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한을 "괴리"로 명명하고 통일이 아닌 "평정"의 대상으로 삼자 한반도 내 통일 개념이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평화통일 운동을 진행해 온 한국교회가 위축되지 말고 통일 개념의 확장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허충엽 박사(숭실대 일반대학원 기독교통일지도자학과 주임교수)는 최근 <기독교사상>(4월) 특집호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통일을 폐기하는 현 상황에서 한국교회 통일 개념을 '복음 통일'로 확대해서 사회의 공공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분단의 형태를 통일로 전환하는 역할을 감당할 것을 요청하고 한국교회 성도 특히 엠지(MZ)세대가 통일을 회피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복음 통일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먼저 허 박사는 남한을 가리켜 김정은이 "괴리" "평정"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데 대해 "이는 통일을 폐기하고 남한 영토를 완전히 정복하겠다는 의미로 바라볼 수 있다"고 했으며 또 "김정은은 '괴리'라는 용어를 사용해 '같은 민족에게는 핵무기를 쓸 수 없다'는 자신의 말을 번벅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허 박사는 "북한은 통일 폐기를 넘어 "남조선 괴리를 쓸어버리자"라며 '평정'이란 용어를 사용했다"며 "평정은 북한 정권마다 써온 용어로, '적을 쳐서 자기에게 예속되게 함'이란 의미이다. 김정은이 사용하는 수사만 보면 북한이 남한을 자신들이 빼앗긴 영토로 여겨 완전히 정복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치적 상황을 종교적 영역에서 논의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라고 밝힌 그는 이내 복음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종교가, 특히 한국교회가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논했다.
허 박사는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새로운 상황에 맞춰 통일에 대해 새로운 관점으로 좀 더 폭 넓은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교계가 통일이라는 개념을 좀 더 폭넓게 해석하면서 다양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적기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분단이 있는 곳에는 통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분단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한국 사회에는 다양한 유형의 분단과 갈등이 존재한다"며 "한국교회와 탈북민교회 사이, 한국교회와 다민족 이주자 간에도 있다. 이처럼 분단은 대한민국 사회의 공공 영역에 다양하게 존재한다. 북한이 통일을 삭제하는 이 시기를 맞아 한국교회는 다양한 형태의 분단을 아우르는 통일 개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전했다.
분단을 통일로 전환하는 기독교의 기준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히 한 허 박사는 복음 통일을 이루는 주체에 대해 설명을 이어가면서 구약의 대표적 설화 중 하나인 바벨탑 사건과 신약의 오순절 사건을 비교 분석했다.
먼저 바벨탑 사건에 대해 "공동체 형성을 잘못 시도한 예"라고 정의한 그는 "그들은(바벨 공동체)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이처럼 바벨은 중앙집권적인 전체주의 체제를 뜻한다. 하나님은 이를 보고 강림하셔서 그들의 언어를 뒤섞어비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셨다. 결곡 바벨 공동체는 언어의 혼돈으로 흩어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오순절 사건을 가리켜 "복음 통일을 잘 형성한 사례"라고 허 박사는 소개했다. 바벨 공동체는 "인간이 주체이고 상승 운동을 지향하는 공동체 형성"이었다면 오순절 공동체는 "성령이 주체이고 하강 운동을 지향하는 공동체 형성"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중앙으로 집중된 동질성 안으로 끌어올려 하늘을 뚫고자 한 바벨의 상승 운동이, 다양한 생명이 각각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와 같은 오순절 하강 운동으로 대체되었다"며 "주위를 사방으로 통제하는 중심의 탑은 각 사람 위에 내려오심으로써 모두를 충만하게 하시는 성령으로 대체되었다"고 했다.
이 밖에도 "바벨은 중심을 안정시키고 강화하기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보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고 주변에서 기운을 빨아들이려 했던 반면, 성령은 주변으로 기운을 쏟아부으시고 작은 사람들의 눈을 열어 전에는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셨다. 그들의 입으로 창조적인 예언의 말을 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권능을 부어 하나님 통치의 대리자가 되게 하셨다"고 허 박사는 덧붙였다.
이처럼 바벨 공동체와 오순절 공동체를 비교 분석한 허 박사는 논의를 종합하며 복음 통일 공동체 형성의 모형은 "인간이 신념과 이념으로 쌓아 올리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강인 접촉을 통해 깨어나 형성되는 공동체"라며 "하나님은 하강 운동의 형식으로 다가와 북한 동포들로 하여금 신성한 빛을 보게 하여 그들을 깨어나게 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에 복음 통일 운동으로 반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북한이 통일을 삭제하는 상황임에도 복음 통일 운동이 일어나도록 성도들을 복돋워야 한다"며 "온 성도가 깨어 일어나 복음 통일에 대한 꿈을 꾸자. 나아가 어두운 북한을 밝히는 다양한 창의적 사역에 참여해보자. 이를 통해 여전히 대치 중인 남과 북의 사람들, 남한 내에서도 이념과 정체성으로 서로 갈등을 겪는 사람들, 모두 한 자리에 둘러앉아 떡과 포도주를 나누며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역사가 펼쳐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허 박사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