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개체 중심에서 생태 중심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소장 전현식 교수 인터뷰

시대상을 반영하며 시대에 응답하는 신학을 흔히 상황 신학(Context Theology)이라고 일컫는다. 오늘날 고도로 발달된 과학 기술 문명의 시대에도 신학의 세속화는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 생태·과학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본지는 관련 분야의 신학자와 함께 오늘의 상황(Context)에서 신학이 답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논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똑, 똑, 똑’ 노크를 하고 기다리니 "들어오세요"라는 응답이 있어 연구실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문틈 사이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큼지막한 배낭가방이었고, 이내 등산복 차림의 교수가 반갑다는 듯 기자를 맞이했다.

"오늘 등산 계획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벌써 갔다왔는걸요. 지리산 둘레길에 단풍이 벌겋게 물들어서 아주 장관이더군요. 사람이란게 자연을 벗 삼아야 하는데 말이죠..." 교수는 말꼬리를 흐렸다.

연세대 신과대학 부설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이하 기문연) 소장 전현식 교수(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내에서는 그를 가리켜 생태신학자라고 말한다. ‘생태’를 화두로 신학을 넘어 과학, 경제학, 심리학, 여성학 등에 접목해 학제 간 연구까지 이끌고 있으니 그런 별칭이 붙을만 했다.

- 생태신학을 하시는 분들은 곧 잘 ‘패러다임 전환’을 얘기하시던데요.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전현식 교수(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조직신학)는 전 지구적 위기인 생태 문제의 근원적 처방을 ‘패러다임의 전환’에서 찾았다. 그는 "실체론적인 패러다임으로부터 과정적인, 즉 지속 가능한 유기체적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며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김진한 기자

수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교수는 "우리가 하는 일이 그런건데요"라며 연구실 문에 붙은 포스터를 가리켰다. 기문연이 주최하는 심포지엄인데 ‘대학, 생태를 말하다- 에콜로지와 학문의 새 패러다임: 학제간 연구를 향하여’란 주제에 눈길이 끌렸다.

“우리의 과제는...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거에요. 개체 중심적인 패러다임으로부터 생태 중심적인 패러다임으로 말이죠. 다른 말로 실체론적인 패러다임으로부터 과정적인, 즉 지속 가능한 유기체적 패러다임으로 바꿔야 한다는 말이에요."

- 그게 쉬운 일일까요?

“세계관을 바꾸는 게 기본적으로 쉽지가 않아요. 우리가 의식하기 이전에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거든요. 패러다임 자체를 과거로부터, 태어나면서부터 이어 받아 태어나는거죠. 예를 들어 페미니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가부장적 사고입니다. 남성 중심적인, 성차별적인 의식과 관점 등 그런 섹시즘이 작용되는 사회 체제를 가부장 체제로 볼 수 있고, 그런 것 자체를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볼 수 있겠죠.

페미니즘은 그래서 평등주의적인 패러다임으로 남성과 여성 뿐 아니라 가난한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평등주의적 관점으로 (패러다임을)바꾸기 위해 투쟁해 왔고, 때문에 여성의 관점에서 사물 본성을 파악하는 등 여성의식을 향상시키려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처럼 개인적인, 기계론적인 패러다임 이것 가지고는 더이상 살 수 없다, 잘못됐다는 것을 의식하고, 깨달아야 해요. 그런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경제, 정치 체제가 운영되어 왔고, 과학적인 패러다임도 역시 그렇게 운영되어 왔잖아요. 특히 17,18세기 과학 혁명 이후 지구를 생명이 아닌 기계로 보는 그런 기계론적인, 환원주의적인 패러다임이 노골화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그래서 좋은 사회가 되었는가? 그렇지 않단 말이죠.

좋은 사회가 아니라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사회적 문제들인 전쟁과 폭력이 심화되며 환경적 문제인 기후 온난화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지구적 위기를 나타내고 있는 일종의 증상과도 같은 것이죠."

- 기후 변화. 심각한 문제이지 않습니까?

"지금과 같은 패턴으로 가면 21세기 안에 지구 온도가 6도가 상승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상상적인 것이 아니라, 양심있는 많은 과학자들이 모여서 하나의 과학적인 예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설사 분명한 예측이 쉽지가 않다 하더라도 문제는 분명히 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단 말이에요. 그러면 우리는 대안으로 뭘 해야하나.

개인적 패러다임을 넘어서서 생태적 패러다임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죠. 인간이 자연을 기본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나 도구로 보면 기계론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보면 세상은 기계고. 기계의 진보를 통해서 우리는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죠. 과학 기술이 그것을 뒷받침 해준다고 믿고요.

그런데 그런 세계관에 잘 맞는 경제 시스템 자체. 아담 스미스 이후로부터 내려오는 그 고전주의 경제 체제 말이에요. 그게 지금 워킹(Working)이 안돼요. 신비로운 거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면 그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공동의 이익에 봉사한다. 근데 그게 그렇게 되지 않는 거에요. 근원적인 것은 패러다임이 지속 가능한 유기체적 패러다임으로 바뀌어야 공동의 이익 뿐 아니라 개인의 이익도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실 이제껏 거꾸로 보고, 거꾸로 살아왔다는 거에요. 그것을 변혁시키는 일이 우리가 하는 일이죠."

- ‘기독교 신앙’ ‘기독교 신학’에 근거해서 보충 설명해 주십시오.

"우리가 독특한 생명이지만 분리될 수 없이 상호 연결돼서 의존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을 우리는 일상 경험을 통해 알게 됩니다. 공기 없이 물 없이 살 수 있나요. 우리 삶의 기본 조건 아닌가요? 그런데 이 기본 조건이 흔들리는거에요. 기후 변화, 수질 오염, 대기 오염 등등 말이죠.

기독교 신앙으로 볼 때 신앙의 본성이라는 것은 쉴라이에르마허가 잘 얘기해 주었는데 절대 의존의 경험이에요. 심리적으로 의존되어 있다는 게 아니라, 근원적으로 우리의 삶이 상호 근본적으로 서로 의존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삶의 조건을 깨닫는 거에요. 그게 생명의 망이에요. 그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해요. 그래서 기독교 신앙이 중요한거에요. 쉴라이에르마허가 위대한 것이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절대 의존의 경험 내지 감정. 그 감정을 우리는 자꾸 심리적인 감정을 이야기 하는데 그것을 넘어서는 거에요. 지금으로 해석하면 상당히 에콜로지컬 한 거죠.

신앙은 궁극적 관심인데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헌신과 신뢰와 충성. 로얄티. 이런거에요. 이런 것을 궁극적 관심이라고 하죠. 기독교 신앙적으로 표현하면 우리는 다 신앙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여러가지 존재의 위협을 받고 살아요. 그러한 것에 직면하면서 삶의 다양한 양상들을 통일 할 수 있는 하나의 중심을. 어떤 이는 이것을 중력의 중심이라고 얘기하더군요. 그게 우리에게 신앙이라는 거죠. 신앙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헌신과 신뢰 없이 살아간다는 말인데 그런 사람이 없죠.

신앙은 사적인게 아니라 신앙은 인간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그런데 어떤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느냐. 신앙의 대상이 정말 하나님이냐. 궁극적 관심으로서의 성서와 전통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그 구원적 사랑의 하나님이냐. 아니면 헌신의 대상이 자본주의냐. 이게 문제죠. 때문에 신앙의 길에서 우리는 항상 질문하고, 반성해야 하는데 신학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죠. 좋은 신학은 좋은 신앙을 좋은 신앙은 좋은 공동체를 낳는다고 만들어 낸다고 봅니다.”

▲진보 신학의 아버지격인 쉴라이에르마허를 언급한 전현식 교수는 그가 말한 ‘감정’을 오늘의 상황에서 재해석해 눈길을 끌었다. 전 교수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절대 의존의 경험 내지 감정. 그 감정을 우리는 자꾸 심리적인 감정을 이야기 하는데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지금으로 해석하면 상당히 에콜로지컬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진한 기자

- ‘패러다임 전환’을 신앙의 관점에서도 성찰할 수 있을까요?

“패러다임을 어떻게 바꾸느냐는 총체적인 것입니다. 한 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라, 다 연결돼 있는 거죠. 평생의 과제라고 할 수 있어요. 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관점의 이동’이 일어나야 해요. 계시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드러나는 개인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 계시는 신중심적이고, 우주중심적이기 때문에 나한테서만 일어나고, 경험되는게 아니에요. 나한테 계시되면 다른 이웃, 다른 창조 세계 안에도 계시된다는 거에요. 벌서 관점이 넓어지죠.

유기체적인 세계관, 유기체적인 생명.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내 생명이 자발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근원적인 생명의 마음으로부터 우리가 나오는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것이고. 내가 내 스스로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잖아요. 물론 자기 창조적인 측면이 있어요. 셀프 크리에이티브(Self creative). 그러나 근원은 썸팅 엘스(Something else)로부터 오는 것이죠.”

- 생태 신학자들은 줄곧 ‘자연과의 친교’를 주장해 왔는데요.

“자연과의 친교. 생명의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은 친교. 즉 사귀고, 만나고 친교하면서 사는데, 지금은 자연을 친교가 아니라, 자기 이익의 수단이나 대상으로 보며 자기와 분리된 하나의 수단으로 보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친교가 이뤄질 수가 없어요. 인격적인 친교란 것은 주체와 주체 간에 강한 주관적인 것 안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교회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친교를 하듯이 말이죠. 성례전에 한 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떼면서 하나의 친교를 나누죠.

자연 자체도 하나의 세크라맨트(sacrament, 성례전)가 되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자연으로 확장되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하나님의 사랑이 계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된 모든 우주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현존한다는 거에요. 성서에서도 분명히 얘기되는 것이죠. 그리로 회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 회복이라는 게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죠. 많은 각도에서 얘기가 될 수 있을 거에요.”

- ‘자연과 친교’에 있어 ‘과학과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과학과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지 않아요. 과학이 만병 통치약은 아니에요. 인간 문명을 발전시키고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공헌하는 측면도 있기는 있지만, 그것도 소수를 위한 편의죠. 다수는 그런 기본적인 삶의 필수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살아가는게 태반이에요.

전 교수는 최근 출간된 『우주 이야기』(대화문화아카데미, 번역 맹영선)에서 토마스 베리 신부가 말하는 ‘기술대‘와 ‘생태대’라는 표현을 빌렸다.

그렇다고 기술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테크놀리지컬 픽스(Technological fix). 기술을 통해서 모든 것을 다 고칠 수 있다고 하는 기계론적 패러다임. ‘기술대’라는 것은 즉, 기계가 고장나면 무한히 대체될 수 있다는 사고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거에요.

그러나 ‘생태대’라는 것은 하나의 유기적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이라는 것은 생성 소멸하고 재생되는 것으로서 생명 자체가 우선이라는 것이죠. 그 분(토마스 베리 신부 지칭)이 얘기하실 때는 기존에 있어서 너무 편협한 사이언티즘. 사이언스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 만능주의, 기술 만능주의. 그것을 반대하신 거에요. 그것을 지양하고, 생태대로 가자는 것이죠. 사이언스는 인정하지만 지나친 과학 중심적인 교만. 이런 것은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기술이 유용하지만, 기술을 통해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어요. 기술이 유용한 부분도 있지만 또 문제의 근원적인 부분이거든요. 기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하지만, 그것이 근원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 테크놀리지컬 픽스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야 할 거에요."

- 실천적 행동이 있는 ‘교회’란 지평에서 생태 패러다임을 얘기해 주십시오. 얼마 전 연신원 주최로 열린 녹색교회 포럼에서 ‘녹색교회론’을 주제로 강연도 하셨던데요.

“녹색교회도 생태적인 패러다임으로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는데, 교회 본질과 사명 자체도 개인 구원 중심적인 제한이 있는 게 현실이에요. 그렇다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개인이면서 사회적 존재고 생태적 존재라고 하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다면 구원적 개념이 확장되어 나가아야죠.

교회 본질을 생태적으로 이해할 때 교회의 사명은 개인의 구원에만 있는게 아니라, 개인이 살아가는 사회 공동체 사회 구조의 변혁, 그 뿐 아니라 모든 생명이 삶의 터전으로서 살아가는 생태 공동체. 우리가 당연히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다 허물어지는데 그 안에 의존되는 우리가 내 개인이, 내 영혼이 구원받는 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꾸 우리는 물어야 해요.

구원이 개인적 구원, 사회적 구원을 넘어 생태적 구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거죠. 하나님은 나만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 세상을 사랑하시고, 하나님 자신이 창조하신 이 창조 세계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교회가 재해석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런 모델을 제시한 것 같아요.

지금의 컨텍스트 안에서 우리는 교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재해석이 일어날 수 밖에 없죠. 해석학적 작업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적 사랑의 의미 자체는 변하지 않죠. 하나님의 창조적, 구원적, 변혁적 사랑이라는 것은 삼위일체 안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 변하지 않는 참된 의미를 깨닫고 만나려면 항상 재해석되어야 해요. 컨택스트가 달라졌기 때문이죠. 인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 공동체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도 함께 구원 받을 수 있어야죠. 우리는 다른 생명들이 창조 세계 안에 있는 많은 생명들을 사랑하므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증언하고, 입증해야 하는 거에요.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 추상적이지 않아요.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에 구체화 되신 사랑. 그게 예수 그리스도 아니겠어요? 몸 되신 하나님이죠. 이렇듯 구체성을 띄죠. 사랑이라는게 추상적으로 있는게 아니라, 그 사랑이 구체적인 사물이나 구체적인 인간을 통해서 그 사랑이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적 사랑과 모든 생명들이 매개 되는 거에요. 이게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긴 답변을 마친 전 교수는 잠시 상념에 잠겼는지 창밖을 내다봤다. 만추의 계절. 알록달록 교정을 수놓은 단풍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는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다는 듯 기자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아들, 딸 그리고 손자, 손녀들이 문제죠. 그 애들은 분명히 우리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게 될거에요. 과학 기술이 아무리 발달되어도 지금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고, 아마도 수십배의 노력을 더 해야 지금의 퀄리티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후손들을 걱정하는 신학자의 진지함이 배어나왔다.

“우리는 지금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거에요. 우리가 그것을 망가뜨리고 있으니까요. 우리 자손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물려 받은 생명의 질서를 잘 개선해서 못 물려줄 망정, 그대로 잘 보존해서 받은대로 물려주는 것만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요?”

전 교수는 마지막으로 기독교의 계약 전통을 끄집어냈다. “기독교에는 계약 전통, 안식법전(안식일, 안식년, 희년)  이란게 있죠. 특히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시켜주는 희년에는 모든 동물들이 쉬고, 땅도 쉬며 심지어 노예까지 자연으로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어요. 모든 지배적인 관계가 평등의 관계로 회복되는 것이죠. 또 일시적으로 끝난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기독교 신앙 안에 이런 전통(생태환경 보존 등의)들이 다 녹아 있는거에요. 해방 전통, 예언자 전통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전통들을 감안하면 궁극적으로 기독교 신앙이 생태 문제에 대한 근원적 진단과 처방을 내릴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의 아들, 딸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의 후손들이 깊어져 가는 가을 지리산 자락을 등반하며 지금처럼 울긋불긋 물든 단풍을 보고는 창조 세계를 지은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발견할 수 있을까? 기독교 신앙인으로 어깨가 무거워진다.

전현식 교수는

* 학력

연세대학교 (B.A)
감리교신학대학교 (Th.B., Th.M)
미국 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M.Div)
미국 Northwestern University (Ph.D)

 * 경력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부학장 및 연합신학대학원 부원장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교수

 * 저서

에코페미니즘과 신학(2003)
동서종교의 만남과 그 미래 (공저) (2007)
교회론(공저) (2009)
현대생태사상과 그리스도교 (공저) (2010)
 

관련기사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만인·만유구원론 보다는 천국, 지옥 복음 선포해야"

칼뱅의 이중예정론의 결과인 이중심판론에 대한 비판으로 제시되는 몰트만의 만유구원론은 성서 신학적으로 많은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학대학 살아남으려면 여성신학 가르쳐야"

신학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성신학 교육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백소영 교수(강남대 조교수, 기독교사회윤리학)는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한국교회 성장 이끌었던 번영신학, 이제 힘을 잃었다"

이원규 감신대 은퇴교수가 '기독교사상' 1월호에 기고한 '빨간불이 켜진 한국교회'란 제목의 글에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어둡다고 전망하며 그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하나님과 사람에게 소외 받은 욥은 멜랑콜리커였다"

욥이 슬픔과 우울을 포괄하는 개념인 멜랑콜리아의 덫에 걸렸고 욥기는 멜랑콜리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지혜서라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학문적 통찰이 없는 신념은 맹신이 될 수 있지만..."

장공 김재준의 예레미야 해석을 중심으로 예언자의 시심(詩心) 발현과 명징(明徵)한 현실 인식에 대한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윤식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 현존, '경계의 신학'을 '경계 너머의 신학'으로 끌어올려"

폴 틸리히의 성령론에 대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한국조직신학논총 제73집(2023년 12월)에 발표된 '폴 틸리히의 성령론: 경계의 신학에서의 "영적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길희성은 예수쟁이...그의 학문적 정체성은 종교신학"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가 고 길희성 박사를 추모하는 글을 '기독교사상' 최신호에 기고했습니다. '길희성 종교신학의 공헌과 과제'라는 제목의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솔로몬 왕은 약자들이나 쓰는 속임수를 왜 썼을까?"

아이의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를 가려낸 솔로몬의 재판은 그의 지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발간된 ... ... ...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지구라는 개념이 인간에 의해 왜곡되고 짓밟혀왔다"

한신대 전철 교수가 「신학사상」 203집(2023 겨울호)에 '지구의 신학과 자연의 신학'이란 제목의 연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전 교수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