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 이서영 교수(신약학)가 마가복음 10장 41절에서 45절에 나오는 '섬기러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한다'는 예수의 말씀에 대해 "제국에 맞서 예수는 제국의 폭력 아래에서 모욕적인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몸을 대속물로 내어놓아 지배권력의 폭정을 폭로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최근 「기독교사상」(8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 같이 밝히며 예수의 '대속'과 '섬김'은 "식민지 트라우마 때문에 제국의 권력을 모방하고 싶은 식민지 제자들의 정치적, 사회적 욕구를 비판하고, 지배받는 식민지 백성의 경험을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위한 대안적 가치로 옹호한다"고 주장했다.
'예수, 피해자가 되다:트라우마와 정치(막 10:41-45)'라는 제목의 글에서 그는 "제국의 폭정을 기억하는 제자들이 제국의 '첫째' 계급을 지향할 때, 그들의 다음 행보는 자신들이 당한 폭력과 억압을 모방하여 복수하는 것일 수 있다"며 "트라우마 피해자가 가진 하나의 환상은 복수를 통하여 외상 사건이 일으키는 "공포, 수치심, 고통을 제거할 수 있고,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겪은 해악을 인식"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가 권력을 잡았을 때 그 권력에 올라타 자신들이 당한 폭력과 위협을 같은 방식으로 행사하여 '꼴찌' 됨의 수치심을 해소하고 복수하는 상상을 펼쳤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복수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변화시킨다고 강조한 이 교수는 "복수하는 순간 피해자의 위치는 가해의 책임을 안고 사는 "가피해자"가 된다"며 "피해자가 가피해자로 될 때, 가해와 피해, 정의와 불의, 화해와 분리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이것들은 깊이 뒤섞이게 된다. 이 틈을 이용하여 악은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진실은 점점 가려지게 된다. 그리하여 어디서부터 정의, 화해, 공존을 주장해야 할지 미궁에 빠지고, '점점 더 많은 폭력을 사용하는 폭력의 상승과 나선형 구조'에 빠져든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제자들이 '가해자'로 변할 수 있는 순간 예수가 식민지 제자들의 폭력적인 정치적 욕구를 단호하게 바로 잡았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그들이 첫째가 되는 순간 피해의 역사와 정체성을 안고 사는 그들의 삶은 가해자 제국의 폭력과 죽음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라며 "제자들이 지켜온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지배와 폭력 이데올로기에 가려지고 둘의 구분은 모호해질 것이다"라고 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예수는 로마제국의 위협과 공포를 계속하여 목격해온 식민지 피해자들의 정치 사회적 위치를 지지하고, 그들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식민지민은 결코 첫째 계급이 될 수 없는 제국주의의 지배 질서를 통찰한 예수는, 제국이 할 수 없는 식민지민의 사회적 역할을 통해 식민지 제자들이 수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예수가 지배 이데올로기를 수용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그는 "예수는 로마제국의 피해자로서 수치와 굴욕의 삶을 살아가는 꼴찌 노예들이 첫째가 되는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질서를 이미 주장했다"며 "즉 예수가 노예적 섬김을 주장하는 것은 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이 회피와 망각의 역사에 묻히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국의 억압적 시스템을 반대하며, 지배받는 식민지 피해자들이 생존을 위하여 감당하는 역할을 긍정하고 그들의 정치 사회적 위치를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위한 자기 목표와 위치로 인정한다"며 "즉 피해자의 경험이 제국의 파괴적 질서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동력일 수 있다는 정치적 맥락을 드러내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예수는 섬김을 받는 위치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자신을 노예와 같이 섬기는 자의 위치로 전락시킨다"며 "예수는 자기 목숨을 식민지 피해자들을 위해 내어놓으며, 로마제국의 십자가에서 죽는 피해자가 된다. 왜냐하면 세상의 끝자리로 떨어진 제국의 피해자들을 살게 하고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들을 섬기는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발적 피해자가 된 예수는 섬김으로 자유와 구원을 위한 그들의 몸값을 대신한다"고 전하며 글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