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광선 칼럼]존경하는 레이니 대사님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2008년 크리스마스에 쓰는 편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바쁘신 일정에도 불구하시고 80이 넘은 고령에도 건강하신 모습으로 내한하셔서 저희 몇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시고 한반도의 평화로운 앞날을 위해서 좋은 말씀 주신 것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8주년을 기념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대강연회 자리에서의 깊이 있는 말씀, 새로 출범하는 오바마 미국 정권의 한반도 평화 정책에 대한 강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도전을 주신 것 등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예수가 로마 제국의 학정으로 핍박 받는 척박하고 가난한 땅에 2천여 년 전 더럽고 냄새나는 말구유 속에 동물들 틈에 태어나실 때, 천사들이 나팔을 불면서 들에서 양떼를 지키던 천한 양치기들에게 한 노래,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그 노래가 절실하게 듣고 싶은 크리스마스 계절에 대사님의 ‘평화의 메시지’는 저희들의 가슴을 벅차게 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당선될 때만 해도, "하늘에는 영광, 이 땅에는 경제 성장"이라는 구호가 천사들의 메시지인양 착각했었습니다. 지금은 경제 성장의 소리 대신 경제 위기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노래하는 거대 장로교회의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이 땅에 평화 대신 분열과 대결, 악의에 가득찬 반 평화적 태도와 언동으로 대북 정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대북 포용정책으로 모처럼 이룩한 남북한의 평화 무드는 다시금 20여 년 전의 냉전 무드로 바뀌어서 올해 겨울은 경제와 안보 문제로 아주 추운 영하의 날씨와 맞물려 더욱 떨게 되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의 대선에서 승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미국의 민주주의의 힘을 다시금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사님을 선생님으로 모시게 된 것은 1960년대 미국의 남쪽 도시에서였습니다. 대학원 유학생이었던 저는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되는 과정과, 텍사스 달라스라는 남쪽도시에서 암살되는 광경을 눈물을 흘리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 민권운동에 미국 친구들과 함께 가담했고 행진도 하면서 미국의 인종차별 폐지 운동을 지지했습니다. 한 백인의 총알에 쓰러진 킹 목사의 죽음 앞에 절망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회의와 절망에 가까운 안타까운 가슴을 안고 1960년대 말 귀국했습니다. 미국은 월남전에 참전하고 한국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 전쟁에 미국 편으로 투입되었습니다. 미국은 박정희 유신정권을 지지했고,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측근에게 암살당한 이후에 들어선 전두환 군사 쿠데타 정권 역시 지지했습니다. 당시 저는 60년대 미국에서 배운 대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죄로 전두환 정권에 의해서 4년 동안 저의 동료 기독자 교수들과 함께 대학 강단에서 추방당했습니다. 미국은 월남전의 패배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하고 중동에서 새로운 전쟁, ‘테러와의 전쟁’에 막대한 돈과 인명을 투입하고도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북한은 미국 부시 대통령에 의해서 ‘악의 축’으로 명명되어서 ‘적대국’이 되었습니다. 남한의 노태우 대통령이 1988년 7월 성명을 통해서 북한을 다시는 ‘적대국’으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화해와 공존을 다짐했는데도 말입니다. 미국의 우방인 한국이 적대국으로 생각하지 않겠다는 북한을 미국이 이라크와 이란에 이어 북한을 적대국으로 삼는다는 것은 우리에 대한 배신이었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와 세계를 향한 외교정책에 배신감과 실망을 느껴 오면서도, 대사님 같은 선생님이 계시다는 것, 미국서 대학 다닐 때 친했던 동료 학생들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향한 열정, 그리고 그 많은 교수님들이 말씀하시고 글로 쓰신 것들을 생각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저의 믿음은 간신히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아마 저의 친구들과 비판하는 사람들이 저를 "구제 불능의 친미"라고 하기도 하고 "비판적 친미"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저는 서울 시청 앞에서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교인들이 모여서 성조기를 날리면서 "미국 쇠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데모하는 데는 끼어들지 않았습니다.

오바마가 당선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저와 저의 친구들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 디씨의 연못가에 모인 수백만 군중들 앞에서 한 연설, 미국 수도의 하늘을 우러러 보며 우렁찬 목소리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하며 호소하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드디어 킹 목사의 꿈이 실현된 것입니다. 킹 목사님이 말씀하신 그 꿈속에 흑인 오바마가 50년 안에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압도적으로 당선되는 날이 들어 있었을까요? 저는 역사의 우연이나 기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승리이며 미국 민중들의 승리이며 미국의 양심이 만들어 낸 인간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사님이 이번에 방한하신 것에 특별한 의미를 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사모님과 두 손자들,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 오바마 선거운동에 적극 가담했다는 손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국 민주주의의 장래에 대해서 믿음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오바마가 미국의 흑인이라는 것만 가지고 결코 당선되지 못한다고 단언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비웃은 것이지요. 그리고 오바마는 여태까지의 부시 대통령과는 다른 외교정책과 대한 내지는 대북한 정책을 쓸 것이라는 ‘변화’를 내세웠던 터에 말입니다. 부시와 통하는 대북 강경책을 써 온 한국의 보수 정권은 껄끄러움과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오바마는 부시 보다 더 강경(tough)하게 북한의 비핵화 정책을 밀어 붙일 것이다." "한국의 진보 좌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오바마의 대한정책을 기대하고 있다. 섣부른 과잉 기대이다"라고 신문 매체에서 떠들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선생님은 전 주한 미국대사로 오셨습니다. 그것도 한국의 유일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전 대통령을 경하하는 자리에 오셔서 평화의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과 "직접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적극적인 외교"를 할 것이라는 말을 전해주시면서, 대통령 특사 급으로 미국의 저명한 외교관들을 북한에 보낼 수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희소식입니다. 2009년 1월 말 대통령 취임식 이후가 될지 그 이전이 될지는 모르지만, 새 대통령 취임전후에 북한에 직접 못가면 특사를 파송할 것이라는 소식은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사님은 키신저나 샘 넌. 빌 페리 등 세 사람을 말씀하셨지만, 그 누구보다도 키신저의 지명도나 외교적 경험, 특히 중국 개방 협상의 경륜을 가지고 있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미국 전 국무장관을 지낸 분이 대북평화 협상에 나설 수 만 있다면 한반도의 평화를 희망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싶습니다. 지난 8년 전, 부시 대통령이 ‘전쟁 대통령’으로 세계지배를 꿈꾸는 ‘미 대제국 (American Empire)’의 황제로 둔갑하기 이전의 클린턴 대통령이 시작한 대북 포용정책을 오바마 대통령이 이어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대사님은 미국 대통령 특사가 북한에 와서 해야 할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1953년 맺어진 휴전협정을 대체한 평화협정 체결"이라고 못 박으셨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대화를 힘겹게 만든 여러 원인 중의 하나는 한국 전쟁이 지금까지 미결 상태로 남아있다는 사실입니다. 평화협정은 관계 형성의 바탕을 제공하여 서로의 정통성 및 존재할 권리에 얽힌 의구심을 사라지게 할 것입니다. 그러한 협정이 없었기에 모든 다툼에서 상대방의 정통성에 대한 의문이 새롭게 제기되어 왔습니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존재를 용인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실로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더욱이 평화 협정은 각 입법부의 비준을 거치기 때문에 한국이나 미국이나 필수 불가결하게 겪게 되는 행정부의 변화에 수반되는 미래의 정책 불확실성을 줄여 줄 것입니다."

이 말씀은 평화를 향한 평화로운 메시지인 동시에 평화를 향한 도전입니다. 북한을 굴복시키고 구 소련처럼 공산주의 체제가 쓰러지고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는 제로-섬 승리만이 유일한 한국전쟁의 결말이며 통일의 지름길이라고 아직도 광신하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보수 우파 사람들에게는 평화의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화를 향한 도전은 북한과 직접적인 평화적 접근과 협상을 개시하는 것입니다. 준비없이 빈 가방을 들고 평양에 특사를 보낸다는 말이 아니라 ‘조건 없이’, "전체적인 상황을 새로운 시선으로 조망하고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고무적입니다. 이 말은 과거의 6자 회담을 포함한 북미 협상에서 “행동 대 행동”, “이것 하면 저것을 주겠다”, "내가 요구한 것을 안 하니까,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식"과 "내 말을 안 들으면 아무것도 도와 줄 수 없다"는 식의 강압적인 제로 섬 게임을 지양하겠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평화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저희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사님의 평화의 메시지를 귀담아 듣고 신중하게 검토해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특사를 평양에 보내기 전에라도, 이 대통령이 직접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러 평양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평화 특사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 8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이제 비록 늙고 힘없는 몸이지만 오늘의 위기를 보고만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제 생명이 계속되는 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서 있는 힘을 다 바쳐 헌신하겠습니다..."고 맹세하신 김대중 전 대통령을 특사로 보내는 역사적 사건을 희망해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직접적이고, 지속적이며, 적극적인" 한반도 평화정책을 펴서 우리 모두 안전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민족의 미래를 내다 볼 수 있게 되었으면 합니다. 경제를 살리는 길은 평화를 살리는 사람 들 만이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신념에서 하는 말입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한국의 길거리는 경제난 때문에 우울하기만 합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하는 천사들의 노래 소리가 우리 남과 북의 위정자들에게 우렁차게 들리고, 한반도의 가난하고 절망에 빠져 있는 민중들에게 희망의 소리로 울러 퍼지기를 기원하면서 선생님의 평화를 향한 도전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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