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톤에 있는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코너는 공룡 전시관이다. 그러나 어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곳은 보석 전시관이다. 여기에는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가 전시되어 있는데 은은한 푸른색이 감도는 44캐럿짜리 다이아몬드를 보려면 북적거리 인파 사이로 길게 목을 빼고 넘겨다 보아야 한다. 유명한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보석 목걸이도 바로 이 진귀한 블루 다이아몬드를 본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검색해보니까 진짜 세계 최대 크기의 다이아몬드는 546 캐럿의 ‘골든 주빌리’이다. 1985년 남아공에서 발견된 756 캐럿의 원석을 세공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다이아몬드보다 더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넋을 잃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사람들이 보석을 참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가락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숨겨 들어오는 것조차 이해할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김기석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 |
국내외를 막론하고 언론에 소개되는 과학 관련 보도들이 흔히 잘못된 정보 내지는 오해의 소지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번 <다이아몬드 행성> 관련 기사 역시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일단 이번 기사에 포함된 몇 가지 잘못된 정보, 혹은 독자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몇 가지만 지적해보자.
첫째, 최초의 다이아몬드 행성의 발견이라고 호들갑을 떨지만 2004년 2월 BBC 인터넷 보도는 센터우리 성좌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 별에 관한 보도를 싣고 있다. (http://news.bbc.co.uk/2/hi/3492919.stm) 또한 이틀 후의 <데일리테크> 보도 역시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별의 발견은 이번이 최초가 아니다. 한편 처음 우주에서 다이아몬드 별이 발견되었을 때, 과학자들은 비틀즈의 노래 <다이몬드를 갖고 하늘을 날고 있는 루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에서 따와서 그 이름을 루시라고 명했다. 존 레넌은 1967년, 그의 아들이 유치원에서 그린 여자친구 루시가 다이아몬드를 쥐고 하늘을 날고 있는 몽환적인 느낌의 그림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둘째, 모든 매체에서 ‘다이아몬드 행성’이라고 묘사하는데 과학자들의 정확한 발언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내부의 코어가 다이아몬드와 같이 단단한 물질”이라는 것이다. 순도 높은 다이아몬드는 아닐지라도 지구에 있다면 분명 쓸모 있긴 하겠지만 채굴하러 가기에는 투자비용을 보장할 수가 없을 것이다. <데일리메일>의 기사의 영어 댓글을 살펴 보니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남편에게 사달라고 졸라야겠다는 아줌마의 글이 눈에 띈다. 보석을 좋아하는 여인의 마음이야 동서양을 가리겠는가?
셋째, 영국의 <데일리메일>도 이 별을 행성(planet)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과연 행성이라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다. 물론 이 천체가 펄서(맥동전파원)를 공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행성처럼 보일 수 있으나 우주의 많은 별들은 우리 태양계처럼 하나의 항성에 여러 행성들이 공전하는 구조가 아니라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항성들이 공통의 무게 중심을 가운데 두고 서로 마주보고 회전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행성으로는 그처럼 고밀도의 물질을 만들 수 없으므로 아마도 이 별은 백색왜성(white dwarf)이었으나 주위의 중성자 별에 의해 연약한 바깥 껍질부분을 잃어버린 별의 잔해가 아닐까 추측한다.
이러한 과학용어들 때문에 일반 독자들의 머리가 아파오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이 다이아몬드 별을 붙잡아 두고 있는 중성자 별에 대해서 조금만 더 소개하는 것을 용서해주기 바란다. 원자는 질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핵과, 질량은 거의 없고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질량이 큰 별이 진화 과정 중에서 전자를 다 잃어버리고 핵의 중성자로만 구성된 별이 바로 중성자 별이다. 즉 아주 작지만 질량은 어마어마하다. 질량은 태양보다 두 배 이상 무겁지만 크기는 겨우 지름 십여 킬로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왕자가 걸어서 하루 안에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강한 중력만 아니라면 말이다. 중성자로 뭉쳐진 물질은 각설탕 하나 정도의 크기에도 작은 행성에 맞먹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상상력을 발휘하여 만일 중성자로 만든 주사위 하나를 숟갈에 얹어 놓으면 즉시 엄청난 속도로 숟가락과 땅을 뚫고 지구 중심을 향하여 하강하여 왕복운동을 하다가 마침내 지구중심에 자리잡을 것이다. 이러한 중성자 별이 빠르게 자전하며 전파를 바깥으로 내보내는 천체가 펄서이다. 이번에 발견된 다이아몬드 별을 거느린 펄서도 1분에 1만 번 이상 자전하고 있으며 다이아몬드 별은 이 펄서를 매 두 시간 십분 마다 공전한다. 이러한 극한적인 물리적 조건을 고려하면 가까이 있다 해도 영화 <아바타>처럼 광석을 캐러 가기에는 무리일 것이다. 펄서에서 나오는 고주파의 전자기파에 의해 우리 몸이 다 타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역시 보석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편이 안전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독 과학기사에는 오보가 빈번하고 틀린 정보를 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기자들의 전문성 부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과학만능주의에 기인한 과학의 신비화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치 중세시대에 유럽에서 교회가 비판을 일체 용납하지 않고 절대진리로서 군림하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오늘날에는 ‘과학이 곧 절대진리’라는 대중들의 맹신에 의해 아무런 비판 없이 잘못된 정보가 과학의 이름을 빌어 진리인 양 확산되곤 한다. 과학 그 자체는 비판정신을 생명으로 한다. 과학적 진리는 끊임없이 반증 내지는 오류화(falsification)의 검증을 통하여 비로소 진리로 인정 받는다. 그러나 대중들은 과학을 아무런 비판 없이 맹신한다. 만병통치약이자 절대선인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천 년 전 율법의 고정관념의 틀에 갇힌 유대교 지도자들을 비판하며 하느님의 참 뜻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주류 종교가 되었을 때, 다시 저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교리의 틀 속에 가두어 버렸다. 중세 때 로마교회가 그러했듯이 오늘날 한국의 주류 기독교와 많은 대형교회들이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과학이든 종교든, 절대는 신비를 낳고, 신비는 주술을 불러들여 마침내 사람들을 우매한 전쟁으로 끌고 들어간다.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다. 하지만 그 하느님을 믿는 신앙과 교회는 성찰과 비판을 필요로 한다. 성역은 없어야 한다.
*김기석 교수는
한국항공대를 다니다가 성공회대로 옮겨 신학을 공부하고,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았다. 빈민선교 및 농촌선교 사역을 하다가 영국 버밍엄 대학교(Univ. Birmingham)에서 석사학위와 "한국적 상황에서 과학과 종교의 대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Science-Religion Dialogue In Korea』(집문당, 2009),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 대한 응답인 『종의 기원 vs 신의 기원』(동연, 2009)이 있다. 현재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