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획연재- 이장식의 교회 역사 이야기(50)

마틴 루터의 독일 종교개혁(2)

본지는 한신대 이장식 명예교수의 교회 역사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교수는 최근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예수는 평신도였고, 초대교회 예수 운동을 이끈 무리들 역시 평신도들이었다"며 교회사에 큰 기여를 한 무명의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을 조명했습니다. 앞으로 연재되는 글이 평신도들의 신앙 생활 함에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3. 신학자 신부 루터

루터의 고백사 스타우핏츠는 성서를 많이 읽도록 권하고 신부가 되는 신학공부를 하라고 권하였다.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성서공부 외에도 교회법을 공부하고 미사와 성례전을 집행하는 방법 등을 배워야 했다. 독실한 루터는 신학공부를 열심히 하여 1506년 12월에는 사제급의 부집사(sub-deacon)가 되었고 1507년 4월에는 집사급을 거쳐 정식 신부가 되었다. 신부가 되면 중세 사회에서는 최상 계층의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루터의 사제 진급이 빨랐던 것은 그의 열의와 함께 그가 대학에서 받은 교육과 그의 학식의 힘이었다.

루터는 수도원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부친 한스에게 신부가 된 것과 신부취임식을 알렸다. 한스는 루터가 자기의 기대를 어기고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이 된 것에 대하여 심한 분노를 품고 있었다. 루터도 부친의 진노가 큰 것을 알았지만 이제 신부가 되었으니 풀렸으리라 믿고 신부취임식과 축하연회의 초대장을 보냈던 것이다. 한스는 아들의 초대장을 받고 신부취임식에 참석하고 축하연회의 비용을 준비해 와서 지불해주었다. 축하연회 때 루터가 부친에게 다가가 신부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 그의 다메섹 도상의 생겼던 일을 이야기하였을 때 한스는 그것이 악령의 소행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루터에게 말하기를 “너는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느냐?”고 하였다. 루터는 부친이 아직도 분노를 품고 있다고 생각하여 부친 곁에서 떠났다. 한스는 루터가 법률을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고백사 스타우핏츠는 루터의 지적 능력을 인정하여 그가 신학박사 공부를 해서 대학의 교수가 되도록 지도하였다. 그리하여 루터는 자기 수도원과 자매관계를 가진 비텐베르크(Wittenberg)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하였다. 죤 나틴(John Nathin)이라는 교수 밑에서 신학을 배우고 박사코스의 필수과목인 피터 롬바드(Peter Lombard)의 저서 센텐스(Sentence)를 완벽하게 통달해서 시험에 통과하고 1509년 가을에 신학박사가 되었고 대학교수의 자격증을 얻었다. 그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때 그의 실력을 인정받아 비텐베르크 대학의 인문학부에서 1508년 10월 그의 나이 25세 때 도덕철학 곧 윤리를 강의하기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을 가르쳤다. 또 그 대학 신학부에서 성서를 강의하였는데 시편 강의와 그밖에 여러가지였다.

1510년 1월에 루터는 어거스틴수도단의 개혁문제로 수도단의 파송을 받아 로마 교황청에 진정하는 사명을 가지고 처음으로 로마를 방문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로마의 교회와 사회를 동경하였기 때문에 기대가 컸었다. 그는 역사적이고 웅대한 사원들과 유명한 유물들이 전시된 곳들을 찾아 순례하였고 라테란(Lateran) 사원의 신성한 높은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올랐다. 이 계단을 무릎을 꿇고 오르던 중세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자기 죄를 참회하는 행위라 생각했고 그 고행이 작은 공적이 되어 구원을 얻는 데 보탬이 되리라고 믿었다. 루터가 힘겹게 계단을 올라가다가 이것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깨닫고 중간에서 벌떡 일어났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구원의 진리는 그 후 수도원으로 돌아와서 터득하게 된다.

루터는 로마를 떠나 독일로 돌아오면서 로마에 대해 크게 실망하였는데 그것은 당시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실망이었다. 로마의 사제들의 생활은 부도덕했고 미사의 제식도 형식적이어서 참 경건이 결핍돼 있었고, 귀족들과 군주들도 불경하고 부패돼 있었다. 특히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혼탁한 교황청 행정으로 비난을 많이 샀고 그의 딸의 호화스러운 결혼식 준비로 비리를 많이 저질렀는데, 이에 대하여 크게 실망하였다.

루터는 1511년 10월 19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로 피임되었는데 이때에도 여전히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하여 마음에 고민하고 있었다. 1512년에서 1513년의 어느 날 그는 평소처럼 수도원 탑에 있던 자기 거실에서 성서를 펼쳐놓고 묵상하면서 로마서 1장을 읽어내려 갔다. 그가 그 말씀을 읽은 것이 그날이 처음이 아니었는데 1장 17절의 말씀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인데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서 나타났다’를 읽었을 때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은 구약 하박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구약성서 전체에 들어있는 교훈인데 그것은 하나님을 믿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루터는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시는 의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나타났다고 깨달았다. 하박국의 말씀은 정의 곧 죄를 벌하시고 의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정의(justice)가 옛날에는 모세의 율법을 통하여 들렸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의 복된 소식에서 들린다고 깨달았다.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정의(justice)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시는 의(righteousness)로 바뀌었다는 생각이었다. 구약시대에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들은 정의로운(just) 사람들이었고 신약의 구원 받은 사람들은 의로운(righteous) 사람들이다. 구약시대 사람들이 믿은 것은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었고 신약시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이러한 생각으로 바울은 구약의 모세의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의 복음이 서로 다르다는 것과 모세의 율법으로 구원 받은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 받는 것을 로마서와 그 밖의 다른 서신에서 밝혔다. 루터도 이것을 이제 분명히 깨달아 지난 날 수도원 생활에서 고행과 경건의 행위로써 하나님의 용서의 호의를 얻으려 한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고, 동시에 자기의 구원의 고민이 해소되었다.

우리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믿음으로 의로워진다’(以信得義)는 말을 좋아하지만 믿는 신(信)과 얻는 의(義)의 의미는 구약시대 하박국이 의미한 것과는 다른 것을 바울과 루터가 알았다. 구약의 믿음은 행함이었고 신약의 믿음은 단순한 의지(trust)다. 전자는 공로가 계산되었고 후자는 비움이 필요하였다. 루터는 이제 하나님의 진노와 분노를 두려워하는 생각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직 은혜로만’이라는 것이 그의 신학의 요체가 되었고 이것이 그의 종교개혁운동을 ‘복음주의운동’이 되게 하였다. 그것은 교황을 비롯하여 각급 성직자들과 황제와 군주들과 모든 사람들이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회심(희랍어 metanoia) 운동이 되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가 되어 성서를 많이 가르쳤는데 시편,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창세기 등등의 책을 강해하였다. 그는 중세 스콜라주의 신학사상을 따르지 않았고 에라스무스와 같은 그리스도교 인문주의 학자들처럼 초대교회 교부들의 서적을 많이 읽으면서 특히 성 어거스틴의 저서를 많이 읽고 그의 신학과 신앙의 감화를 많이 받았다. 어거스틴과 루터는 비슷한 힘든 회심의 경험을 갖고 있었다.

4. 개혁자 루터

95개항 항의문

1517년에 교황 리오(Leo) 10세는 성 베드로 사원의 수리비가 필요하였고, 대주교 알버트(Albert)는 자기의 부채 청산을 위해서 돈이 필요하여 두 사람이 의논해서 면죄부를 발행하여 팔아서 수입금의 절반은 교황이 차지하게 했다. 면죄부는 특별히 죽은 사람이 연옥에서 죗값으로 받는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서 살아있는 가족들이 많이 사는 것이었다. 미리 판매 장소를 광고하고 판촉자가 그 자리에 나타나서 면죄부의 효과를 역설하면 사람들이 돈궤에 돈을 넣고 면죄부를 사는 것이었다. 면죄부 판촉자인 수도사 테첼(Tetzel)은 옛날 사도 베드로와 바울에게도 확실하지 않았던 사죄의 은혜가 면죄부를 사는 사람의 돈이 돈궤에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나타난다고 외쳤다. 가난한 사람들도 돈을 꾸어서라도 죽은 부모와 자식을 위해 면죄부를 사도록 설득 받았다.

루터는 이 면죄부 판매 광고가 나왔을 때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받는 복음의 길이 아닌 것을 알리기 위하여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종이에 써서 1517년 10월 31일 주일날 아침 비텐베르크 성당의 정문에 붙여서 주일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읽게 하였다. 항의문은 팜플렛으로 널리 퍼졌다. 루터는 이런 운동으로 교회의 일대 개혁을 시작한다는 생각이 조금도 없었고 다만 자기의 구원의 복음적인 길을 알려서 면죄부의 폐단을 막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항의운동이 곧 대주교 알버트의 화를 불러일으켜서 루터를 비난하고 자제를 촉구하는 경고가 나왔다. 그러나 루터는 항의와 반대를 굽히지 않았고 루터와 그의 적수 사이에 있었던 공개토론으로 사람들이 양론을 듣게 되었다.

루터의 95개조 항의문이 비텐베르크 대학에 게시되었고 다른 요지 곳곳에도 게시되어 불길이 점점 번져갔던 1518년, 루터의 항의를 듣겠다고 교황이 루터를 로마로 소환하는 편지를 보냈다. 루터는 교황의 편지를 그 해 7월에 받고 친구 한 사람에게 알렸고, 그 친구는 삭소니 주의 군주 프레데릭(Frederick) 선후왕에게 알렸고, 프레데릭은 루터의 사건이 독일 땅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이유로 루터가 로마에 가는 것을 반대하였다. 프레데릭은 루터의 생명의 위험을 걱정하여 보호할 생각이었다. 이후로도 루터가 프레데릭의 도움을 받은 일이 많았다.

로마 교황청은 독일에 주재하는 추기경 카제탄(Cajetan)에게 루터를 심문하도록 명령하였다. 카제탄은 루터와 만나 회담하였으나 루터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루터에게 자기 주장을 포기하라고 권고하였다. 루터는 자기의 항의문 제58조를 인영하여 그리스도의 공로는 교황의 개입 없이도 효과를 내며, 성례전은 받는 사람의 믿음 없이는 효과가 없다고 말하였다. 성례전은 신부가 집행만 하면 절로 효과가 있다는 가르침을 반대한 것이다.

루터가 처음으로 항의문을 교회당 정문에 붙였을 때 자신은 한 수도승으로 단신이라고 생각했는데 불과 9개월 후에는 천명이 넘는 지지자가 생겼다. 그가 가르치던 대학의 교수들과 학생들이 그를 지지하였고 처음에 방관적이었던 인문주의자들도 지지하고 나왔다. 특히 선후왕 프레데릭이 루터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었다. 교황청은 당대 유명한 신학자이며 이론가였던 요한 에크(John Eck)를 내세워서 루터와의 공개토론을 획책했다.

라이프치히 토론회

1518년 8월에 라이프치히(Leipzig)시의 대학에서 루터와 에크의 공개토론이 있었다. 비텐베르크 대학생들 200명이 루터를 지키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까지 동행했다. 그 대학의 가장 큰 강당이 만원이 된 가운데 루터와 에크는 격론을 벌였다. 대학 주변에는 소요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경호원들이 중무장을 하고 오전 7시부터 9시까지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하루 두 번 출동했다.

에크는 과연 탁월한 교황청 변호자였다. 그는 당시 교계의 여러 이단사상과 이단자들을 열거하면서 루터의 의견을 유도하였다. 루터는 후스와 위클리프의 사상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이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에크는 교황의 권위에 그들이 도전한 사람들이라고 역설하면서 루터가 그 권위에 도전한 한 이단자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시키는 논법을 썼다. 이 점에서 루터는 그에게 당하고 말았다. 결국 에크는 루터가 명백한 이단자여서 교황의 파문을 못 면할 것이라는 결론을 끌어낸 것이었다.

라이프치히 토론회 이후 루터는 교황과 교계의 모든 비성서적이고 비복음적인 타락을 책, 논문, 팜플렛을 통해 노골적으로 그리고 공공연하게 폭로하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교황 리오 10세는 1520년 6월 15일 날짜로 파문을 위협하는 교서를 루터에게 보냈고, 루터는 그것을 교회법전집과 함께 불태워버렸다.

세 가지 개혁논문

루터는 교황의 파문서가 발표되기 조금 전에 세 편의 중요한 신학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들이 교황이 루터를 최후적으로 정죄한 이유이기도 하다.

① 그리스도인의 자유

이 논문은 1520년 10월경에 쓰인 짧은 논문이다. 루터는 말하기를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자유로운 군주이며 누구의 종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가장 충성스러운 종이며 누구에게도 종이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은 사람들이어서 아무도 그리스도인을 정죄할 수 없고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를 구속할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제들이나 교황이나 어떠한 권위자들의 추종자도 될 수 없는 까닭은 성서는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섬길 사람들이며 그리스도의 신앙과 믿는 사람들의 자유를 가르치기 위하여 말씀의 사역을 할 뿐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위하여 다만 필요한 것은 의로움을 받는 일과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영혼의 의로움과 자유와 구원을 위해서이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유용하게 살려서 구원을 얻어야 한다.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을 섬기기 위하여 사랑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신앙 때문에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다. 선한 행위가 선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선한 사람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이며, 신앙은 부도덕한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② 독일 귀족들에게 보내는 서신

이 서신은 같은 해 8월에 독일의 정치의 개혁을 위해서 독일의 군주들에게 써 보낸 공개서신이다. 이 서신에서 루터는 주장하기를, 무너뜨려야 할 세 가지 장벽이 있는데 첫째 장벽은 교황과 감독과 신부와 수도사들이 평신도들 즉 군주와 농부와 수공업자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성직계급의 장벽’이라고 하였다. 루터는 세례를 받은 평신도들도 설교하고 가르치며 성례전을 집행하는 사제들과 마찬가지로 성직을 맡은 사제라고 하였다. 즉 세례 교인은 다 사제들이다. 군주들도 교황이나 감독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백성을 다스릴 권세를 위임받은 신수권자이다. 그리하여 군주들이 죄인을 벌하고 선한 것을 옹호할 권리를 교황이나 사제나 수도승에게도 행사할 수 있다. 그리하여 교회의 사제급이나 수도승들이 나라를 통치하는 군주들의 법적 통치를 받아야 한다. 이 말은 종전의 정교분리를 의미하였다.

허물어져야 할 둘째 장벽은 교황만이 성서를 해석할 수 있다는 성서해석권에 대한 배타적 주장이다. 많은 교황들이 믿음이 없는 불신자들이어서 성서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사제이므로 성서를 이해할 수 있어서 신앙 문제에 관하여 무엇이 참인지 알 수 있다.

셋째 장벽은 교황만이 교회 회의를 소집하고 회의의 결정을 결재하는 일이다. 325년의 최초의 세계 교회 회의를 소집한 사람은 교황이 아니라 콘스탄틴 황제였고 그를 이어 여러 황제들이 교회 회의를 소집하였다. 교황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때도 황제가 회의를 소집해서 교황 문제를 의논하였다. 교황과 교황청의 추기경들의 사치와 낭비로 인하여 이태리 국민들의 젖통이 말라가는데 조만간 독일 국민도 그렇게 될 것이다. 군주와 시장과 지방관청자들은 교황청이 부과하는 온갖 부과금을 송금하지 말아야 한다. 해마다의 축제일과 죽은 사람을 위한 미사와 그 밖에 비용을 필요로 하는 행사와 제식들을 줄이거나 어떤 것은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독일에 주재하는 로마 교황청 대사를 추방해야 한다. 대학들을 개혁하고 초등학교에서 성서를 가르쳐야 한다.

③ 교회의 바벨론 포로

루터의 로마가톨릭교회 비판과 공격은 이제 이 논문에서 과거보다 적극적이게 됐다. 로마가톨릭교회를 바벨론에 비하고 교회가 포로 신세라고 말하였다. 이 논문에서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성례전 제도를 비판했는데 그것은 로마 교회의 지주(支柱) 셋 중 하나를 흔든 것으로, 성직자계급제도와 로마 교회의 교회법 등 두 기둥은 이미 흔들어놓았다. 즉 그는 교황의 파면교서를 불태워서 그 교서의 권위를 부인하였고 교회법전도 불태워버렸다. 그리고 논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 성직자제도를 부인하고 모든 신자의 사제성 곧 만인사제를 부르짖었다. 이제 마지막 기둥인 성례전 제도의 개혁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신부들이 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인 성례전 제도의 개혁인데, 7가지 성례전 중 2가지만 남기고 그 밖의 것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성찬미사와 세례식만 남기고 고해성사, 혼배성사, 신부 안수, 종유성사, 견신례는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성사를 주관하는 신부는 하나님의 갖가지 은혜를 전달하는 사람인데 이제 2가지만 주관하는 것은 그들의 할 일이 많이 줄어든 동시에 그만큼 그들의 특권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했다.

다음으로 성만찬 예식 때 평신도들에게 떡만 나눠주고 잔은 돌리지 않고 신부만 두 가지 성찬을 먹도록 한 것을 시정하여 평신도들에게도 잔을 돌리자고 주장했다.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피를 마실 자격이 미흡하다는 생각으로 신부와 평신도를 구별 또는 차별하던 것을 개선하자는 것이었다.

다음으로 떡과 포도주의 본질이 신부의 축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여 수찬자가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게 된다는 화체설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성찬의 떡과 포도주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그리스도의 신령한 살과 피가 그 떡과 포도주 안에 또는 함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성찬을 먹으면 그것이 절로 은혜가 된다는 가르침은 옳지 않고 수찬자의 믿음 없이는 효과가 없다고 말하였다.

다음으로 성찬미사는 그리스도의 몸을 다시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부인하고 성찬미사는 하나님의 죄의 용서의 약속이므로 그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례의식은 죄의 용서와 중생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침례가 적합하며, 교황이 철야, 금식, 구제 및 순례 등의 행위를 강조하여 세례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게 한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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