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특별기고] 호킹의 우주, 하나님의 우주

김기석 교수(성공회대, 신학과)

영국의 천체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새 책 ‘위대한 설계’(Grand Design)에서 우주를 탄생시킨 빅뱅은 신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우주 탄생에 있어 신의 개입을 부정하고 나섰다. 스티븐 호킹의 이 같은 주장으로 인해 과학자와 신학자 간 우주 탄생을 둘러싼 지구적인 논쟁이 촉발된 가운데 본지는 과학과 신학의 지속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있는 김기석 교수(성공회대 과학-생태신학연구소 소장)의 특별기고문을 싣는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한 과학자의 주장을 반박하는 한 신학자의 응답을 들어보자. - 편집자주

우주는 스스로 창조되었다?

▲김기석 교수(성공회대 신학과) ⓒ베리타스 DB

최근 우주의 기원을 둘러싸고 과학과 종교의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점화자는 다름아닌 영국이 낳은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이다. 그는 얼마 전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인기 있는 저술가인 레너드 믈로디노프와 함께 출간한 새 책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에서 “우주는 중력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과학은 신을 불필요하게 만든다”며 “창조주의 도움 없이도 물리학 법칙들이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와 같은 무신론적 입장은 그동안 우주의 기원을 논하면서 신의 역할을 인정하는 듯한 과거의 견해와는 비교된다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호킹 박사는 1988년 저작인 `시간의 역사`에서 "우리가 만일 완전한 이론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는 인간 이성의 궁극적 승리가 될 것이며 그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저서에서는 “중력과 같은 법칙에 의해 우주는 무(無)로부터 스스로 창조될 수 있으므로 굳이 신이 역할이 없어도 우주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다”라고 단언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있는 물리학자이며 범상치 않은 삶의 이력으로 인해 더욱 대중의 이목을 끄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러한 무신론적 견해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스티븐 호킹의 삶, 진흙 위에 피어난 연꽃 혹은 십자가를 통한 생명?

1942년 생으로 이제 70세를 바라보는 스티븐 호킹은 과학자 이전에 상상하기 어려운 깊은 고통과 좌절을 극복한 한 인간으로서 놀라운 삶을 보여준다. 그의 젊은 시절은 찬란하였다. 도시와 대학이 구분되지 않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는 옥스퍼드 타운 곳곳에 자리잡은 고색창연한 대학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곳 한 여름 풍경의 압권은 수많은 대학 건물과 캠퍼스를 감싸고 흐르는 작은 강(운하)줄기이다. 강물 위의 아치형 다리 옆에는 반드시 낭만적인 펍이 있어 강을 바라보면서 한가로이 차나 맥주를 마실 수 있고, 강물 위에는 어김없이 보트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넘친다. 이러한 풍경 속의 스무살 무렵의 스티븐 호킹은 바로 옥스퍼드 강물 위로 반짝이는 햇살처럼 전도유망한 물리학도였다. 그는 대학의 조정선수로 활동할 정도로 건강했으나 박사학위 과정을 밟던 21세 때 그만 루게릭 병에 걸리고 만다. 온몸의 근육이 위축되고 말라 비틀어지는 무서운 병이다. 정밀검사 결과는 더더욱 그를 절망케 하였다. 의사는 그에게 단 1~2년 밖에 살지 못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선언을 하였다. 이때 그에게는 사랑하던 여자 친구가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학업을 포기하고 여자 친구에게는 제 갈 길을 가라하고, 그리고 짧기 그지없는 인생의 남은 시간을 좌절과 원망 속에 보내면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런데 호킹은 다른 선택을 하였다. 비록 그들에게 얼마만의 시간이 허락될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조속히 박사학위를 마치기로 결심하였다. 일자리를 얻으려면 학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거의 천수를 누림으로써 수명에 관한 의사의 진단은 틀렸음이 판명되었지만, 루게릭 병은 그의 몸은 점차로 무력하게 만들어 결국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는 겨우 40킬로그램의 몸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가 특별히 제작한 컴퓨터를 이용해 눈을 깜박거려 겨우 문장을 만드는 힘겨운 작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  1985년 폐렴으로 기관지 절개수술을 받아 가슴에 꽂은 파이프를 통해서 호흡을 하고 휠체어에 부착된 고성능 음성합성기를 통해서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러한 그는 분명 육신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나약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주의 기원과 과정을 탐구하는 지적 작업에 있어서 그는 이 지구상 누구보다도 가장 심오하고 가장 강력한 사고력을 지닌 사람이다. 루게릭 병을 선고 받은 후 더욱 연구에 매진하여 로저 펜로즈와 함께 ‘특이점 정리’를 통하여 블랙홀 이론을 정립하였고, 1973년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라는 문구로 표현되는 ‘블랙홀 증발 이론’, 그리고 양자역학과 상대성원리를 결합하여 빅뱅 우주론을 더욱 정교하게 설명하는 ‘양자우주론(量子宇宙論)’ 등 소위 현대물리학에 3개의 혁명적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리하여 세계물리학계는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물리학자로 호킹을 꼽게 되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아 그는 1974년 영국왕립학회 회원이 되고, 1979년 뉴턴과 디랙에 이어 케임브리지대학 루카시언 석좌교수로 선임 되었다. 스티븐 호킹의 삶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존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섭리를 보여주는 종교의 원리”와 참으로 통하는 데가 있다. 이러한 그가 과학의 이름으로 신을 부정하는 것 또한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주에 대한 완전한 이론을 갖게 되면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스티븐 호킹이 우주의 기원에 관한 과학적 설명이 신의 개입을 불필요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빅뱅 우주론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현대과학은 우주가 약 137억년 전 하나의 특이점에서 거대한 폭발(빅뱅)로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소위 ‘빅뱅 우주론’이라 부르는 이 이론에 따르면 이 우주는 오래 전 아주 높은 밀도와 온도 상태에 있던 하나의 점(singular point)이 폭발하여 점점 공간이 팽창하고 온도가 내려가 물질이 형성되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과거 뉴턴은 이 우주가 무한한 공간 속에 무한한 별이 분포되어 있을 것이라 가정하였다. 그런데 뉴턴이 상정한 우주론의 문제점은 왜 모든 별들이 만유인력에 따라 임의의 한 점으로 모여들지 않는가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난문제는 상대성 원리를 발견한 아인슈타인에게도 골칫거리였는데, 아인슈타인은 인위적으로 자신의 방정식에 ‘우주상수’를 끼워 넣음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다. 우주상수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인 중력과 달리 질량을 가진 물체가 서로 밀어내는 힘인 척력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그러나 허블에 의해 먼 거리의 은하들의 ‘적색편이’ 현상이 관측되었고 이는 우주 내의 모든 은하들이 서로 멀어지고 있음을 지시하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멀리 떨어진 은하일수록 더욱 빨리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우주의 역사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의 모든 은하와 모든 별들이 한 지점에 모여 있었으리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과거 어느 한 시점에 아주 작은 한 점 (시-공간: space-time)이 폭발하여 광대한 우주가 형성되었다는 빅뱅 우주론은 언뜻 별로 과학적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거의 무한대의 밀도와 온도를 지닌 특이점 존재 자체가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여겨지지 않을뿐더러,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궁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들은 다른 대안을 찾기도 했는데, 팽창과 수축을 거듭한다는 진동우주론과 우주 공간 안에서 새로운 물질이 탄생한다는 정상상태 우주론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1965년에 빅뱅 우주론의 강력한 증거인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되었고, 1992년 코비위성이 관측한 우주배경복사의 미세한 편차는 빅뱅 우주론의 설명과 더욱 부합되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다른 라이벌 이론들은 폐기되었고 빅뱅 우주론은 표준이론으로 인정되어 오늘날 과학계에서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정설로 굳어졌다.

그런데 우주론에서 항상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질문은 우주의 기원, 즉 어떻게 우주가 시작되었는가의 문제이다. 빅뱅 우주론도 폭발 후 10-43초 이후의 사건부터는 상세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 이전의 일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나아가 왜 그토록 뜨겁고 높은 밀도의 에너지-물질 덩어리가 한 점에 모여 있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현대과학의 패러다임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 패러다임이라 표현한 이유는 단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불확정성 원리로 인한 과학적 설명과 인식론의 근본적 한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우주의 기원 문제는 결국 추론과 사유의 영역으로 남겨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스티븐 호킹 박사가 ‘시간의 역사’ 말미에서 언젠가 과학자들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대통일 이론을 손에 넣게 되면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함께 모여 ‘신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피력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한편으로는 적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다. 우주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최초의 원인을 설명하면 또 다시 그 최초의 원인의 원인을 캐물을 수 밖에 없는 무한회귀의문제이다. 결국 우주의 기원은 과학적 설명만으로 완결될 수 없으며 과학자와 철학자 혹은 신학자들이 함께 논의해야 하는 주제일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호킹의 그러한 희망은 적절하다. 그런데 인류가 과연 조만간 완전한 이론, 즉 물리학의 대통일 이론을 완성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정상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에 결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 어렵다. 예컨대 최초의 특이점이 어떻게 출현했는가라는 문제는 실험 과학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다룰 수 있지만 완전한 답을 구할 수는 없다. 비록 호킹 박사가 ‘허시간’이라는 개념으로 빅뱅 이전의 상태를 설명하고자 시도했지만 이는 실험 과학의 영역 밖에 있다. 즉 과학자가 우주의 기원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날이 ‘조만간’ 도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과학자들이 조만간 대통일 이론을 완성하리라는 호킹의 견해는 별로 가망이 없는 바램이다. 이런 점에서 과학자와 철학자가 모여 신의 마음에 대해 논의해보자는 호킹의 희망은 우리가 전망 가능한 미래의 역사 속의 희망이 아니라 어찌 보면 종말론적 희망에 가까운 것이다. 본인은 추호도 의도하지 않겠지만 지독한 역경을 극복한 그의 삶을 통해서 종교적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는 것처럼, 또다시 우리는 현대과학의 우주론의 첨단에서 과학의 한계와 종교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호킹과 현대의 과학적 무신론자들

그런데 왜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이번 새 저서에서 ‘시간의 역사’ 보다 노골적인 무신론적 견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리처드 도킨스로 대표되는 소위 현대과학적 무신론자들의 최근의 저서들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이기적 유전자‘로 세계적인 명망을 얻은 생물학자 도킨스는 지난 2005년 ‘만들어진 신 (The God Delusion)’을 통해 다시 한번 전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과학자이자 저술가라는 것을 입증했다. 그는 이제껏 어떤 훌륭한 과학자도 시도하지 않았던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문법으로 종교를 전면 부정하였다. 이를 뒤따라 샘 해리스는 ‘종교의 종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신은 위대하지 않다’, 대니얼 대닛은 ‘주문을 깨다’, 데이비드 밀스는 ‘우주에는 신이 없다’ 등을 들고 나와 도킨스의 과학적 무신론 캠프에 합류하였다. 이와 같은 일군의 흐름은 종교 근본주의자의 소행으로 여겨지는 9.11 테러에 대한 적절한 대응으로 보이기도 한다. 과학의 이름으로 인류를 계몽하여 종교의 ‘몽매와 무지’로 벗어나게 하는 정당한 주장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오늘날의 지구화 상황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고통의 근본원인에 대하여 균형감을 잃어 버렸다는 형평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들이 한 목소리로 종교 (근본주의)의 해악을 지적하면서 종교가 사라지면 인류의 고통의 중요한 원인이 소멸될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정작 오늘날 지구촌의 고통에 대해 더 큰 책임을 져야할 제국의 횡포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감고 있다. 이는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는 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저작은 세간의 관심을 끄는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국내에서만도 수년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러니 적어도 이들의 책을 펴낸 출판업자들은 행복할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지적 풍토와 그것을 둘러싼 대중적 관심, 그리고 상업적 이해가 얼마 만큼이나 이번에 스티븐 호킹이 직설적인 무신론을 표현하는데 영향을 끼쳤는지 필자로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상관성이 있으리라 추정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련성이 과학과 종교의 진지한 대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 안타까운 점이다.

과학과 종교, 인류의 진리를 향한 씨줄과 날줄

일반적으로 종교와 과학은 인류가 진리를 추구해온 여정에 있어서 두 가지 다른 전통으로 일컬어진다. 갈릴레오 종교 재판이나 다윈의 진화론 논쟁으로 대표되듯이 양자의 사이는 흔히 적대적 관계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은 대체로 종교가 모든 진리의 독점권을 가지고 있던 과거 서구 역사 속에서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물론 오늘날에도 성서 문자주의 창조론자와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의 날카로운 대립이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세계적 최정상급의 과학자들과 종교 지도자(혹은 신학자)들은 과거와 같이 대립하기 보다는 상호견해를 존중하고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왔다. 우주와 생명, 그리고 인간을 탐구하는데 있어서 종교는 과학이 밝혀낸 정확한 설명과 지식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과학은 종교가 이야기하는 의미와 희망의 메시지가 각각 우리의 삶에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태형과 돌팔매 사형이 시행되는 사회처럼 만일 종교 근본주의가 현대인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교도권을 갖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끔찍한 악몽이다. 그러나 만일 과학 제국주의 혹은 과학 만능주의가 우리의 모든 판단과 선택을 지배한다면 그러한 세계 역시 결코 유쾌한 일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과학이 이끌어 온 인류의 숭고한 진리 추구의 여정을 막아서도 안되고,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가 우리들의 선조 때부터 오래 동안 길어올린 생명의 신비와 희망과 꿈에 관한 이야기를 비웃어도 안된다. 과학과 종교는 인류가 진리의 그림을 짜나가는 거대한 양탄자의 날줄과 씨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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