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김진호 목사의 제3시대 웹진<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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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 |
한백교회의 목사직은 계속하더라도 신학연구자로서의 길을 포기하고자 했다. 제도권 밖의 공간에서 연구자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막막했던 탓이다. 여건이 더 나빠진 것은 아니다. 애초부터 좋았던 시절은 없었다. 그보다는 버티는 것이 힘에 부치게 되었다는 게 옳다.
다른 변수가 있다면 필경 경제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IMF 재앙을 맞아 누구나 어렵던 시절, 나도 몹시 힘겨웠다. 고리대금 수준의 은행금리는, 경제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존재의 여력을 앗아갔다. 또 하나 이유를 들자면, 1998년 민중신학자 대토론회를 정점으로 그 전후의 민중신학자들과의 극한적 갈등 상황에서 공부에 대한 심한 자괴감에 빠진 탓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시기 나는 신학을 포기할 뻔했다.
그리고 1998년 반전의 계기가 있었다. 그 무렵 계간 현대사상의 ‘오늘의 지성을 찾아서’라는 기획 시리즈에서 10명의 아웃사이더 지식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어, 그 잡지 7호(1999-1)에 대담과 글이 게재되었고,32) 그보다 앞서 출간된 같은 잡지의 특별중간호 1998 지식인 리포트. 한국 좌파의 목소리 편에 글이 실렸다.33) 그 어간 글을 발표할 매체를 상실했다는 좌절감에 빠져 있던 중인데, 한꺼번에 두 편이, 그것도 그리스도교권 밖 새로 막 부상하고 있던 계간잡지에 실리게 되었으니, 적지 아니 고무되었다. 새로운 지면이 열리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 두 기획은 모두 꽤 성공한 것이어서, 그리스도교 영역 밖 담론 공간에선 순식간에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아웃사이더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IMF 재앙은 사회 전반에서 구세대의 발언력을 심각하게 훼손시켰고, ‘국민의 정부’가 집권하면서 구태스럽고 허위에 찬 ‘구지식’에 대하여 이른바 ‘신지식’을 향한 사회적 열망이 한껏 부풀던 때였다. '현대사상'의 발빠른 기획은 ‘낡은 세력’인 그리스도교를 향한 시민사회적 비판의식에 부합하는 그리스도교 지식인 하나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유사한 기획이 잇따랐고, 어느덧 쉽사리 찾아지는 반그리스도교적 신학자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경향신문'이 기획한 ‘문화반란의 기수들’, '한겨레신문'이 기획한 ‘인문학데이트’에서 연속 그리스도교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그리스도교 지식인으로 선정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34) 또 무크지 '현실과과학(1988~1991), 계간지 '이론'(1992~1997)을 잇는 한국좌파의 정론지 계간 진보평론이 1999년 가을에 창간호를 펴내게 되었는데, 이 책의 편집위원으로 6호(2000 겨울)까지 참여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에는 ‘비평’(critic)이 폭증하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비평이란, 언술의 논리적 정합성과 보편성을 강조하는 ‘이론’(theory)에 비해, 평하고자 하는 ‘텍스트’(문헌적이든 사건적이든)의 담론적 효과를 주목한다. 이때 그 논리적 배후나 보편적 의의는 대개 생략된다. 하여 이론이 일종의 ‘주석’(commentary)적인 언술 형식을 지니는 데 반해, 비평은 ‘에세이’적 형식을 띤다. 그것은 이론이 이론 전문가 집단과의 대화와 논쟁을 지향하고 있고, 비평이 시민사회와 대면하고자 제기되는 것이라는 점과 관련된다. 그런 점에서 비평은 평하고자 하는 텍스트 발화자의 주장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이의 말에서 말하지 않은 것을 보며, 말하지 않은 것에서 말을 발견하고자 한다. 나아가 그러한 비평적 에세이는 그 텍스트 저자를 넘어서 텍스트의 효과를 해석해냄으로써 시민사회의 감춰진 부조리함을 드러내고 ‘성찰’(reflexibility)을 촉구한다.
이것은 지배적인 말/텍스트의 표층적 주장에 대해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앞에서 ‘국민’을, 지배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으로 동일시하는 집합적 주체로서 규정하면서, 이것이 권위주의 시대 시민성의 한 내용이라고 했는데, 반면 민주화라는 시대의 기조는 그러한 지배자의 말/주장을 자기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과 교섭하고 협상하는 존재, 그러한 자존적 주체인 ‘시민’의 대두와 맞물려 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민주화 시대 시민은 지배자의 말/텍스트의 표층적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의 독자적인 해석자로서 읽는 존재이다. 그럼으로써 ‘해석자-시민’은 시민적 주체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민주화 시대의 시민은 이론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읽고자 하는 ‘독자’로서 탄생한다. 바로 그들에게 ‘비평’이라는 레퍼런스적 텍스트가 필요했던 것이다.
교회 혹은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도 시민사회는 해석적 개입을 원했고, 시민사회를 향해 제출된 비평이 을 위한 담론의 장이 형성되었다. 나에게 한국그리스도교에 대해 비판적인 논평을 쓸 수 있는 지면이, 계간지, 격월간지, 월간지, 주간지, 일간지 등 다양하게 생기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과 관련이 있다. 수많은 매체들은 그리스도교에 대해 비평적 에세이를 쓰는 저술가들을 찾았고, 뜻밖에도 나는 그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비평가의 하나가 되는 행운을, 얼떨결에, 얻은 것이다. 종종 제도는 제도권 밖의 떠돌이를 원한다.
이 시기 나의 비평들은 주로 그리스도교 담론 속에 내장된 서구중심주의가 한국그리스도교에서 발현되는 양식을 폭로하고 문제제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하여 한국그리스도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교와 서구적 제국의 논리가 서로를 규정하며 공존하는 자기증식논리인 이른바 ‘승리주의’를 발본적으로 문제제기하는 뼈아픈 자기 해체의 과정이 없이 그리스도교 신앙은 오늘 우리에게 유의미한 종교일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계간 당대비평'의 특집 ‘우리 안의 파시즘’에 기고된 「승리주의를 넘어서, 예수의 복원을 향해」35)는 이 기획의 엄청난 성공과 함께 나의 활동에서 중대한 기회를 선사했다. 편집위원으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당시 우리사회의 어느 계간지보다 ‘기획’이 강화된 매체에 기획자의 하나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비평가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사회의 담론 지형에 개입할 수 있는 지면을 얻게 된 것을 의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비평가들의 비평을 기획하고 조직할 수 있는 위상, 즉 에디터로서 사회적 담론 형성에 끼어들 수 있게 된 것을 뜻한다.
당대비평' 13호(2000 겨울)부터 20호(2002 가을)까지 8권을 만들었고, 이어서 21호(2003 겨울-봄 합본)부터 이 잡지가 종간되는 28호(2004 겨울)까지는 편집주간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편집위원이던 때 한 권,36) 편집주간이던 2년 동안에 무려 6권의 특별호 혹은 중간호 형식의 단행본을 만들었다.37) 종간된 이후에는 단행본 기획모임으로 전환하여 현재까지 세 권을 펴냈고,38) 다른 한 권은 올해 말경에 출간 예정에 있다.
편집위원이라는 역할, 특히 편집주간의 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더 이상 그리스도교에 한정된 비평가 혹은 기획자일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동시대 한국사회를 읽어내는 안목을 필요로 한다. 더구나 비평이라는 장르는 미시적인 문제들을 주목하고, 거기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이 보였던 현상들 간을 연계고리를 읽어내며 그것에서 보다 넓은 차원의 위기를 해석해내는 안목이 필요하다. 긴 시간 동안 신학 영역 안에서만 생각을 펴왔던 자로서는 너무나 벅찬 일이었다. 표현도, 사람도, 생각의 방식도 낯설었다. 신학이 얼마나 고립된 섬 안에 갇혀 있는지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생애에서 가장 많은 독서를 했던 기간 중 하나가 바로 이 시기였다. 실은 독서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현장을 보고, 그것에서 읽을 것과 생각할 것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한 해에 4권의 책을 낸다는 것은, 게다가 특별호나 중간호 같은 단행본까지 펴낸다는 것은, 늘 시간의 부족 속에서 생각하고 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여 매호를 펴낼 때마다 무엇을 했는지 어리둥절한 상태였고, 늘 사후에 그 기획의 의의를 어렴풋이나마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얼떨결에 잡지의 편집위원과 주간이 된 것처럼, 4년간의 지식 기획자 생활도 얼떨결에 지나갔다.
이 4년간 잡지는 두 번 이사를 했다. 내가 관여하기 전에 한 번의 이사 경력이 더 있다. 잡지의 이력치고는 희귀한 경우다. 대개 잡지는 자금력이 없이는 발행하기가 쉽지 않다. 비용은 많이 드는데, 판매 단가가 일반 단행본보다 낮으며, 시장에서 순환하는 시간도 짧다. 해서 대개는 경제적 어려움이 생기면 발행처를 옮기기보다는 공중분해되는 게 상례다. 게다가 '당대비평'은 소설 같은 시장성 있는 글을 실은 적도 없다.
더욱이 이 계간지의 가장 대표적인 기획자는 문부식 선생이다. 탁월한 기획자이지만, 그의 학력은 고졸이다. 그를 이어 주간직을 맡은 나 또한 박사 학위가 없으며, 그나마 한국사회의 각종 논쟁에 거의 관여하지 않았던 신학 경력의 소유자다. 지식 담론의 한 가운데서 소비되는 잡지의 주간이 번듯한 학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잡지를 지탱해줄 출판사 또한 영세하다는 것, 이런 여건은 당대비평이 살아남기 위해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기획력 외에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당비스럽다’라는 말이 종종 사용되었는데, 그것의 함의는, 한국사회의 보수든 진보든 제도화된 것, 사람들의 몸에 잘 안착되어 거의 거부감 없이 수용되는 것에서 이질감을 드러내고, 낯설고 잊어버린 것에서 친숙함을 발견하려는 담론의 스타일을 말한다. '당대비평'이 하고자 했던 기획의 기조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해서 '당대비평'은 내내 논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잡지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당비’가 우리 사회에 남긴 기록은 ‘탈(脫)’의 이야기다. 그것은 변화하는 세계의 가능성에 관한 수많은 ‘향(向)’의 물결 속에서 ‘표류’하고 있는 자들의 기록이고, 삭제된 자들의 감추어진 흔적이다. 물론 ‘향’ 외부의 ‘탈’은 존재할 수 없다. 그 외부는 비존재이며, 죽음이기 때문이다. 하여 ‘향’의 흐름 속에서, 그 끝의 경계 위에서 ‘탈’은 발버둥하며 흐름에 거스르려 바둥거리는 것, 그것이 ‘당비’인 것이다. 또한 바로 나 자신이 그러한 존재, 비존재의 존재인 것이다.
지난 2005년 1월, 파란만장했던 저널북(저널+단행본) '계간 인물과 사상'이 33호를 마지막으로 종간을 선언했다. 그 의미를 두고 지식사회는 다양한 해석을 시도했다. 조금 먼저 종간된 잡지 주간의 한 사람으로서 내게도 논평의 요청이 왔다. 「‘인물과 사상’ 이후의 글쓰기는 가능한가?」39)에서 나는 강준만을 종이문자 시대에서 디지털문자 시대로의 매체 환경 변화의 마지막이자 시작을 상징하는 존재로 해석한 바 있다. 그 유명한 ‘강준만 파일’은 바로 종이스크랩의 산물이다. 그의 파일에는 우리사회 지배층의 위선을 ‘성역 없이’ 폭로하는 신랄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이러한 강준만 식 글쓰기는 대중에게 희열을 선사했고, 나아가 대중이 권력과 지식의 영역에 개입하고 감시할 근거를 제공해주는 일종의 ‘감시의 문서고’였다. 한데 바로 이러한 대중의 감시는 디지털전자미디어 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커다란 진전을 이룩하게 된다. 즉 ‘강준만 파일’은 넷공간을 통해서 회자되면서, 무수한 정보가 덧붙여지고 해석되면서 ‘확대 강준만 파일’을 만들어낸다. 즉 강준만의 실제 문서고는 넷 공간 속에서 ‘위(quasi-) 강준만’인 무수한 대중에 의해 ‘상상적 문서고’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강준만이 '인물과 사상'의 종간을 선언하며 그 문서고로부터 퇴장하자, 이제 대중은 스스로 넷공간의 자기의 문서고를 만들고, 다른 대중과 교류하게 되었다.
그 어간 각 일간지들은 속속 ‘계간지 리뷰’면을 없애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계간지는 담론 형성적 지위를 상실해갔다. 사람들은 계간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고, 대중미디어 기자들도 사회의 의제를 말하기 위해 계간지를 참조하지 않게 되었다. 바야흐로 계간지의 시대는 급속도로 저물고 있었다.
'당대비평'을 복간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사실은 마지막 권인 28호에서도 ‘종간’ 대신 ‘휴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여러 자산가들의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구 ‘당대비평’ 편집위원들은 모여서 계간지 대신 단행본을 만드는 기획모임으로 재편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세 권의 책을 펴냈고, 이제 1년에 두 권씩 내기로 거의 정례화되었다.
이제 다시 신학 영역으로 복귀했다. 2006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나를 연구실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3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에는 거액 후원자가 갑자기 나타난 것을 빼놓을 수 없겠다. 사무실도 생겼고, 기초설비들이 꽤 잘 갖춰졌다. 그리고 함께 상근하는 동료들이 생겼다. 하지만 내게는 이제까지 해보지 못한 역할이 부여됐다. 아니 그 역할이 무언지 알 수 없지만, 달라져야 한다는 안팎의 압박이 있었다. 누구도 그 상을 그릴 수는 없었지만, 이만한 기구의 운영자들에 관한 전제된 이미지들이 나를 규정하는 틀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아웃사이더로 살아온 전력과 스타일을 아는 동료와 선배들은 여러 형태로 그런 변화에 익숙하지 못한 자를 돌보아주면서 무난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안내하고자 했다.
하지만 1년 만에 그 후원자는 떠나갔고, 다시 우리만 남겨졌다. 나는 다소 독선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익숙한 방식대로 되돌리려 했다. 소액의 회비를 내는 회원들을 모집했고, 그것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경계를 걷는’ 아웃사이더의 길을 선택했다. 18년을 버텨온 전력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적지 아니 있다. 지금은 바로 그것을 하고자 애쓰고 있다.
하나 더, 이제 민중신학의 내일을 맡아줄 후배들에게 줄 것이 조금 생겼다. 연구소도 그 중 하나다. 나의 목표는 두 명의 상근자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남겨주는 것이다. 지금은 꽤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아웃사이더로 살아가기,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아니 될 수 있을 것 같다.
고통의 현상학
후배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또 한 가지는 제3세대 민중신학의 의의가 선배들의 그것보다 결코 부족하지 않도록 평가받게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독보적 의의를 ‘고통’을 신학화하는 데서 본다. 우리사회의 어느 분야의 비판 담론보다도 고통의 현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깊은 통찰을 담아내는 신학의 발견이 나의 목표다.
‘고통’이라는 주제를 특별히 주목하기 시작한 계기는, 당대비평의 편집위원이 되고 나서 야심을 갖고 시작한 기획인 ‘연속기획: 한국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 14호(2001년 봄)부터 시작해서 27호(2004년 가을)까지 총 12 주제로 46편의 글이 실렸다. 기획 취지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배제가 작동되는 현장을 ‘중층적으로 치밀하게’ 읽어본다(thick description)는 데 있었다. 감추어진 편견과 차별을 발견하는 데 초점이 있었고, 그 현장의 증언, 현장 연구, 그리고 좀더 큰 차원에서 사회적 체계의 시각에서 읽어내는 연구 등을 엮어낸다는 취지였는데, 현장 연구가 거의 없는 우리사회 지식의 현황에서 해당 주제에 맞는 연구자를 발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았다. 어떤 것은 아예 연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해서 가장 많은 공이 들면서도 대체로 완성도는 높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기획은 내게 중요한 신학적 과제에 직면하게 했다. 즉 ‘고통’을 ‘치밀하게 중층적’으로 읽지 않고서는 민중신학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고통을 다양하게 서사화한다. 이 많은 서사들 속에서 고통은 종종 ‘낭만화’되어 있다(romanticized). 진보적 성향의 이데올로기에서 고통은 종종 ‘성화’(sanctification)된다. 그런데 이 기획을 진행하면서, 지식인들과 시민사회가, 아니 나 자신이 고통을, 낭만화하든 성화하든, 너무 쉽게 서사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날것의 고통’(raw pain)이라는 표현의 실재, 그 말의 현실에 다가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절감해야 했던 것이다.
고통은 종종 언어를 왜곡하고, 기억을 왜곡하며, 관계를 왜곡한다. 하여 고통은 흔히 다른 것으로 전이되어 표현되며, 자기 학대나 타자를 향한 공격으로 나타나곤 한다. 혹은 민족주의든 반공주의든 공적인 언어로 변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고통을 읽는다는 것은 이렇게 복잡다단하게 왜곡된 현상을 드러내기 위한 치밀한 중층적 분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통과 폭력의 피라미드 최말단의 존재들은 그 누적된 고통과 폭력의 체험을 묘사할 언어를 상실하였다. 이런 체험의 재현 불능 상태를 사회적 실어증(social aphasia)라고 명명한 바 있는데, 민중을 이야기하는 주요 지점이 바로 여기라는 것이다.
나의 글 「고통과 폭력의 신학적 현상학—민중신학의 당대성 모색」40)은 고통의 치밀한 중층적 읽기가 신학의 핵심적 요소임을 제기하는, 일종의 개론적 글이다. 여기서 ‘현상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데올로기를 전제하지 않고 체험을 언어화할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함이다. ‘고통의 민중신학적 언어화’를 안병무 선생의 용어로 말하면 ‘증언’이다. 곧 고통과 폭력의 현상학은 우리시대의 문제의식으로 표현된 증언의 신학인 셈이다.
당대비평 23호(2003년 가을)의 특집 ‘무능력, 가능성의 재앙에 대한 보고서’는 고통과 폭력의 현상학에 관한 문제의식으로 구성된,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장 많이 가는 기획이다. 그 어간 ‘노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우연히 어느 노숙자의 개인사에 다가서게 되면서 문제의식이 발전하게 되었으며, 프랑스의 한 연구에서 얻은 착상에서 ‘무능력’이라는 키워드로 우리사회를 읽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나의 글 「‘카인 콤플렉스’와 무능력자 담론」에서 말하고 있듯이, ‘무능력’은 한 번도 우리 사회를 읽는 시선의 핵심이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무능력이라는 기표는, 그것이 사용되는 형식은 매우 유의미한 동시대적 징후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기획은 그야말로 난항의 연속이었고, 필자들의 생각을 견인하는 데도 실패했다. 누구도 말해보지 않은 주제인데, 그것으로 한국사회의 동학을 이야기하고 고통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려 하니 모두들 글의 방향을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여 이 기획은, 나의 판단으로는 우리시대의 의제로서 손색이 없는 것이지만, 의제화하기엔 너무 낯선 것이었다.
무능력 담론을 살펴보면, 행위수행능력을 결핍한 무능력과 행위수행능력을 갖춘 이가 직면한 무능력으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후자가 주목의 대상인데, 그것은 최근의 담론에서 특히 많이 사용되는 것이기도 하고, 시민사회가 전통적인 무능력자인 전자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사회적 망각의 메커니즘이 바로 이 두번째 무능력자 담론 속에서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출범 당시, 민주화에 과잉 경도된 시민적 주체를 ‘참여’로서 담론화하려는 정책적 기조에서 ‘비참여’에 대한 문제의식의 결핍을 제기한 바 있다. 21호(2003년 겨울-봄 합본호)의 머리글 「‘국민 참여' 시대의 비국민의 목소리」가 그것이다. 이 짧막한 문제제기를 보다 깊게 다룬 것이 「카인 ... 」이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두 민주정부 시대에 소득 양극화는 현저히 악화되었고, 이러한 양극화의 가장 주된 요인인 비정규직의 비중도 급속도로 커졌다. MB 정부의 출범은 한국의 민주정부가 토대를 놓은 비시민 배제의 메커니즘을 현저히 악화시킬 것이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민주정부-MB정부는 서로 정적(政敵)이면서도 동시에 공유하는 감각체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에 발표한 나의 글 「5.18 기억의 정치화와 민족—지구화 시대 민주화와 선진화 담론의 감각 체계」41)는 바로 이러한 공유된 감각체계를 권력엘리트와 시민사회의 지식기반사회적 지향과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민사회의 사회적 망각의 메커니즘은 (시민권이 아닌) ‘인권’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시민사회에서 배제의 공간, 곧 비시민의 일상공간에서 벌어지는 과잉폭력 상황에 대해 시민사회는 그 고통과 폭력에 대한 비판적 감수성을 상실한 것이다. 그것은 포섭된 자와 배제된 자의 ‘담론 공간의 분리’가 보다 분명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담론적 공간의 분리가 발달할수록 물리적 공간의 분리는 불필요해진다. 해서 권위주의 시대의 배제주의가 선호한 ‘제거와 격리의 정치’는 점점 불필요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담론적 공간 분리’가 보다 명료해졌다는 것은 근대국가의 내부에서 또 다른 국경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강상중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권을 둘러싼 일본사회의 동화와 포섭의 메커니즘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의 용어를 빌어, ‘내적 국경’이라고 말한 것42)을, 한국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외적)국경 내부의 담론적 공간분리로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 아니다. 근대국가는 국경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감성적 동일자의식을 만들어냈다. ‘도덕공동체’(moral community)라는 칸트의 용어는 바로 이러한 동일자의식이 내포하는 상호책임의 감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데 미국의 신실용주의철학자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는 도덕공동체적 동일자의식이 실종되는 공간에서 인권의 문제를 제기한다. 바로 담론공간의 분리 과정에서 내적 국경의 외부로 밀려난 이들에 대해 시민사회는 민족적 혹은 국민적 공조감을 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여 오늘 우리 사회의 인권의 문제는 민주화 이후 형성된 담론적 공간 분리와 연동된 사회의 배제 메커니즘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국경들 너머의 짐승들 혹은 인간들—오늘의 인권 문제와 비판신학1: 내셔널리티」는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43)
한국사회는 급속도로 양극화되고 있다. 빈곤층은 단지 경제적인 결핍만으로 충분히 규정할 수 없는 ‘빈곤의 문화’라는 그로테스크한 영역으로 재편되고 있고, 시민사회는 과거 개발독재 시대의 천민적 시민의 사회 규정적 힘이 서서히 약화되고 있다. 주목할 것은 이른바 교양층으로서의 시민사회의 문화가 대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의 미학화, 교양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가 점차 신사화(gentrification)되고 있다는 징후이다. 그런데 도심 재개발을 뜻하는 ‘신사화’라는 용어가 함축하고 있듯이, 이러한 징후는 시민사회라는 진공포장된 ‘이데올로기적 영역’ 외부의 배제를 더욱 견고히 하는 미학적 장치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시민사회의 미학화로의 이행이 가장 적극적으로 수행되는 곳이 교회이다. 특히 내가 ‘후발대형교회’라는 이념형적 실체로 규정한 현상은 일부 대형교회에서 일어나는 자기갱신운동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것에서 나는 한국의 시민사회에서 이른바 교양층의 자기 서사화, 특히 종교적인 서사화를 본다. 영화 <밀양>에 관한 신학적 평론인 「왜 교회는 그녀의 고통을 읽지 못 할까」44)에서 나는 소설 「벌레이야기」와 다른 영화의 서사에서 교양층으로서의 시민사회의 등장을 한국기독교라는 은유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전가될 수 없는 고통에 직면한 이의 자기파괴, 그 깊은 고통의 심연에 다가갈 수 없는 시민사회적 교양층의 문화를 읽어내고자 했다. 그리고 「민주화 시대의 ‘미학화된 기독교’와 한국 보수주의」45)를 포함한 일련의 연구들은 한국사회의 보수주의의 재편 가능성, 그리고 보수주의적 미학화의 디스토피아적 우울함의 시스템을 분석하고 있다.
사회의 보수주의적 미학에 심취할 수 없는 이는 새로 조성된 광화문 광장 벤치 언저리를 서성인다. 파리 아케이드를, 그 화려한 자본주의의 장밋빛 환형에 동화되지 못한 채 하릴없이 거니는 플라네르(flâneur)처럼. 상념에 젖는다. 저 광장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해 보인다. 그 앞 홍보대 앞에서 춤추고 있는 자본의 무희들을 흘깃 쳐다보며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외양의 문화를 거스르기가 점점 벅차다.
하지만 전능한 권력의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집은 결국 무너졌다. 그것은 약함 속에서 나오는 힘이고, 패배 속에서 드러나는 저력이다. 아무도 진혼곡을 부르지 않아도 죽음은 산 이들에게 진혼곡을 부르도록 호출한다. 「타인의 고통으로 지은 체제는 오래 지속된다고 해도 그 죽음의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46)에서 제기한 민중신학적 역사관은 이렇다.
이 멜랑꼴리한 공간 저편, 어느 칙칙한 곳에 사람도 아니고 기계도 아닌 경계선상의 존재 리플리컨트가 잠입해 들어왔다. 전능한 권력이 회수하지 못한 리플리컨트가 그 칙칙한 공간에서 찾고 있는 것은 ‘기억’이다. 전능한 권력이 심은 위조된 기억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간직되는 몸의 기억이다(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1990년대 이후, 민주화와 지구화의 시대, 시간은 민중신학의 지반을 붕괴시켰다. 모든 것은 그 시간에 의해 눈처럼 녹아버렸다. 하지만 아직 회수되지 않은 자들이 있다. 그 중에 민중신학도 끼어 있다. 시간이 회수하지 못한 한 민중신학도는 그 시간의 경계 위를 걷는다. 유랑자가 되어 휘청거리며 뒤뚱뒤뚱 걷는다. 고통과 폭력의 현상학이, 그의 발자취를 따라 곧 모래로 뒤덮일 사막 위에 기록을 시작한다. □
[주]
1) 함께 읽는 구약성서(한국신학연구소, 1991), 함께 읽는 신약성서(한국신학연구소, 1992).
2) 야훼 신앙의 맥—오경,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 1(평화나무, 2007), 새 역사를 향한 순례—역사서,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 2(평화나무, 2007), 시대의 아픔을 넘어서—왕국시대 예언자,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 3(평화나무, 2008), 위기 속에서 대안을 찾다—포로기와 그 이후 예언자, 생명과 평화의 눈으로 읽는 성서 4(평화나무, 2009)
3) 이 책은 삼인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에 있다.
4) 동연, 2009년 출간.
5) 김남석, 「최인훈 문학에 나타난 난민의식 연구―최인훈 작품 세계와 연구(2)」,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34(2007 봄) 참조.
6) 나의 글 「‘성화된 양심’은 없다―우리 시대 ‘양심의 도구화’에 대한 하나의 문제제기」, 황해문화 51(2006 여름), 40~43쪽 참조.
7) 이 책은 내가 편집주간으로 일하던 계간 당대비평이 펴낸 단행본 시리즈 ‘당비생각’의 제1권으로 출간되었다(생각의 나무, 2002).
8) 김현정, 「서정주 시에 나타난 아버지의 의미」, 어문연구 55(2007 12); 허문영, 「홀로 남겨진 소년들을 떠나보내며」(http://www.piff.org/kor/html/webzine/02_view.asp?article_id=4000000015&essey_code=3) 참조.
9) 김동춘, 「학술운동의 현황과 전망」, 현상과인식 45(1989 봄) 참조.
10) 김원, 「1987년 이후 진보적 지식생산의 변화―진보적 지식공동체를 중심으로」, 경제와 사회 77(2008 봄) 참조.
11) 「지지자들을 통해 본 예수운동 연구—마르코복음서를 중심으로」(한신대신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1).
12) 베레아 지역(세례자 요한이 주도한 운동의 일원으로 참여_제1단계)⇒갈릴래아 촌락 회당 내부(제2단계)⇒갈릴래아 촌락 회당 외부, 특히 ‘호숫가’(제3단계)⇒예루살렘(제4단계)
13) 역할에 있어 예수운동의 참여자들을 역할에 있어서 추종자 집단 중 ‘내적 집단’(inner-circle, ‘열둘’), ‘그밖의 추종자 집단’(‘제자’), 그리고 주변의 대중, 이렇게 셋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사회적 위치를 해석할 때에 마지막 주변의 대중은 다시 ‘촌락 안의 대중’과 ‘촌락 밖의 대중’(=오클로스)으로 나누었다. 한편 「마르코복음」의 구성에 따르면 예수운동의 주요 대중이 전자에서 후자로 바뀌는 계기에 촌락회당에서 바리사이와의 갈등이 게재되어 있다.
14) 도서출판 나단에서 1992에 펴낸 책이다.
15) 한국신학연구소 1996년 출간. 이 책에 수록된 나의 해제는 「역사의 예수 연구에 대한 해석학적 고찰 및 민중신학의 ‘사건론’적 전망」이다.
16) 다산글방 2000년에 출간.
17) 내가 작명한 책의 제목은 ‘예수로 예수 넘기’이고, 부제는 ‘예수 역사학의 새로운 전망’이었다.
18) 「‘탈교회적 주체’의 신앙을 향해―‘역사의 예수’ 담론의 정치성」(진보평론 7<2001 봄>); 「‘역사의 예수’ 담론과 교회주의 비판」(신학사상 116<2002 봄>); 「팍스로마나, 팍스아메리카나, 팍스크리스티나아―역사의 예수 연구의 정치성에 대하여(재론)」(세계의 신학 58<2003 봄>).
19) 삼인출판사에서 2008년에 출판되었다.
20) 제1권: 정연복의 오늘 우리에게 예수는 무엇인가(1991); 제2권: 최형묵의 사회변혁운동과 기독교신학(1991); 제3권: 김경호의 해방을 위한 사랑의 선한 싸움(1992); 제4권: 김진호의 실천적 그리스도교를 위하여: 예수운동의 혁명성 연구(1992); 제5권: 서재경의 예수라 불렀다(1993).
21) 시대와 민중신학은 한국에서는 거의 읽혀지지 않는 책이지만, 하버드 대학에 전 권이 소장되어 있고, 일부가 소장되어 있는 학교, 새롭게 주문하겠다는 비공식 제안이 있는 학교 등이 있어, 의미 있는 한국학 자료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2) 이 글은 시대와 민중신학 4호(1997)에 수록되었다.
23) 이것은 1998년 한국신학연구소가 주최한 민중신학자 대토론회에서 발표된 나의 글 「한국사회의 근대성과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에서 보다 체계화되었다. 이 글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2001년 2월 포럼에서 다소 수정 보완되어 재발표되었고, 시대와 민중신학 7호(2002)에 같은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24) 실제로 제1세대와 제2세대 민중신학을 논하는 이들은 거의 언제나 이 둘을 대립시키면서 제2세대를 격하시키곤 한다.
25) 나의 글 「낯설음에 대한 은폐된 폭력, 어떻게 성찰할 것인가」, 우리 안의 이분법 참조.
26) 나의 글 「국경들 너머의 짐승들 혹은 인간들—오늘의 인권 문제와 비판신학1: 내셔널리티」, 시대와 민중신학 10(2007); —, 「5.18 기억의 정치화와 민족—지구화 시대 민주화와 선진화 담론의 감각 체계」, 5.18 민중항쟁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시선 (한울, 2009) 참조. ‘망각(잊어버림)의 정치’라는 용어는 정건화 박배균의 논문 「세계화와 "잊어버림"의 정치: 안산시 원곡동의 외국인 노동자 거주지역에 대한 연구」, 한국지역지리학회지 10/4(2004)에서 빌려온 표현이다.
27) 나의 글 「민주화 시대 ‘미학화된 기독교와 한국 보수주의」, 당대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 (웅진 지식하우스, 2007) 참조.
28) ‘예감’은 도미야마 이치로(富山一郞)의 책 전장의 기억(이산, 2002)과 폭력의 예감(그린비, 2009)에서 빌어온 개념이다.
29) 김경호, 「민중신학에 토대한 교회」, 시대와 민중신학2(1995) 참조.
30) 삼인출판사에서 2006년 발행.
31) 주2) 참조.
32) 김성기 김진호, 「대담: 역사 속의 예수를 찾아가는 연구 노숙자」와 「단(斷)과 공(公)의 변증법: 지구적 자본 시대의 위기와 민중신학적 희망의 원리를 찾아서」, 현대사상 7(1999-1).
33) 「IMF 시대의 민중신학―오늘 우리는 왜 그리스도인인가?」, 1998 지식인 리포트: 한국 좌파의 목소리 (민은사 1998.9)
34) 「문화반란의 기수들 11: 3세대 민중신학자 김진호. ‘교회 해체’를 외치는 급진파 목사」(경향신문 1999.6.24); 「인문학 데이트 10: 김진호 편」(한겨레신문 2000.7.27).
35) 8호(1999 가을). 이것은 다시 단행본 우리 안의 파시즘(삼인, 2000)에 재수록되었다.
36) 김창엽 외, 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다양한 몸의 평등한 삶을 꿈꾸며 (삼인, 2002).
37) 박노자 외, ‘탈영자들’의 기념비. 당대비평 특별호 (생각의 나무, 2003); 슬라보예 지젝 도정일 외, 아부 그라이브에서 김선일까지. 당대비평 특별호 (생각의 나무, 2004); 김동춘 외, 불안의 시대 고통의 한복판에서. 당대비평 2005 신년특별호 (생각의 나무, 2005); 권용립 외, 우리 안의 이분법. 당비생각1 (생각의 나무, 2004); 우에노 치즈코, 조한혜정, 경계에서 말한다. 당비생각 02 (생각의 나무, 200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외, 게릴라의 전설을 넘어. 당비생각 03 (생각의 나무 2004).
38) 당대비평 편집위원회,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민주화는 실패한 기획인가, 87년 이후 한국 사회에 대한 성찰 (웅진지식하우스, 2007);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민주화 20년 민주주의는 누구의 이름인가, 당비의 생각 01 (산책자, 2008); ―,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폭력과 추방의 시대, 촛불의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다, 당비의 생각 02 (산책자, 2009).
39) 중등우리교육 181(2005년 3월호).
40) 심원 안병무 선생 기념사업위원회 엮음, 안병무 신학사상의 맥 II (한국신학연구소, 2006.10)에 게재되었는데, 이 책의 실제 발행은 2007년이었다. 이 글은 한국조직신학자대회(2006년 5월) 발표 원고를 초안으로 하고, 일본 기독교학회신학 관동지부회(2007년 3월 1일. 립교대학)의 강연 원고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41) 5.18 민중항쟁에 대한 새로운 성찰적 시선 (한울, 2009).
42) 강상중, 「내적국경과 래디컬 데모크라시. ‘재일(在日)’의 시점에서」, 그의 책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 (이산, 2000)에 수록된 보론.
43) 시대와 민중신학 10(2007).
44) <필름2.0> (2007.6.13)
45) 당대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더 작은 민주주의를 상상한다—민주화는 실패한 기획인가, 87년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 (웅진 지식하우스, 2007).
46)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당비의 생각1 (산책자, 2009)에 수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