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하느님 나라의 가난함 사는 '한사랑 가족 공동체'

[인터뷰-작은형제회 윤석찬 신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 옆 골목에 자리 잡은 ‘가톨릭 한사랑 가족 공동체’. 설을 앞둔 30일 오전 11시, 이곳 사랑방에서는 공동체 가족들이 모여 주일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이 날의 복음은 마태오복음 5장 산상수훈이었다. 책임을 맡고 있는 윤석찬(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 신부는 공동체 가족들에게 이날의 복음을 이렇게 풀어주었다.

 ▲ 사랑방 주일 미사 (사진/정현진 기자)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기 자신의 가난함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애초부터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느님이 맡기신 것을 관리하는 관리자일 뿐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만큼을 가졌든 주님의 것을 잠시 관리하는 것이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써야 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준 것은 그 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것이 아님을 잘 아는 것, 내 것이 아니라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것이 가난함입니다.

또 물질적인 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나의 ‘의지’입니다. 내 뜻과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 주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 또한 가난함입니다. 가난함이 어려운 것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온전히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난은 낭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것입니다.”

▲ 미사 후의 밥상 공동체 (사진/정현진 기자)

25명 남짓의 공동체 가족들이 함께 봉헌한 미사가 끝나고 사랑방에는 따뜻한 닭칼국수와 다과가 차려진 밥상 공동체가 펼쳐졌다. 함께 상을 펴고, 음식 쟁반을 나르고, 처음 온 사람들에게 먼저 국수 그릇을 내미는 이들 모두가 그 사랑방의 주인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곳을 다른 생활, 물질적으로 더 나은 상태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삶 자체,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 탈출해야 할 곳으로 생각하죠. 결국에는 벗어나서 번듯한 무엇인가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분명히 나름대로의 소중한 삶이 있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가톨릭 한사랑 가족 공동체. 서울에서도 도심. 마치 새들의 작은 둥지와 같은 이 공동체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그 시작은 2003년 용산 천주교회 빈센치오 회원들의 무료급식 활동이었다. 서울역에서 노숙인들에게 무료급식을 하다가 점점 겨울에 동사하는 사람들을 구하고, 장기적으로 자활을 돕자는 움직임이 생겼다. 처음 활동의 중심에는 주로 목5동 천주교회에 적을 둔 세브란스 병원 의사들, 산업은행 부인회 등이 방세를 지원하는 등 뒷바라지를 하면서 한 명 두 명, 쪽방에 기거할 수 있었고 중림동 쪽방은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2006년 말부터는 책임봉사자 한 명만이 남아 봉사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윤석찬 신부가 이들을 만난 것은 2007년 안식년, 쪽방생활을 하면서였다. 당시 중림동 쪽방의 책임 봉사자 데레사 씨를 만났고 쪽방을 방문하면서 음식물을 나눠주기 위한 공동 공간을 제안했다. 용산 베들레헴이라는 무료급식 공동체를 통해 후원을 받아 중심 위치에 얻은 방 하나가 급식을 위한 공간을 넘어 지금은 공동체 가족들의 사랑방이 됐다.

윤 신부는 급식 지원을 종교인으로 제한한다는 인식을 주게 될까 봐, 처음에는 종교 활동을 배제했다. 그런데 점점 한계에 부딪혔고 ‘밥’만큼 시급한 것이 그들의 내면적 치유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쪽방에 기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면의 상처가 너무 커서 영혼이 무너져 있었다. 그런 부분에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사랑방 미사가 시작됐다.

현재, 한사랑 가족 공동체는 중림동 45명과 후암동, 동자동, 아현동, 병원 입원자 등 70-80명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행정, 병원일 등 사무직을 총괄하는 원장과 집안 일을 담당하는 총무가 있고 윤 신부는 총 책임을 담당한다.

혼자 살기 힘든 이들에게 이곳은 느슨한 가족 공동체의 역할을 한다. 전체 가족 중 중림동 사랑방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30-40명인데 이들은 여러 형태로 긴밀한 유대를 갖는다. 사랑방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이들과 이곳에서 식재료를 받아 독자적으로 생활해 나가는 그룹이 있고, 모든 것을 스스로 알아서 살아가지만, 위급한 상황이 있을 때는 사랑방에 의탁하는 그룹이 있다. 방세는 20-30만원 선. 윤 신부는 이들에게 방세만큼은 스스로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 이들의 자활을 돕고 자존감을 유지시키는 하나의 장치라고 말한다.

▲ 윤석찬 프란치스코 신부 (사진/정현진 기자)

“방세는 대부분 일을 통해서 감당하고, 일할 수 없는 이들 중에 이유가 확실 할 때 기초수급을 통해 감당하도록 합니다. 그것이 안되면 이 생활이 유지되지 않아요. 이곳은 전반적으로 뒷바라지 하는 복지활동을 하는 곳이 아니라 구성원들을 모아 스스로 생활을 유지하도록 합니다.”

“보통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를 이야기하자면, 주거와 일을 잃은 첫 단계에서는 힘과 의지를 갖고 있지만 그 단계가 지나면, 힘과 의지 둘 중 하나를 잃습니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힘도 의지도 없는 상태가 되죠. 그런데 여기에서는 세 번째 단계에 이른 사람들은 감당할 힘이 없습니다. 그 부분은 그것을 전담하는 다른 기관에 맡기고 우리는 1, 2단계에 있는 이들을 모아서 자활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씁니다.”

이곳에 구성원은 처음에는 노숙 하던 이들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성가복지병원, 국립의료원, 요셉의원 등과 긴밀하게 연관을 맺고 상담을 통해 연결된다.

한사랑 가족 공동체와 연결이 되면, 우선 한두달 정도는 마음과 몸을 쉴 수 있도록 한다. 이들 가운데 기초수급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능력만큼 할 수 있는 일을 주선한다. 때로는 호적 자체가 없기도 하다. 60-70%는 결손가정 출신이거나 어렸을 적 버림을 받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호적과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기초수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호적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족을 찾게 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 공동체 가족들의 생활이 담긴 사진들, 가족을 이루게 된 사람들의 아이 얼굴도 보인다.(사진/정현진 기자)

“일반 사람들은 부모의 뒷바라지를 통해 앞날을 준비할 수 있지만, 출발점부터 다른 경우는 그렇기 힘듭니다. 애초부터 가정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회복이 힘든데, 이 사랑방이 가족 공동체의 역할을 해줍니다.”

기초수급금 40-100만 원으로 그달 그달을 살아가기도 버거울 것 같지만, 이들은 함께 적금을 적립한다. 2007년 12월부터 생활이 파악되고 목적의식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신용협동조합과 같은 형태의 적금과 자금운용을 시작한 것이다. 60일 이내 전입, 적급적립자에게만 해당하지만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자 할 때는 대출도 가능하다.

“무엇을 더 갖고 더 나은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좁은 방에서 생활해도 내적으로 풍요롭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영적으로 풍요롭다면 그것이 행복 아닙니까. 많은 것을 갖고도 더 갖지 못해 안달하는 내적 빈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렇게 보면, 이곳은 벗어나야 할 곳이 아니라 가꿔야 할 곳입니다. 부서지고 깨진 삶을 살아온 이들이 보통 ‘정상’이라는 삶에 대해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처음부터 가진 것이 없었던 이들이 마음을 회복하고 내적인 풍요를 이룬다면, 그것이 가장 큰일이죠.”

▲ 한 칸씩 숫자가 아닌 희망을 채워간다. (사진/정현진 기자)

윤 신부는 오사카 교포사목 당시 노숙인과 노숙인 복지 경험을 했다. 물론 당시는 노숙인들을 위한 것보다는 교우들의 신앙 측면에서 노숙인들에 대한 지원 활동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 자체가 자신을 준비시킨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식년 때 쪽방에서 보낸 시간도 주님이 자신을 이끄신 것이라고 고백한다.

한사랑 가족 공동체는 함께 꾸는 꿈이 있다.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공동 주택이다. 공동체 활동을 통해 소중한 일상을 가꾼다. 묵주를 만들고, 광명에 텃밭을 임대해 농사도 짓는다. 지난 6월에는 공동체 가족 9명이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지난 2년간 성실히 생활하면서 약속된 목표를 이룬 사람들의 여행이었다. 오사카, 나가사키 등 5박 6일의 일정으로 일본의 반을 돌아봤다. 일부는 자신들이 부담하고 일부는 지원을 받았지만 일본 여행은 이들에게 또 다른 삶의 쇄신과 자존감 회복을 위한 기회였다.

▲ 공동체 가족 중 신부전증을 앓고있는 한 형제의 그림. 한사랑 공동체의 현재이자 미래다. (사진/정현진 기자)

공동체 가족 라파엘 씨를 만났다. 2007년 11월부터 생활했다는 그는 당시 호적도 말살된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건강도 잃고 방황하며 노숙을 하다가 한 수녀님의 소개로 윤석찬 신부를 만나게 됐다. 이곳에서 세례를 받고 일도 하면서, 새 삶의 희망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고 했다. 작은 돈을 한 푼 두 푼 모으며, 오히려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마음을 가진 그는, 1년에 한 번 발간하는 공동체 소식지에 ‘한사랑 가족 공동체’에 대한 마음을 이렇게 담았다.

한 : 한 없는 주님의 은총을 받고 있는 우리 신부님과 우리 공동체
사 : 사심과 이기심을
랑 : 랑데뷰 홈런처럼 저 멀리 날려 보내고
가 : 가는 곳마다 주님이 자비임을 자랑스러워 하노라
족 : 족쇄처럼 채워져 있는 주님을 향한 우리 공동체 가족들의 마음이
공 : 공공연히 주님을 기쁘게 하시는구나
동 : 동쪽으로 가 있으나 서쪽으로 가 있으나 늘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우리는 이제야 느끼고 있네
체 : 체면이 무슨 소용이랴, 주님의 나라가 오실 때까지 희생과 봉사, 겸손함이 곧 체면인 것을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사랑방에서는 아직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고, 어느새 주방은 가족들의 저녁 준비를 위해 분주했다. 쪽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들’이라고 칭하며 그 삶을 존중하지 못했다는 고백을 안고 돌아왔다. 마음이 가난하고 깨끗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가 또한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2011년 2월 1일자 한상봉 기자 isu@nahnews.net


(기사제공: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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