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타스

[기고] 주기도문(Vaterunser) 해설(IV)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입력 Feb 03, 2016 02:07 PM KST

kimyounghan
(Photo : ⓒ베리타스 DB)
▲복음주의 신학자 김영한 박사

VII. 우리에게 잘못한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

1. 용서는 상처 받음과 보복의 악순환을 해결하는 길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마 6:12). 이 청원 기도 대목에서 예수님은 인간 삶에서 일어나는 허물, 잘못과 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에 대하여 가르치고 계신다. 우리 인간의 삶은 가정, 친구, 직장, 사회에서 발생하는 인간들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회생활에서 인간들 사이에 불가피한 관계의 손상이 발생한다. 이는 욕심이나 탐욕으로 인하여 의도적으로 발생하기도 하고 무의도적인 행위가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도 있다. 남에게 죄를 저지름으로써 죄과가 쌓이게 된다. 그리하여 상처를 준 잘못이나 죄과에 대한 보복의 감정이 일어나게 된다. 보복하게 되면 당한 자는 다시 이에 대한 보복을 하게 되며 상처 받음과 보복의 악순환이 생기게 된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그 해결의 길을 제시해주고 계신다. 상대방이 나에게 범한 죄과에 대하여는 보복하여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통하여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죄는 복수를 통해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용서로써만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은 그에게 범죄한 피조물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는 분이시다. 용서는 복음서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다음같이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분쟁하는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예배를 드릴 수 없다.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는 교회와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상달되며 그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고 영광을 받으신다.

2. 용서의 힘은 예수로부터 온다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느냐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회수를 철폐하시면서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가르치신다(마 18:23-35).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한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고 한 달란트는 약 6천 데나리온이다, 마 20:2)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고 옥에 가두는 것을 듣고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빚을 전부 갚도록 하였다는 내용이다. 동료와 타자에게 의도적으로든 부지중이든 허물과 죄를 범하는 우리들은 먼저 우리에게 허물과 죄를 범한 우리 동료들과 타자들의 허물과 죄과를 용서해야 한다.

죄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구체적인 현실이다. 죄가 가져온 상처와 파괴는 성찰과 치유로 극복되어야 한다. 용서하라는 것은 피해를 당하고 상처받은 일에 대하여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묵살하라는 것이 아니다. 용서에는 값이 든다. 당한 자가 그 악을 자기 안에서 사랑으로 태워 없애고 스스로 새로워져야 한다. 이 과정에 그 잘못한 사람을 끌어 들이고 그에게 용서를 선언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악을 용서라는 선으로 이기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진정으로 용서해 줄 수 없고 오직 인간으로 오신 예수만이 용서해 줄 수 있다. 라인홀드 슈나이드는 말한다: "악은 천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것은 권력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사랑의 얼굴은 하나뿐이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Reinhold Schneider, Das Vaterunser, 68). 여기서 우리는 기독론적 기도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고난 속으로 내려와 죄의 용서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우리 죄를 대속해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때 못 박는 자들을 위하여 용서하시고 기도하신 모범을 보여주셨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24).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4-45). 이러한 청원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용서라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받으며 예수의 사랑과 용서를 실천할 수 있다.

VIII.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1.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마 6:13a). 예수님은 우리가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해달라는 청원 기도를 가르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지 아니하신다. 사도 야고보는 다음같이 말한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약 1:13). 예수님은 복음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로 나가셔서 마귀에 의하여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 4:1). 예수님은 40일간 인간이 당하는 빵의 시험, 명예의 시험, 세상 영화의 시험을 당하시고 말씀으로 그것들을 이기셨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의 성정을 아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예수님은 악마의 시험을 받으시고 이김으로써 시험 가운데 있는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악마는 "참소하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형제들을 고발한다"(요 12:10). 구약의 욥기에서 보면 마귀는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 욥을 하나님 앞에 참소한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욥 1:9-11). 하나님은 마귀가 욥을 시험할 것을 허락하시나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라고 명하신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탄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욥 1:12).

시험이 올 때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그것을 이겨내려고 하지 말고 우리 눈을 그리스도 은혜 안에서 항상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고정시켜야 한다. 3세기 교부 키프리안은 다음같이 피력한다: "원수는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기 전에는 우리에게 아무런 해도 끼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정성, 그리고 우리의 눈길은 모두 마땅히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Schneider, 25).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패할 수밖에 없으나 십자가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신 그리스도의 은혜로 우리는 사탄을 이길 수 있다.

2. 마귀의 시험을 믿음으로 이겨내야 한다

마귀의 시험이 올 때 우리는 믿음으로 이겨 낸다. 마귀의 큰 시험의 경우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결국 이겨내나 그 극복 과정에서 우리는 시련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을 통하여 우리는 인격적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신앙이 더욱 깊어진다. 좋은 포도주가 되려면 포도즙이 발효해야 하는 것처럼 시험과 시련 속에서 우리는 낮아지고 고통을 당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우리의 신앙 인격은 정화(淨化)되고 변화된다. 시련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을 정화하고 포기하고 고통 가운데서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 속에서 사랑을 배운다. 사랑은 성숙과 온전으로 가는 길이다.

하나님은 시험 가운데 우리와 함께 하시고 통과하도록 도우신다. 그리고 우리가 감당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우리는 섰다고 자만하지 말고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지키고 넘어지지 않을까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우리는 교만하지 않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말씀의 묵상과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교만과 명예와 세상의 영화가 주는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나님 앞에 청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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