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구원/폭력 양가성 수반한 십자가…십자가는 무용한가?!

김이석. 카푸토 해석학 매개해 십자가 신학 전개

▲지난해 10월 한국조직신학회 회원들이 학회 발표회를 갖고 있는 모습. ⓒ한국조직신학회 제공

한 신진학자가 기독교의 시원 십자가를 ‘이름’ 혹은 ‘개념’이 아닌 ‘사건’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전개해 이목을 끌고 있다. 12일 열릴 한국조직신학회(회장 김흡영) 제54차신진학자학술발표회에서 김이석 박사(미국 드류대,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는 ‘힘없는 힘의 하나님: 위르겐 몰트만, 자크 데리다 그리고 존 카푸토의 십자가의 신학’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본지가 미리 입수한 논문에서 김 박사는 ‘십자가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전통적으로 구원의 상징으로 해석되어오던 십자가에서 ‘폭력’의 이면들을 폭로하고, 이제 십자가가 함의하는 구원/폭력의 양가성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극복 전개해 나아갈지를 고민한다.

대속 이론으로 점철된 전통적 십자가 이해

그에 따르면, 전통적인 개념에서의 십자가는 우리 인간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가리킨다. 또 그 죽음은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죽음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 우리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는 죽음이라는 점에서 대속을 통한 구원의 상징이 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김 박사는 이러한 십자가 이해가 종교 권력 및 정치와의 관계에서 폭력의 상징 혹은 도구로 남용되어왔다는 점을 지적을 한다. 이러한 남용들의 예들로 ‘십자군의 십자가’ ‘나찌의 철십자가’ ‘대영제국의 빅토리안 십자가’ 등을 든다. 이러한 남용 가능성이 십자가 대속 이론에 함축돼 있는 것임을 확인한 그는 누군가의 죄를 위해 다른 누군가가 희생될 수 있다는 ‘희생의 논리’가 십자가의 오남용의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힌다.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고통과 좌절 떠안아

그러면서 이러한 십자가의 역사적 남용 앞에 항거한 신학자들의 목소리를 주목한다. 김 박사에 따르면, 위르겐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외침으로써 "형이상학적이고 욕망에 물든 뒤틀려진 신과 전능 개념을 비판"한다. 몰트만이 말하는 십자가는 고통과 좌절에 구경꾼으로 관망하는 것이 아닌 참여하는 것을 한 발 더 나아가 그 고통을 자신의 고통과 좌절로 떠안는 것을 가리킨다.

김 박사는 "(몰트만의)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형이상학적 논리와 개념의 새계 속에서 ‘십자가’로 상징되는 죄의 세계를 해명하거나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겪는 죽음의 고통과 좌절의 심연을 자신의 경험으로 즉 바로 십자가에서 고통 받고 버림 받는 경험을 한 인간으로서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하지만 몰트만의 십자가의 죽음 해석에 대항하는 여성신학적 견지에서 김 박사는 "(몰트만의 십자가 이해가)고통을 구원을 향한 필수적인 과정으로 간주하게 하여 고통을 정당화시키고 미화시키는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비판을 가장 신랄하게 전개한 독일신학자 도르테 죌레는 "몰트만의 십자가는 해방보다는 여전히 고통의 실재를 영속화시키고 고통을 찬양하는 신학적 새디즘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카푸토의 하나님 사건 해석학 매개로 십자가 신학 전개

김 박사는 이러한 십자가 신학에 대한 비판들을 고려하면서 카푸토의 신학과 앤 조(W. Anne Joh)의 신학을 통해 십자가 사건의 신학을 모색한다. 그에 따르면, 카푸토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계의 질서(hierarchy)로 해석함으로써 하나님의 ‘힘’을 권력과 등가시켜왔던 신학적 해석을 위반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무위계질서"(hier-an-archy)로 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 즉 바실레이아의 다스리는 힘은 강제력과 무력을 기반으로 행사되어지는 권력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어 미리 선포하는 힘으로 새 세계를 창조해 나가는 힘이기 때문이다. 하여 카푸토의 철학적 신학은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개념’이 아니라, ‘사건’으로 해석하기를 제안한다.

카푸토의 ‘사건’은 우리 개념 구성에 포박되어지지 않는 잔여(residue)를 통해 넘쳐나는(overflow) 과잉성(excess)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잔여는 개념과 이름에서 배제되어 삭제되고 망각된 것이 아니라 아직 열려지지 않은 미래의 해석의 지평을 가리키고 있으므로 ‘과거로부터 도래하는 미래’인 것이다. 하여 카푸토는 현재를 과거의 해석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에 종속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과거와 미래의 시간들을 ‘현재’라는 사건 속에서 접합시키는 ‘일상주의’(quotidianism)의 신학을 주창한다.

김 박사는 카푸토의 이러한 하나님 사건의 신학을 십자가 신학에 적용해 십자가를 대속으로 ‘이론화’ 혹은 ‘개념화’ 하기보다 십자가의 ‘사건’에 주목함으로써 대속의 시간을 아직도 살아 진행되는 사건의 신학 즉 정행(orthopraxis)의 신학으로 해석하기를 시도한다. 이에 대해 논평자 박일준 박사(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는 "이는 바로 신학적 아르케 ‘십자가’를 과거 시간에 박제하고 과거로부터 현재를 끊임없이 끼워 맞추는 신학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과거의 언어적 해석에 지향하며 외면 받았던 이면들의 잔여를 미래를 열어가는 잉여로 보기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평했다.

김이석은 또 연장선상에서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 담긴 종말론적 이해, 즉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식의 단선적 시간의 종말이 아닌 ‘미래로부터 현재로’ 도래하는 하나님의 시간 이해를 응용해 과거 시간의 아르케(arche), 기독교의 시원 십자가를 ‘사건’으로 해석하고자 시도한다.

이어 십자가 사건의 해석의 단초를 앤 조의 ‘한과 정’의 십자가 해석학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앤 조는 한국인의 한과 정을 양가성(ambivalence)의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정이 ‘한의 상처와 고통을 나눈 사람들끼리 이루어가는 연대감’이 될 경우, 정은 위로와 치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고, 그것이 십자가가 제시하는 근원적인 형태의 사랑이라고 한다. 또 다른 한편, 정은 연대의 관계가 끈끈한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관계가 될 경우, 집단 이기주의의 관계로 변질될 가능성을 언제나 그 자체에 담지하고 있기에 해방의 역할만 하는 것도 아니다.

십자가를 사건으로 해석한 김 박사는 "우리는 십자가를 닫혀지고 변할 수 없는 기호가 아니라 현재를 위해 일하고 운동하는 구원의 상징이요 현재적 사건임을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며 "십자가는 오소독시(orthodoxy)의 교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소프락시스(orthopraxis)의 문제라는 것이다. 바른실천은 사건이 되어 현재적 사건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구원과 해방은 과거를 넘어서서 현재가 되고 더 나아가 과거보다 더 나은 사건으로서 도래하길 기대할 수 있게 한다"고 하며 논문을 맺는다.

논평을 맡은 박일준 박사는 논평문에서 "카푸토의 사건 해석학을 매개로 십자가 사건의 신학을 전개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인 시도라 여겨진다"며 "지구촌 자본주의의 끝 가에서 세계 도처가 1대 99의 문제로 좌절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시대에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십자가를 통해 조망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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