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신학자들의 ‘요한계시록’ 연구 기피에 “직무 유기”

‘요한계시록’ 연구하는 한신대 이병학 교수 인터뷰(上)

1992년 10월 28일.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시한부 종말론을 전하던 다미선교회 전국 8천여명의 신도들은 약속 시간인 당일 자정까지 ‘휴거’를 기다렸으나 그들의 기도대로 ‘공중에 들려지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날 이후 다미선교회는 교계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컬트 집단으로서의 과오를 인정, 해체를 선언했고 신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2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정통교회로부터 벗어난 컬트 집단 사이에는 여전히 시한부 종말론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며 그 근거로 성서의 ‘요한계시록’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서 해석의 방법론이 다양할 수 있으나 그것이 어느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나’ 혹은 내가 속한 ‘집단’외 타자에 대한 분리와 배제 그리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밖에 작용하지 못한다. 이들 컬트 집단들이 기성교회를 향해 "구원이 없다"거나 "지옥행 티켓을 예약했다"거나 하며 배타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석 방법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를까? 그리고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잣대가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이 처럼 쏟아져 나올 난해한 질문들에 지레 겁부터 집어먹은 상당수 신학자들은 이제껏 ‘요한계시록’을 연구 과목으로 채택하지 않을 뿐더러 일종의 금서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어왔다. 까닥 잘못했다간 제도 교회로부터 이단이라 정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이 같은 신학자들의 ‘요한계시록’ 연구 기피에 한 몫을 보탰다. 이런 이유로 ‘요한계시록’ 해석은 컬트 집단의 전유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신학자 이병학 교수(한신대 신학대학장, 한국신약학회 회장)는 더 이상 ‘요한계시록’을 방치해 두어선 안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유대 묵시 문학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요한계시록’ 연구에 천착하고 있는 그는 상당수 신학자들의 ‘요한계시록’ 연구 기피에 "직무 유기"라며 "요한계시록도 성경 66권의 한 부분이다. 이러한 귀중한 문서가 컬트 집단의 전유물로 전락하게 놔둬선 안된다"고 역설했다.

기자는 지난 26일 수유리 한신대 신학대학원 교수휴게실에서 그를 만나 ‘요한계시록’ 연구 동기와 목적을 묻는 한편,  ‘요한계시록’이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용의 길이상 이번 인터뷰 기사는 두 편에 걸쳐 싣는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이병학 교수(한신대 신학대학장, 한국신약학회장) ⓒ베리타스

“요한계시록은 기독교의 경전인 신구약성경의 맨 마지막에 있는 책입니다. 요한계시록은 AD 95년경에 로마의 도미티안 황제가 통치하던 시기에 저작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의 제국주의를 가장 치열하게 비판한 기독교적 저항문학이며, 교회들이 비밀리에 회람하면서 읽었던 지하문학입니다.
 
로마는 겉으로는 “로마의 평화”를 선전하였지만, 실제적으로는 빈번하게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키고, 식민지의 자원을 착취하고, 약자들을 억압하였습니다. 로마는 황제를 신으로 예배하도록 사람들에게 강요하였으며, 황제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곧 로마에 대한 충성 증명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해와 순교를 감수하면서 로마의 우상 숭배적 체제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피하고 개인적인 이익을 얻기 위해서 로마의 요구에 타협하고 적응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제국적 복음을 외쳤던 요한이 로마제국의 반란자로 체포되어 지중해의 외딴 섬인 밧모에 갇히게 되었으며, 거기서 그가 천상적 환상들을 보고 기록하여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 보낸 문서가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그의 환상들은 제국의 폭력적 현실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적 세계의 도래에 대해서 말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요한계시록은 희망과 저항의 책입니다.”

- 신학자들의 연구 기피 문서로 낙인찍힌 ‘요한계시록’을 연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신학연구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들인 생명, 정의, 평화, 인권, 그리고 통일을 위한 투쟁의 장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되돌아보면 불행하게도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억압과 폭력에 의해서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천수를 누리지 못하게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한 이런 희생자들의 죽음과 그들의 운명에 대해서 한 신학자로서 깊은 책임의식을 느끼면서 요한계시록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에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희생자들의 외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독일에서 요한계시록의 모체가 되는 유대 묵시문학을 전공하였으며, 그 이후부터 요한계시록을 희생자들의 관점에서 읽고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자기 시대의 폭력적인 죽음의 현실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연구함으로써 오늘의 세계의 죽음의 현실을 희생자들과 약자들과 억눌린 여성들의 관점에서 신학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 주된 연구영역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 ‘요한계시록’은 신학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금서처럼 다뤄지는 경향이 강한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요한계시록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상징들과 숫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해석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혹시 잘못해석하면 이단으로 몰릴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주류교회의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신학자들 역시 요한계시록에 대해서 말하기를 주저하거나 조심하는 것입니다. 주류교회의 강단에서 요한계시록은 설교 본문으로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이에 요한계시록은 이단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실정입니다. 기독교적 삶과 신앙실천을 위해서 요한계시록에 대한 연구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 ‘요한계시록’에는 산 자들과 더불어 죽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 나온다. ‘요한계시록’에서의 산 자와 죽은 자의 역학관계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

“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죽은 자들이 모두 하늘에서 살아 있습니다. 그들은 폭력의 역사에서 희생된 순교자들과 죽은 의인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늘에서 살아 있습니다. 그들은 유린된 정의와 권리, 그리고 빼앗긴 인권의 회복을 위해서 하늘에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따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었다”(6:9-10). 이러한 외침은 하느님께서 심판을 통해서 정의와 권리를 회복해줄 것을 바라는 죽은 자들의 탄원이며, 동시에 그것은 폭력의 역사에 대한 항의입니다. 하나님은 심판과 신원을 호소하는 순교자들에게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구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숨 쉬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폭력의 희생자들의 저항과 투쟁과 희망을 망각하지 말고 기억하라는 요구이고, 그리고 죽은 자들과 정신적으로 연대하여 정의와 평화와 생명이 지배하는 세상을 위해서 계속해서 투쟁하라는 요구입니다. 정의를 위한 투쟁가운데 당하는 죽음은 무가치 한 것이 아니라 폭력의 역사를 끝장내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앞당기는데 보탬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순교자들과 죽은 의인들은 모두 살아서 하나님께 탄원 기도를 하고, 산 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하고, 그리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들의 예배는 세계의 불의를 소멸시키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차원과 이 폭력의 역사에 대한 비판과 항의의 차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의 예배도 역시 이러한 두 가지 차원을 유지해야만 합니다.” 
 
- 컬트 집단들이 주로 내세우는 것은 ‘요한계시록’ 풀이다. 이들이 다른 성경 본문과 비교해 볼 때 유독 ‘요한계시록’에 집착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요한계시록 안에는 많은 상징들이 있습니다. 이단들은 이러한 상징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자기들의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요한계시록을 사용합니다. 그들은 요한계시록이 오늘의 시대에 일어날 사건들을 2천 년 전에 미리 예언한 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영적 엘리트 의식을 심어줍니다. 즉, 자기들의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만이 구원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곧 발생할 지구의 파멸 직전에 하늘로 휴거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성경 해석에는 논리적으로 가능한 해석과 불가능한 해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단들의 해석에는 불가능한 해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 특히 이들 컬트 집단은 예수 재림에 관한 부분을 오해,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고 있다. 예수가 곧 오신다는 재림을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는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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