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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범의 물에서(4)] 전쟁, 보스의 출현과 리더의 등장
이충범·협성대 교수(역사신학)

입력 Oct 06, 2014 06:35 AM KST
사고는 매우 간단했습니다. 물잡이 고기들의 적응력에 놀란 저의 가슴이 진정되기도 전에 그들은 제게 질긴 DNA전승 집착을 보여주었습니다. 꼬물대는 것들은 연체동물이 아닌 소드테일의 새끼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저는 치어 사육통을 사러 대형양판점으로 뛰어 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저의 행동이 즉흥적이고 본능적일 뿐 사려 깊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육통을 사들고 집에 돌아와서 새끼들을 격리하자마자 이런 질문이 저의 뇌리를 때렸습니다. “건강하게 다 자라면 어쩔건데?”
소드테일처럼 송사리과 물고기들은 알을 낳는 것이 아니라 새끼를 낳습니다. 이러한 물고기류를 소위 난태생 어류들이라고 한답니다. 관상용으로 개발된 이들은 번식에 적절한 환경을 갖춘 수조 속에서 시도 때도 없이 새끼를 낳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난 새끼들을 낼름낼름 다 잡아먹으면서 어항 속의 적절한 개체수를 유지합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구피 역시 동일한 어종에 같은 생태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들의 개체 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태어난 새끼들을 격리해야만 합니다. 
그들이 알을 낳아주었으면 제 마음이 조금 편했을 겁니다. 어미와 다른 어류들이 알을 집어 삼킨다고 해서 제 마음에 그리 큰 동요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알이 아닌 움직이는 생명을 보곤 일단 먹히기 전에 살려둬야겠다는 단 한 가지 생각 뿐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저는 즉흥적인 생각대로 새끼들을 격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미국에서 읽었던 찰스 버취(Charles Birch)와 존 캅(John Cobb)의 책 중 자연의 균형이론이 떠올랐고 나중엔 봉준호의 <설국열차>까지 겹쳐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드테일은 어미나 새끼들이나 건강하고 예쁘게 살이 쪄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제가 원하던 물고기들이 전라남도 그 어느 수족관에서 공수되어 왔습니다.  
가장 키우기 쉽다는 납자루아과 삼총사인 각시붕어, 흰줄납줄개, 떡납줄갱이 세 식구가 제  어항의 첫 입주자가 되었습니다. 문외한인 제가 봐도 그 수족관의 관리는 철저했습니다. 공수되어온 물고기들은 깔끔하고 건강했기 때문입니다. 말이 난 김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면 저는 한국의 민물고기를 키우며 물고기에 대해 좀 알기 시작한 후부터 민물고기를 자료로 한 음식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저의 많은 지인 분들은 이러한 저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마치 우리 민물고기를 무척 사랑해서 먹지 않는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민물고기를 식재료로 한 음식을 먹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 물고기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안다면 아마 그 누구도 민물고기 음식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 가령, 한국인들이 가장 최고로 치는 민물고기 매운탕의 재료는 쏘가리, 꺽지, 메기, 빠가사리 등입니다. 그 중에서 가격은 귀한 쏘가리가 최고지만 맛은 빠가사리가 압권입니다. 그런데 빠가사리라는 방언으로 불리는 동자개와 눈동자재가 어떤 물에 사는지 안다면 결코 빠가사리 매운탕을 먹을 수 없습니다. 쏘가리도 다를 바 없습니다.   
여하튼 현장에 가서 민물고기를 채집해 보면, 특히 하류의 경우,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습니다. 위아래 지느러미가 다 무너져 있거나, 눈이 하나 뒤집혀져 있거나, 몸속에 큰 종양 덩어리를 갖고 있거나, 온 몸에 허연 곰팡이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 온 이 녀석들은 너무도 맑고 깨끗한 몸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부터 저는 어항 앞에 목욕탕 깔판을 갖다 놓고 그 위에 앉아 하루 종일 요 녀석들의 움직임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건강했던 그들은 제가 만들어놓은 최고의 환경에 와서, 그리고 제가 배합한 최고의 먹거리를 먹으며 하루가 몰라보게 쑥쑥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분노가 치미는 일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온몸에 화려한 빛을 띠고 입가엔 번식기의 상징인 추성을 갖고 있는 코드2 각시붕어 수컷, 이 녀석이 바로 악동 중의 악동이다. 그는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무차별 폭력으로 어항 속을 공포의 분위기로 만들고 어항 대부분을 자기 영역화하며 떵떵거리며 나의 어항의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다. ⓒ사진제공= 이충범 교수
 
납자루아과 물고기들은 대부분 성품이 온순합니다. 그런데 그 중 각시붕어는 각시처럼 고운 생김새와는 달리 의외로 성격이 까칠합니다. 저의 어항에서 잘 먹고 잘 자라던 각시붕어 수놈 한 마리가 다른 놈들에 비해 쑥쑥 크더니 온 몸에 화려한 혼인색을 입고부터 자기 영역을 넓혀가며 다른 물고기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먹이를 뿌리면 다들 몰려와서 남김없이 먹던 그들이, 이젠 먹이만 주면 서로 쥐어뜯고 물어뜯느라 정신이 없어 제가 준 정성스런 먹이는 어항 바닥에 하릴없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평화롭게 유영을 하던 녀석들이 어느 날부터 어항 구석에 집단으로 몰려서 서로 눈치를 보고 있고, 어떤 놈들은 쫓고, 반대로 어떤 놈들은 쫓기는 모습을 제게 보여주었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노력을 다해 최고의 환경을 만들어 키우는 자식들의 이전투구를 보고 있는 부모의 심정이 되었던 셈입니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뭔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물고기들의 모습은 정확히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호강에 받쳐 오강에 똥 눈다더니, 죽자 사자 일해서 최고학부 가르치고 재산 물려줬더니 돈 때문에 형제끼리 이전투구 재산싸움 한다더니, 바로 그 일이 제 어항에서 벌어진 것입니다. 어디 우리 이야기뿐이겠습니까? 솔로몬의 화려한 삶을 누리던, 그리고 최초의 독립왕조를 이루었던 유대민족의 남북분열, 제가 목격한 미국 한인사회의 지겨운 이권분열, 현재도 지속되는 한국사회의 국론분열, 이런 우리의 모습이 바로 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던 저의 증오는 이 아수라장의 분란을 일으키는 놈, 가장 큰 각시붕어 수놈, 코드2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이 악동의 등장으로 어항의 평화와 풍요로움은 한순간에 다 깨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녀석은 덩치가 커지자마자 자신의 큰 영역을 만들며 지나가는 모든 녀석들에게 시비를 걸고 무차별 폭력을 행사했고 그것이 저의 어항이 맞닥뜨린 바로 그 아노미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거대한 기업이 최고의 판매실적을 올리는 사원을 해고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 한 사람이 기업에 끼치는 유익은 전체로 봤을 때 매우 적지만 그의 부정적 감정의 대가는 그 5배가 넘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최고의 판매실적을 올리는 사원이 악질인 경우, 그 피해는 그 사원이 올리는 실적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직 내 악질은 구별하기 쉽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들의 기운을 빠지게 하거나 비참, 초라, 수치심을 느끼게끔 행동하고 작당하는 자, 둘째, 자신보다 힘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이 같은 행위를 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악질직원 1-2명 있다고 별일 있을까요?” 매일경제, 2010. 9. 3) 이 기사를 읽고 저는 바로 제가 다니는 직장을 바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느끼는 이 가슴의 먹먹함을 해결하고자 민물고기를 키우는데 이 녀석들 세계조차 이렇다는 것에 대해서 좌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드1, 흰줄납줄개 수컷, 그가 알 수 없는 종양으로 죽은 2014년 8월까지, 그는 보스가 아닌 나의 어항의 진정한 리더였다. 항상 하체가 붉게 타오르던 그의 몸의 색과 무늬는 가히 압권이었다. ⓒ사진제공= 이충범 교수
 
온순하기 이를 데 없는 흰줄납줄개 한 마리, 그가 악동을 공격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역시 코드2와 마찬가지로 매우 화려한 몸을 가진 수컷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코드2와 다른 것은 그의 온순한 성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의외로 그리 크지 않은 날렵한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코드2와는 달리 어항 뒤쪽의 일부만을 자기 영토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물고기들에겐 무관심하며 늘 조용히 자기 영토만을 돌보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그 외의 지역이나 먹이에도 그리 큰 집착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항 전체를 자기 영역화하며 떵떵거리는 코드1을 제압하기 시작하며 일단 어항 후면에서부터 코드2를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이 한참의 전투를 치룬 후 코드2는 그 큰 덩치로 코드1에게 쫓겨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어항 속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코드2는 이제 다른 물고기들처럼 자기 영역을 주장하지 않는 서민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물고기들은 코드1의 작은 영토에만 침범하지 않는다면 평화롭게 어항 어디든지 유영할 수 있고 먹이도 맘껏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드2가 폭력이란 권력을 가지고 아랫것들을 제어하는 보스였다면 코드1은 진정한 어항의 리더였습니다. 그리고 어항 속은 이렇게 평화를 되찾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초여름 어느 날, 이런 권력다툼이 한낮 무의미한 놀음임을 입증하는 한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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