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이후의 하느님 ㅣ 존 F. 호트 지음 ㅣ 박 만 옮김 ㅣ 한국기독교연구소 ㅣ 총 316쪽 ㅣ 1만 2천원
“하느님에 관한 우리의 생각은 찰스 다윈의 삶과 저서들이 나온 이후에는 그 이전과 똑같을 수 없게 되었다. 진화과학은 우리의 세계 이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이로 인해 세상을 창조하시고 돌보시는 하느님에 대한 인식은 이제 다윈과 그의 후예들이 말하는 바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존 F. 호트 |
조지타운대 석좌교수 존 F. 호트(Haught)는 ‘다윈의 도전’ 후 1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상계가 좌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우선 다윈의 과학적 후예들은 다윈이 열어 보인 세계의 지평을 창조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유신론 신앙의 최종적인 패배라는 결론을 얻을 뿐이었다. 신학 역시 진화의 풍요함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이해하는 데 실패, 진화론과 담을 쌓아왔다. 이러한 견해에 맞서 유신론적 진화론자인 호트는, 다윈의 진화론이 지닌 사유의 풍부함을 신학이 흡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진화신학(theology of evolution). 그는 “자연이 진화에 의해 이뤄졌다는 소식이 하느님에 대한 경외감을 드높일 수 없다는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또 오늘날 기독교의 하느님 이해는 “진화사상이 가지고 있는 뉘앙스와 연관되기에는 너무 협소하다”며 진화론에 발맞추어 기독교의 신 이해가 새로워져야 함을 역설한다.
그의 새로운 신 이해는, 하느님을 “선”과 “질서”로 이해하는 기존의 사고를 변혁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와 관련, “전통적인 자연신학이 말하는 선과 질서의 하느님은, 다윈이 올바르게 결론 내렸듯 생명과정의 우발성 및 혼란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다소 ‘위험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하느님이 질서의 원천만을 뜻한다는 사상은, 가장 기본적인 화석에 대한 정밀연구만으로도 의심스러워진다. 하지만 만일 하느님이 질서의 기원자가 아니라 새로움(novelty)의 혼란시키는 원천이라면 어떻게 될까? 더 나아가 우주가 단지 질서만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정(process)이라면 어떻게 될까? … 하느님이 이 과정에 어떤 계획이나 설계를 강요하기보다 그 자체로 창조의 기회를 갖도록 허용하신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우리의 개념을 수정한다면, 하느님에 대한 개념은 진화와 양립할 수 있다.”
진화론의 철학적 배경을 기독교의 틀 안에서 재구성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미래의 형이상학’이라는 개념을 차용한다. 이 개념은 ‘과거의 형이상학’이나 ‘영원한 현재의 형이상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이 중 ‘영원한 현재의 형이상학’은 플라톤의 이원론적 철학을 바탕으로 자연세계를 원초적 완전성의 불완전한 반영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한편으로 “영원부터 존재하는 완전성 속에 이미 실현된 것 이외의 그 무엇도 가져올 수 없다”는 판단으로 귀결되어, 새로운 창조에 대한 희망을 가로막는다.
호트는 “성경은 새로운 창조에 대한 희망을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종교적 전이해를 지배한 것은, 미래가 어떤 식으로든 현재를 침입하거나 변혁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의구심이었다”며, 진화 사상이 제시하는 ‘자연이 과정 중에 있다’는 새로운 역사적 감각을 받아들여, 미래에 우선성을 부여하는 형이상학으로 나아갈 것을 제시한다. 그는 이를 신앙과 연결해 설명하며 “신앙 경험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는 것은 ‘미래’다. 칼 라너가 그것의 절대적 깊이로 인해 이 미래를 ‘하느님’이라 불렀듯이, 우리 역시 그것을 하느님이라 부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종교적 실존은 우리를 진화적 과거와 생물학적으로 연결시키는 열정과 다시 한 번 결합되어야 한다”며 이에 “현대의 종교 사상은 다윈 이후의 세계(post-Darwinian world)로 완전히 옮겨가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