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이사야 40:3-8/누가복음 3:7-17
설교문
구약성경의 시작은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첫 번째 창조는 혼돈과 공허와 어둠에 “빛”을 만들어 빛의 세계, 역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어둠의 세계에 빛을 만드신 사건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사람을 창조하신 것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의 시작이며, 하나님으로부터 빛의 세계가 열렸습니다. 빛은 무엇이고 어둠은 무엇입니까? 빛에 속한 것과 어둠에 속한 것을 나열하고 비교하면, 첫 번째 창조가 얼마나 위대한 선언인지 알게 됩니다.
신약성경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시작을 빛의 사건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의 빛의 창조를 마음에 두고 성육신을 본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4)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으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아버지의 독생자이다.”(요 1:9) 예수님의 공생애는 어둠에 사로잡힌 세상과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사역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현절(主顯節)은 우리의 빛 되신 예수님의 공생애를 살피면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세상의 빛 되기를 힘쓰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바라보고”(히 12:1), “예수의 마음을 품고”(빌 2:5-11), “예수 닮기 원합니다.”라 찬송합니다. 예수께서 본보이신대로 섬김의 삶을 살아보려고 흉내 내기도 하고, “예수님의 길, 나도 걷는다.”하며 걸어갑니다. 그런데 예수가 되어보려고 애쓰면 쓸수록 너무 어렵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성경이 요구하는 것이니 그래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되면서, 신앙과 삶에 괴리가 생깁니다. “믿는 것”과 “사는 것”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이중적 믿음이 파생합니다. 때로는 자신이 예수를 모방한다는 것이 불경한 것은 아닌지 회의하게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께 고정되어야 하고, 예수를 만나고 배우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꼭 밟고 지나가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앞서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 소리쳤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사야 40장의 바벨론 포로 된 이스라엘에게 광복의 기쁜 소식을 외치라는 사명을 받아 이스라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준비하는 예언에 따라, 광야의 소리, 주의 길을 예비한 사람으로 정리됩니다. 이런 세례 요한은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고, 하나님의 구원 활동을 예수님의 것으로 바뀌게 하는 사이에 둔 회전문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로 여겼습니다. 요한은 “나는 아니다.”라 강력히 부정합니다. 자신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예비자요, 광야의 소리라 합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하였습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으로 제시한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무엇이고, 무엇을 회개하라는 것일까요?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오는 무리를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 합니다. 보통 심한 말이 아닙니다. 무슨 뜻일까요? 독사는 누군가를 물어 죽입니다. 가슴에 악한 생각을 품고 사는 자란 뜻입니다. 요한은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합니다. 가슴에 숨겨 둔 어둠을 제거하지 않으면 심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둠을 없애는 것이 “회개”입니다. 세례 요한은 어둠에 속한 것, 더러운 것, 죄악으로 덮여진 양심을 깨끗케 하라는 것입니다. 불의로운 일에서 손을 떼고 몸을 섞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편 1:1처럼 악인들의 꾀를 따르던 데에서 돌아서고, 오만한 자리에 앉던 것에서 일어서 나오고, 죄인들과 어울리던 걸음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깃든 어둠에 속한 것들을 버리면 깨끗해지는데, 그곳에 빛 되신 예수께서 오실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자신의 잘못하는 것을 자신이 잘 압니다. 이것이 회개(悔改)의 회(悔)입니다. 버리는 것은 개(改)인데, 문제는 회개한다고 하고서, 회(悔)는 있는데 개(改)가 없습니다. 어둠을 버리지 못하니 그대로 있습니다. 빈자리가 없으니 빛이신 주께서 그곳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참 빛이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빛이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어둠에 속한 것을 회개해야 빛 되신 예수께서 우리 안에 머물 수 있습니다. 이제 설날을 맞이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설날이 새해맞이 입니다. 경인(庚寅)년 옛 시간만이 아니고, 우리 안에 자리하고 있는 어둠에 속한 모든 것을 다 버립시다. 그리고 신묘(辛卯)년을 맞이하듯, 빛 되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걸음, 삶을 모시어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