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NCCK 교회일치 및 종교간 대화 위원장 전병금 목사 편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 운동의 선구자격인 강남교회 전병금 목사.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 지나친 외형적 성장의 집착, 물량주의 등 한국교회의 각종 병적 증상들을 살펴본 전 목사는 한국교회 내 뿌리를 깊게 내린 ‘개교회주의’가 그 원인임을 밝혔다. ⓒ김진한 기자 |
1999년. 그 때까지만 해도 보수 복음주의 진영의 목회자들과 에큐메니컬 진영의 목회자들 간 ‘소통’이란 없었다. ‘생산적 대화’ 대신 서로 헐뜯기 십상이었고, 서로 비판하며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을 당연시 해왔다. 그들 사이엔 '교리의 차이' '생각의 차이'라는 탄탄하고 높은 벽이 존재했고, 이것은 서로의 접촉 자체를 차단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 벽에 금이 가게하고, 급기야는 그 벽을 허물어 보수 복음주의 그리고 에큐메니컬 진영의 목회자들 간 시원한 소통의 물꼬를 트는 일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이가 있었다.
NCCK의 주요 직책을 두루 역임하고, 한 때 교단 연합 운동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진보·보수 교단 간 화해와 소통을 위해 헌신적 노력을 기울인 바 있는 전병금 목사. 그의 이런 노력으로 오늘날 일부 복음주의 진영의 목회자들과 에큐메니컬 진영의 목회자들의 만남이 자연스러워졌고, 이들 간 생산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를 화곡동에 위치한 강남교회 당회장실에서 만났다.
- 연초부터 교회 강단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 소식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교회가 민족의 희망이 되어야 하는데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 효율성 중심의 비즈니스화 된 목회, 지나친 외형적 성장의 집착, 물량주의를 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개교회주의’에 있다. 윤리적 타락이나 지나친 외형에 집착하는 비즈니스화 된 목회를 목회자 스스로가 자성하여 고쳐 갈 수 있지만, ‘개교회주의’라는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현실 앞에서는 무력하기 일쑤이다. 왜 많은 목회자들이 물량주의로 비즈니스화 된 목회를 하겠는가? 왜 많은 목회자들이 처음 받은 소명을 망각한 채 윤리적으로 타락해 갔겠는가? 이러한 문제들은 개교회주의로 인해 발생한 목회자들 간의 적자생존의 무한 경쟁이 불러일으킨 필연적인 결과인 것이다. 적자생존의 무한경쟁의 장 속에서 중요한 것은 외적인 결과나 효율성이지 그 무슨 고상한 윤리적 원리는 아닐 것이다. 결과만 좋다면, 교인들의 숫자만 늘어난다면, 그 결과를 발생시킨 수단은 그것이 아무리 악할 지라도 정당한 것으로 합리화 되는데, 그 어떤 목회자가 교인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데, 결과와는 별 관련이 없는 ‘고상한’ 도덕적 원리의 탐색에 몰두하고 있겠는가?”
- 교회 강단의 권위가 날로 추락하는데 있어 ‘개교회주의’ 병폐는 핵심적 문제로 계속 지적되어 왔다. 개교회주의는 구체적으로 한국교회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개교회주의는 첫째, 기독교의 본질을 훼손시킨다. 주변의 교회들을 같은 공동체로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보아 교회의 통일성과 협력을 파괴시킨다. 둘째, 지나친 개교회주의는 독선과 아집으로 빠져 극단적으로 흐를 때 이단으로 되기 쉽다. 개교회주의에 근거하여 성장 발전한 교회는 노회와 총회 그리고 교계의 올바른 조언을 더 이상 듣지 않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이단들이 형성된다. 셋째, 성도들을 교회에만 묶어 놓아서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 그리고 봉사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못하게 한다. 성도의 신앙생활의 영역이 교회 영역에 한정되어 역동적인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공헌하지 못하고 기복주의에 빠진다. 개교회주의적 사고는 신앙을 사적으로(private)으로 만들어 사회, 문화, 정치, 경제, 교육 등등에서 나타나는 복음의 공적인(public) 측면을 간과하게 된다. 복음의 공적인 측면의 간과는 일제 시대 한국 기독교가 보여주었던 역사적 전통을 모조리 없애는 것이다.”
- 보다 근본적으로 교회의 세속화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의 세속화는 언제부터 진행되었다고 보는가.
▲전병금 목사는 기업들이 눈부신 성장을 거두던 산업화 시절 물질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 한국교회가 물질적 가치에 함몰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김진한 기자 |
“1960년대부터 박정희 대통령 군사쿠데타와 함께 들어선 산업화 과정 속에서 도시 집중 현상이 일어났다. 서울과 다른 대도시로 사람들이 몰려 들었는데 경제 발전과 함께 도시화 되는 사회 속에 기업이 크게 성장했다. 이때부터 산업화, 기업의 성장 가치인 물질주의가 교회에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교회가 물량화된 것이다. 숫자 개념이 생기고, 크기를 따지게 되고, 급기야 돈(예산) 운영 등 비지니스적 요소가 교회 곳곳에 자리잡게 되었다. 무엇이든 많다고 나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런 것들 하나 하나가 목회자들의 자기 성공의 수단으로 삼으려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대다수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한국교회 연합기관의 높은자리 혹은 교단의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선호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60년대가 오기 전까지만해도 진리, 헌신, 봉사가 자리잡던 자리에 교회의 성장이, 명예와 권력 지향적인 태도가 자리를 잡게 됐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성장이 비단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와서 구원 받고, 그들이 나가서 역사와 민족 속에 사명을 감당하고, 또 사회를 변혁시키는 데 역할을 한다면 교회의 성장, 교회의 부흥은 필연 좋은 것이다. 그러나 교회 성장의 부산물로 목회자들이 자기 위치를 굳히고, 한국교회 지도자로 나서며 봉사, 헌신, 무릎꿇는 기도와 이웃 사랑 실천 등 보이지 않는 참된 가치에는 눈을 감고, 부와 명예 등 보이는 가치를 추구하다보니 스스로 가치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된 것이라고 본다.
작은교회 목회자들 역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들 역시 진리와 가치로 목회 일선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추구하는 것에 편승해서 상대적 소외감을 갖고, 반발심을 키우고 있는데 이것도 분명 문제다. 한국교회 전체가 물질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것이다.”
- 물질주의에 함몰된 한국교회에 절실한 것은 ‘가진 것을 나누고 필요에 따라 분배’했던 초대교회 전통이란 생각이 든다. 병의 원인이 있으면 처방이 있듯이 초대교회와 비교할 때 한국교회가 어디서 어긋낫고, 또 어긋났다면 어떻게 돌이켜 초대교회 전통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는가.
“예수님이 사역을 전개하던 당시 로마의 권력은 ‘팍스 로마나’라는 말로 요약될 만큼 눈에 보이는 가치에 편승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로마에만 있었지 식민지 국가를 비롯한 주변 나라는 압제와 탄압 속에 매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팍스 코리아. 박정희 독재 시절에 산업화가 가져온 경제부흥을 두고 박정희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팍스 코리아를 외쳤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그곳에서 민주주의, 정의, 평화를 부르짖은 이들은 평화가 아닌 압제와 수난을 당했다.
예수님은 당시 로마의 권력, 헤롯의 권력, 제사장의 권력.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고, 이웃 사랑을 위해 십자가에 죽는 길을 택했다. 한국교회 목회자 모두는 예수님과 같이 눈에 보이는 팍스 로마나 권력을 지지하고 그쪽으로 갈 것이 아니라, 진리와 사랑과 봉사와 섬김과 나눔을 통한 십자가를 지는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한다. 대형교회에 지도자들이 많다. 한국교회가 새롭게 될려면 지도자들부터 결단을 해야 한다. 기득권을 가진 목회자들이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예수님과 같은 가치를 위해 자기가 내려 놓고 십자가를 지는 길을 택해야 한다.”
- 한국교회의 세속화, 특히 물질만능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저마다 무한경쟁 속에서 '개교회주의'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몇몇 목회자들의 결단만으로 쉽게 그 흐름이 바로잡아질 것 같지 않다. 구조적 갱신에 대한 의견은 없는가.
“구조적인 문제에서 논할 것은 대형교회가 어디까지 내려와야 하느냐는 것이다. 한 30년쯤 전에 영국교회 1년 동안 있으면서 영국교회를 보고 배운 적이 있었다. 그때보니 영국교회는 여러 교단이 합쳐서 운영이 되고 있었다. 내가 예배를 드렸던 곳도 장로교회, 그리스도교회(church of christ), 회중교회 등이 합친 교회였다.
또 한 가지 충격적인 것은 성도들이 헌금을 하면 교회는 그것을 전부 교단에 보냈고, 교단은 목회자들에게 사례비를 균등하게 나눠졌다. 큰 교회, 작은 교회 목회자를 따지지 않고, 봉급을 평준화시킨 것이다. 단 큰 교회 목회자들에게는 업무량을 고려해 수당을 좀 더 쳐주는 것 뿐이었다. 심지어 부목사도 봉급이 비슷하다. 봉급이 같으니까 작은교회 목사들도 세속적 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힘을 내서 신나게 목회를 한다.
큰 교회 목사들이 완전히 내려오지 않으면, 한국교회 전체가 결단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해내야 한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낮은 자리를 자처할 때 한국교회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영국교회 뿐 아니라 우리나라 구세군, 가톨릭, 성공회도 한다. 이들 교회에서는 교회 분쟁,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 등의 문제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큰 교회가 내려오지 않고서는 솔직히 한국교회를 갱신시키기 어렵다. 큰 교회 목회자들이 감투 쫓는 일을 거부하고, 저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한국교회가 바로 선다. 그래야 예수의 평화가 교회에 임할 것이다.”
- 구조적인 노력과 함께 목회자 개개인의 작은 실천들도 중요하다고 본다. 강남교회는 앞서 강조한 '비움'의 길을 어떻게 걷고 있는가.
“작년 한해 교회 창립 40주년을 맞은 강남교회는 특별헌금을 모아 앞을 못보는 사람들의 개안 수술을 도왔다. 개안수술을 하는데 한 가정 앞에 30만원씩 하자고 제안했고, 모금 목표를 3천 만원으로 정했다. 어느 주일날 오후 걷기 대회를 열었고, 이 대회에 참석하는 가정은 한 집안에서 30만원씩 헌금하기로 했다. 장로들이 불안해 했지만 놀랍게도 6천 5백만원이나 걷혔다. 선한 일을 하니까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들 좋아하는 것이었다.
또 강남교회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러 세상에 오신 성탄절에는 크리스마스 헌금을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쓰고 있다. 교회 안에 어려운 사람은 구제헌금을 하고, 교회 밖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헌금을 모아 사용한다. 그래서 강남교회는 매해 지역에서 구청장의 추천을 받아 백혈병이나 수술 받기 어려운 사람들 수술 받게 해서 살리는 일을 한다. 분명한 원칙도 있다. 도움을 주면서 교회에 출석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신앙과는 무관하게 진행했다.”
- '개교회주의'를 극복하는데 또 중요한 것이 교회 간 연합과 일치 운동일 것이다. 교회 연합 운동의 큰 획을 그었다고 들었다.
▲전병금 목사는 1999년 보수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에큐메니컬 진영의 지도자들 간 소통의 물꼬를 트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 목사가 그때 그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김진한 기자 |
“1999년도 NCCK 총회 기타토론에서 발언을 했다. NCC가 80년대 민주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시대가 이제 NCC가 하는 것이 끝났다. 이제 한국교회는 2000년도 통합의 시대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
이 기타토론에서 발언한 안이 받아들여져 NCC가 먼저 한기총에 손을 내밀었고, 연세대에서 진보-보수 교단장급 인사들의 역사적인 첫 만남이 이뤄졌으며 그 이후 NCC-한기총의 연합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당시 예장합동측은 한 발자국 물러나 있었는데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쪽 기관지와 인터뷰도 했었다. 당시 인터뷰를 하던 기자가 했던 질문들 중에 한기총은 WEA를 지지하고, NCC는 WCC를 지지하는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한 지붕 두 가족의 개념으로 "WCC를 지지하고 참여하고픈 교회와 WEA를 지지하고 참여하고픈 교회들에게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 강요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기자가 수긍을 했다. 바로 그 기사가 나온 다음날 예장합동 역시 NCC-한기총 통합 논의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태생적 차이를 서로 극복을 하지 못했고, 또 한편으로 NCC 내부적으로 한기총과 연합하면 지분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연합기구 통합논의가 수그러들었다. 대신 교단간 연합 운동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리하여 예장 합동을 포함한 많은 보수-진보 교단장들이 뜻을 모아 교단장 협의회가 구성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NCC의 교회 연합 운동 장으로서의 임기가 끝나갈 무렵이었고, 결국엔 NCC 실행위원으로도 추천을 못 받아 교단 연합 논의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10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 시도가 좋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처럼 보수 복음주의 진영 목회자들과 에큐메니컬 진영 목회자들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 올해 NCCK 교회일치 및 종교간대회 위원장에 선임된 것으로 알고 있다. 교회 연합 그리고 종교간 대화 운동에 대한 포부를 밝혀 달라.
“교회 연합 운동을 한지 20여년 가까이 되고 있다. 총회장을 지낸지도 10년이 넘어간다. 그러나 또 중책을 맡게 되었으니 지난날의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교회 간 연합 운동에 큰 기여를 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또 종교 간 대화 운동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나 2년 전부터 해오던 지역 사회 종교인 모임에서 쌓은 경험을 잘 활용해 한국사회의 종교 간 대화 그리고 종교 간 평화 만들기에 힘쓸 것이다.”
- 종교 간 대화하면 지난해에 있었던 봉은사 땅밟기 사건이 떠오른다. 제국주의적 선교관이 낳은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로 인해 불교계가 성명서까지 내는 등 한 때 종교 간 갈등이 심화되기도 했다. 종교 간 대화의 원칙은 무엇이고, 종교 간 평화를 어떻게 이끌어낼 계획인가.
“기독교의 진리는 좀 다르다. 다른 종교는 포용적이다. 가톨릭도 그렇다. 그러나 우리 개신교는 예수의 말씀은 단 예수를 통해서 구원 받는 그 진리. 그것을 놓치면 기독교가 바로 설 수가 없다. 배타적 진리다. 예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고 그 길로 갔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종교인에 배타적이지 않았다. 예수께서 마굿간에서 나실 때 동방박사가 왔다. 그들은 당대 점술가들이었다. 상당히 높은 점술 학자와 같은 이들이었으며 이방 종교의 제사장들이었다. 이들이 와서 예수의 오심을 환영하고 축하했다.
또 우리 한국교회가 과거에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디. 3.1 운동 때 기독교, 천도교, 불교가 종교를 넘어 힘을 합쳤다. 나라를 위해, 공동선을 위해 힘을 모은 것이다. 이 운동에 포용성이 있으며 개신교보다 선교 역사가 오래된 가톨릭은 참여하지 않았고, 오히려 배타적 교리를 갖고 있는 개신교가 불교와 천도교와 함께 3.1운동을 했다.
불교는 우리나라를 수천년 지켜온 종교란 점에서 존경해야 하며, 우리 민족의 심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유교 역시 존경해야 한다. 나라와 민족과 이웃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그들을 넓게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배타적 종교성, 즉 예수로 구원 받는다는 확신은 갖고 있으면서 그들과 함께 공동선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나는 2년 전부터 지역 종교인들과 모임을 가져왔다. 불교, 가톨릭, 원불교, 유교 등 종교인들의 모임인데 이 모임에서 작년에는 바자회를 열어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을 돕기도 했다.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종교인의 마음은 다들 한결 같았다.
같은 맥락에서 오래된 사찰 같은 곳, 문화재로서 가치를 생각해 잘 보호해 주어야 하고, 협력해 주어야 한다. 템플스테이. 동양종교가 가지고 있는 요가 기법 그런 것 있다. 템플스테이는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를 체험하고 그런 프로그램을 소개하기에 문화재로서 보존될 가치가 있다. 교계 일각에서 '처치스테이' 얘기도 들리던데 개신교가 그런 것을 운영해도 아마 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요즘 부쩍 관상 기도하는 모임이 늘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 하러 '처치스테이' 찾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 보다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인적, 물적 네트웍을 동원해 한국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면 그 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전병금 목사는
1944년 출생
한신대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경영학 석사)
미국 풀러신학교 이수
영국 셀리옥 선교대학원 이수
KNCC 개혁위원장(1994∼1995)
KNCC 환경위원장(1996∼1998)
KNCC 선교위원장(1999∼2000)
KNCC 한국교회연합운동추진 특별위원장(2000∼2003)
한국 기독교 연합을 위한 준비위원장(2000∼2003)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2002∼2003)
한국장로교연합회 대표회장(2002∼2003)
현재 강남교회 담임목사
<역서>
신국과 영성
변화와 개혁
<설교집>
너희 삶을 개혁하라(제1권)
내 눈을 열어주소서(제2권)
자유를 얻은 사람(제3권)
영원한 안내자(제4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