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더 글로리>가 화제다.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를 알려주는 ‘플릭스패트롤' 집계 결과 7일 <더 글로리>는 글로벌 순위 5위에 올랐다.
<더 글로리>는 복수극이다. 학창시절 박연진(임지연) 일당에게 심하게 폭력 피해를 당한 문동은(송혜교)이 성장해 가해자들을 복수한다는 게 이야기의 뼈대다.
드라마를 아직 접하기 전이라면, 얼핏 이런 설정이 과도하지 않나 하는 인상이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반응은 의외로 좋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회차를 거듭할수록 문동은을 응원하게 됐고, 가해자들을 응징할 때 마다 쾌감을 느꼈다.
어쩔 수 없이 지난 학창시절 기억을 꺼내야겠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나'는 문동은처럼 매일 같이 얻어맞으면서 학교생활을 했다.
그래서 이 학교를 벗어나는 일만 꿈꿨다.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학교에 오시겠다던 부모님을 극구 오지 마시라고 말렸고, 식을 마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 진학 후 한 동안 가해자들을 가장 가혹한 방식으로 응징하겠다는 마음에 사로잡힌 나날을 보냈었다.
적어도 나로선 문동은의 복수극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 셈이다. 이 드라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 이들도 한결같이 지난 날 ‘당한 게' 많았다고 털어 놓는다.
이 드라마가 주제로 잡은 학교폭력, 줄여서 학폭은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부조리 중 하나다. <더 글로리>가 그리는 학폭은 실로 끔찍하다.
주인공 문동은이 학창시절을 보냈던 시절은 2000년대 초반.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학폭 가해자들은 언론에 등장한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학폭 수위는 이제 단순 폭력을 넘어 범죄로까지 진화한 상태다. 이제 문동은이 현실에 등장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지은 죄 회개해서 구원 받았다? 정말로?
여기서 또 하나 부조리 코드가 등장한다. 바로 ‘교회'다. 문동은을 괴롭혔던 가해자 중 한 명인 이사라(김히어라)의 아버지는 제법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고, 이사라는 친구 박연진과 교회 나가 기도하기도 한다.
이사라의 구원관은 나름(?) 신실해 보인다. 문동은에게 거액을 건네주며 하는 이사라의 말엔 그의 구원관이 잘 엿보인다.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 받았어."
이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교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건 아니다. 이사라는 그저 메인 캐릭터를 받쳐주는 부캐릭터다. 하지만 이사라란 캐릭터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 이후 최근까지 한국 대중문화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응축해 보여준다.
지난 2019년 9월부터 11월까지 KBS 2TV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입양아를 소재로 했는데, 주인공 동백이를 입양한 이들은 교회 목사 부부다. 드라마는 은연 중에 이들 목사 부부를 겉다르고 속다른 위선자로 그린다.
‘넷플릭스' 콘텐츠는 더욱 노골적이다. 전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아예 개신교 교회에서 흔하게 나오는 기도를 대놓고 디스한다. 또 <수리남>에선 마약상이 신분세탁 수단으로 목사직을 선택한다.
과연 이런 설정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되어서 일까?
그렇지 않다. 과거 끔찍한 학폭을 저질렀음에도 낯빛하나 변화 없이 "회개하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이사라의 캐릭터는 한국 교회에서 흔하게 접하는 값싼 용서의 복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한국 교회가 설파하는 값싼 용서의 복음이 오히려 부조리를 부채질한다는 지적은 늘 있어왔다. 문제는 이런 값싼 용서의 복음이 여전히 만연해 있고 교회는, 그리고 목회자는 전혀 변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점이다.
현실을 살펴보자. 정치인·법조인 등 공적 영역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진 공인이 직위를 이용해 실로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교회에 출석하고, 두 손 모아 기도하며, 화해와 용서를 입에 올리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퍼지면 교회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다. 학력위조 의혹이 대법원을 통해 인정된 대형교회 목사가 타 교단 계열 종합대학 이사장으로 취임해도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다.
이런 교회를 세상이 어떻게 바라볼까?
‘넷플릭스'는 전세계인이 접속해 콘텐츠를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한국 영상 콘텐츠는 전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언론이나 대중문화 콘텐츠가 교회를 부정적으로 그리면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일관했고, 심지어 집단행동도 불사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그렇게 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구조다.
대중문화가 한국 교회를 부정적으로만 그린다고 불평하다가 개혁 기회를 놓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 대중은 더 이상 개신교 교회의 복음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더 글로리>에 한정해 보면, 회개하고 구원 받았다는 이사라에겐 눈살을 찌푸리는 반면 문동은의 복수극을 더 응원하는 이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