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 새해 각 교회의 강단에서 목회자들은 새해를 맞이하는 교우들에게 신앙의 각오와 결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2일 새해 첫 주일예배 설교에서 이수중앙교회 박원근 목사(기장 증경총회장)는 "탐욕은 육신의 소욕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 육신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며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육신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성령의 첫 열매’란 제목의 이날 설교에서 박 목사는 "분명히 알 것은 사랑의 열매란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내 재능으로 맺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니다"라며 "내가 죽어야 성령이 임하게 되고 오직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사랑의 열매가 맺게 된다"고 말했다.
강남교회 전병금 목사(기장 증경총회장)는 ‘우리 생애 최고의 해’란 제목의 설교에서 "미지의 새해를 출발하면서 나 혼자 출발한다면 얼마나 불안한 출발이겠는가"라며 "야곱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던 것 처럼 금년에도 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수중앙교회와 강남교회의 새해 첫 주일설교 전문.
성령의 첫 열매(호세아 11:8-11, 갈라디아 5:22-26)
▲이수중앙교회 박원근 목사(기장 증경총회장) |
현대인들은 물질을 사랑하다가 물질의 종이 되어 버렸어요. 우리의 영혼이 어떻게 이 소유의 포로에서 탈출할 수 있겠습니까? 물질이 내 생명의 주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 소유가 나에게 삶과 힘과 의미와 행복을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몸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물질을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하나님이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이 조종한다는 증거입니다. 이 탐욕은 육신의 소욕에서 나오는 것인데, 이 육신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어떻게 이 원수 같은 육신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가 있겠습니까?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6)”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5:22-24)”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육신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리고 성령의 소욕에 따라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을 뜻합니다. 그 성령의 열매의 첫째가 사랑의 열매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가 먼저 사랑의 열매를 맺고 더 노력해서 두 번째 열매인 희락의 열매를 맺고 그런 것이 아니올시다. 성령의 첫 열매가 맺히기만 하면 나머지 열매들은 따라서 열리게 됩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닙니까? 사랑의 열매만 맺게 되면 그 사랑의 열매가 희락의 열매도 화평의 열매도 끌고 옵니다. 그러기에 사랑의 열매가 귀합니다. 또 하나 우리가 분명히 알 것은 사랑의 열매란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내 재능으로 맺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닙니다. 내 육체로는 불가능합니다. 내 육체는 성령의 열매가 맺는데 최대의 장애물이올시다. 그러기에 내가 죽어야 성령이 임하게 되고 오직 성령께서 역사하셔야 사랑의 열매가 맺게 됩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해(마가복음 4:35-41절)
▲강남교회 전병금 목사(기장 증경총회장) |
제가 군목으로 있을 때 일입니다. 새해 첫날 아침 부대장의 호출이 있어 부대 본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자리에는 부대장과 참모들 그리고 예하 부대장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이상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앞에는 돼지머리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이 놓여 있었고, 그 앞에 부대 장교 10여명이 서서 막 절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사 지내는 자리였습니다. 고사를 지내려면 지낼 것이지 아무리 참모들이 다 모이는 자리라지만 군종 참모인 저를 부르다니 참 당혹스러웠습니다. 저는 ‘아차, 잘못 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고사를 지내는데 목사에게 무엇을 하라고 오라고 했을까라고 순식간에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부연대장이 “군목님, 금년에 우리 부대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해 주십시오. 그리고는 우리 함께 절 하십시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고시 지내는데 군목에게 기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부대장이 함께 고사를 지내는 자리에서 기도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 없고 어떻게 입장을 취해야 할지 고민스러웠습니다.
저는 그 때 그 부대에 부임한지가 얼마 되지 않은 군목이었기 때문에 여간 고민이 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호히 “이런 자리에서 기도하면 오히려 좋지 않습니다. 제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닙니다”하고 내려 왔습니다. 후에 알고 보니 그 가운데에는 기독교인들도 있었는데 부대장의 명령에 불복종할 수 없기 때문에 강제로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부대 뿐 아니라 크고 작은 처소에서 새해를 출발하면서 고사를 지내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가정이나 사업이 잘 되라고, 성공하라고 이렇게 고사를 지내는 것 같습니다.
스탠포드 대학 심리학자 젠센은 유대 민족의 지적 능력이 다른 민족에 비해 우수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유대인의 성공 비결은 고사가 아니라 숱한 고난 속에서도 그들이 지켜온 신앙 교육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 교육의 장(場)은 가정이며, 교사는 부모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가정교육은 신앙을 위한 것이지 지식이나 직업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 스스로 하나님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싶도록 환경을 만들어 줄 책임이 있습니다. 부모가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는 것 등을 보며 자녀들은 무의식중에 믿음을 배우게 됩니다. 또 글을 배우기 전에 성경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갖게 합니다.
유대인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목회자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첫째로 하나님 중심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 없이 하나님은 있지만 하나님 없이 나는 없다. 나는 하나님이 사용하는 도구이다”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 중심은 이사할 때 교회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가가 우선 순위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목회자 중심은 자녀, 교육, 결혼, 이사, 사업 등 모든 문제를 목회자와 상담을 통하여 결정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경영하는 공장에는 목회자가 고용되어 있어 상담자의 역할을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영적인 리더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 의해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철저하게 배운 것이 그들이 세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비결입니다.
성공적인 삶에도 항상 위험은 닥치기 마련입니다. 연평도 사건이 보여주듯이 올 한해에도 분명 뜻하지 않은 위험과 불행이 우리 모두를 덮쳐 올 것입니다. 이런 위험과 불행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말씀을 통해 배우고 오늘 시작된 2011년을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오늘 금년 한해를 출발합니다.
예수의 일행이 저물 때가 되어 배를 타고 건너편 마을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선교를 하시기 위해 다른 마을로 출발한 것입니다. 예수의 일행이 탄 배를 따라서 다른 배들도 함께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를 모시고 오늘 새해 2011년을 출발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누구나 주님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영접한 사람은 주님을 마음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엄청난 축복을 받은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그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겠습니까? 만일에 우리가 미지의 새해를 출발하면서 나 혼자 출발한다면 얼마나 불안한 출발이겠습니까? 야곱이 형 에서의 칼날을 피하여 외삼촌 댁이 있는 밧단아람을 향하여 출발했을 때 너무 외로웠을 것입니다.
아직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먼 하란 땅을 향하던 야곱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의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를 떠나왔고, 형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으니 얼마나 무섭고 외로웠겠습니까? 하란에 있는 외삼촌댁은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 가는 길에는 맹수들과 도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는 울고 또 울면서 가는 길을 재촉했습니다.
어느 지점에 왔을 때 해가 졌고 지친 몸으로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한참 울다가 돌을 베개 삼아 거기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습니다. 사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였습니다.
그때 음성이 들렸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이암아 복을 받으리라 ....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28:13-15). 야곱은 꿈에서 깨어나 하나님이 자기 아버지에게만 함께 하는 줄 알았는데 이 먼 곳 삭막한 광야 중간에도 자신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 후 야곱은 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금년에 이 하나님이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으니 그 어떤 것도 두려워 마십시오.
2. 우리의 행로에 어려운 일이 올 수도 있습니다.
예수의 일행이 탄 배가 한참을 가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부딪쳐 배 안으로 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갈릴리 바다는 갑작스런 폭풍으로 유명합니다.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여 있다가 흐려져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갑자기 잔잔하던 수면에 무서운 파도가 일어납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바람과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갈릴리 바다 위에서 만나게 될 때 그 바람이 돌풍으로 변하여 무서운 파도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배도 처음에는 아주 잔잔한 바다 위에 떠서 출발했습니다. 예수께서 얼마나 평안하고 안정감 있으면 주무시기까지 하셨겠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큰 바람이 일더니 파도가 높아지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배에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배에 물이 들어오자 제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이 ‘이제 큰일났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배 뒷편에 깊은 잠을 자고 계셨습니다. 어떤 유명한 화가가 여기에 대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제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과 초조 불안이 가득하여 배 위에서 이리 저리 뛰고 있었고 예수는 평온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걱정이 태산인데 예수는 전혀 걱정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항해에서 큰 어려움을 만나면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금년에도 남북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고 경제문제 또한 불투명합니다. 우리 가정 문제도 어떤 풍랑이 불어올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은 평온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먼저 보면서 그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누리는 기쁨』이라는 책을 쓴 스티브 브라운은 그 책에서 자신이 비행기를 타며 겪은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뉴욕을 방문했다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섬뜩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데, 폭우를 동반한 엄청난 천둥과 번개가 쏟아졌습니다.
옆자리에 젊은 엄마가 앉아 있었고 그녀는 어린 아들을 무릎에 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몹시 무서웠지만 애써 태연한 척했습니다. 비행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 어린아이였습니다. 아이는 그런 상황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바빴습니다. 함께 장난을 치는가 하면,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심하게 흔들릴 때도 재미있다는 듯 깔깔대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웠던 것은 폭풍우로 기체가 가장 심하게 요동치던 그 시각에도 엄마의 가슴에 안겨 자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는 폭풍우 속에서도 엄마의 품에 고요히 자고 있는 그 아이의 엄마에 대한 믿음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 아이는 엄마의 사랑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그 품안에서 평안히 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뜻하지 않은 불행과 위험을 만나 우왕좌왕하는 것은 신앙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신앙은 그런 불행과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그 불행과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3. 우리는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제자들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막4:38)하고 예수를 깨웠습니다. 실상 예수께서 그 엄청난 풍랑으로 인해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그때까지 주무실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마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시고 계셨을 것입니다. 아무리 큰 풍랑이 불지만 그 안에 주님이 계시는데 어떻게 될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죽게 된 것으로 알았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그 어떤 문제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당하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계시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어려울 때 주님을 찾고 문을 두드리면 됩니다. 우리는 기도라는 무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구하면 될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5:13-15)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만사는 해결됩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잠잠하라 고요하라”고 명령하시니 그 시간 바람이 그치고 잔잔해졌습니다. 예수께서는 하시면 못 하실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금년을 예수님과 함께 나가기만 하면 어려운 일에 부딪혀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금년의 인생길에도 그 어떤 파도가 쳐와 우리의 앞길을 막아도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병마의 폭풍이 불어와도, 불치의 병, 암이 찾아와도, 경제적인 파도가 몰아쳐도, 남북 관계가 험악해 질 때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께 기도하면 주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금년에 주일성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온전한 십일조로 물질의 보상을 받고, 주님께 헌신과 봉사로 건강의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나가 주님과 함께 승리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1년도에도 분명 위험과 불행이 불시에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항상 성도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항상 동행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믿고 승리하시는 한해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