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생전인터뷰] “총성이 나의 신앙을 길 위로 이끌었다”

'길위의 신앙' 고 박형규 목사

“상황이 저를 몰아갔지요. 고(故) 함석헌 선생님이 썼던 말이기도 하지만 제 인생을 돌아보면“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라는 말보다 더 함축적이고, 적확한 표현이 없을 것 같습니다”

보수적 교단으로 유명한 고려파 출신의 어머니, 그리고 유교 사상에 심취한 아버지의 슬하에서 보수적 신앙 훈련을 받으며 자랐던 박형규 목사(86)의 말이다. 솔직히 목회자의 길로 들어설 때까지만 하더라도 보수적 스탠스를 지녔던 그는 깡촌 시골 마을에서 조용히 목회 생활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시대 현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식민지 현실에서 일제의 갖은 수모와 핍박은 그에게 저항 의식을 심어주었고, 일본 동경 유학시절의 동경 신학대 출신이란 꼬리표는 줄곧 그를 따라 다니며 보수적 교단인 고려파 목회자로 안착하지 못하게 그를 밀치고, 또 밀쳤다.

그런 와중에 만난 사람이 고 강원용 목사. 그와 의기투합한 박형규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공덕교회에 부목사로 부임해 꿈에 그리던 목회활동을 시작했다. 사회참여적인 그의 성향은 목회활동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당시 마포 지역엔 길게 이어진 판자촌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평소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판자촌 주변을 돌아다니며 힘없고, 약한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쳤다. 그래서 처음엔 교인들과 함께 판자촌 일대 집안 보수 공사를 도왔고, 돈이 없어 못 치르는 장례식 그리고 결혼식도 요청만하면 교회에서 비용없이 도왔다. 

▲ 박형규 목사 ⓒ김진한 기자

교회가 판자촌 일대 주민들을 돕기 시작하니 그 보답인지 교회의 교인수는 나날이 늘어갔다. 장례식을 치른 가족들이나 결혼식을 치른 사람들이 이웃을 위해 값 없이 봉사하는 교회 구성원들에 감동을 받고, 자발적으로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지역 주민들과의 따뜻한 교제 속에 교회는 지역사회 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갔고, 부목사였지만 담임목사처럼 따랐던 교인들 탓에 박형규 목사는 자신의 목회 활동에 더욱 전념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그에게 교회 밖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한 사건이 터졌으니 4.19사태였다.

1960년 4월 19일 오전 간만에 야외에서 결혼주례를 서고, 교인들과 함께 퇴장하는 때였다. 갑자기 여기 저기서 총성이 울리는가 싶더니 이곳 저곳에서 하얀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들이 피를 흘린 청년들을 들것에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이었다. “아차 이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급박하게 돌아가는데 나는 조용히 주례나 서고, 교회만 돌보고 있었다니..” 박형규 목사는 눈물을 울컥 쏟으며 현장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진 젊은이들 속으로 자신의 몸도 내던지려고 했으나 옆에 있던 교인들의 만류로 제지를 당했다.

그때 이후 공덕교회 교인들은 매주 주일만 되면 불안에 떨어야 했다. 4.19사태를 경험한 박형규 목사가 전에는 입밖에 꺼내지도 않았던 정치 얘기를 꺼내는가 하면 독재정권을 향해 과격한 비판의 메시지를 날마다 전하니 “이러다가 우리 부목사님 잡혀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에선지 얼마 후 NCC에서 “목사님 유학 시험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았고, 교인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별로 하고 싶지 않았던 공부를 하러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인들의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공안들에 끌려가 옥살이를 하게 될지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 박 목사의 말대로 교인들은 그가 잠시나마 조용히 지내며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던 것이다.

뉴욕에 도착한 박형규 목사는 자유주의 신학교인 유니온 신학교에 입학해, 본 회퍼의 세속 신학 등 사회·정치 참여적 신학에 깊이 빠져들었고, 이 같은 에큐메니컬 신학은 크리스천으로서 사회적 책임에 관한 양심을 발동시켰다. 이 크리스천 양심은 귀국 후 그를 민주화 운동 중심에 서도록 교회 밖으로 밀어내는 역할을 했다. 9일 남북평화재단 사무실에서 민주화 운동의 원로 중의 원로 박형규 목사를 만나 한국교회의 갈 길을 물었다.

- 한국교회가 70, 80년대 교회 안팎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사회 내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엔 교회 안팎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실제로 어느 리서치의 조사결과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신뢰도가 바닥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한국교회 전체가 사회에 신뢰 받지 못할 만큼 못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만일 예수가 지금 다시 오신다면 보수적인 교회는 가시지 않을 것 같아요. 그것이 옳지 않음에도 시대적 흐름에 야합하는 교회가 아니라, 잘못된 시대에 바른 말을 할 줄 아는 교회로 가실 것입니다.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대형교회’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을 갖고 계신 목회자들, 평신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교회성장운동에 목숨을 거는게 아니겠어요. 분명히 말하지만 저는 대교회가 되면 수구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구가 된 교회는 안정을 보장 받기 위해서 어느 정권과도 타협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히틀러 시대 독일 교회에서 일어났던 일이죠.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본회퍼의 고백교회 등 지성인들의 교회는 그 시류에 반대하며 크리스천 양심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여러 어려움 속에 처해 있음에도 이런 양심있는 작은 교회들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기에 희망이 있다고 봐요. 최근들어 민중목회를 지향하는 교회들이나 공동체가 기독 지성인들 틈바구니 속에 부쩍 늘어나고 있는데, 평신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는 과거에도 설득력이 있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 박형규 목사 ⓒ김진한 기자

- 남북평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최근 경색된 남북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한국교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교회라면 ‘남북평화’라는 주제에 절대 반대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일부 보수적인 교회들은 굶주리는 이북 동포들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인도적 지원에 부정적 입장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이는 수구적이며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런 시대를 역행하는 낡은 이데올로기적 사고 방식은 한국교회 내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이는 또 평화를 배웠고,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겐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전쟁을 통한 무력통일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날 시 남북은 공멸하고 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명박 정부도 하루 속히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남북관계를 통해 쌓아온 공든 탑들이 무너지게 해선 안됩니다”



 - 한국교회 진보·보수 인사들이 남북관계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만.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있고, 양심이 살아있는 보수 교회 목회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분들이 보다 실천적으로 남북 평화운동에 힘을 보태면 남북관계 개선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봅니다”

- 남북평화 만큼 남남간의 평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층적, 이념적 문제 등으로 남남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교회 그리고 사회에 하고픈 말이 있으시다면.

“요즘 NCCK를 보니 보수적인 교단들이 눈에 띄더군요. NCCK는 과거 민주화 운동, 남북평화 통일운동 등을 통해 에큐메니컬 운동의 정체성을 형성해 왔는데 최근들어 간혹 몇몇 보수적인 교단들이 이런 NCCK의 정체성에 물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이러한 여파로 갈등이 조장되는 것도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정체성이 없이 애매해지는 것은 기독교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파괴시키는 일이에요. 보수는 보수대로의 정체성을 진보는 진보대로의 정체성을 지키며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 좀 전에도 말했다시피 대교회와 중소교회들의 갈등도 한국교회가 풀어야 할 큰 숙제입니다. 일단 대교회가 되면 교회의 지도력이 강화되며 평신도는 목회자에게 더욱 의존적 성향을 보이게 됩니다. 또 대교회가 되면 안정을 추구하려는 기득권적 요소가 있기에 예언자적 사명 그리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뿐더러 정치적 판단에 있어서도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힘들어집니다.

지성인들의 사회. 평신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주목 받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이 목사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와 동일선 상에서 함께 교회를 운영해 나가는 그런 알찬 교회들이 생겨날 때 한국교회는 건강해지고,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박형규 목사 ⓒ김진한 기자

- 평화하면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있으니 종교간 대화 운동일 것입니다. 작년엔 불교계에서 종교 편향 사태와 관련, 대규모 집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어느 때보다 종교간 대화 운동이 절실하다고 여겨지는데요.

“종교간 대화는 일단은 근본주의자들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일 거에요. 만약 그들을 종교간 대화의 테이블로 데려 온다면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귀부터 틀어막고, 자기들 주장만 열심히 하다가 자리를 뜰 것입니다.

자기의 신앙만을 절대화해 타인의 신앙을 배격하고, 배척하는 것은 다문화 사회를 역행하는 태도라고 봅니다. 자기 것이 소중한 만큼 남의 것도 소중하다는 인식 전환이 한국교회에 절실히 필요합니다. 적어도 목회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교인들에게까지 시대 역행적 사고를 강요할 필요는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개신교든 불교든 천주교든 다문화 사회 종교가 공존하여 상생, 발전할 수 있는 대화와 토론의 장을 계속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성직자 개개인이 타종교에 대한 상식도 가져야 하며 끊임없는 교류와 접촉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 이해 속에 종교간 대화 운동이 일어나면 우리가 예상치 못한 많은 수확을 거두게 될 것이라고 내다봅니다. 정의·평화·생명·환경 등 다양한 의제에 대해 종교간 입장이 하나로 모아질 수 있으며 모아진 의견을 토대로 공동의 활동을 벌일 수도 있을 거에요.

실제로 과거 70,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 개신교, 불교, 천주교 등의 몇몇 성직자들은 각 종단의 대표자격으로 민주화 운동에 손잡고 함께 투신한 적도 있었다. 이처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도 종교인들간 서로 손잡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어떻게 보면 이스람과 유대교와의 충돌로 볼 수도 있는데 이러한 종교간 갈등,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종교간 대화와 평화운동은 끊임없이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 오바마 미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이 던져주는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전 지구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지구상에는 부의 차이, 성별의 차이, 피부색의 차이 등 이외에 여러가지 요인들로 인해 억압받는 수많은 인종들, 나라들이 있습니다.

이제껏 억압하는 사회를 대표하며 백인 위주, 자본주의 위주를 고수했던 미국이 보수 근본주의를 대표하는 부시의 대안으로 흑인 오바마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은 세계적 리더십을 갖고 있는 미국이 아직은 변화를 수용할 만한 희망이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쾌거였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변화는 전 세계의 판도가 달라지는 데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전 세계의 수구 세력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 개혁, 갱신 세력들은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더욱 줄기차게 여러 정책들을 힘있게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사회적 약자들, 소수자들에게도 희망이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오바마 미 흑인 대통령의 당선은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은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 박형규 목사는

학력

부산대학교 철학과 중퇴
일본도쿄 신학대학원 석사(BTH)
미국 유니언신학대학 석사(STM)

주요경력

前 공덕교회, 초동교회 부목사
前 한국 기독학생회(현 KSCF) 총무
前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前 기독교방송 CBS 상무이사
前 서울제일교회 담임목사
前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前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이사장
前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前 전국민족민주연합 상임고문
前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
前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前 민주화기념운동사업회 초대이사장
現 남북평화재단 이사장

저서

논설집- ‘해방의 길목에서’
설교집- ‘해방을 위한 순례’
‘폭력을 이기는 자유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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