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창세기 2:41b-9
주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실 때에, 주 하나님이 땅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갈 사람도 아직 없었으므로, 땅에는 나무가 없고, 들에는 풀 한 포기도 아직 돋아나지 않았다. 땅에서 물이 솟아서, 온 땅을 적셨다.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주 하나님이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을 일구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주 하나님은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땅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아멘.
베드로전서 5:7-10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악마를 맞서 싸우십시오. 여러분도 아는 대로, 세상에 있는 여러분의 형제자매들도 다 같은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모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불러들이신 분께서, 잠시동안 고난을 받은 여러분을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게 세워 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권세가 영원히 하나님께 있기를 빕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6:31-34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으로 족하다.” 아멘.
설교문
지난주에 제가 잠깐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WCC 총회를 앞두고 중요한 계획을 짜는 모임이라서 가지 않아야 할 모임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꼭 안갈 수가 없어 다녀왔는데. 여러분 걱정 많이 하셨죠? 저도요 몸이 아파서 또 재발할까봐. 제일 얌체같이 총회 참석하다 왔습니다. 쉬는 때는 어김없이 쉬었고요. 조금 회의에 늦기도 했고, 많이 쉬다 왔는데,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나중에 드리기로 하고요. 하루 저녁은 저희들이 우리 한국 측 대접으로 해서 옛날 APEC 정상 회담이 열렸다는 해운대의 어디 섬 같은 곳에 저녁을 먹으로 갔는데, 굉장히 좋았습니다. 서울에 그런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서울보다 훨씬 좋은 곳에 다녀왔습니다. 밥을 먹고 내려오는데, 외국에서 오신 손님들이 너무 좋다고 찬사를 발휘한 것 중에서 두 가지만 인용하겠습니다. 하나는 강가를 따라 내려오는데, 강 맞은편에 벡스코(BEXCO) 등 새롭게 지은 시설을 많이 해 놨더라고요. 고층 아파트며, 건물이 많았습니다.
덴마크에서 온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고층빌딩을 보니까 높이들이 덴마크에 있는 어떤 산보다 훨씬 높다. 덴마크는 산이 있긴 있지만 언덕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아프리카 청년 두 아이가 하는 말이 아프리카에는 아예 이런 것도 없고, 높이가 너무 높아서 쳐다보기 어렵다. 저도 보니까 꽤 높더라고요.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어디선가 야외 음악당 같은 곳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함께 높이에, 전깃불에, 바다 출렁거림에, 음악소리에, 또 신선한 공기에 참 좋았습니다. 제가 찬송 들으면서 성가대가 와서 그날 밤에 노래 불렀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왔습니다.
사실은 저희들이 총회를 하면서 매일 아침마다 성경공부를 하게 됩니다. 성경공부는 그룹이 200개가 넘습니다. 그 중 성경공부하게 될 본문 하나가 오늘 여러분께서 봉독해서 들은 마태복음 말씀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염려하지 마라. 하나님이 다 준다. 오늘 실컷 먹고, 마시고, 편안하게 살고, 내일 또 줄 테니 내일 염려하지 마라. 내일은 맡기고 살아라. 이 구절입니다.
아프리카에서 온 청년들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해운대 사는 사람은 이 구절이 아멘으로 받아 들여 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같이 아프리카에 사는 사람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그리고 잘 것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데, 너무 염려가 된다. 이걸 염려 하는 사람은 예수님 말씀으로 이방사람 그랬는데, 우리는 여전히 이방사람이냐? 2천 년 전에 하신 말씀인데, 2천 년 후인 지금까지도 하나도 틀림이 없이 우리는 굶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옷이 없다.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할거냐?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도 한때는 이럴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 말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여러분 먹고 마시는 것 걱정하는 사람 우리주변에 있긴 있습니다만, 여기 앉은 분들은 한 분도 안계시죠. 내일 걱정도 안계시죠. 다 하나님께서 주실 건데요. 이 말을 전 세계에 다니면서 선포 했을 때, 그래 말의 뜻은 맞는데,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서 청년아이 하나가 하는 말이 전 세계에서 마시는 거 모자라서, 먹는 거 모자라서 일 년에 가난아이만 천만 명 이상 죽어간다는데, 예수는 그런 사람보고 뭐라고 하실 거냐. 이방 아이들 이냐? 가슴이 뜨끔한 이야기 이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한국에서 회의를 하는데, 회의 장소도 너무 좋고, 너무 비싸고, 너무 맛있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동안 한국이 WCC 뿐만 아니라 잘 사는 나라로부터 교회 뿐 아니라 이 사회가 도움을 많이 받고 살았는데, 이번 기회에 우리도 한 번 도움을 베풀자. 이런 운동을 저희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완전 합의는 안됐습니다만, 내적합의는 하나 있습니다. 도울 것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서 먹을 것, 마실 것, 잘 것 염려 하시는 나라에서 온 손님들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우리 돈으로 줄 수 없느냐. 그래서 약 7천명 모인다고 가정하고, 대표만 약 700올 텐데, 대표들 가운데서 계산해 보니까 3백 명은 제돈 가지고 오고요, 4백 명은 도움을 받아야 옵니다. 그래서 본부에서는 비행기값 보조해주기로 하고, 자고, 먹고, 마시는 건 한국교회가 도와주면 좋겠다. 그렇게 대충 할 예정입니다. 그 돈이 몇 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거라도 통해서 우리 도움 받은 걸 갚아보자. 그 이야기를 잠깐 나누는데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기 와서 하룻밤 자는데 아무리 싸게 들어도, 허름한 호텔에 가도 100불 이상이 들어갑니다. 아프리카 청년 하는 이야기가요, 100불이면요, 우리 나미비야(Namibia)에서는요, 석 달 치 월급입니다. 그런 나라에 와서 하나님의 정의가 어떻고, 생명이 어떻고, 평화가 어떻고 얼마나 비쌉니까. 그러나 논의는 해야 되겠고, 그래서 같이 협력해서 돕기로 했습니다.
내일,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이라고 믿습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도 주인이십니다. 어제도 주인이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살고, 여러분도 그렇게 믿고 살고 우리 똑같이 고백을 합니다. 어제도 지켜주셨으면, 오늘도 지켜 주실 거고, 내일도 지켜 주실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우리는 믿고 살아갑니다. 2천 년 전 이 말씀을 하셨을 당시 로마에 살던 유대백성들,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는 배고파서 먹을 것도 없었지만 더 힘든 것은 하나님 믿는다고 예수 따라 다닌다고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았습니다. 로마제국주의 일입니다. 핍박한 사람 중에 네로황제라는 사람 이야기 아시죠? 이 사람은 정권유지를 위해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다가 생으로 장대에 꽂아가지고 밤에 기름을 부은 후 불을 질렀습니다. 마치 횃불처럼 사용했습니다. 사자 굴에 집어넣어서 죽게 하고 사람들에게 쾌감을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로마시내 불을 놓고 기독교인들이 방화했다고 해서 핍박을 했습니다. 1900년이 흐른 후에요, 독일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밤에 베를린 시내에 불을 질러 놓고 이 불을 논자가 누구냐 하면 유태인들이다. 그래서 히틀러라 이름하는 새로운 내용만 담아서 유태인 박멸작전을 시작합니다. 2천 년 전 로마, 1900년대, 아니면 2000년대 베를린 혹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건들이 많이 생깁니다.
다시 로마로 갑니다. 오늘 베드로전서 이야기가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그리스도 믿으시느라고 고생 많으십니다. 믿음이 뭐라고 그렇게 고통당하십니까?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그러나 한 가지만 기억하십시오. 고통은 당해야 하면 당하셔야 됩니다. 고통은 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걸 포기하지 않으려면, 두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고통을 당해야 한다면 당하세요. 그러나 고통을 혼자 당하는 법은 없습니다. 아프세요. 혼자 아프신 경우 있습니까? 누군가는 옆에서 기도로 받쳐 줍니다. 누군가는 위로에 말씀도 줍니다. 만약에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오늘 베드로전서의 약속입니다. 당신을 만들어 주신 하나님은 보이지 않지만 당신과 함께 고난을 함께 받으십니다. 혼자 받는 고난은 없습니다. 그것이 신앙고백입니다. 두 번째 어렵지만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죽임을 당하더라도, 고난을 받더라도 한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이 고난이 무의미한 고난이다. 그건 아닙니다. 무의미한 고난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함께 손잡고 고난 받고, 고난 받으면 고난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고난 받은 다음에, 고난 때문에, 뭔가 새로움이 당신에게 주어집니다. 예수 생각하시죠. 예수의 십자가 고난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저희 때문에 죽고 난 다음에 부활이 고난 다음에 주어지는 선물이었습니다. 이 사람 믿으십니까. 지금 받는 고난 받으세요. 의미 없는 고난이 아니라 의미 있는 고난입니다. 부활을 얻기 위하여!
혹시 여러분 먹고, 마시고, 입는 것 있지만 살아가기가 힘들어서 인생의 의미가 뭔지 잘 모를 때가 있어서, 너무 좋아서, 너무 가진 게 많아서, 불안해서 고난 받는 분 계십니까. 고난 받을 수 있지만, 혼자 받는 고난이 아닙니다. 무의미한 고난이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고난을 감내할 수 있습니다. 혼자 고난 받습니다. 무의미하게 고난 받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고난 받는 사람은 자기 모습을 스스로 끊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잘 것 많은데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고난, 혼자가 아닙니다.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같이 견디셔야 합니다. 아무도 같이 안 해주면 하나님은 같이 해주십니다. 왜? 대신 죽으셨잖아요. 함께 부활하셨잖아요. 이 분을 믿는 사람은 여러분 부활일 테니. 시대가 변하고, 사건이 변해도 그 분은 철두철미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고난의 한 가운데 계셔서 고난이 끝이 아니다. 고난 다음에 행복과, 사랑과, 부활과 기쁨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오늘 21세기에 살지만 우리 그렇게 믿고 이곳에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과거에 받은 고난이 끝이 아니었음을 압니다. 새로운 희망이 우리 앞에 있음을 압니다. 이 희망의 주인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오늘도 같이 해준다고 믿고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확신하지요?
오늘 창세기에 보면 아주 옛날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 고난은 홀로 받는 게 아닙니다. 같이 받습니다. 고난은 끝이 아닙니다. 고난은 아름다움의 한 과정입니다. 그 이야기를 하시기 위해서 창세기에 에덴동산 이야기를 하십니다. 창세기 읽어서 들어보셨지요. 사람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를 아름다운 장소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로 쓰여 있습니다. 에덴이라는 땅속에 있는 곳으로 한 곳, 동쪽에 있는 동산 그것이 에덴동산이다. Easter of Eden, 그렇게 말하지요. 또 오늘 성경본문에 보면 에덴이라는 땅속에 있는 동산이 아니고, 그냥 에덴동산. 동산 자체가 에덴입니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잘 모릅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다 있지요. 큰 땅덩어리가 다 에덴동산이고, 아니면 큰 땅덩어리 속에 어느 한곳이 에덴동산이지요. 상관이 없습니다. 어느 경우든 에덴동산에 사람이 먹고, 입고, 살 나무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생명나무라 이름 하는 아주 좋은 나무 하나를 하나님이 심어 놓으시고,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 옆에는 하나님만 관여하시는 나무, 선과 악을 구분하는 나무를 세워놓고, 이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 것임으로 먹지마라. 그런데 마귀가 유혹합니다. 왜 생명나무만 먹고사냐,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져서 선과악이 있는 나무 열매까지 먹으면 완벽한 에덴동산이 된다.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했으면 그냥 에덴동산에서 살고, 경동도 없을 겁니다, 만약에 에덴동산에 있었으면. 죄짓는 바람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에덴이라는 뜻은 다른 것이 아니고요. 에덴이라는 원어가요, 환희, 기쁨, 아름다움. 우리가 표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합친 말이 에덴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은 기쁨의 땅, 환희의 동산, 그런 뜻입니다. 그곳에 있으면 환희가 있다. 단 조건은 생명나무라 이름 하는 모든 열매만 먹고 살면 환희가 넘치나 하나님만 먹겠다고 한 선악과를 먹으면 환희가 없느니라.
그런데 마귀는, 사탄은 사람의 환희를 무너뜨리려고 생명나무가 아닌 선악과로 가지고 갔습니다. 선악과 이야기는 왜 했을까? 선악과는 먹을 수 있습니다. 가능성이죠. 그러나 먹으면 안 되는 불가능한 현실입니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그 말은 불가능한 가능성. Impossible possibility. 그렇게 말하지요? 사람에게요, 모든 게 가능합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켜야지. 인간의 가능성만 가지고 죄를 범하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제가 이것을 보면서 최근예요. 차를 운전하면서 늘 느낀 점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보면요, 자동차의 거리를 재는 속도계를 보면 240, 300까지 있는 차가 있습sl다. 제가 아무리 밟아도요, 그 속도계 나오는 메타 다 밟지 못합니다. 다 나가는 차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한테 맥시멈(Maximum) 스피드가 있는데, 이 맥시멈은 저에게 가능성으로 주어졌을 뿐 제가 이거 다 밟다가는 제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운전하는 것이 좋습니까? 가장 경제적으로, 편안하게, 적당한 속도로 잘 맞춰서 운전하면 사고 안 나지요? 맥시멈으로 살면은요 사람 불편합니다. 얼마나 돈을 가지면 맥시멈으로 얼마까지면 행복하십니까? 권력을 얼마나 으로 가져야 여러분 편안하십니까. 얼마나 큰집을 맥시멈으로 가지면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맥시멈 최고입니다. 가장 많은 겁니다. 이 맥시멈은 한계가 없기 때문에 어느 것을 맥시멈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맥시멈은 하나님께 맡깁시다. 맥시멈 안에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최고로 최소를 갈라놓는 우리의 사고방식입니다. 맥시멈 그 반대는 미니멈(Minimum). 아프리카 청년의 이야기는요. 우리는 미니멈에서 삽니다. 너무 힘듭니다. 우리는 맥시멈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삽니다. 너무 힙듭니다. 한계가 안보이기 때문에, 갈수록 양양이지요. 왜 죽습니까? 왜 부자가 죽습니까? 왜 배운 자가 목숨 끊습니까? 다른 일은 그만 두고 맥시멈에 도달하지 못해서, 허망하니까.
생명나무는 뭐냐 하면 맥시멈, 미니멈을 당신들이 정하지 말라. 하나님이 정하는 속에서 마음대로 먹고 마시면 행복해야 한다. 환희해야 한다. 진실로 보람되어야 한다. 그리고 웃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맥시멈도 아니고 미니멈도 아니다. 뭐냐? 가장 적합한 것. 나한테 가장 조화로운 것. 그걸 옵티멈(Optimum) 그렇게 말하지요. 이걸 제가 복수로 쓰겠습니다. 맥시마(Maxima), 미니마(Minima), 옵티마(Optima). 생명나무나는 뭐냐 하면 맥시마와 미니마는 하나님이 정하실테니 그 안에서 마음껏 즐기데 서로 조화가 돼서 음식도 조화되게 따먹고, 소화능력이 있는 것은 먹고, 조화를 이루어서 옵티마하게 살아라. 그것이 에덴이라는 행복의 뜻이니라.
오늘 성가대 찬양했는데요, 테너, 베이스, 알토, 소프라노 각자 목소리를요 맥시멈으로 해보세요 한번. 테너는 테너에게 소리질러보고, 베이스 질러보고, 맥시멈이 합쳐지면 행복합니까. 그런 찬양은 귀에 들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건강도, 먹을 것도, 숨 쉬는 것도, 말하는 것도 각자 맥시멈으로 살아가면은요, 세상은 전쟁이요, 파탄입니다. 뭐가 최고냐? 적당히 합해서, 가장 적절하게 합하는 겁니다. 하모니, 오케스트라, 심포니. 모두의 행복을 추구하는 합해서 이익이 되는 것,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 것 그것이 진정 에덴동산의 삶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너무 적어서, 너무 커서 불행이 아닙니다. 합해서 조화를 이룰 줄 모릅니다. 합해서 선을 이룰 줄 모릅니다. 하나님은 높은데 계시지만 그 하나님은요 우리와 함께 섞여 살면서 아름다운 조화와 기쁨과 환희를 줄려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고난 속에서도 함께하시고, 고난을 무의미하지 않다 하시고 에덴동산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성령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너무 타락했습니다. 조금 가졌다고, 얼마나 밟았습니까? 내가 맥시멈인줄 알고. 조금 덜 가졌다고 나만 고생한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미니멈처럼 자기비하하면 살았습니까. 합해 봅시다. 조화를 이루어 봅시다. 사람과 사람끼리. 하나님과 사람이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어서 합해서 선을 이루면 그것이 오늘의 에덴동산입니다. 그 나무의 열매가 생명나무 열매입니다. 많이 따서 옵티마하게 드시기 바랍니다. 믿음, 소망, 사랑 모든 게 합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선을 이룹시다. 그렇게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