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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 7 다종교세계를 이루는 ‘종교 간 관계’와 그 얽힘
정재현의 신앙성찰

입력 Aug 26, 2015 03:44 AM KST
▲정재현 연세대 교수(종교철학) ⓒ베리타스 DB
몇 차례에 걸쳐 서론을 나누었던 글 ‘다종교세계로의 나들이’는 여러 종교들이 함께 있는 상황을 살피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락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그것도 그저 추상적 인간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기라는 인간’을 살피자고 했습니다. 삶의 모든 면들이 그러하지만 종교에서 이게 더욱 진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되돌아 새기곤 했습니다. 충분하진 못해도 어느 선에서는 이야기를 옮겨가야 하기에 인간 이야기를 일단 마무리했습니다. 그렇다고 이제부터 덮어놓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자기성찰이 모든 종교 이야기에 착실하게 깔려야 할 터이니 필요한 때마다 다시 끌어낼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이게 다종교세계를 보는 기준이 되어야 하고 그 문제를 풀어갈 실마리라는 것을 주장하고자 합니다.

‘다종교세계’는 여러 종교들이 함께 공존하면서 혼재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종교이니 사람들은 그런 여러 종교들을 놓고 비교도 하고 사이가 어떤지에 대해 관심하게 됩니다. 사실 심심치 않게 종교들이 갈등하고 충돌하기 때문에 이런 관심은 한가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종교들 사이의 관계라는 문제는 그저 지적 유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종교간 관계’라는 말이 당연하지만 새삼스럽게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이게 새삼스럽다는 것은 옛날에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가 요즘 와서 문제로 대두되었기 때문입니다. ‘관계’라는 말이 오늘날에는 자연스럽게 들리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관계’라는 말이 특히 그리스도교의 배경이 되는 서구문화사에서는 더욱 생소했었습니다. 그리고 종교의 역사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욱 진했습니다.
고전적으로 보면 ‘관계’는 부차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무엇인가 영속하는 것을 붙잡으려는 종교적 동기가 신화를 거쳐 형이상학이라는 철학을 엮어내었으니 이 과정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중요했고 다른 것들과의 얽힘이라는 것은 이에 따라 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10개의 범주로 세계의 근원에 대한 정체규명을 시도할 때 영속하는 실체에 대해 관계는 그저 우연한 성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근세로 넘어오면서 인간이 둘러싼 세계를 대상으로 설정하는 주체로 부상하면서 주체와 객체의 관계라고 하는 구도가 기본적인 사고틀이 되었습니다. 관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관계는 관계이긴 한데 그 시작이 주체와 객체의 관계인지라 당연하게도 객체에 대해 주체가 주도권을 지니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일방적인 관계가 되고 말았지요. 주체가 주도권을 지니니 주관주의라고도 했습니다. 이에 비해서 그 이전 고중세 시대는 세계, 또는 신이 우선적인 지위를 지녔고 인간은 아직도 세계나 신을 그대로 보아내는 입장이라는 데에 머물렀기에 주도권이 세계, 또는 신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근세와 비교하자면 굳이 객관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관주의든 객관주의든 모두 일방적인 관계방식입니다. 말하자면 한 쪽이 주도권을 쥐고 다른 쪽을 끌어들이는 방식이지요. 이게 잘 나갔으면 계속 그렇게 갔을 터인데 그럴 수 없었습니다. 본디 일방적이라는 게 오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해서 결국 주도권의 횡포를 피할 길 없는 일방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아니 사실 주도권을 지닌 일방이라는 것이 대체로 ‘가진 자들’의 횡포일 터이니 견디다 못한 ‘못가진 자들’이 이에 대해 항거하고 절규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겠지요. 해서 우리 시대인 현대에 이르러 일방성을 넘어서는 쌍방성 또는 상호성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게 된 것입니다. 타자성, 혼종성 등등 오늘날의 화두는 이러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관계’라는 말이 지녀 마땅한 본 뜻을 점차로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그러다 보니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 ‘관계’라는 것이 생소합니다. 먼저 내가 있고 후에 남과 관계한다고 생각하는 관습에 오랫동안 젖어 살아왔는데, 오늘날 관계라는 것이 우리를 만들고 우리 삶을 엮어가고 있다고 하니 어리둥절하고 나아가 도리어 저항하게 됩니다. 그러나 솔직히 보건대, 우리는 이미 관계의 산물입니다. 생물학적으로도 그렇고 물리적으로도, 그리고 정신문화적으로도 이미 그러합니다. 인간이 관계의 산물일 뿐 아니라 그 삶이 관계로 엮여 있습니다. 영속하는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관계가 우리의 뿌리이고 줄기이며 몸통이고 열매라는 말입니다. 하면 인간과 그리도 뗄 수 없는 종교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래서 관계는 인간과 종교의 정체 분석을 위한 핵심적인 뿌리개념입니다. 이제 다종교세계의 틀인 ‘종교간 관계’라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마땅하지요. 그리고 이런 관심을 신학적으로 추린 분야가 바로 ‘종교신학’입니다. 해서 여기에서는 ‘종교간 관계’를 기축으로 하는 ‘종교신학’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를 하고자 합니다. 물론 종교신학은 다종교상황에서 그리스도교가 가야할 길에 대해 모색하는 분야입니다. 그런데 이 분야의 이름은 ‘종교’와 ‘신학’이라는 말이 붙은 것입니다. 연관이 있어 보이기도 하고 비슷해 보이기도 하니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멀리서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종교와 신학의 관계는 과연 어떠합니까? 신학의 긴긴 역사에서 ‘종교신학’이 신학의 한 분야가 된지는 불과 반세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굳이 따져 보면 2천년 중의 50년이니 1/40 정도입니다. 20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종교신학은 영어로 쓰면 theology of religions, 그래서 다시 번역하면 ‘종교들에 관한 신학’입니다. 그러나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신학(다른 종교들에서는 종학 또는 교학이라고 부르지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Christian theology of religions, ‘종교들에 관한 그리스도교 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여러 종교들이 공존하는 다종교상황에서 그리스도교의 자기정체성과 타자관계성을 어떻게 엮을 것인가 하는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려는 분야입니다.
그런데 ‘종교신학’이라는 말이 지닌 역사가 짧다는 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다종교상황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볼 때 현대 이전에 행해진 적이 없습니다. 현대가 시작되는 19세기 중엽부터 싹이 트더니 20세기 중엽에 비로소 구체적으로 제기된, 시대적 요청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 등장한 신학의 한 분야입니다.
좀 더 자세히 봅시다. ‘종교신학’ 혹은 ‘종교들에 관한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종교’라는 말, 더 나아가 ‘종교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신학은 어떤 신학입니까? 이슬람 신학, 유대교 신학도 아닌 그리스도교 신학입니다. 그리스도교 입장에서 ‘종교’라는 표현, 더 나아가 ‘종교들’이라는 표현을 요즘은 다소 자연스럽게 쓰지만 그리스도교 신학사에서 ‘종교’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쓰인지는 한 세대가 채 되지 않습니다. ‘종교’라는 표현이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언제, 어떤 식으로 등장했고 자리매김 했는지를 되돌아본다면, 대표적으로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의 『종교의 의미와 목적』을 살펴볼만합니다. 이 책 이야기를 잠시 해볼께요. 스미스는 물음을 던집니다. ‘종교’라는 명사와 ‘종교적’이라는 형용사 중 무엇이 먼저였을까요? 문법적으로 생각하면 어떤 명사가 있고 거기에 ‘~적’이 붙어 형용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 문명사의 과정에서는 ‘종교적’이라는 형용사가 먼저였으며 ‘종교’가 명사적인 실체로 자리 잡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 저작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라는 표현이 그리스도교 신학의 역사 속에서 지금 통용되듯이 사용되어 왔다고 가정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리스도교가 태동했을 때는 주변에 다양한 종교들이 있었습니다. 그 종교들과의 싸움 속에서 그리스도교를 옹호하는 방식으로, 즉 ‘호교론’의 방식으로 그리스도교는 신학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종교들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그리스도교는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갔습니다. 이는 사도들은 물론이고, 교부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대외적인 호교론으로 밖의 문제를 추스르고 나서 교부들은 이제 안쪽으로 눈을 돌려 안을 관리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소위 ‘교부학’입니다. 이처럼 대외적인 호교론과 대내적인 교부학은 분명하게 시대적 배경에 의해서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교론이 먼저고 교부학은 그 다음입니다. 밖을 먼저 의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지만 말입니다. 거기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중세로 넘어가면서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핍박받는 종교가 아니라 군림하고 지배하는 교황의 종교, 황제의 종교가 됩니다.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교는 전 세계를 향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세우고자 했으며, 그러한 동기 하에 체계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소위 ‘교부신학’에서 ‘스콜라신학,’ 교부들의 신학으로부터 학자들의 신학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면서 그리스도교는 하나의 유일한 종교가 되자 더 이상 ‘종교’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리스도교’라는 고유명사가 ‘종교’라는 보통명사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는 언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한 한 예를 들겠습니다. 1961년도에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수년 후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대학 4학년 때 10.26 시해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초, 중, 고, 대학의 교육기간을 박정희와 함께 보낸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 박정희는 고유명사였지만, ‘대통령’이라는 단어를 대치할 수 있는 보통명사이기도 했습니다. 교육과정 전체를 지배하는 ‘나라님’의 이름은 곧 ‘나라님’이지 않았겠습니까? 당시 저에게 박정희는 보통명사이자 고유명사였던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요즘에는 그런 표현을 잘 쓰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사람들이 ‘몽고의 서울이 어디냐?’는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여기서 ‘서울’이라는 고유명사는 수도라는 보통명사를 대치합니다. 앞서 언급한 내용은 이것과 비슷한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고대로부터 중세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는 그리스도교의 등장이지만, 중세로부터 근세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는 과학의 등장입니다. 과학의 등장은 그리스도교가 지배하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지리상의 새로운 발견은 다른 문화, 다른 종교를 만나게 했습니다. 이러한 ‘다름’들을 만나면서 황제의 종교, 교황의 종교였던 그리스도교가 보인 1차적인 반응은 ‘다름’을 배제하는 것, 즉 배타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근세의 시작은 ‘배타’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타자가 없다가 타자가 생기니, 일단 배제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그렇게만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싹텄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타자와 이런저런 관계를 맺게 되는 것, 그 관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방식으로 사고의 틀이 바뀌었습니다. 18세기는 ‘사회의 세기’이기도 했는데 이 시기에 일어난 소위 사회명목론, 사회실재론은 중세 때 일어났던 보편논쟁에서의 실재론 대 명목론의 사회적 재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의 논쟁들은 결국 타자의 위상을 다시금 설정할 필요성과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급기야 ‘역사의 세기’인 19세기에 들어서는 역사의 진행과정에 눈을 돌리게 했습니다. 이 진행과정은 ‘점진적 발전’으로 파악되어 종교 역시 발전의 도상에서 단계적으로 파악되면서 타자와의 관계에 혁명적인 전환이 일어납니다. 그 이전에 떠올리지 않았던 범주들이 등장하면서 관계에 전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대 중세는 ‘초자연’이 기본 범주였지만,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자연’으로 범주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자연’이 기본 범주가 되면서 인간이 겪어냈던 그 과정 속에서 더 이상 타자는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경험의 축적이 사회로, 역사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고 그것이 18-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자-타 관계는 좀 더 복잡한 방식으로 엮어졌습니다. 그랬을 때 유일한 ‘하나의 종교’였던 그리스도교는 ‘하나’라는 것에 결정적인 위협을 받았고 하나가 아니라 ‘다른 것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할까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종교적’이라는 형용사는 명사적인 실체화의 과정을 전개합니다. 물론 이전에도 어의적으로 ‘종교’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이 맥락에서 여러 종교들 사이의 관계라는 새로운 시대의 과제를 요청받아 실체적인 뜻으로, 명사로서, ‘종교’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근세 이후부터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로서는 뼈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유일한 종교가 아니라 여러 종교들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두 단계의 충격을 받았는데, 일차적인 충격은 ‘그리스도교’라는 표현에 ‘종교’라는 보통 명사를 들이대었다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학문으로서 종교학은 19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그저 한 세기 반밖에 되지 않은 셈입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리스도교’라는 고유명사에 대해서 ‘종교’라는 일반명사를 들이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즉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상황을 접하게 된 것도 이천년이라는 긴 역사에 비하자면 상대적으로 짧다고 할 정도로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종교’라는 말이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는 아직도 생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신학이 종교학에 대해서 과민반응을 보이는 데에는 이런 연유도 작동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차적인 충격에 이어 이차적인 충격은 ‘종교’가 그저 보통명사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종교들’이라는 현상으로 들이닥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를 ‘종교’로 부르는 것도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데 게다가 종교‘들’ 중 하나가 되었으니 갈수록 태산이 된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그리스도교는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종교신학은 바로 이 문제를 고민합니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듯이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 속에서 이러한 일을 겪은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신학은 여전히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작업을 먼저 시작한 것은 당연히 서구인들입니다. 여기서 ‘당연히’는 ‘옳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피함’을 의미합니다. 서구인들이 그리스도교 자체를 옹호하고 정립하기 위해, 일종의 거래 논리로 종교신학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진되면서 나름대로 한계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은 다른 종교들과의 관계를 말하면서도 너무도 서구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방식으로 하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도적이기도 했지만 아주 오래된 습관이어서 이것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1세대 종교신학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 제2세대 종교신학입니다. 2세대 종교신학은 서구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비서구에서 개진되는데, 나아가 그리스도교만이 아니라 비그리스도교 영역에서도 펼쳐집니다. 한반도의 상황을 살아가는 우리는 시대적으로나 상황적으로도 제2세대 종교신학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때문에 여기에서는 제1세대 종교신학이 개진해 온 이야기를 먼저 살피고, 그 다음 비서구권, 비그리스도교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제2세대의 종교적 성찰까지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1세대 서구 그리스도교인들이 개진한 종교신학의 첫 번째 단계, 즉 타자를 만난 뒤 일어난 첫 번째 반응은 앞서 잠시 언급했듯 타자를 배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생리적인 본능입니다. 배타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배타는 본능입니다. 여기에 무슨 도덕적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본능에 계속 이런저런 비본질적이고 비당위적인 옷이 입혀지기 때문에 옹호되고 정당화되는 과정들이 문제시되고 반성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 뒤 사회, 역사라는 범주를 거치면서 배타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싹텄고, 타자를 부분적이고 지엽적인 가치라도 있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면서 ‘포섭’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토대로 형성된 것이 바로 ‘포괄주의’입니다. 100점짜리 종교인 그리스도교가 80점짜리 종교인 불교, 60점짜리 종교인 이슬람교, 20점짜리 종교인 샤머니즘을 다 안에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식입니다. 다만 이 종교들은 한참 모자라니 그만큼 교육이 필요하다는 식입니다. 이렇게 한 줄로 세워놓는 방식에 대해 현대에 들어서는 다양한 반향이 일어났고, ‘한 줄에서의 높낮이 가늠’이 아니라 ‘여러 줄 세우기’라는 주장이 등장하는데 포괄주의가 여기까지 가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전개는 ‘다원주의’라는 이름으로 시작됩니다. 물론 다원주의라는 말은 일률적으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버전으로 보자면 배타주의, 포괄주의에도 여러 버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버전들이 지닌 다양성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원적 다양성의 버전들이 다원주의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으로 돌아와서, 한국의 그리스도교는 비서구이면서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 안에서 그리스도교 인구는 천주교와 개신교, 정교회를 다 합쳐봐야 1/4입니다. 3/4은 비서구이며 비그리스도교인인 것입니다. 비서구이면서 비그리스도교적인 문화권 아래 비서구 그리스도교도인 한국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있어서 종교 간 관계구성의 바람직한 모형은 어떤 것일까요? 2000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그리스도교가 곧 종교이고 종교가 곧 그리스도교였던 서구 동네 사람들이 자기네들의 종교적 정체성 정립을 위해 만들었던 종교신학의 배타, 포괄, 다원 이야기를 그대로 에누리 없이, 여과 없이, 변형 없이, 채색 없이 우리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종교신학 2세대의 작업에 더 깊고 밀접하게 관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 종교신학의 정체와 배경, 1세대에서 2세대에 걸친 모습을 대략적으로 개관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앞으로 할 이야기를 대략 개괄해 보겠습니다. 먼저 할 것은 종교간의 관계 유형의 논리적 근거와 역사적 배경입니다. 여기서는 1세대 이야기, 즉 서구 그리스도교에서 개진된 종교간 관계에 대한 유형을 다룹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서 다루는 것은 복음주의입니다. ‘복음주의’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상은 배타주의입니다. 배타주의로 통칭되는 그룹이 자기 스스로를 배타주의라 부르겠습니까? 그것은 소위 정통에서 소위 사이비라 부르는 동네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사이비라 부르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입장은 그 입장대로 적극적으로 읽어야 마땅하므로, ‘복음주의’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이 흐름도 세밀히 살피자면 20세기 전반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을 때 복음주의 논쟁의 중심에 서서 ‘종교신학’의 출현 가능성을 예고하면서 미리부터 그것을 평정하겠다는 헨드릭 크레머의 방대한 작업을 참고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보다도 현재 활동하고 있는 최신의 복음주의를 살핀다는 의미에서 알리스터 맥그레스의 저작을 살핍니다. 포괄주의 흐름을 알기 위한 텍스트로는 김승철 교수가 번역하여 편집한 슈바이처, 트륄치, 라너의 논문을 살핍니다. 다원주의에 관한 텍스트로는 폴 니터의 글을 살핍니다. 이렇게 해서 1세대 이야기, 서구 그리스도교가 전개한 소위 세 가지 유형을 살핍니다.
그 다음으로는 제2세대, 비서구 비/그리스도교의 이야기를 살핍니다. 여기서는 라이문도 파니카의 텍스트를 읽는데, 파니카는 힌두교와 로마 가톨릭 사이를 오락가락 했습니다. 비서구 그리스도교인이었다가 비서구 비그리스도교인이었다가 했습니다.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삶 속에서 일종의 종교적 실험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씨름이 반영된 그의 텍스트 속에서 우리는 1세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리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통찰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 대목에서 할 것이고 미리 말씀드리자면 그에게서 엄청난 지혜와 깨달음을 읽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물론 이와 호응하는 우리 동네의 이야기들도 함께 살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간략하게나마 앞으로 전개할 각론에 대한 개괄을 해 보았습니다. 이제 서론을 마무리하고 다음부터는 각론으로 들어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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