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서구신학에 대한 비판으로 태동한 민중신학을 조명하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월례포럼서 전철 박사 강연

▲한신대 외래교수 전철 박사 ⓒ베리타스 DB 
민중이 무엇인가? 민중을 개념화하기 위해 첫 단추를 꿰려는 어느 신학자의 질문에 신학자 안병무의 대답은 질문한 이를 손부끄럽게 할 정도로 차갑고, 인색했다. "우리는 민중신학을 민중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사변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민중의 경험으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민중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이 민중신학이지, 민중을 정의하고 어떤 범주 속에 넣어서 규정하고 그 범주 안에 민중을 가두어 두고 하는 신학이 아니다." 

주객도식의 사고에 기초를 둔 서구신학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그에 따른 저항신학으로서 태동한 민중신학이었고, 그런 민중신학을 창안한 안병무였기에 '민중'을 개념화 하려는 서구 신학자의 ‘주제 넘는’ 시도에 찬물을 끼얹었던 것이다.

서구신학의 다양한 방법론적 흐름을 해체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한국이라는 생생한 현실속에서 구체화 한 고유한 한국적 신학인 민중신학을 전철 박사(한신대 외래교수)가 대표적인 민중신학자인 안병무의 사상을 통해 조명했다. 31일 서대문 한백교회 안병무홀에서 열린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의 제 138차 월례포럼 발제자로 나선 그는 민중신학이 서구신학의 방법론적 문제점을 어떻게 직시, 포착, 비판했으며 서구신학의 방법론에 대한 민중신학의 독특한 안티테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를 다뤘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 사건의 해로부터 안병무의 민중신학이 전면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된 시기로 이해한 전 박사는 그의 중기 시기를 1965년부터 1980년까지로 정의하고 이 시기 안병무가 자신의 민중신학적 사유를 어떻게 확고하게 견지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확대해 나갔는지를 주목했다.

안병무의 신학을 신학의 두 흐름인 영광의 신학(가톨릭)과 십자가의 신학(개신교) 중 후자의 범주에 포함된다는 전 박사는 "만약 개신교의 새로운 전통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십자가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한 신학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민중신학은 이러한 십자가 신학의 가장 정점에 서 있는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 박사는 특히 "민중신학은 가톨릭의 영광의 명상, 개신교의 십자가의 회상을 넘어서는 고난의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즉 민중신학의 핵심 태도는 고난의 관조가 아니라 고난의 참여이다"라고 했다. 초기를 넘어 중기에 이르러 안병무는 서구의 현장에서 예수를 학문적으로 밝히려는 작업과 교회를 만나려는 과제를 넘어 ‘현실의 고난’을 그의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채택한 점도 함께 밝혔다.

이런 고난에의 참여는 ‘실존’에 대한 안병무의 인식으로부터 비롯됐다. 전 박사는 "진정한 의미의 실존주의적 사유는 실존을 잉태하는 그 현실과의 참여와 투쟁으로 연계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실존주의에서의 진정한 실존은 현실을 도피하는 단독자로서의 성격을 의미하기보다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대면하면서 중심을 견지하려는 그 중심성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기 안병무는 실존에 대한 이 같은 인식 위에 민중신학의 핵심 태제인 민중론인 오클로스론을 1975년 처음 제기한다.

정리하자면 안병무의 민중신학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구신학에 대한 경험과 비판 속에 등장했다. 그러면 서구신학의 방법론에 대한 민중신학의 독특한 안티태제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전 박사는 ▲주객도식의 사고 (Subject-Object Thinking)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사고 (Top-Down Thinking) ▲개체주의적 사고 (Individualistic Thinking) ▲사변으로서의 학문 (Speculative Theory) 등으로 정리했다.

주객도식의 사고= 서구의 실존주의적 사고의 전통을 놓고 볼 때 서구적 주개도식의 사고에 대한 안병무의 비판은 서구신학에 대한 동양적 사고의 비판으로 볼수는 없다면서도 전 박사는 "주객도식의 사고에 대한 안병무의 철저한 거부는 주객의 명료한 구분을 붕괴시키며 동시에 주객이 그물처럼 엮여 있으면서 발생되어지는 민중신학의 사건론으로 전이된다"고 했다. 민중 개념의 명확한 정의에 회의적인 견해를 지니고 있는 안병무의 태도는 주객도식에 대한 거부와 맞물려 있다고 본 것이다.

위에서부터 아래로의 사고= 민중신학은 전통적인 텍스트주의와 영웅담론을 거부했다. 전 박사는 "(안병무는)텍스트의 배경인 컨텍스트, 영웅적인 것과 관계되는 환경을 오히려 주목한다"며 "안병무의 이런 영웅담론과 엘리트주의에 대한 거부는 주로 예수를 주변의 오클로스의 삶의 자리에서 조명하려는 문제제기의 주요한 근거가 된다"고 했다.

개체주의적 사고= 서구의 개인주의적 양식의 그늘로 인하여 개체주의적 사유는 매우 확산되어갔다는 인식을 가진 안병무는 개체주의적 사고를 거부하고 전체주의적 사고를 신학의 중요한 기반으로 삼았다. 전 박사는 이러한 기반이 그의 신학을 공(公)의 신학으로 형성하게 한 중요한 동력이었다고 했다. 안병무는 전체주의적 사고의 빛 속에서 죄론, 인간론, 우주론의 구도를 새롭게 ‘공의 신학’으로 전개한 것이다.

사변으로서의 학문= 사변과 실천의 차이를 매우 분명하게 인식한 안병무는 서구신학이 지나치게 가시적으로 언어화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였다고 지적했다. 전 박사는 "안병무는 70년대부터 신학은 사변의 산물이 아니라 증언의 산물이 되어야 한다고 선명하게 강조했다"고 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기본적으로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가 아니라 '사건'의 종교로 인식했다.

발제자 전철 박사는 지난해 안병무 선생 14주기 추모행사에서 제 2회 <심원 안병무 선생 기념 저술지원상>을 수상한 바 있다. 민중신학과 서구신학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검토하는 것을 주요 연구과제로 삼고 있는 그는 안병무의 중후반기를 계속적으로 분석,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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