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48)

중세 신앙의 시대와 문예부흥운동(2)

본지는 한신대 이장식 명예교수의 교회 역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교수는 최근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는 평신도였고, 초대교회 예수 운동을 이끈 무리들 역시 평신도들이었다"며 교회사에 큰 기여를 한 무명의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조명했습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글이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 함에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문예부흥 시기의 인문학자들 중에 신부 에라스무스(Erasmus, 1466~1536)가 쓴 책 「우행예찬」(The Praise of Folly)은 교황으로부터 모든 사제들과 왕들과 귀족들과 설교자들과 철학자들과 상인들과 사회 밑바닥의 천민들까지의 종교생활을 풍자적으로 폭로하였다. 교황청은 그리스도교의 하나의 치욕이었다. 교황들은 교황청에 속한 주(州)들을 강력한 권력단체로 만들기 위하여 정치적인 수완과 또 필요하면 군대의 힘을 사용하였다. 교황과 그 아래서 권세를 부리던 추기경들도 세습과 족벌주의 폐습으로, 또는 부도덕과 탐욕으로 만든 스캔들이 많았다. 그들은 재물을 낭비하거나 또는 노름으로 없앴다. 그들은 교회의 감독 자리나 수도원장 자리를 팔거나 사는 매관매직의 방법으로 돈을 모았고 교황도 많은 돈을 써서 교황 자리를 얻은 사람이 많았다. 교황과 대주교들은 돈방석에 앉아 살았다.

에라스무스가 이러한 교황의 대표적인 당대의 교황 율리우스(Julius)의 우둔한 행위를 풍자적•해학적으로 비판한 그의 책에서 사도 베드로와 율리우스의 대화의 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율리우스 : 제기랄, 문이 열리지 않아? 어떤 놈이 자물쇠를 만지작거렸군.
베드로 : 아마도 당신이 갖고 계시는 열쇠가 틀릴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권력의 열쇠를 가지고 있지요?
율리우스 :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열쇠요. 내가 두들겨보겠소. 이봐, 문지기! 자네 졸고 있는 거야? 술 취했나?
베드로 : 오, 하나님! 이 무슨 고약한 냄새야! 무슨 일인지 이 구멍으로 좀 내다봐야겠군. 당신 누구요?
율리우스 : 이 열쇠와 삼중관(三重冠)과 보석으로 빛나는 이 허리띠가 보이지 않소?
베드로 : 그 열쇠는 그리스도께서 내게 주신 열쇠와는 같아 보이지 않는군요. 어떤 야만인 폭군도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 관을 내가 어찌 알겠소? 보석들에 관해 말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발로 밟고 다닌다오.
율리우스 : 율리우스요, 글을 읽을 줄 안다면(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이 두 글자 PM이 무엇인지 알텐데.
베드로 : Pestis Maxima(최대의 불행).
율리우스 : Pontifex Maximus(최고의 대제사장).
베드로 : 당신의 삶이 거룩하지 않다면 당신이 설령 머큐리 트리스메기투스(Mercury Trismegistus)라 해도 관심 없소.
율리우스 : 거룩하다? 수세기 동안 당신은 한 성자였을 뿐이지만 나는 참으로 거룩한 사람의 최상급이었소. 그것을 입증할 수 있는 6,000가지의 교서도 있소.
베드로 : 당신은 참으로 거룩하다고 불리지만 당신 정말 거룩하오? 당신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갑옷 위에 성의(聖衣)를 걸쳤고, 눈은 야만적이며, 입은 무례하고, 이마는 철면피해 보이고, 눈썹은 교만하며, 몸에는 방탕이 주렁주렁 달렸고 술 악취가 풍기는군. 도살장 같은 인간이군! 나는 당신이 지옥에서 돌아온 배교자 율리우스가 아닌가 싶은데.
율리우스 : 자, 그만 합시다. 만일 문을 열지 않으면 파문(破門)의 번개로 당신을 치겠소. 파문교서는 이미 준비되어 있소.
베드로 : 파문교서라! 나는 그리스도로부터 그런 비슷한 말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를 파문할 권세를 당신이 가지고 있소?
율리우스 : 왜요? 당신은 단지 사제에 불과할 뿐인데.
베드로 : 당신의 공로를 보여주시오. 공로 없이는 들어갈 수 없소. 올바른 교리를 가르쳤소?
율리우스 : 전쟁을 하느라 너무 바빴소. 그런 일은 탁발 수도사들이 하는데.
베드로 : 당신의 거룩함으로 인해 영혼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본 적이 있소?(율리우스는 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보냈다) 기적을 일으킨 일이 있소?
율리우스 : 기적이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오.
베드로 : 기도하고 금식해 보았소?

(…)

베드로 : 당신은 무엇을 했는데?
율리우스 : 재정을 개선하고, 수입을 늘리고, 볼로냐(Bologna)를 합병하고, 베네치를 치고, 페라라를 괴롭히고, 프랑스인들을 내쫓고… 나는 수천 명의 프랑스인들을 죽였고, 조약들을 파기하고, 호화로운 승리의 행군을 펼치고, 화려한 건물들을 짓고, 금고에 500,000두캇(ducats)을 남겨두었소. 이 모든 것을 내 태생으로도(나는 내 아버지가 두고 간 지도 모르오), 내 학식으로도(나는 그런 것은 없소), 내 인기로도(나는 사실 미움을 받았소), 내 온화함으로도(나는 야비한 인간이었소) 이룬 것이 아니오. 로마에서 나는 사람이라기보다 신으로 여겨졌소.
베드로 : 자 좋소. 그런데 당신과 함께 있는 이 무리는 뭐요?
율리우스 : 나를 위해 싸우다가 죽은 병사들이오. 나는 그들이 나를 위해 싸우다가 죽으면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소.
베드로 : 헐벗은 자들을 입혔고, 굶주린 자들을 먹였고, 목마른 자들에게 마실 것을 주었고, 병든 자들을 방문한 그런 사람들에게만 나는 입장을 허락하오.

(…)

베드로 : 이제 말해보시오. 왜 볼로냐를 공격했소? 볼로냐가 이단이었소?
율리우스 : 아니오… 나는 수입이 필요했소.
베드로 : 페라라를 괴롭힌 이유는 뭐요?
율리우스 : 내 아들을 위해 필요했소.
베드로 : 뭐라고요? 교황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있단 말이요?
율리우스 : 아니지, 아들이 있지 아내들은 아니오.
베드로 : 교황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오? 예를 들면 살인, 부모 살해, 간통, 근친상간, 매관매직, 신성모독 등 때문에 말이오.
율리우스 : 거기에 600가지의 죄를 더 보탠다 하더라도 무엇이 이단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교황이오.
베드로 : 그렇군요! 그렇다면 유일한 방법은 백성들이 돌멩이를 집어 들고 봉기하여 페스트와 같은 이런 인간을 세상에서 쫓아내는 것뿐이군요.

2. 희랍정신과 문화

중세의 문예부흥운동은 희랍 정신과 문화의 부흥이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종교가 되기 전 로마 전성기에는 희랍 정신과 문화가 로마인의 라틴문화와 융합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희랍의 고전과 라틴의 고전들이 많이 읽혔고, 학문과 예술이 희랍-로마의 문화였다. 초대교회 시대의 학문이 많은 교부들도 희랍-로마 문화의 영향으로 희랍 고전들을 많이 읽고 신학적인 저술을 남겼다. 이 시기의 교회 교부들은 희랍 철학사상과 문학의 깊은 지식을 가지고 이교세계의 학문이 그리스도교 진리의 이해의 준비가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로마제국이 쇠퇴하면서 그리스도교가 중세 유럽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게 되면서 옛 희랍-로마 시대의 정신과 학문이 그리스도교에 위험하다고 생각하였었는데, 이제 다시 그 희랍-로마 시대의 정신과 학문을 부흥시키게 된 것이 문예부흥운동이었다. 중세편 제6장에서 대학의 발전과 새 학문의 조류를 서술한대로 로마와 희랍 고전 서적을 읽고 이해하기 위하여 희랍어 교육이 대학마다 성하였고 로마와 희랍의 철학과 역사와 자연과학과 시문학 서적들이 라틴어로 번역되어 읽혔다. 그리고 스토아 철학자 키케로(Cicero)와 시인 버질(Vergil)과 호래이스(Horace)의 책들이 애독되었다.

한편 신학자들과 성직자들과 수도사들은 초대교회의 교부들의 저서들과 함께 신약성서를 희랍어 원어의 지식을 가지고 다시 읽고 연구하게 되었다. 중세 교회가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과 희랍어 신약을 384년에 제롬(Jerom)이 라틴어로 번역한 성서책(Vulgate)을 정경으로 채택해서 그 책을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지 못하게 했는데, 그 정경에는 희랍어 원본의 말을 잘못 번역한 것들이 많아 희랍어를 잘 아는 인문주의 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잘못 번역된 말을 고친 것이 많았다.

에라스무스는 희랍어 신약성서를 발행하여 라틴어 신약성서의 잘못된 번역을 일일이 고치는 각주를 달았다. 그 중에도 아주 중요한 말 하나는 회개라는 뜻의 희랍어 ‘metanoia’다. 이것을 형벌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로 오역한 것을 바로 잡아 ‘회심’ 곧 마음을 돌이킨다는 뜻임을 밝혔다. 이것은 중세 로마가톨릭교회가 범죄자들에게 회개를 위하여 부과했던 형벌이 잘못된 것임을 밝힌 것이 되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은 회심, 곧 마음을 돌이키기를 바라시지 형벌을 사면 받기 위한 고행을 바라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세교회는 죄인의 죄의 무게에 따라 1년, 3년, 또는 종생토록 고행을 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고행의 햇수를 줄여 받기 위해서는 면죄부를 돈 내고 사든지 교황청이 파견하는 십자군 전쟁터에 나가든지 하는 일을 했다. 에라스무스의 신약성서는 종교개혁자들에게 유용한 것이 되었다.

문예부흥운동이 성했을 때 대학에서 희랍어와 라틴어 교육 외에 문법, 수사학, 역사, 시학 및 도덕철학(윤리) 등을 가르쳤고 이러한 과목을 ‘인문과목’(humanity)라고 불렀고 그리고 이 인문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를 휴머니스트(humanist)라고 불렀는데 곧 인문주의자라는 말이다. 인문주의자들의 인문학 연구 방법은 고대 희랍과 로마의 서적들을 읽고 본문의 어원을 캐고 주석하며 해석할 수 있게 하는 것이어서 철학적인 것이 아니고 문학적이었고 철학과 의학과 신학과 천문학과 약학과 법률과 같은 중세학문을 다루지 않았다. 그들은 고대의 역사와 신화도 연구하였고 고전서적들을 역사적으로 또 문학적으로 비판하고 연구하고 주석하는 일을 많이 하였다. 이렇게 해서 인문주의 새 학문의 방법은 어원을 밝히고 그리고 본문을 비판하고 주석하는 것이었다. 성서 연구도 이 새 방법을 따르게 되었다.

문예부흥운동이 이태리에서 먼저 일어났고 주로 로마, 플로렌스(Florence), 밀란, 그리고 나플스 지방에서 일찍 보급되었다. 그들은 이태리를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알고 이태리의 자연과 그리고 인간의 육체의 자연미를 격찬하여 쾌락을 얻으려 하였다. 최초의 인문주의자는 페트락(Petrarch, 1304~1374)이었고 그의 많은 제자들이 인문주의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인간의 육체미를 노출시킨 그림과 인간의 애정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문학을 발전시켰다.

문예부흥운동의 기운이 유럽 각지의 대학들에서만 진동한 것이 아니고 왕족들의 궁전과 도시의 부유한 인사들의 저택에서도 일기 시작하였다. 이때 인쇄기술이 발달해서 인문주의 학문을 위한 서적들이 인쇄되어서 빨리 그리고 널리 보급되었고, 인쇄소가 인문주의 학자들의 집합소 같이 되었다. 그리고 도서관이 많이 생겨서 사람들이 책을 쉽게 찾아 읽을 수 있었다. 인쇄기의 편리도 있었지만 로마-희랍의 고전서적을 손으로 베껴 쓰는 사람도 많았는데 이것이 그들의 인문주의 학문의 열정의 표시였다.

문예부흥운동의 인문주의 정신을 로마 교황청에도 침입하여 들어갔다. 교황 니콜라스(Nicholas) 5세(재위 1447~1455)는 고전학문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인문주의 학자들을 많이 후원하였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로렌조 발라(Lorenzo Valla)였는데 그는 희랍어 학자가 되어 여러 대학에서 희랍어를 가르쳤고 그리고 고전을 연구하여 인간의 모든 자연적인 기호와 욕망을 자유롭게 하는 쾌락주의 사상을 공공연하게 고취하였다. 또 발라는 수도원 생활을 비난하고 로마가톨릭교회의 권익을 옹호한 중세의 문서들을 비판하고 진위를 가려내었다. 그리하여 이시도레(Isidore)라는 정체불명의 저자가 쓴 책에 기재되어 있던 콘스탄틴 대제의 이태리 땅 기증문서의 문체를 비판하고, 콘스탄틴 대제가 교황청에 이태리 전 영토를 기증했다는 교황청의 주장을 거짓으로 돌렸다. 그리고 발라는 라틴어 성경책의 라틴어를 비판하고 조소하였다. 그리고 그 라틴어 성경책의 본문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서 신학을 논한 사람들을 성 어거스틴까지 시켜 이단으로 몰았다.

교황 니콜라스는 발라의 활동을 저지할 생각으로 그를 종교재판 판정에 서게 만들었지만, 그를 교황청의 한 비서관으로 임명하여 교황청이 몽매주의자라든가 인문학이 없는 기관이라는 비난을 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는 교황청이 문예부흥운동의 최일선에 서게 하려 하였다. 니콜라스 5세의 후계자는 비오(Pius) 2세(재위 1458~1464)였는데 그는 젊어서 외교와 문학과 여행에 도취하였고 그리고 교황청의 비서로 활동하였다. 그는 1442년부터 월계관을 쓴 시인이 되었고, 황제 프레데릭 3세의 비서가 되었고 교회의 감독도 됐으며, 시도 읊었고 소설도 썼고 뛰어난 재담을 가지고 부도덕한 극도 썼으며, 정치적인 관찰과 사적인 사악(邪惡)도 솔직하게 진술한 일기문을 엮어 냈다. 그러다가 1458년에 음모를 써서 교황이 되었다. 교황이 된 후에 그는 과거와 같은 방종은 버렸지만 옛 친구들을 방문하고 자연의 미에 대한 사랑과 고고학에 대한 취미를 가지고 이태리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곳곳에서마다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교황청의 이러한 인문주의적 계몽운동의 영향이 널리 퍼져서 교회와 수도원에도 여러가지 변동이 생겼다. 무엇보다 신구약 성서가 인쇄기계와 또 사람들의 손으로 많이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설교가 평범해져서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성서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보급되었다. 독일어 성서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1421년에 독일어로 번역한 신약성서가 나오기 전에 이미 번역된 독일어 성서 14판이 인쇄되어 나왔었다. 홀랜드 말로 번역된 성서도 4판이 나왔다. 이러한 번역된 성서를 평신도들이 많이 읽었고 왈도파의 평신도들이 이러한 성서를 읽고 설교하고 다녔다. 보수주의자들은 이것을 위험시하였고 가톨릭교회는 성서의 번역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문예부흥운동을 반대하는 보수주의 운동도 일어났다. 플로렌스에 있던 도미니칸 수도단에 속한 사보나롤라(Savonarola)는 문예부흥운동을 저지하려는 운동을 일으켰다. 1494년 사순절 하루 전날에 있었던 사육제(謝肉祭)를 폐지하기 위하여 사보나롤라는 플로렌스 시민들을 동원해서 시와 노래의 책들을 귀중한 보석들과 함께 불태웠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은 인문주의자들의 협력으로 교황청 건물과 역사적인 큰 성당들을 아름다운 건축과 그림과 조각으로 새롭게 단장하였고 이것을 위해 막대한 돈이 필요하게 되어 면죄부 판매를 비롯한 여러 수단으로 돈을 만들었다.

인문주의 학문과 사상은 인문주의 교황들의 계획이나 이상과는 거리가 먼 세속주의 학문과 정치와 사회사상으로 번져갔다. 인문주의가 인간의 모든 아름답고 값진 재능을 가지고 현세의 인간사회를 낙원으로 만들 생각을 했지만 그것이 교회의 영향에서 벗어나가는 것이었으므로 교황청은 읽어 해가 된다고 판단한 책들을 금지하였는데 마캬벨리(Marchiavelly)의 군주론(The Prince)도 그 중 하나였다. 마캬벨리는 국가를 통치하는 권력과 권위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이어서 교회의 간접적인 간섭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정치권력의 세속화 즉 교회와 국가의 완전 분리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모양으로 과거에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거나 교회의 중보와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하여 문예부흥운동의 인문주의는 무종교 또는 반종교적인 사회를 만들어가서 마캬벨리의 말대로 하나님이 죽은 세상이 되어갔다.

3. 새 경건운동

14세기, 인문주의 운동이 태동되던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홀랜드 출신 게라드 그루테(Gerad Groote, 1340~1384)의 영향으로 일어난 한 수도원의 경건운동이 ‘새 경건’(modern devotion)으로 알려지고 그의 동지들이 결합한 단체가 ‘공동생활의 형제단’(Brethren of the Common Life)으로 알려졌다. 게라드는 홀랜드의 데벤터(Deventer)의 시장의 아들이며 파리대학에서 공부하였다. 대학생 시절에 엄격한 명상을 강조한 카두스(Carthuse) 수도원 수도사의 영향을 받고 금식과 기도와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전적으로 변하였다. 그가 수도원의 설교하는 수도사가 되어서 당시 교계의 비리를 공격하다가 교회 당국의 경고를 받았다. 그는 동지들을 모아 작은 한 단체를 만들어 공동생활 하면서 노동해서 얻은 돈을 전부 공동생활의 목적에 바쳤다. 그의 작은 형제단 권속의 수는 날로 불어갔다. 불행하게도 게라드는 유행병에 걸린 한 형제를 간호하다가 전염되어 사망하였다.

게라드의 사망 후 그의 운동을 계승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공동생활의 형제단은 수도원 생활과 수도원 밖의 생활이 반반이 된 조직으로 발전해갔다. 이 운동에서 파생한 한 운동이 빈데샤임(Windsheim) 운동인데, 어거스틴 수도단의 규칙에 따라 생활한 한 수도단이 되어 20여 수도원으로 불어갔고 독일과 홀랜드의 수도원 제도의 개혁에 이바지하였다.

공동생활의 형제단은 명상적인 삶과 활동하는 삶 두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는 금식과 철야와 독경과 기도에 열중하는 수도사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였고, 이러한 활동들 중간중간에는 긴 침묵시간이 끼어 있었다. 또 이들은 병든 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수도원 밖으로 나갔다. 때로는 기존의 교육기관들에 자기들 수도사들을 교사로 세웠고, 이 기관들에 대한 지원은 현금이 아니고 형제단의 노동으로 제공하였다. 이러한 노동은 육체적인 것도 있었고 학문적인 것도 있었는데 당시 인쇄기로 출판되는 책도 많았지만 이들은 손으로 고전서적들을 베껴서 책을 보급하였다. 이 필사작업에는 공동생활단의 자매들도 동참시켰다. 자매들의 공동생활 조직도 있어서 독립된 생활지침을 가지고 있었다.

공동생활 형제단은 자기들의 운동은 ‘새로운’(modern) 것이라 자칭했고 자기들의 활동과 삶을 ‘새 경건’이라고도 하였는데, 그들 운동의 새로움은 신앙생활에서 교리보다는 헌신에 더 열중하고 토론과 비판보다는 명상과 기도에 더 열중한 것이었다. 신학보다는 그리스도의 삶을 모방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이 운동의 새로운 경건과 헌신의 대각성을 가장 잘 표현한 책이 토마스 아 켐피스가 쓴 「그리스도의 모범」이었다. 이 책에서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변(思辯)보다는 찬양을 더 기뻐하신다”고 말하면서 연구에 몰두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이 형제단은 중세 스콜라주의 학문과 신학에 취미가 없었다. 그것은 사변과 토론을 중요시한 것이어서 경건과 헌신을 소홀히 하였다고 보았다. 또 중세의 신비주의 가운데도 인간의 내면으로 깊이 빠져들어가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보다는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신 그리스도의 삶을 명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이 명상은 성자의 유물이나 그리스도의 상처가 달린 십자가 앞에서 눈물을 쏟는 중세 교회의 감상보다는 그 그리스도의 삶을 모방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를 우리의 동반자로 모시는 것을 말한 것이다.

형제단 단원들은 외적인 것을 경멸했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기를 바랐다. 내면생활에 있어서 자유롭게 하나님과 통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모시고자 했으므로 수도원의 지나친 서약규정은 피했다. 외적인 서약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고 어떤 서약 때문에 일생 구속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만일 수도원이 사람을 평생 구속하는 단체라면 없어져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가톨릭 교회는 눈으로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여 그러한 것을 간접적인 중보로 삼고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가르쳤지만 이 형제단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간접적인 중보적 존재를 배제하고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중보자라고 믿었다.

형제단의 ‘새 경건’ 운동이 문예부흥운동의 인문주의와 같이 스콜라주의 학문과 그 학문의 방법을 비판하고 수도원의 폐단과 약점을 비판했지만, 세속주의로 기울어지던 인문주의 학문의 경향과는 시간이 갈수록 간격이 커질 것이었다. 인문주의 학문과 같은 또 한 가지 경향은 옛 희랍-로마의 고전을 연구하여 교훈을 얻는 것이었다.

게라드는 저술을 통해 초대교회 그리스도교 저술가 21명의 책에서 교훈이 될만한 것을 소개하였고, 19명의 일반 고전서적 저술가들을 인용하였다. 특별히 로마의 키케로와 세네카와 같은 스토아학파의 도덕주의자들의 글을 많이 인용하였다. 이러한 고전이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위한 준비가 된다는 그의 생각은 초대교회 교부들의 생각과 동일하였다. 그러나 인문주의 학자들은 고전적 세계관과 인생관을 재연 또는 부흥시키기 위한 것이었지만 게라드와 같은 형제단 지도자들은 도움이 될 만한 고전을 선택적으로 소개한 것이었다. 15세기의 에라스무스는 당대의 가장 위대한 인문주의 학자였는데 그는 공동생활의 형제단의 ‘새 경건’의 영향을 받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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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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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