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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유리 - 도심재개발과 바울의 민중주의

한백교회 20110821 하늘뜻나누기 원고


출처 : 김진호 목사의 민중신학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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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하느님을 알 만한 일이 사람에게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것을 환히 드러내 주셨습니다. ......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 곧 그분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사람이 그 지으신 만물을 보고서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9~20절

“그룹들(Cherubim)은 주님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동문에 머무르고,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하느님의 카보드)이 그들 위에 머물렀다.” 「에스겔서」 1장 19절입니다. 이 구절을 보면 마치 ‘하느님의 영광’이 존재처럼 움직여 어느 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곳은 성전입니다. 바벨로니아 유배시대 예언자의 말이지만, 이것은 훗날 성전종교가 탄생하는 하나의 계기가 됩니다. 그때까지 야훼종교는 왕실종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야훼는 왕실과 더불어 존재했고, 왕실의 후견인으로 있었으며, 왕실의 몰락은 야훼의 몰락을 뜻했습니다. 그런데 그 왕실이 진짜로 몰락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야훼신학은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이때 바벨로니아 식민지 시대, 유배된 공동체 사이에서 활동했던 예언자 에스겔은 환상 속에서 야훼가 성전에 머무르는 것을 봅니다. 왕실이 없어도 성전만 있다면 그분은 존재하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성전도 불타고 없었던 때입니다. 

하지만 훗날 성전이 다시 지어졌을 때, 이 예언자의 환상은 하나의 종교를 탄생시키는 전거가 됩니다. 바야흐로 성전종교가 등장하게 됩니다. ‘유대교’라는 야훼신앙의 한 변종은 이렇게 해서 역사에 태동하였습니다.

한데 여기서 하나 더 언급해야 합니다. 에스겔은 하느님을 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하느님은 너무 숭고하고 초월적이어서 볼 수 없습니다. 유대교는 이렇게 너무나 초월적인, 범접할 수 없는 이, 바로 그분을 숭배합니다. 그분은 성전 안에 계십니다. 아무도, 제사장만이, 아니 대제사장만이 1년에 단 하루 들어갈 수 있다는 성전 지성소 안에 계십니다. 아니, 아니, 성전 지성소 안에서 뵐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이렇게 유대교는 성전 안에 지극히 초월적인 하느님의 영광이 머물고 계신다는 믿음 위에서 출발한 종교입니다.

한데 바울은 오늘 읽은 본문에서 그러한 유대교의 초월적 신성에 대해 반론을 폅니다.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본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이 지은 만물 속에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지요.

유대교는 하느님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분은 성전 속에,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더구나 그 안에는 하느님이 아닌, 그분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나마 그 영광을 볼 수 있는 것도 대제사장뿐입니다. 하여 유대교에서 ‘봄’은 권력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시선의 권력’에 의해 엄히 통제되는 종교인 것입니다.
반면 바울은 다른 패러다임으로 하느님이 당신을 드러낸다고 주장합니다. 하느님을 보고자 하는 이는 볼 수 없으나, 그분은 당신이 지은 존재들 속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더욱이 바울의 표현을 보십시오. 그분은 “‘환히’ 드러나 있습니다.”

또한 그분을 볼 수 있는 이는 대제사장만이 아닙니다. “그 지으신 만물을 보”는 이는 누구나 “깨닫게 되어 있습니다.” 초월자를 보고자 하는 이는, 권력의 시선에만 찔끔 드러낼 뿐,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만물 속에 내재하는 신을 보고자 하는 이는 그분을 환히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존재들을 보고, 그 존재들의 고통과 신음 소리를 애틋하게 들을 줄 아는 이는 모두가 그분을 봅니다. “모든 피조물이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서」 8,22)

하여 바울은 하느님을 보는 것에 관한 신학적 주장에서 ‘시선의 권력’을 해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는 장막 대신에 ‘투명유리’를 두었고, 그 유리를 통해서 하느님을 모두에게 환히 드러내고 있다고 강변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 내가 사는 지역의 구청 청사가 새로 지어졌습니다. 그 전면이 시멘트가 아니라 유리로 되어 있는 건물입니다. 옛날 청사는 8차선 도로에서 좁은 길을 따라 50미터는 올라가야 있습니다. 학교 운동장 절반만한 주차장 저편에 청사 건물들이 있습니다. 언덕에 위치한 청사 주위에는 높은 담장이 있고, 담장을 따라 나무가 또 하나의 담벼락처럼 줄지어 서 있으니, 흡사 하나의 작은 성채 같은 구조물입니다. 닫힌 구조, 왠지 중차대한 일이 있지 않는 한, 출입하지 않는 게 나을 법한 구조입니다.

과거에 성전도 그랬겠지요. 친근감보다는 경외감으로 둘러싸인 건조물일 테니 말입니다. 그곳에 높은 분이 있고, 그이를 만나려면 충분한 자격을 갖춰야만 할 것 같은, 그런 곳입니다. 유리가 아닌 벽으로 폐쇄된 둘러싸인 ‘막힘의 공간’입니다.

한데 새 청사는 언덕이 아니라 평지에 지어졌습니다. 같은 8차선 도로지만, 더 넓어 보이는 도로 한편에 담장도 없이, 모두에게 열린 문처럼 개방된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더욱이 그 전면이 유리이니, 마치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듯합니다. 투명한 행정, 누구에게나 공개되고 누구나 쉽게 드나들어도 될 것 같은, 들어가면 구청장이 환한 얼굴로 나를 반겨줄 것 같은, 하여 나의 민원에 귀 기울일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합니다.

여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서울과 인근 신도시에 건설된 구청과 시청 청사는 유리벽 전면인 경우가 유난히 많습니다. 필경 투명한 행정을 과시하려는 것이겠지요. 필경 모두에게 열린 개방된 공간임을 자부하려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실은 그 안으로 들어가면 밖이 훤히 보이지만 밖에서 안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 유리는 투명유리가 아니라 반(半)투명유리인 것입니다. 아예 투명함을 포기한 듯, 폐쇄 양식의 건조물은 안이든 밖이든 서로를 볼 수 없게 하는 구조입니다. 반면 투명한 듯 착각을 일으키지만 투명함을 거부하는 투명유리 아니 반투명유리 양식은 ‘보는 것이 권력인 사회’의 건조물을 뜻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 효과를 통해 지배를 실현하는 사회를 상징합니다. 하나는, 밖에 있는 자에게는 마치 투명하고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는 듯 착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안에 있는 자는 밖을 훤히 응시할 수 있는 능력, 아니 권력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로 그곳, 시청과 구청에서 수많은 재개발밀약이 맺어졌습니다. 건설에 살고 건설에 죽는 나라의 미친 재개발사업의 ‘밀실 삼각동맹’이라는 ‘행정관서-금융기관-건설주’의 밀약은 바로 이 투명건물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맺어졌습니다. 밖의 시민사회는 그 안을 모릅니다. 그리고 마치 법이 평등하다는 착각 아래서 그 재개발사업에 환호하고 욕망합니다.

한데 부패지수가 대단히 높은 우리사회에서 1990년부터 2006년까지 언론에 보도된 부패사건을 분석하면 전체 부패건수의 55% 이상이 건설과 주택 관련 분야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많은 건물들에는 소송이 걸려 있고, 또 정치자금이 은닉되는 가장 좋은 장소가 건축물들이라고 합니다. 시민사회의 각각은 그 부패양상이 너무나 일상화되어서 경각심조차 갖지 않고 건축 메커니즘에 일원으로 끼어들며, 시민의 무분별한 욕망이 가장 불꽃을 일으키는 분야가 바로 건축입니다.

도시재개발사업의 경우는 규모가 휄씬 커서 행정관서-금융기관-건축주의 삼각동맹은 합법적 틀을 따라 진행되곤 합니다. 건설 투자가 총투자액의 20%를 넘나들고, 건설업이 국민총생산의 20%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하여 OECD 평균의 두 배나 되는, 건설에 미친 사회에서 법은 이미 이들 재개발주체에게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그러니 법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재개발에 환호하고 욕망을 나누었던 평범한 시민은, 그중 많은 이들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고 몰락하곤 합니다. 특히 서울지역에서만 재개발지구가 96개나 되는 올해의 경우, 재개발사업으로 인한 피해자의 규모와 정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광범위해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상업지구의 경우 그 피해가 더욱 심각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저 끔찍한 용산의 철거투쟁과 홍대 역 근처의 두리반 투쟁은 그 심각성에 시민사회적 경각심을 한층 높여놓았지만 정부는 밀실 삼각동맹에서 한 발짝도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며칠 전 만난 명동 철거지역의 한 카페주인은 억대를 훨씬 넘는 권리금과 시설투자비는 고사하고, 1,700만원의 보증금에서 단 1,000만원만 받아가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일부 중산층은 이렇게 재개발사업 과정에서 터무니없는 법 운용으로 인해 몰락의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여 관공서의 투명유리는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더 높은 장벽을 상징할 뿐입니다. 적어도 현 정부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곧 이 투명유리는 민주주의적 공공성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공성, 곧 사회적 정의는 부재하며, 더 강하고 더 교묘해진 권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교의 폐쇄성과 싸움을 벌였습니다. 그 닫힌 신앙구조는 극소수의 엘리트에게만 드러내는 신에 관한 종교였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종교의 신의 폐쇄성을 해체하고, 신을 공공화하는 종교로 재탄생시킨 것입니다.

바울의 예수 따르기는 이러했습니다. 그는 반투명유리로 된 성전체제를 해체하고, 투명유리로 된 신을, 초월적인 닫힌 신을 대중에게 훤히 드러내주는 새 종교의 등장을 위해 열정을 다해 권력과 싸웠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울에게서, 그의 「로마서」에서 얻어야 할 배움의 요체는 바로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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