 이날 모임에서 내년에 취직하는 다영(23세)이를 칭찬했다. 삼성 LCD 부서에 입사했다며 은행골우리집 이사들 앞에 다영이를 앞세워 자랑했다. 아이들이 같은 사정을 갖고 있는 형, 누나를 따라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했다.
“초창기에는 본드나 가스를 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중학교 졸업을 못하는게 허다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선아라는 애가 대학을 처음으로 입학하고 나니 우리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은거에요. 아이들이 다들 공부를 열심히 해요. 21명 전원 기말고사 성적이 향상됐는데 어떤 아이는 평균 10점이 오르기도 했어요.”
그런 와중에도 신경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이전의 부모와 집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다고 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일을 하면서 성공한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을 해요. 잘하는 것도 있지만 사실 한계도 많이 느껴요. 우리가 키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키운다. 이런 생각으로 아이들을 키워요. 내 손으로 낳은 자식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잖아요.”
은행골우리집은 가정해체 등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지켜주는 울타리이며, 이들을 감싸주는 그룹홈이다. 또 청소년들 스스로의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 자라도록 돕는 대안가정이며 청소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웃과 사회를 밝히는 빛으로 자라도록 돕는 공동체다.
은행골우리집에서는 ▲가정해체, 폭력, 학대, 결식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위기개인상담, 지원활동 ▲가정해체 등으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아동과 청소년을 그룹홈을 통한 중장기 보호양육활동 ▲지역사회내 빈곤, 실직, 질병 등으로 위기에 처한 위기가족 상담, 위기개입 등 지원활동 ▲지역사회 안전망 확충과 사회복지발전을 위한 조사, 연구, 연대 활동 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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