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더 글로리’가 고발하는 부조리, 교회도 빠지지 않았다

리뷰] ‘더 글로리’가 드러내는 ‘K-기독교’ 낯설지 않은 민낯

glory
(Photo : Ⓒ 넷플릭스)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

드라마 <더 글로리>가 화제다.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 순위를 알려주는 ‘플릭스패트롤' 집계 결과 7일 <더 글로리>는 글로벌 순위 5위에 올랐다.

<더 글로리>는 복수극이다. 학창시절 박연진(임지연) 일당에게 심하게 폭력 피해를 당한 문동은(송혜교)이 성장해 가해자들을 복수한다는 게 이야기의 뼈대다.

드라마를 아직 접하기 전이라면, 얼핏 이런 설정이 과도하지 않나 하는 인상이 들 수 있겠다.

그러나 반응은 의외로 좋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회차를 거듭할수록 문동은을 응원하게 됐고, 가해자들을 응징할 때 마다 쾌감을 느꼈다.

어쩔 수 없이 지난 학창시절 기억을 꺼내야겠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나'는 문동은처럼 매일 같이 얻어맞으면서 학교생활을 했다.

그래서 이 학교를 벗어나는 일만 꿈꿨다.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학교에 오시겠다던 부모님을 극구 오지 마시라고 말렸고, 식을 마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 진학 후 한 동안 가해자들을 가장 가혹한 방식으로 응징하겠다는 마음에 사로잡힌 나날을 보냈었다.

적어도 나로선 문동은의 복수극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낀 셈이다. 이 드라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 이들도 한결같이 지난 날 ‘당한 게' 많았다고 털어 놓는다.

이 드라마가 주제로 잡은 학교폭력, 줄여서 학폭은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부조리 중 하나다. <더 글로리>가 그리는 학폭은 실로 끔찍하다.

주인공 문동은이 학창시절을 보냈던 시절은 2000년대 초반.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도 학폭 가해자들은 언론에 등장한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학폭 수위는 이제 단순 폭력을 넘어 범죄로까지 진화한 상태다. 이제 문동은이 현실에 등장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다.

지은 죄 회개해서 구원 받았다? 정말로?

glory
(Photo : Ⓒ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엔 학폭 외에 또 하나의 부조리 코드가 등장한다. 바로 ‘교회’다.

여기서 또 하나 부조리 코드가 등장한다. 바로 ‘교회'다. 문동은을 괴롭혔던 가해자 중 한 명인 이사라(김히어라)의 아버지는 제법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고, 이사라는 친구 박연진과 교회 나가 기도하기도 한다.

이사라의 구원관은 나름(?) 신실해 보인다. 문동은에게 거액을 건네주며 하는 이사라의 말엔 그의 구원관이 잘 엿보인다.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 받았어."

이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교회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건 아니다. 이사라는 그저 메인 캐릭터를 받쳐주는 부캐릭터다. 하지만 이사라란 캐릭터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 이후 최근까지 한국 대중문화가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응축해 보여준다.

지난 2019년 9월부터 11월까지 KBS 2TV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입양아를 소재로 했는데, 주인공 동백이를 입양한 이들은 교회 목사 부부다. 드라마는 은연 중에 이들 목사 부부를 겉다르고 속다른 위선자로 그린다.

‘넷플릭스' 콘텐츠는 더욱 노골적이다. 전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아예 개신교 교회에서 흔하게 나오는 기도를 대놓고 디스한다. 또 <수리남>에선 마약상이 신분세탁 수단으로 목사직을 선택한다.

과연 이런 설정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왜곡되어서 일까?

그렇지 않다. 과거 끔찍한 학폭을 저질렀음에도 낯빛하나 변화 없이 "회개하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이사라의 캐릭터는 한국 교회에서 흔하게 접하는 값싼 용서의 복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한국 교회가 설파하는 값싼 용서의 복음이 오히려 부조리를 부채질한다는 지적은 늘 있어왔다. 문제는 이런 값싼 용서의 복음이 여전히 만연해 있고 교회는, 그리고 목회자는 전혀 변하려는 마음이 없다는 점이다.

현실을 살펴보자. 정치인·법조인 등 공적 영역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진 공인이 직위를 이용해 실로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교회에 출석하고, 두 손 모아 기도하며, 화해와 용서를 입에 올리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퍼지면 교회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뿐만 아니다. 학력위조 의혹이 대법원을 통해 인정된 대형교회 목사가 타 교단 계열 종합대학 이사장으로 취임해도 아무런 문제제기가 없다.

이런 교회를 세상이 어떻게 바라볼까?

‘넷플릭스'는 전세계인이 접속해 콘텐츠를 공유하는 플랫폼이다. ‘넷플릭스'에 올라온 한국 영상 콘텐츠는 전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높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언론이나 대중문화 콘텐츠가 교회를 부정적으로 그리면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일관했고, 심지어 집단행동도 불사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그렇게 하고자 해도 할 수 없는 구조다.

대중문화가 한국 교회를 부정적으로만 그린다고 불평하다가 개혁 기회를 놓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이제 대중은 더 이상 개신교 교회의 복음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더 글로리>에 한정해 보면, 회개하고 구원 받았다는 이사라에겐 눈살을 찌푸리는 반면 문동은의 복수극을 더 응원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활 luke.wycliff@veritas.kr

좋아할 만한 기사
최신 기사
베리타스
신학아카이브
지성과 영성의 만남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16세기 칼뱅은 충분히 진화론적 사유를 하고 있었다"

이오갑 강서대 명예교수(조직신학)가 「신학논단」 제117집(2024 가을호)에 '칼뱅의 창조론과 진화론'이란 제목의 연구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정태기 영성치유집단이 가진 독특한 구조와 치유 의미 밝혀

정태기 영성치유집단을 중심으로 집단리더가 구조화된 집단상담 프로그램에서 무엇을 경험하는지를 통해 영성치유집단이 가진 독특한 구조와 치유의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김학철 교수, "기독교 신앙인들이 진화론 부정하는 이유는..."

연새대 김학철 교수(신학과)가 상당수 기독교 신앙인들이 진화론을 부정하고 소위 '창조과학'을 따르는 이유로 "(진화론이)자기 신앙의 이념 혹은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모호성을 극복하는 원효의 체상용의 삼위일체론

아우구스티누스 사상과 원효의 체상용의 불교철학 사상을 비교 연구한 글이 발표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손호현 교수(연세대 신과대학)는 얼마 전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해 창조 신앙 무력화돼"

창조 신앙을 고백하는 한국교회가 개인 구원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신앙이 사사화 되면서 연대 책임을 물어오는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현실 앞에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마가복음 묵상(2): 기독교를 능력 종교로 만들려는 번영복음

"기독교는 도덕 종교, 윤리 종교도 아니지만 능력 종교도 아님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자의 실존적 현실이 때때로 젖과 꿀이 흐르는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특별기고] 니체의 시각에서 본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무신론자", "반기독자"(Antichrist)로 알려진 니체는 "유대인 문제"에 관해 놀라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유대인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영적인? 무종교인들의 증가는 기성 종교에 또 다른 도전"

최근에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무종교인의 성격을 규명하는 논문이 발표됐습니다. 정재영 박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종교와 사회」 ... ...

Warning: addcslashes() expects exactly 2 parameters, 1 given in /home/hosting_users/veritasnews/www/views/main/inner2023/archive.php on line 16

"신의 섭리 숨어있는 『반지의 제왕』, 현대의 종교적 현실과 닮아"

『반지의 제왕』의 작가 톨킨의 섭리와 『반지의 제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숭실대 권연경 교수(성서학)는 「신학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