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성 칼럼] 자정(自淨)이 곧 선교(宣敎)다

거제도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거제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 노자산(老子山)이라는 산이 있습니다. 해발 565m의 높지 않은 산입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多島海)란 이름이 말해주듯 아기자기한 작은 섬들 사이로 호수처럼 잔잔히 펼쳐진 남해바다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이는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산입니다. 산 정상에서 동쪽을 내려다보면 거제도의 유명한 학동 몽돌해수욕장이 내려다보입니다. 거제도 사람들에게 노자산은 신년해맞이 명소이기도 합니다. 거제도의 작은 시골교회에 부임한 그 해, 거제도의 자연풍광을 감상할 겸 연초(年初)를 맞아 노자산에 올랐습니다. 교회에 한 분 뿐인 장로님의 제안에 따른 산행이었습니다. 장로님 가정의 다섯 식구(부인 권사님과 딸 셋)와 우리 식구 셋 모두 여덟 명이 겨울산행에 나섰습니다. 아무리 따뜻한 남쪽지방이라고 해도 추위가 한창 맹위를 떨치는 1월의 겨울산은 바다에서부터 불어오는 찬바람에 뺨이 얼얼해지고 코끝이 빨갛게 시려올 만큼 추위가 매서웠습니다. 산 정상에 오른 우리 일행은 발아래 펼쳐진 거제도의 아름다운 풍광에 연신 감탄하며 기념사진을 찍는 등 잠시 추운 것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산 정상에서 남해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끽하고 산을 내려온 우리 일행은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시내의 한 중국집을 찾아들어갔습니다. 아마 그 때 시간이 오후 4시~5시 사이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식당으로선 한바탕 분주한 점심시간이 지나고 한 숨 돌릴 시간이었을 겁니다. 여덟 명의 일행이 각자 취향대로 먹고 싶은 것(그래봐야 자장면과 짬뽕 중 하나)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주방 쪽을 향해 앉은 저와 장로님의 부인이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이 입에 담배를 물고 담배를 피워대다가 담배를 그냥 주방 바닥에 버리고선 바닥에다 침까지 칵, 퉷! 하고 뱉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리고선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해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그걸 보는 순간 우리가 먹을 음식이 담배꽁초가 굴러다니고 주방장이 퉷! 하고 뱉은 누런 가래침이 눌어붙어 있을 그 주방에서 만들어져 나온다고 생각하니 식욕이 싹 가시고 말았습니다. 그 장면을 함께 목격한 권사님의 그 때 난감한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지만 차마 목사님 가족과의 식사자리에서 매정하고 쌀쌀맞은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표정이었습니다. 그것은 목사인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 저 혼자였거나 혹은 우리 식구들뿐이었다면 저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을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한 분 뿐인 장로님 가정의 식구들과 함께 하는 식사자리인지라 목사인 저 역시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사람이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목사님이 그런 것 하나 이해 못하고 찬바람이 쌩하고 불듯이 그렇게 매몰차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 어쩌자는 거야? 사람 무안하게시리’ 행여 이런 소리를 들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참을 난감해하고 있는 와중에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 둘 나왔습니다. 결국 벌레 씹은 표정으로 이리저리 젓가락으로 음식을 휘저으며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식당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중국집 간판을 꼬나보며 ‘다시는 이 집 오나봐라’ 미처 풀리지 않은 불쾌함과 분을 삭이고 돌아섰습니다. 물론 제가 거제도에서 목회하는 동안 그 중국집은 두 번 다시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이 비단 저만이 경험일까요? 우리 모두가 살면서 한 두 번씩 이런 비슷한 일들을 경험하곤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선교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일까요? 교회는 선교해야 한다는 당위(當爲)를 잃어버렸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교회의 선교를 가로막는 외부의 정치적, 물리적 장애 혹은 방해라도 있습니까? 최소한 한국교회의 실정을 놓고 말한다면 교회의 선교를 가로막는 선교의 적(敵)은 더 이상 교회 밖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교회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교회에 등을 돌리는 이유는 교회 안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교회는 세상과 견주어 털끝만큼도 나은 것이 없고 도리어 세상보다 더 추악하고 더러운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임으로써 교회를 향한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게 만들고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가나봐라!!’ 최근 연일 터져 나오는 교회의 추악한 모습들을 보십시오. 교회의 이권을 놓고 벌이는 교회지도자들의 추악한 권력다툼과 시정잡배만도 못한 폭력행사, 제 잇속을 챙기는 데는 세상사람 뺨치게 발 빠르고 제 생각과 다르거나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헐뜯고 비난부터 하기 일쑤인 신자들, 세상의 눈에 비친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聖徒)를 자처하는 교인들이 뱉어놓은 더러운 담배꽁초와 탐욕의 누런 가래침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불결한 중국집 주방 바닥 같은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누가 교회에 마음의 문을 열겠습니까? ‘교회는 전도하고 선교해야 한다’는 누가 해도 백 번 옳은 이런 소리를 목청을 높여 주장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교회는 지금 더러운 교회바닥부터 청소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지금 더럽혀진 자신의 마음바닥부터 씻어야 합니다.

바울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갈2:14)” 우리 신앙인들이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상 사람들더러 신앙을 가지고 신앙인으로 살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타종교를 능멸하는 땅밟기기도나 하면서 그 따위를 선교라고 우길 때가 아닙니다. 지금 교회에 필요한 것은 자정(自淨)입니다.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지 않고선 교회에 미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더러운 중국집엘 다시 가시겠습니까?


글: 김성 목사(예수원교회)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논문소개] 탈존적 주체, 유목적 주체, 포스트휴먼 주체

이관표 박사의 논문 "미래 시대 새로운 주체 이해의 모색"은 세 명의 현대 및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주체 이해를 소개한다. 마르틴 하이데거, 질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교회가 쇠퇴하고 신학생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고 필요하다"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의 신학 여정을 다룬 '한신인터뷰'가 15일 공개됐습니다. 한신인터뷰 플러스(Hanshin-In-Terview +)는 한신과 기장 각 분야에서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진과 선에 쏠려 있는 개신교 전통에서 미(美)는 간과돼"

「기독교사상」 최신호의 '이달의 추천글'에 신사빈 박사(이화여대)의 글이 소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키에르케고어와 리쾨르를 거쳐 찾아가는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사회봉사를 개교회 성장 도구로 삼아온 경우 많았다"

이승열 목사가 「기독교사상」 최근호(3월)에 기고한 '사회복지선교와 디아코니아'란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의 교단 총회 직영 신학대학교의 교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