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소래 마을에 심겨진 씨앗(13)

2. 경신학원의 혜성 서병호 장로

▲서병호.
우리나라 최초 7목사의 한분인 서경조는 형 서상륜과 함께 소래 마을에 소래교회를 세웠다. 이 일에는 그 지역의 유력자 인 김성섬과 그의 장남 김윤방의 전적인 후원이 있었던 사실은 이미 말한 바와 같다. 언더우드 목사는 이 지역 인사들과 친숙해 져서 소래교회를 자주 방문하여 교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신앙과 교육의 모든 분야를 지도하였다. 이 시기에 서경조 목사에게 두 번째 아들 서병호(徐丙浩)가 태어났다. 병호는 언더우드 목사에게 [젖 세례]를 받았으니 이는 우리나라 유아세례 제 1호이다. 

병호가 자라난 고향은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맑은 샘이 여기저기에서 솟아나는 아름다운 고장이었다. 한 낮에는 동무들과 함께 냇물에서 고기도 잡고, 넓은 바위 위에 모여앉아 여러 가지 즐거운 놀이를 하면서 자라났다. 훗날 그가 망명생활을 하며 고향을 꿈에 그리면서, 그의 호(號)를 송암(松巖)이라고 하였다. 그의 비에는 송암(松嵒)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는 아버지가 목사인 관계로 자연히 어려서부터 교회생활을 하였으며, 큰아버지 서상륜과 아버지 서경조의 지도를 받아 한학을 깊이 공부하였다. 필자 자신이 경신고등학교를 다닐 때 당시 교장이시던 서병호 장로님은 친필로 우리 학교 교훈을 [基督的 人格]이라고 크게 써서 학교 입구에 계시하였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조회 때마다 중국 역사에 나타난 고사를 재미있게 들려주시며 훈시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시절에 언더우드 목사는 경성(京城)에서 고아와 부랑아들을 모아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일제(日帝)는 우리나라의 수도 한양을 그들 식으로 [경성]이라고 개칭하였다. 언더우드는 그 부랑아들의 집합소를 교육기관으로 전환하여, 처음에는 [예수학교]라고 하였는데 후에 그 이름이 [영신학교]에서 다시 [경신(儆新)학교]로 발전하였다. 초기는 미약한 조직이었으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우리 주 예수의 크신 뜻을 따라, 그리고 언더우드 목사를 위시한 위대한 교육자들의 인도를 따라 날로 귀한 교육기관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병호가 여덟 살이 된 어느 날 언더우드 목사는 서경조 목사에게 건의하였다. “목사님, 목사님의 아들 병호를 관찰해 보니 참으로 성실하며 총명하군요. 저 아이를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제가 성심성의껏 가르치고 키워 귀중한 주의 일군이 되게 하겠습니다.” 언더우드 목사는 전에 김성섬의 아들 필순을 인도하여 세브란스의 의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하고 있었다. 그는 훗날 세브란스 제 1기 졸업생이며, 의사로서 의학교 교수로써, 민족의 지도자로 활동하게 된다. 
 
서경조 목사는 대답하였다. “아 목사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해 주십시오. 목사님이 첫 유아세례를 베풀어 주셔서 이미 목사님의 영적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또 그렇게까지 해 주신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목사님만 믿습니다.”
 
그렇게 되어 병호는 경성으로 올라가서 영신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방학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와서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였으며 아직 12세밖에 안되었던 나이에도 어른들을 따라 장연읍 장날에 장거리에 나가 노방전도(路傍傳道)까지 감행하였다. 그 시절에는 조혼(早婚)의 풍습이 있었다. 병호가 13세가 되자 소래 마을 좌수인 김성섬 집안의 딸 김구례(金求禮)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결혼 후 다시 상경하여 이제는 이름을 바꾼 경신학교에 돌아가서 공부를 계속하여 4년 후에 경신학교를 제 1회로 졸업하였다. 오늘날은 학교 교사로써 활동하려면 해당 과목을 전공하고, 교원 자격을 취득해야 하지만 당시는 우리나라 교육이 체계가 잡히지 않았던 때인지라 중등 과정을 마치고 교사 역할을 하는 일이 있었다. 경신학원을 졸업한 병호는 일찍이 교사 생활에 투신하여 쉴 틈이 없는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다음에 그의 행적과 활동을 살펴보자.

㈀ 해서제일학교 교사-아버지 서경조 목사가 소래교회 안에 설립한 학교로써 이 나라의 많은 인물들이 그 학교에서 배출되었다. 병호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이 학교에서 교사 생활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 대성학교 교사-큰 처남 김필순의 친구인 도산 안창호 선생이 평양에 설립한 학교로써 안창호 선생의 요청으로 그 학교 교사로 전임한다.
㈂ 경신학원 교사-병호와 같은 신앙과 교육의 조건을 구비한 교사가 귀하던 시대에 언더우드 목사는 그를 모교인 경신학교로 초빙하였으므로 드디어 경신학원 교사로 전임하였다가 일찍이 학감(오늘날의 교감)직을 맡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엄습한 일제 침략의 악연은 병호에게 이러한 귀한 일을 계속하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일제는 한일의정서, 을사늑약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국권을 빼앗고 말았다. 그리고 또 일본 당국은 우리나라의 교육자들을 저들의 손아귀에 넣으려고 음으로, 양으로 여러 가지 압력이 가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지도자들이 그 압력과 유혹에 굴종하여 일제의 하수인이 되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부모와 교회를 통하여 올바른 신앙과 애국심으로 다져진 병호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30세가 되던 1914년에 그 좋던 고향을 등지고 중국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는 상해에 이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고, 동북 삼성에도 많은 독립지사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이미 알고 지내며 존경하던 우국지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중국에 온 병호는 먼 장래를 생각하며 자기의 학력을 더 향상시키고 싶었다. 그리하여 여러 선배들과 함께 의논한 끝에 기독교 학교인 금능대학(金陵大學) 철학과에 입학하여 비로소 깊이 있는 학문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학교에는 한국인이 15명쯤 있었다. 병호는 그들과 함께 매주 우리말로 기도회를 모이는 자유와 기쁨을 맛보았다. 그곳에서 4년간 공부하면서 여러 선배 우국지사들을 만나고 지도를 받으면서 자신도 명실 공히 민족주의자로 성장하였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자 미국의 대통령 월슨은 민족자결주의를 선포하였다. 우리 한국민들은 이에 크게 고무되어 다방면의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 윌슨의 특사 크레인(Charles Crane)이 중국을 방문하여 금릉대학에서 [파리 강화회의]에 관한 상황을 강연하였다. 마침 같은 대학 영문과에서 수학하던 기독교인 여운형(呂運亨)과 망명 지사 김규식, 김철, 선우혁 등은 이 강연 내용에 크게 용기를 얻고 나라를 되찾을 운동을 하려는 목적으로 협의체를 구성하였다. 그래서 1919년 2월에 민족 지도자가 제일 많이 집중되어있는 상해로 모여들어 거기서 신한청년단(新韓靑年黨)을 조직하였다. 이 모임이야말로 해외에서 결성된 최초의 독립운동 단체였다. 그들은 기관지로 [신한청년보新韓靑年報]를 발간하여 동족들에게 독립정신을 홍보하기로 하고 또한 외교활동을 위하여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첫째 [독립청원서]를 작성하여 세계 요처의 동포에게 전달하여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독립자금을 모금하기로 하고 다음과 같이 담당자를 선발하였다.

㈀ 일본 교포 담당-장덕수
㈁ 러시아-여운형
㈂ 우리나라-서병호
㈃ 파리 강화회의-김규식

우리나라를 맡은 병호는 중국인으로 변장하고 국내로 잠입하였다. 부산에 입항한 배에서 내리는데 그곳에서 일본 관부연락성에서 내리는 처조카 김마리아를 만났다. “아니 너 마리아가 아니냐? 어째 일본 옷을 입었느냐? 또 어떻게 해서  여기에 왔니?” “어마나, 고모부, 고모부는 왜 중국인 옷을 입으셨어요?” “쉿, 조용히. 이리 와 봐라.”

두 사람은 조용한 구석진 곳으로 가서 주변을 살펴보고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고모부, 저는 일본 유학중에 있는데, 이번 일본 유학생들 중심으로 작성된 독립선언문을 갖고 조국에 반포하기 위하여 제 몸에 지니고 왔어요.” “아, 그랬구나. 나 역시 비슷한 일로 들어오게 되었다. 역시 기개가 있는 집안의 딸이라 훌륭한 일을 하는구나!”
 
이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비밀리에 우리나라 안에서 준비 중인 독립운동의 단체들과 만나고 활동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1일 정오에 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대한민국의 삼일 만세운동이 폭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후 김마리아는 일경에 체포되어 말할 수 없는 곤욕을 당하고 거의 죽기 직전에 방면되었다. 이 과정은 다음 회 김마리아 편에 상술할 것이다. 

병호는 며칠 후 3월 13일에 일경의 삼엄한 수배 망을 뚫고 압록강을 건너서 상해로 무사히 귀환하였다. 그 후 우리 민족의 지사들이 모여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구체적이고 강력한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서병호는 임시정부의 의정원(議政院)위원과 내무위원으로 선임되어 독립운동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가 상해에서 활동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대한민국 적십자사 설립. 이는 한국 최초의 적십자사이다.
㈁ 본국, 상해, 남경, 미주, 하와이 등지의 자금을 모아 간도에서 활동하는 독립군을 도왔다.
㈂ 교사출신으로서 상해에 있는 지사들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활동을 하였다.

이렇게 활동하던 중에 1945년 조국의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많은 동포들이 본국으로 귀환하게 되니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서병호는 교포들의 귀국을 돕느라고 즉시 귀국하지 못하다가 2년이 지나서야 그리던 해방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조국에 돌아온 그에게 정계에서 활동하자는 권유가 있었으나 그는 다 뿌리치고 새문안교회의 장로로써,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다시했다. 그리고 자기를 키워주고 후에는 몸소 일하던 경신학원으로 돌아와서 경신 중고등학교를 재건하여 기독교 교육을 재개함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신앙인 지도자를 양성하게 된다.

그는 경신학교 외에도 맹인협회와 농아인 협회 이사장으로도 활동하다가 1972년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그의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새겨 있다.

[내가 있기 위해서는 나라가 있어야 하고
나라가 있기 위해서는 내가 있어야 하니
나라와 나와의 관계를 절실히 깨닫는 국민이 되자]

1968년에 대통령의 [건국공로 표창]
1980년에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글: 박종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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