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인터뷰] “신학 부재, 한국교회 아픔 불감증 불러”

안산 화정감리교회 박인환 목사 인터뷰 2부

▲세월호 유가족과 경찰이 격렬하게 대치하던 지난 4월18일(토) 박인환 목사(사진 뒷줄 왼쪽 두 번째)도 서울 광화문으로 뛰쳐나갔다. 성도인 박은희 전도사(사진 앞줄 왼쪽 두 번째)가 고초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지유석 기자

안산 화정감리교회 박인환 목사는 세월호 유가족 생각만 하면 답답하다. 도무지 뾰족한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유가족의 존재는 잊혀지고 있어서다. 그러나 그럼에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으려 애쓴다. 
“참으로 먹먹하다. 지난 군사 정권 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런 상황은 원치 않는다. 이런 상황을 원하는 목회자가 있을까? 다른 한편으로 시민단체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화가 치민다. 이들마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급진 노동자 단체들에게 이용당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지난 4월 광화문에서 대치상황을 보라. 이들 단체들이 나서니 경찰 차벽이 뚫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경찰버스를 전복시키라고 선동할 수 없고, 그렇다고 길거리에 앉아서 진상규명만 외칠 수도 없고, 무척 미묘한 문제다.
세월호 유가족만 사면초가 신세인 것 같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극적으로 돌파구가 열릴 것이란 생각이다. 제주도에서 목회할 때,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이 나라, 이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절망했는데, 막상 서거 소식을 들으니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이처럼 극적인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본다.”
▲박인환 목사는 교단의 목회자들이 노란 배지를 두고 시비를 걸 때 꼭 되묻는 질문이 있다. 당신은 달아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이다. 박 목사는 한국교회가 공감의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이유가 신학의 부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다시 교회로 주제를 돌려 보자. 박 목사는 앞서 안산 지역교회들이 세월호의 아픔에 무감각하다고 질타했다. 박 목사는 ‘신학의 부재’가 이런 병증을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이 대목에서 박 목사의 어조는 무척 매서웠다. 
“현 정권의 정치행태는 아버지인 박정희 시절보다 더 무섭다고 본다. 그 시절엔 모두가 배고팠다. 그러나 지금은 배가 부르다. 그러다 보니 이웃의 아픔엔 무관심하다. 힘없는 사람이 짓밟혀도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단 말이다. 더 절망적이다. 
근본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국민이 깨어 있지 못하고, 교회가 깨어 있지 못해서 그런거다. 미지근한 상태의 물을 담은 냄비에 개구리를 놀게 하고서, 서서히 가열하면 결국 개구리는 죽는다. 교회가 꼭 이 꼴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30여 년간 고속 성장했다. 너무 빠르게 성장하다 보니 목사들이 쉽게 교만해졌다. 무엇보다 교회의 기본을 세우지 못했다. 그리고 신학이 없다. 신학교가 성경학교 수준이다. 다 목회자들 책임이다.”
자리 욕심 버리니 자유함 얻어 
▲박인환 목사의 후배들은 박 목사에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칭찬을 하곤한다. 박 목사는 그간자신이 양심을 지키고 변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이 자리 욕심을 버린 데에 있다고 말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박 목사의 옷깃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의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어느 때부터인지 이 노란 리본은 정치적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방한 기간 내내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자, 우리 측 관계자가 ‘정치적 중립’을 이유로 뗄 것을 요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박 목사는 이에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자리 욕심 버렸다’고 밝혔다.  
“지난 해 가을까지만 해도 교단 목회자들이 노란 배지 달고 다닌다고 핀잔을 줬다. 그래서 ‘혹시 달아 보았냐?’고 물었다. ‘만약 달아본 적 없다’고 답하면 ‘달아본 적도 없으면서 핀잔 줄 자격 있냐?’고 되물었다. 나 스스로 거침없는 스타일이라고 본다. 게다가 SNS를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언론에도 노출됐다. 그래서 ‘박인환’ 하면 얼른 세월호를 떠올린다. 그러다보니 이제 공개적으로 핀잔을 주는 일은 사라졌다. 
나를 좋아하는 후배들은 내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칭찬한다. 한 번 돌아보라. 과거 소위 ‘운동권’이었던 사람들, 지금은 집권 여당에서 한 자리 꿰차고 있다. 지금까지 양심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변절하고 기득권층에 빌붙어 떡고물 먹고 산다. 나는 운동권은 아니다. 그러나 변화 없이 초지일관했고, 나 스스로 이를 권위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독도 해보고 큰 교회로 청빙되고픈 마음이 없지 않았다. 실제 세월호 참사가 나기 직전 큰 교회의 부름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큰 교회는 보수화 경향이 강하고, 그래서 보수적인 장로들 상대하려면 머리를 조아리든가, 아니면 강력한 리더십으로 휘어잡아야 한다. 나는 두 가지 모두에 소질이 없다. 그래서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응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자리 욕심만 내려놓으면 내 양심을 지키며 하고 싶은 말 거리낌 없이 하고 살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총회나 연회 가보면 말 한 마디도 정치적 계산에 따라 하게 된다. 그러나 나 자신, 잃을 게 없다. 지금 시무하는 교회 목회만 잘하면 됐지 구태여 감독 자리 올라갈 필요가 있겠는가?”
▲안산 화정감리교회 박인환 목사가 교회 앞마당을 둘러보고 있다. 이 마당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유예은 양이 뛰어놀던 마당이기도 하다. ⓒ사진=지유석 기자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안산 화정감리교회 분위기는 무척 서정적이다. 교회 앞마당은 잔디로 덮여 있고, 건너편은 논이다. 마침 농사철이라 인근 주민들은 모내기 준비에 한창이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고 유예은 양이 어떻게 뛰어 놀았을지 자연스럽게 상상이 된다. 딸을 먼저 떠나보낸 아빠의 심경은 더 애틋할 것이다. 그런 애틋한 심경이 유경근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다. 그래서 끝으로 유 위원장에게 하고 싶은 말을 건네 달라고 부탁했다. 박 목사는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이야기하기 너무 힘들다. 내가 바라보는 유 위원장은 굉장히 감성적이고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엄마(박은희 전도사)보다 아빠가 예은이를 애틋하게 그리워한다. 그러니 딸 생각이나 견디지 못해 교회를 나오지 못하는 거다. 
▲박인환 목사는 인터뷰 후 기자를 안산 합동분향소로 안내했다.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지만, 표정은 썩 밝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분향을 마치고 나오라고 했다. 자신은 분향소에 가면 마음이 무거워져 차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겠다고 했다. ⓒ사진=지유석 기자

아마 한국교회에 대한 상처도 그의 발걸음을 붙잡는 요인일 것이다. 안산지역에서만 37개 교회에서 76명의 학생이 희생됐다. 희생 학생 가운데엔 학생만 교회를 다니거나 부모 가운데 한쪽만 다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어림잡아 100명 가까운 부모는 교회에 출석했다고 미뤄 계산할 수 있다. 그런데 학부모들 대부분은 교회에 나가지 않고 있다. 한국교회, 더구나 안산 지역교회조차 세월호 유가족을 죄인 취급하고 성경 말씀이랑 전혀 관계없는 말로 상처를 줬기 때문이다. 한 번은 유가족들이 A교회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서명을 받으러 갔었다. 그러나 그 교회는 이들을 쫓아냈다. 유가족 가운데에는 출석교인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유가족들이 교회로부터 받은 상처가 너무 깊다. 먼저 교회가 달라지는 모습만 보여도 교회 나올 용기가 생길 것이다. 
유 위원장에게 당부하고 싶다. 예은이를 향한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법이다. 그러니 죽기만큼 어렵더라도, 매월 한 번 만이라도 교회에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그간 여러모로 애를 많이 썼다. 그렇기에 잠시 동안만,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고 간곡히 당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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