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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교회의 교회주의와 한국교회
[텍스트 속으로] 양명수 교수의 논문 〈한국 기독교의 특징에 관한 신학적, 철학적 고찰〉 ③

입력 Jan 25, 2023 07:16 PM KST

한국에 기독교가 전해진 지 이제 14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국교회는 그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공동체성이다. 물론 공동체성은 어떤 집단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토양은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에 비해 집단주의적인 성격이 보다 강하고, 여기에 한국인들의 종교적 열정까지 더해져, 한국교회의 공동체성은 다른 나라와 차별성을 갖게 되었다. 이 공동체성을 비판적으로 접근해보면 우리는 '교회주의'에 이른다.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성과 '교회주의'는 어떻게 다른지, 또 '집단'과 '개인'의 건강한 양립은 어떻게 가능한지 등의 문제들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찰해야 한다.

양명수 교수가 그의 논문 〈한국 기독교의 특징에 관한 신학적, 철학적 고찰〉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나라 교회가 서양의 중세 교회와 비슷한 '교회주의'가 있음을 밝혔다. 그의 논의 중 '개인과 집단의 관계' 그리고 '배타적 집단'에 대한 내용을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한다.

먼저 개인과 집단의 관계 문제는, 보편적인 주제이다. 사람은 보편적으로 집단[공동체]를 통해 자기를 확인하려는 의식이 있다. 공동체가 커지고 힘이 있어지면 개인들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개인의 존엄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성되는 공동체는 집단 이기주의의 자리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교회공동체에서는 개인의 존엄성의 문제가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가?

양명수 교수는 먼저 한국의 공동체성과 서양의 공동체성이 다름을 설명한다. 서양은 로고스와 같은 보편에 대한 철학 개념이 발달했고, 여기에 그리스도교의 유일신론이 연결되어, 교회가 강력한 공동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사상적 토대를 가지고 있었다. 이 면이 강력하게 가시화된 것이 중세교회이다. 그러나 중세는 말기에 실재론과 유명론의 논쟁을 통해 개인의 자리를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 양 교수는 "유명론 덕분에 서양은 중세의 보편 기독교주의의 집단성에도 불구하고, 근대로 넘어오면서 개인의 존엄성을 법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이에 비해 한국의 공동체성은 "개체가 살기 위해 공동체를 형성하는 자연 공동체성"에 가깝다고 양명수 교수는 설명한다. 한국에도 보편에 대한 논의가 없진 않았다. 이를테면 우주의 이치(理)나 인류 보편 본질(性)을 말하는 성리학이다. 그러나 성리학은 종교성은 없는 도덕형이상학이었기 때문에 민중의 삶에 침투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한국은 공동체성이 발달하였는데, 위의 환경을 이유로 한국의 공동체성은 종교적이지는 않은, 생존을 위한 '자연 공동체성'에 가깝다고 양 교수는 분석한 것이다. 그리고 성리학의 개념에 반대하여 정약용을 위시한 실학사상이 나왔지만 여전히 주류적 흐름은 집단을 통해 개인 지위를 확립하는 집단주의였다.

이와 같은 '자연 공동체성'을 토양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에 개신교가 들어왔을 때, 교회는 이 자연 공동체성을 기반으로 한 집단주의로의 발전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양의 실재론과 유명론과 같은 치열한 논쟁 과정의 역사가 없었기에, 집단에서 개인의 자리는 명확하지 않았다. 양명수 교수는 "생존적 관점에서 공동체성을 지니고 있었던 우리 민족은 기독교의 유일신론에 접하면서 구원받은 자의 집단 형성에 열심"을 내었지만 서양과 같은 유명론의 견제가 우리에게는 없었기에, 개인은 "여전히 공동체를 통한 자기 확인이 중요"한 상태를 유지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개인적 존엄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동체는 집단 이기주의가 될 수 있다. 집단 이기주의는 '배타적 공동체'가 된다.

한국교회가 가진 배타적 공동체의 모습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양명수 교수는 교회가 자기들은 교회 안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교회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방적 전도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을 지적했다. 이것은 전도와 선교에 대한 열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교회 안의 사람들은 구원의 방주 안에 있는 양으로 생각하고, 교회 밖의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구원의 경계선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즉 교회를 물리적인 제도와 공간에 귀속시키는 관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양 교수는 폴 틸리히의 표현을 빌려 "영적인 유물론"이라고 밝혔다. "영적인 문제가 사물화된 제도의 문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교회의 메시지가 교회라는 공간과 제도에 갇힐 때, 교회는 배타적 집단이 된다.

양명수 교수가 한국교회를 중세교회와 비슷하다고 했을 때,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현재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중세의 교회로부터 개혁하여 나온 교회이다. 종교개혁은 중세교회의 집단주의로부터 항거하여, 신앙에서 개인의 자유를 확보한 사건이다. 양 교수는 "종교개혁은 교회주의를 버리고 복음주의로 옮겨가서 신과 인간이 직접 만나는 길을 터놓았"다고 설명한다. 한국 개신교도 물론 프로테스탄트 교회이다. 그러나 한국이라는 토양이 공동체적이지만 실재론과 유명론과 같은 집단과 개인 사이의 치열한 논쟁이 없었다는 점, 따라서 집단에서 개인의 자리가 희미하다는 점, 교회라는 공동체에 대하여 성숙한 비판의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점 등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최근 한국도 개인주의적인 성향인 세대들이 많아지면서 공동체성은 외면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시대에서 공동체성을 지니고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특정될 수도 있다. 교회가 앞으로 '배타주의'의 길을 갈지 '진정한 공동체'의 길을 갈지는 오늘날 우리가 어떤 스텝을 밟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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