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만우 송창근 목사의 납북 60주년을 맞아 그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고자 주재용 박사(한신대 전 총장)의 기고글 ‘만우 송창근의 성빈의 삶과 사상’을 총 1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경건과신학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는 주 박사는 그의 제자 장공 김재준과는 달리 연구 및 평가에 있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송창근을 오랜 기간 연구, 지난 2008년 말에는 송창근 평전 『벽도 밀면 문이 된다』(송우혜 저·생각나눔)를 펴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편집자주
Ⅲ-6. 실천적 목회 신학
▲주재용 한신대 명예교수(한신대 전 총장) |
송창근은 민족의 역사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도 독립운동가 또는 정치혁명가로서 살기를 원하지 않았으며, 부패해가는 사회에 대해서 애통해 하였고 거지 대장이 되어 살아가면서도 사회사업가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고 오히려 민족의 미래 지도자는 결국 교회 목회자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신학교육자, 교회 목회자가 되어 살기를 원했다. 그는 목회자였다. 그는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여 평양 산정현교회 목회를 시작으로(1933-1936), 김천 황금동교회 목사로 1940년에 취임했고 1945년에는 바울교회(지금의 서울성남교회)를 창립 목회하다가 6‧25 한국전쟁 중 신학교 교수이자 목회자로 납북되어 세상을 떠났다.
송창근의 목회신학(론)은 위에서 살펴 본 그의 신학의 종합이라고 할 것이다. 그는 말과 글에서 끝나는 신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실천하는 신학자였다. 따라서 그의 목회는 그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의 목회신학은 그의 교회론에서부터 시작된다.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그가 사회문제, 노동문제, 민족문제 등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회가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 ‘중생의 복음’에 있다고 하였다. 이 관심 위에서 교회는 민족, 노동,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교회는 결코 사회문제, 노동문제, 평화문제, 국제문제를 말하거나 혹은 사람들의 변변치 않은 지식이나 두루 주서 모든 사상을 논하는 곳이 아니외다. … 교회의 중심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 중생의 복음이 우리 교회의 중심이외다.”
그러므로 ‘말씀’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그는 말씀이 “우리의 신앙 자체”라고 한다. 이 말씀은 시대를 통하여 개인과 사회를 갱신케 하고 새롭게 창조하는 생명의 원동력이다. 그것은 말씀이 단지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있고 진리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계시한다.
이 점에서 송창근의 목회신학은 그리스도가 계시한 하나님의 ‘말씀의 목회신학’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목사는 교회정치, 교회규칙, 교리보다도 성서를 읽고 성서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교회는 사회개량운동, 민족운동, 정치운동보다도 ‘복음전도’가 유일한 사명이라고 역설한다. 그래서 그는 목사, 신학자는 반드시 진리를 말하는 ‘설교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말 잘하는 목사에 의해서 흥미 본위, 즉흥적 설교가 강단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한국교회의 부흥이나 발전책은 다른 것보다도 교회강단문제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면 어떠한 설교가 새로운 신앙을 창조할 것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객관적 진리를 말하는 설교자라야 참된 설교자라는 말이외다. 객관적 진리란 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복음,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 앞에 밝히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云함이외다. …
생명있는 설교는 신학자에게만 들을 수 있고 참된 신학은 진정한 설교가의 입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송창근은 설교를 강조하지만, 그러나 설교가 예배의 전부라고 하지 않는다. 교회에서 우리는 초자연적 실재자요 창조주인 하나님과 교통하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이다. ‘신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교회에서 드려져야 한다. 이 예배가 없는 교회는 병든 교회다. 교회에서의 예배는 “경건과 신비와 열정과 엄숙과 성령의 움직임”이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설교는 이와 같은 예배의 일부분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예배를 매우 중요시한다. 그가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였다. 그 교회 거물급 K장로는 예배시간에 늘 졸고 있었다. 이것을 본 송창근은 어느 주일예배 중 설교를 중단하고 K장로를 불러서 예배당을 한 바퀴 돌고 오라고 명령을 했다. 그가 서울성남교회에서 목회할 때 P집사가 문학적 ‧ 철학적 표현으로 장황하게 기도하니까 “P집사, 기도 중지”하고 고함을 치면서 그의 기도를 중지시켰다. 이렇듯 송창근은 매우 엄격하면서도 실천적인 권위 있는 목회자였다.
그는 목회자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용납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가 산정현교회를 사임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권위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권위는 교만한 사람에게 대한 것이었다. 사실 송창근은 위엄이 있으나 온정이 있었고, 엄격했으나 자상한 목회자였다.
그는 교인 가정에 심방을 갈 때는 비록 적은 것이지만 그 가정에 필요한 것을 선물로 가지고 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어느 교인이 신앙적으로 난처한 입장에 있게 되면 오히려 그 교인의 입장을 풀어주는 일을 하였다. 이것의 한 예가 앞서 지적한 그 유명한 ‘담배피운 영수 이야기’이다. 송창근은 늘 떠날 준비로 보따리를 옆에 싸 놓고 목회하였으며 그렇게 신학생들을 교육시켰다. 그것은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구질구질하게 보이면 목회자의 권위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는 교회를 떠나야 할 때는 지체 없이 떠났다.
이와 같은 송창근이지만, 그가 평양에서 목회하고 있었을 때, 그는 틈만 있으면 고학생들의 방을 직접 찾아가 군고구마를 사서 주기도 했고, 결혼한 신학생이 아내에게 정이 들지 않아 방학 때 집에 가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비녀와 바늘 한 쌈을 사다 주면서 “이걸 가지고 가서 부인에게 선물하라”고 한 다음, “알사탕 한 봉지를 사 가지고 밤에 부인과 단둘이서만 먹어라”고 충고를 하는 실천적 목회자였다.
내선 일체(內鮮一體)를 내건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억압이 막바지에 이르던 때, 송창근은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실천적 목회자로 살기 위해 온갖 수모와 시련을 겪었다. 그는 일제의 동화정책에 순응해야 했던 것이다. 이 일에 대해서 그에 대한 부정적 비판이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울면서 겨자 먹기로 나 하나 수모를 받으면서도 양떼들을 돌봐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그의 세 가지 유형의 교회 지도자론이 있다. 저항하여 옥중에서 순교까지 하는 형, 다른 하나는 세상일 참견 않고 은둔하여 혼자 기도하는 형, 또 다른 하나는 현실에서 수모를 당하면서 현실 교회를 돌보는 형이다. 송창근은 이 세 유형이 모두 의미있는 삶이라고 하면서, 그는 반드시 하나님이 이 민족에게 ‘새 날’의 축복을 주실 것을 확신하고 제3의 유형의 삶을 택했다고 하였다. 김삼수 목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전해 주고 있다.
“나는 하루에 몇 번씩 現下 괴로운 목회를 두고 山中이나 혹은 農募에 찾아들어 은둔 수양코자 생각나지만, 나 편히 지내자고 교회를 두고 들어갈 용기가 없어 ‘울면서 겨자 먹기로’ 울면서라도 敎會洋群을 살펴야 되고 건사해야 될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불원간 친히 해결해 주실 것이니 걱정할 것 없다. … 이 위기에 교회를 버려두고 山中에 들어가 기도하며 수양하는 친구들이나, 옥중에 가서 수난하는 친구들도 있는 일이로되, 수난의 현실 교회를 지키는 것이 또한 중대한 사명이라, 이러한 모양이 되어 다니는 것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