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뻔하지 않고 솔직한 종교간 대화

폴 니터 교수와 국내 신학자들, 스님들 한 자리 모여 토론

 ▲폴 니터 미 유니온신학교 교수와 국내 신학자들, 스님들이 함께 한 종교간 대화 '가슴을 열어 빛을 보다'가 5일 목동 조계종 국제선센터에서 열렸다. ⓒ대한불교조계종

좋은 게 좋다는 말처럼 국내에서 이따금씩 열리는 종교간 대화는 맥 빠진 대화이기 십상이었다. 5일 서울 목동 국제선센터에서 열린 종교간 대화 <가슴을 열어 빛을 보다>는 달랐다.

종교다원주의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 폴 니터(Paul F. Knitter) 유니온신학교 교수와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 이정배 교수(감신대) 등 신학자들은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이 부족한 기독교를 반성하면서도, 불교가 소외 계층에 대한 돌봄이 약하고 사회 참여가 저조하다는 점 등을 나무랐다. 불교 스님들도 호탕하게 받아 치며 “진보적 기독교인 말고 보수적인 기독교인들과 대화하는 게 진짜 대화가 아닌가 한다”는 등 뼈있는 말로 기독교인들에게 생각할 여지를 줬다.

이번 대화는 조계종의 초청으로 방한한 폴 니터 교수의 6일 동안의 기독교-불교 대화 일정의 마지막 순서로서 그는 지난 닷새 동안 대구 동화사와 부산 해운정사에서 선승들과 대화했다. 500명이 참관한 가운데 마지막 대화가 진행됐다.

◆기독교인으로서 불자들에게 “미안합니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폴 니터 교수와 신학자들은 사과부터 했다. 최근 일부 기독교인이 불교 사찰 봉은사에서 ‘땅 밟기’ 기도행사를 가짐으로 불교계를 자극한 것을 대신 민망해하고 무안해했다.

니터 교수는 “많은 기독교인들도 동의하지 않는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용서해주시기를 기독교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탁드린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행동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김경재 교수는 “이번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그래도 10~20년 전에 비하면 많이 줄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키듯, 기독교인 대부분이 불교도들에 대해 공격적이지는 않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신학자들 “불교에 제안한다”

신학자들은 불교의 장점만이 아니고 단점도 지적하면서 생산적으로 대화해나갔다. 김경재 교수는 한국에서 기독교-불교 간 불미스러운 갈등의 책임의 99%는 기독교에 1%는 불교에 있다며 그 1%는 불교의 세력화와 관련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불교가 “춥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하기보다 호국불교라는 이름 아래 돈 많은 사람들과 명예 있는 사람들 그리고 왕족들을 위한 모습이 있어왔고”, 반대로 기독교는 개화기 때 유입될 때부터 “아주 밑바닥의 무식한 천민들 가운데 자유와 해방의 종교로서 전파됐다”고 비교하고, 불교에 대해 무례한 기독교인들의 행동을 “불교에 대해 들은 바 없는 버림 받은 자식들의 횡포라 생각하셔서 여러분 쪽에서 더 많은 가르침과 돌봄을 행해달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정경일(통역), 김경재 교수(한신대 명예), 길희성 교수(서강대 명예), 폴 니터 교수(유니온신학교), 수불스님(불교신문사 사장), 효담스님(국제선센터 선원장), 미산스님(중앙승가대 교수), 이정배 교수(감신대), 정현경 교수(유니온신학교) ⓒ대한불교조계종

폴 니터 교수는 불교가 사회 참여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에 스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 것은, 불자들은 언제나 마음의 변화가 먼저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불자 여러분들께 묻고 싶은 것은 ‘사회적 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수행해야 하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불교에서는 사회구조적 탐욕의 원인이 개인의 탐욕에 있다고 하지만, 반대로 개인의 탐욕의 원인이 사회구조적 탐욕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개인과 사회 변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현대 기독교의 전반적 견해를 전하며 이에 대한 스님들의 의견을 물었다.

니터 교수의 질문은 미산 스님이 받았다. 그는 니터 교수의 견해가 불교의 한 면만을 바라봐 빛에 대한 그림자가 생긴 격이라며 “사실 불교는 사회 구원(자비 실천)과 지혜의 완성이 같이 가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가르침인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을 보다 수평적인 느낌을 가진 ‘좌(左)구보리 우(右)화중생’ 과 같이 개조하여 자비 실천을 강조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경청하는 참석자들 ⓒ대한불교조계종

◆스님들 “보수 기독교인들과 불자들 대화하면 어떨까”

가톨릭 씨튼연구원에서 기독교인들과 꾸준히 대화해 온 미산 스님은 “이제 보수적인 기독교 지도자들과도 대화하고 싶다”며 한국에서 이뤄지는 종교간 대화의 한계의 정곡을 찔렀다. 그는 “씨튼연구원에 이런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말 잘 통하는 우리끼리만 고개 끄덕끄덕 하는 것이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그러니 정말로 보수 쪽에 있는 기독교 목사님을 모셔보자’는. 그런데 오시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고 들었다(웃음)”고 말했다.

니터 교수 역시 “진보적이고 열린 기독교인들이 보수적 기독교인들과 대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들이 뭔가 복음에 어긋나게 행동했을 때 불자들보다 먼저 동료 기독교인들이 그것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며 종교간 대화 이전에 기독교인끼리의 소통이 요청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밖에도 이날 토론에서는 기독교와 불교의 같음과 다름, 평화를 위한 종교의 역할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길희성 교수(서강대 명예)는 “예수님과 부처님은 모두 세상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천하의 자유인이었고, 죽어야 산다는 ‘사즉생’(死卽生)의 메시지를 전했다”며 “이런 면에서 두 종교는 기본적으로 같다”고 말했다. 정현경 교수(유니온신학교)는 “모든 종교에 황금률이 있다. 기독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불교는 ‘절대로 미움을 악으로 갚지 말고 사랑으로 갚으라’는 것 등이다. 모든 종교가 신도들에게 이 황금률을 그대로 실천하게만 한다면 평화가 올 것 같다”고 말했다.

※폴 니터 교수는

1939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정을 이수하고 독일 마르부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부터 미국 유니온신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달라이 라마, 데스몬드 투투 등과 함께 평화평의회국제위원회의 이사로 활동했으며 무슬림과 힌두, 불자들과의 심층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다원주의적 종교신학의 정점에 서 있는 그는 교회 중심주의·그리스도 중심주의에서 신 중심주의로, 해방의 실천을 통한 구원 중심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 세계를 돌며 마음의 평화와 세계 평화에 대해 설파하는 인기 강연자이다.


 

관련기사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16세기 칼뱅은 충분히 진화론적 사유를 하고 있었다"

이오갑 강서대 명예교수(조직신학)가 「신학논단」 제117집(2024 가을호)에 '칼뱅의 창조론과 진화론'이란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정태기 영성치유집단이 가진 독특한 구조와 치유 의미 밝혀

정태기 영성치유집단을 중심으로 집단리더가 구조화된 집단상담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경험하는지를 통해 영성치유집단이 가진 독특한 구조와 치유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김학철 교수, "기독교 신앙인들이 진화론 부정하는 이유는..."

연새대 김학철 교수(신학과)가 상당수 기독교 신앙인들이 진화론을 부정하고 소위 '창조과학'을 따르는 이유로 "(진화론이)자기 신앙의 이념 혹은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원효의 체상용의 삼위일체론

아우구스티누스 사상과 원효의 체상용의 불교철학 사상을 비교 연구한 글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손호현 교수(연세대 신과대학)는 얼마 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