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설교] "0시"
장윤재 목사(이화대학교회)

입력 Aug 14, 2017 08:50 AM KST

- 예레미야애가 3:40-50, 느헤미야 8:1-3, 8-10, 요한복음 11:3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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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남과 북의 교회와 세계교회는 매년 8.15 직전주일을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8.15를 이틀 앞둔 오늘이 바로 이 기도주일로, 우리는 이 기도주일의 공동기도문의 일부를 앞서 함께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알프스를 등반하다 길을 잃었습니다. 실화입니다. 눈보라가 어찌나 세차게 몰아치던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한쪽 방향으로만 똑바로 가자. 그러면 반드시 알프스를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혜로운 판단이었습니다. 추위와 굶주림과 싸우며 그는 하루 12시간씩 걸어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그러길 무려 13일, 동사 직전에 그 사람은 극적으로 구조되었습니다. 그런데 병상에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은 분명 한쪽으로만 똑바로 걸어 알프스를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구조대는 그를 그가 원래 실종되었던 지점 근처에서 발견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여러분도 한번 눈을 가리고 똑바로 걷는 실험을 해보십시오. 20미터를 가면 약 4미터의 오차가 생기고, 또 20미터를 가면 다시 4미터의 오차가 생기고, 그러다 100미터를 가면 결국 한 바퀴 원을 그리며 제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윤형방황'(circle wandering)이라고 합니다.

해방 후 우리는 70년이 넘도록 잠시도 쉬지 않고 앞으로만, 앞으로만 달려왔습니다. 선진국들이 300년이 걸렸다는 산업화를 30년 만에 해치우고, 그 위에 민주화를, 게다가 정보화까지 이루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실제로 우리는 제자리를 뱅뱅 맴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지정학적 특성 때문에 우리나라는 1876년 개항 이래 근 2백 년 동안이나 청일전쟁, 태평양전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그리고 최근의 이라크전쟁까지, 우리의 영토 안과 밖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렀습니다. 세계가 탈냉전에 접어든 지금도 한반도는 여전히 '세계 유일의 냉전의 섬'으로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반도에서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민족 공멸의 큰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문정희 시인의 시 '마감 뉴스'를 인용해봅니다. "냉장고에 콜라와 쇠고기를 넣어 놓고 / 대문 앞에 한 대의 자동차를 세워 놓았다 해서 / 20세기가 눈부셨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 오, 20세기 / 우리는 그 반을 남의 밑에서 식민지로 살았고 / 또 나머지 반을 허리 잘리운 채 / 형제끼리 총 겨누고 살고 있다 / 침샘을 자극하는 물건들을 / 상표를 먹고 마시며 / 사물과 사물에 둘러싸여 / 마치 쇠를 먹고 사는 맥[貘]처럼 / 소비를 먹고 사는, 우리는 날마다 / 작아지는 것이냐, 커지는 것이냐 / 우리나라 지도의 어디쯤엔가 / 핵이 있어도 슬프고 / 핵이 없어도 슬픈 / 오늘, 마감뉴스를 보다가 / 문득 허리께에 시큰한 통증을 느낀다 /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아 사방을 휘둘러본다."

일제의 식민지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여전히 거친 사막을 뱅뱅 맴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우리는 갈라진 민족이 하나 되고 평화로운 생명의 나라를 열 수 있는 희망의 근거를 발견할 수 있겠습니까?

구약성서 느헤미야 8장은 예루살렘 성의 수문 앞에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본문입니다. 영어로 Water Gate인 수문, 즉, '물의 문'은 바벨론의 포로기 이후 느헤미야가 중건한 예루살렘 성에 있는 총 10개의 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맑은 물이 솟아나는 기혼 샘 근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외에 양문(羊門), 어문(魚門), 고문(古門), 곡문(谷門), 분문(賁門), 천문(泉門), 마문(馬門), 동문(東門), 심판문(審判門, 함밋갓문) 등이 있습니다. 때는 예수님 오시기 약 4백 5십 년 전입니다. 각자 자기의 성읍에 흩어져 살고 있던 이스라엘 전 백성이 일제히 예루살렘 성의 수문 앞에 나아와 무려 일곱 밤, 일곱 날이나 초막을 짓고 대 신앙집회를 열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극도의 혼란과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의 은총으로 새 나라를 세워주셨으나 하나님의 공의를 잃어버린 이스라엘은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해 다시 노예살이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이후 바벨론이 망하고 새로운 제국 페르시아가 들어섰을 때 그들은 귀양살이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와 예루살렘을 재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귀향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나라를 건설해야 했지만 예상치 못한 갈등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을 떠나지 않고 고생하며 땅을 지켰다. 외국에 70년이나 나갔다가 돌아온 너희 2세, 3세들에게 무슨 권리가 있는가?' 귀향한 사람들은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우리는 포로살이 동안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켰다. 점령군에게 아부나 하던 너희들에게 무슨 권리가 있는가?'

혈통에 관한 논쟁도 이어졌습니다. 타향살이 수십 년 동안에 혼혈이 된 2세, 3세들은 멸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기 훨씬 전 아시리아라는 제국에 의해 멸망당해 강제로 피가 섞인 사마리아인들은 아예 새로운 조국 건설과정에서 배제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소위 순혈파와 혼혈파가 갈렸습니다. '이방인의 피가 섞인 자들과는 상종도 할 수 없다'는 사람들과 '전통에나 집착하는 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적이다'라는 사람들이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도 거대한 변화가 밀어닥쳤습니다. 전통적인 유목경제에 상인경제가 혼합되면서 사회적으로는 극심한 양극화와 갈등이 빚어졌습니다. 농촌에 도시적인 생활방식이 유입되면서 사치와 향락 그리고 도덕적 문란과 퇴폐가 온 나라를 뒤덮었습니다. 한마디로 바벨론으로부터 해방 이후의 이스라엘은, 마치 우리나라가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어쩌면 바로 지금의 우리가 그러한 것처럼, 극심한 분열과 대립, 거대한 정신적 방황, 그리고 자기 정체성의 상실로 인해 더 이상 하나의 민족으로 존립하기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때, 그들이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귀향 이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난마와 같이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어보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더 이상 다른 길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이스라엘 전 백성이 각자의 성읍에서 나와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앞장섰습니다. 토착민과 귀향민, 순혈인과 혼혈인, 농민과 도시민, 그리고 성서 본문을 보니까 "남자나 여자나 [하나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성서에서 이렇게 여성의 참여가 공식적으로 표현되는 것도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구성원 중 단 한 사람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모여 초막을 짓고 일곱 밤과 일곱 날을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함께 기도하는 민족 대각성의 집회를 열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 본문을 보니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청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새벽부터 정오까지" 무려 7시간 이상이나 하나님의 말씀이 낭독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씀을 다 듣고 나서 모두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성서는 기록합니다.

저는 여기서 이들이 '함께 울었다'는 말에 시선이 멈추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함께 울었다'는 말에 주목했습니다. 사실 인간의 감정 중에서 울음처럼 간절하고 진실한 것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은 태어나서 웁니다. 신생아의 울음은 폐를 확장시켜 숨을 쉴 수 있게 해줍니다. 갓난아이들의 울음은 엄마에게 자신의 기분과 상태를 알려주는 매우 또렷한 언어입니다. 성인이 되면 사람들은 슬퍼도 울고 기뻐도 웁니다. 대개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우는 빈도도 많고 우는 시간도 네 배나 길다고 합니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의 그것보다 긴 이유 중 하나는 더 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신심리학에서는 '다이애나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국에서 다이애나 비가 비명횡사하고 장례식이 있던 날 영국 전역이 눈물바다가 되었는데, 이후 한 달 동안 영국에서 정신병원이나 상담소를 찾는 환자 수가 절반이나 뚝 줄어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많이 울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남의 초상집에 와서 자기 설움 때문에 운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도 울고 나면 속이 시원해집니다. 슬플 때 울지 못하면 우리 몸의 다른 장기가 대신 울다 병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울음에는 치유하는 신비한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함께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마 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을 것입니다. 왜 울었습니까? 본문을 보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낭독하는 말씀을 '다 깨닫고' 울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말씀은 처음 듣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귓등으로 흘려듣던 말씀이었습니다. 들어도 깨닫지 못하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족의 공멸의 위기 앞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에스라의 낭독과 자상한 해석을 들었을 때 비로소 깨달음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전부터 그들 앞에 공의와 생명의 길을 내놓으시고 그 길로 애타게 그들은 부르셨건만, 언제나 다른 길로만 찾아 걸었던 자신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메시지가 그들의 조상과 그들에 대한 정죄와 심판의 메시지가 아니라 은혜와 구원의 메시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울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바로 앞에 놓고 멀리 파멸의 길을 돌아 걸었던 자신들의 어리석음이 슬퍼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들을 생명과 공의로 부르고 계신 하나님의 인내와 은혜가 커서 울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함께 슬피 울었습니다. 함께 엉엉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 울음이 그들의 상처를 치유했습니다. 그 울음이 갈라진 민족을 하나 되게 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하나님 앞에서 우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얼마나 자주 하나님 앞에서 함께 손잡고 웁니까? 여러분이 몸 바쳐 일하시는 일터에서 여러분은 얼마나 자주 하나님 앞에서 함께 웁니까? 남과 북, 게다가 동과 서로도 갈리진 이 민족은 도대체 언제쯤 하나님 앞에서 함께 울며 서로를 용납하고 하나 되는 날이 오겠습니까? 정호승 시인의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납니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시인의 말만이 아닙니다. 사실 성서는 하나님 앞에서 운, 진실한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 울다 지쳐, 밤마다 눈물로 자기의 침상을 띄우며 요를 적신다고 했습니다(시 6:6). 사람들이 종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힐난하여 주야로 흐르는 눈물이 자기의 음식이 되었다고 했습니다(시 42:3).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자신의 딸 이스라엘 백성이 패망한 것 때문에 자신의 눈에서 눈이 시내처럼 흐르고 그 눈물 때문에 눈이 상하고 창자가 끊어진다고 했습니다(렘 8:21-9:1 / 애 2:11, 3:48-49). 얼마나 울었으면 눈물 때문에 눈이 상하고 창자가 다 끊어지겠습니까? 부활절 새벽 빈 무덤에서 사랑하는 예수님의 시신을 찾지 못한 막달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서럽게 울었다고 했습니다(요 20:11).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많은 눈물로 그 편지를 쓴다고 적었습니다(고후 2:4).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도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리아가 심히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어 친히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습니다(요 11:35). 보십시오! 성서는 이렇게 눈물의 이야기입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이 너무나 순수하고 겸손했기에, 또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처럼 깊이 공감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기에 그냥 울 수밖에 없었던 '울보들의 이야기'가 바로 성서의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독일 말에 "Stunde Null"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Zero Hour," 즉, '0시'라는 말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독일인들에게는 독일이 제2차 대전에서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1945년 5월 8일이 해방과 패배, 또 몰락과 새 출발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의미를 가집니다. 이런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독일 사람들은 1950년대부터 "Stunde Null," 즉, '0시'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 용어는 독일에서 과거와의 역사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곤 합니다. 그런데 만약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역사가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승리한 역사라고 한다면 그 비결은 바로 이 단어 안에 숨어 있습니다.

제2차 대전 말기에 연합군은 무차별적으로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의 전 국토가 초토화되었습니다. 독일 전역에서 약 3백만 채의 가옥이 무너졌으며, 그 무너진 가옥들 밑에는 수천 구의 시신이 썩고 있었습니다. 연합군의 폭격은 나치의 런던 공습 이상으로 잔인하여 드레스덴이라는 박물관 도시는 아예 지도에서 사라질 정도였습니다. 종전으로 총성이 멈춘 이후에도 여러 달 동안 굶주림과 질병에 견디다 못해 수많은 독일인들은 자살이라는 최후의 방법으로 고통에서 탈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어떻게 독일이 전후 그토록 눈부신 경제성장과 세계가 부러워하는 복지정책을 펼 수 있었을까요? 나아가 어떻게 그들은 우리를 지배했던 일본과는 전혀 다르게 자신의 죄악을 철저히 참회하고 배상하는 놀라운 도덕적 힘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었을까요?

영국의 역사학자 존 아다(John Ardagh)가 그 비결을 '0시'라는 개념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때가 바로 독일이 [1차 대전부터 시작한] 30년 전쟁의 가장 어두웠던 그 유명한 'Stunde Null,' 즉, 'Zero Hour'다. 이 시간 독일인들은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 이외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즉, 1918년 1차 대전의 패배 이후와는 전혀 다르게, 나치가 저지른 범죄와 군사적 완패라는, 하나의 절대적인 현실 앞에서 독일인들은 그들의 과거와 완벽하게 단절하는 것 이외는 다른 그 어떤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 처음에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곧 이 'Stunde Null' 속에서 전혀 새로운 의지와 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이 '0시'가 전후 독일이 이룬 성공의 원천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과거를 변명할 여지가 있었더라면, 그래서 0이 아니라 0.001에서라도 시작할 수 있었더라면 전후 독일은 그렇게 새롭게 변화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도 핑계를 댈 수 없는 완벽한 패배, 그것이 역설적으로 성공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물론 독일인들은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아우슈비츠와 다른 강제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던 독일군들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자상한 남편들이었고 아버지들이었습니다. 애완동물을 무척 사랑했고, 게다가 신실한 기독교 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잔인하게 사람들을 죽였는지를 알게 되면서 독일인은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마지막 남은 자부심마저 다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연합군의 폭격으로 국토는 완전히 쑥대밭이 되어, 나라의 어느 한 구석에 요행히 무기 공장이라도 하나 살아남아 거기를 근거로 다시 싸워볼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상황 속에서 새로운 역사가 나왔습니다. 과거와 완벽히 단절하지 않으면 아무 길이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위대한 도덕적 결단이 나왔습니다. 독일인들에게 '0시'는 절망의 순간이었지만 오히려 더없는 축복의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돌아보면, 예루살렘 성의 수문 앞 사건도 '0시'의 사건이었습니다. '신앙의 0시' 사건이었습니다. 해방과 귀향 이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난마와 같이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어보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더 이상 아무 길이 없음을 깨달았을 때, 이스라엘 전 백성이 각자의 성읍에서 나와 수문 앞 광장에 초막을 짓고 일곱 밤, 일곱 낮을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결단했던 '신앙의 0시' 사건이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가, 그리고 우리나라와 민족이 새롭게 시작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0시'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앙의 0시'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루살렘 수문 앞 광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거기서 초막을 짓고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 앞에서 '함께 울어야' 합니다. 광복 73주년이 되었지만, 우리 민족은 아직도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아간다고 열심히 걷지만 언제나 제자리를 뱅뱅 맴돕니다. 이럴 때 우리는 다시 예루살렘의 수문 앞 광장에 모여야 합니다. 거기서 지난 73년 간 우리의 모든 시계를 거꾸로 돌려 '신앙의 0시' 앞에 서야 합니다. 그 절대의 시간 앞에서 가슴을 치고 울며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간교한 입술과 혀로 민족의 십자가를 빗겨갔고, 무고한 자들의 고난에 침묵했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피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길로 우리를 애타게 부르셨건만 우리는 언제나 제 좋을 대로 자기 유익만 구하며 이기적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좀처럼 우리의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직 절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희망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직도 살 길이 있다고 믿기에 전적으로 우리는 말씀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교우 여러분, 오늘만큼은 하나님 앞에 아무 변명 없이, 아무 계획 없이, 절망 그 자체로 서서 그냥 울어보면 안 되겠습니까? 오늘은 다퉜던 가족들과 손잡고, 등 돌렸던 동료들과 손잡고, 그리고 물리적으로는 차단되어 있지만 북녘의 동포들과도 마음으로 손잡고 하나님 앞에서 함께 슬피 울며 그 눈물의 힘으로 새로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내어보면 안 되겠습니까?

광복 73주년, 분단 73주년을 맞이합니다. 한반도가 언제 다시 전쟁의 화염 속에 불바다가 될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마태 5:4).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세계교회가 함께 기도하는 오늘, 저는 우리 겨레가 예루살렘 성의 가장 아름다운 문, 수문 앞에 모여 함께 하나님 앞에 울며 얼싸안는 날이 속히 오길 기도해봅니다. 그 은총의 문 앞에서 문 앞에서 우리 "인간의 지각으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화"(빌 4:7)가 갈라진 겨레와 찢긴 사회와 서로 등 돌린 우리 가정 위에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겨레를 긍휼히 여기시고 애통하는 우리들을 위로해주시기를 이 아침 기도합니다. (2017.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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