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본문
이사야서 38:9, 14, 20
다음은,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이 들었다가 그 병에서 회복된 다음에 읊은 시이다. 나는 제비처럼 학처럼 애타게 소리 지르고, 비둘기처럼 구슬피 울었다. 나는 눈이 멀도록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주님, 저는 괴롭습니다. 이 고통에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주님께서 그대로 이루셨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나의 영혼이 번민에 싸여 있으므로, 내가 잠을 이룰 수 없다. 주님, 주님을 섬기고 살겠습니다. 주님만 섬기겠습니다. 저를 낫게 하여 주셔서, 다시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이 아픔이 평안으로 바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몸을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져 주시고, 주님께서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스올에서는 아무도 주님께 감사드릴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도 주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할 수 없습니다. 제가 오늘 주님을 찬양하듯, 오직 살아 있는 사람만이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주님의 신실하심을 일러줍니다. 주님, 주님께서 저를 낫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금을 뜯으며,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사는 날 동안, 우리가 주님의 성전에서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아멘.
디모데후서 1:7-10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일이나 주님을 위하여 갇힌 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겪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실을 따라 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는 영원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심으로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음을 환히 보이셨습니다. 아멘.
누가복음서 7:11-16
그 뒤에 곧 예수께서 나인이라는 성읍으로 가시게 되었는데, 제자들과 큰 무리가 그와 동행하였다. 예수께서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사람을 메고 나오고 있었다. 그 죽은 사람은 그의 어머니의 외아들이고, 그 여자는 과부였다. 그런데 그 성의 많은 사람이 그 여자와 함께 따라오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 여자를 보시고, 가엾게 여기셔서 말씀하셨다. “울지 말아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서, 관에 손을 대시니, 메고 가는 사람들이 멈춰 섰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젊은이야,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죽은 사람이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그래서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말하기를 “우리에게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아주셨다” 하였다. 아멘.
설교문
제가 오늘 죽고 사는 문제를 설교하려고 섰습니다. 살기는 사는데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 제가 노래하는 행복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보도를 보니까요. 미국에 계신 한국 의사 같은데, 이 분이 암전문의 인가 봐요. 이런 임상보고서를 내놨더라고요. 다 이야기 드릴 순 없고, 암세포가 사람 속에 있는데, 암세포 많으면요, 암에 걸리겠죠. 그런데 암세포를 잡아먹는 특수한 세포가 우리 면역 세포 중에 많다고 그래요. 그 세포 이름이 뭐냐고 하면 NK세포. 제가 NK라고 해서요, 보통 NK그러면, 여러분 다 아시죠 North Korea, 그래서 이북제 세포가 있나 보다 하고 드려다 봤더니. 그게 아니고 Natural Killer. 이건 타고나면서 잡아먹기만 하는 세포가 있나봐요. 그래서 Natural Killer Cell, 그렀습니다. 그 세포가 많으면 암에 걸리지도 않고요, 또 암에 걸렸다 하더라도 세포가 많으면 암세포를 잡아 먹는다 그 뜻입니다. 그래서 읽어 보고 나서 저한테 NK세포가 너무 적었구나 생각해서 후회가 막심합니다.
그런데 NK세포는 어떻게 생기느냐 봤더니. 이분 하는 말이 임상결과 항상 웃고, 항상 즐겁고, 기쁘고, 재밌고, 행복하면 NK세포가 늘어난다. 뭐 그런 사람 많을 텐데...이분이 아마 교회장로님 같은 것 같습니다. 교회에 가서 어떤 교인들이 NK세포가 많은가 하고 집단별로 조사를 해본 모양이에요. 해본 결과 NK세포 수치가 가장 높은 그룹이 있었습니다, 성가대! 그래서 얼마나 높은가 봤더니요. 성가대 하는 사람들의 세포 수치하고 일반 교인들의 세포 수치하고 1000배의 차이라고 합니다. 제가 걱정이 되는데, 여러분 다 성가대 하시겠다고 하면 어떡하실까? 성가대는 한턱 단단히 내셔야겠습니다. 수고들 하시지만.
제가 이걸 보면서요. 사람이 기쁘고 즐거우면 NK세포가 많이 생겨서 사람을 살게 하는구나. (사실은요) 노래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이 모든 것이 사람을 살리게 하는 기본 영양소입니다. 그래서 그냥 `즐거워하라`는 게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으면 노래하라. 그러면 성가대 안 들어갔으면 어떡하냐? 여러분 밥 짓는 것, 공부하는 것, 일하는 하나하나가 노래이면 좋겠습니다. 살아가는 숨 쉼 하나하나가 노래하고 찬양이며 NK세포도 늘어나고 행복한 거죠. 너무 크게 생각지 마시고, 일상의 작은일 하나부터 즐겁고 기쁘고 살아가십시다.
사람만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자리에 앉아서요, 앞에 강단을 쳐다봤습니다. 매주 쳐다봅니다. 제가 오늘 감동 받은 일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꽃 한 번 보시죠? 매주 토요일마다 저희 풀라워이스트 되신 분들이 꽃 장식을 합니다. 고마우신 분들인데요, 오늘 제가 감사말씀 드리겠습니다. 꽃이 사람은 아닌데요, 살아있는 생물체임은 틀림없습니다. 아직 살아 있습니다. 숨도 쉬고 있고요, 말만 못합니다. 이 꽃을요, 우리보기 좋으라고 삭둑 자릅니다. 팔도 자르고, 다리도 자르고 몸도 잘라요. 아무 말도 안합니다. 어제 잘랐으니까 오늘 지나고 수요일 정도까지 가고나면 이제 죽어 갑니다. 꽃의 생명은 우리처럼 몇 십 년도 아니고 불과 며칠입니다. 이 꽃이 하는 말이요, 자기를 잘라도, 며칠만에 자기를 버려도 아무런 불평이 없습니다. 말을 못해서 불평을 못하나요? 제가 보기엔 생명체입니다. 억울함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꽃 한 번 쳐다보시면요, 꽃의 얼굴한번 보시죠. 한 번도 찡그리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웃죠! 꽃의 사명이 뭔지 아십니까? 제가 해석입니다. 고마워서! 꽃은 생명의 길이를 추구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지 인간에게 봉사할 수 있으면,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으면, 기꺼이 희생하겠다. 나와서 웃는 얼굴로 여러분 맞이합니다. 꽃의 자기 확인입니다. 나는 생명의 길고 짧음과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피조물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싶다. 나는 웃으며 산다. 기쁜 노래를 내 향기로, 내 얼굴로 표현하고 싶다. 이것이 꽃이 사는 생명의 비결입니다.
우리 자연에서 배워야 합니다. 만물의 영장이 꽃에서 배워야 합니다. 내일 없어지겠지만, 오늘 행복하게 자기 자태를 발휘하고 우리보고 사는 것이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정말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을 인생의 목표, 의미로 생각하는 꽃!
앉으신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는 뭡니까? 어떤 얼굴을 가지고 하늘을 향해서 쳐다보고 어떤 얼굴로, 어떤 마음으로 대화하고 삽니까? 아주 일상에 작지만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제가 두 사람 이야기를 성경에 있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왕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부터 약 3천 500년 전 이스라엘 땅에 히스기야라 이름하는 왕이 살았습니다. 이 당시 이스라엘 땅은 남북으로 우리나라처럼 갈라져 있었습니다. 솔로몬 이후 영화가 쇠하고, 나라가 두 동강이 났습니다. 북쪽에 있는 나라를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습니다. 남쪽 나라를 유다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이미 오늘 히스기야 왕이 살았던 시대보다 150년 전에 이미 앗시리아라고 하는 나라에 속국이 되어서 망했습니다. 유다 땅에서는 그런 대로 목숨을 부재했지만, 이제 북쪽에 있는 앗시리아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침략해 오고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망했습니다만, 망하기전 우리나라로 따지면 소위 구한말 일제식민지 되기 전 나라가 어지 러울때 비슷합니다. 이때 임금님 이름이 히스기야인데, 히스기야에게 예언자가 찾아와서 선고합니다. 당신 생명이 곧 끝난다. 나라걱정, 당신 걱정, 하나님한테 구원받을 걱정을 해라. 마지막 사형선고를 받은 히스기야 왕이 나중에 낫기는 나았습니다. 낫은 다음에 사형선고 받고 낫기까지 애절한 심정을 오늘 이사야에서 봉독한 대로 읽고 있습니다. 낫은 사람의 이야기니까요, 잠깐 볼게요. 제가 사형 선고 받고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나는 제비처럼, 학처럼 애타게 소리소리 질렀습니다. 죽기 싫어서요. 때로는 비둘기처럼 구슬프게 울었습니다. 때로는 눈이 멀도록 하늘을 쳐다보고 호소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저 괴롭습니다. 이 고통에서 건져 주시지요.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이렇게 살다가죽으면 내 인생이 어찌 하라고 하나님 이러십니까? 왕인들 자기 목숨을 구제할 수가 없지요. 또 하나 있습니다. 왕은 개인이 아닙니다. 민족 나라 전체의 책임자인데, 자기 히스기야 왕의 조상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다윗 임금입니다. 다윗왕가의 후손이고 자기가 왕입니다. 제가 죽으면 우리 조상인 다윗임금한테 뭐라고 할까요? 두 번째는 왕에게는 후손이 필요합니다. 히스기야왕은 후손이 아직 없었습니다. 아이가 없었던 거지요. 아이가 없이 죽으면 누가 왕위를 계속합니까? 이 어려운 시기에. 그래서 아마 히스기야가 하늘을 우러러 저한테 왕자 하나를 주시고 목숨을 가져가시죠. 아마 이랬을 겁니다. 나중에는 병이 다 낫은 다음에 3년 후에 아기가 났습니다. 그 왕자가 나중에 아버지를 계승한 므낫세라는 이름한 왕입니다. 왕자도 없죠, 나라도 풍전등화에 있지요. 자기조상에게도 미안하지요. 자기 자신의 앞날도 괴롭지요. 하나님 내가 하늘을 우러러 정말 죽겠습니다. 살려주시면, 제가 하나님 섬기겠습니다. 나라도 섬기겠습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히스기야왕을 살려준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뒤로부터 상당한 시일이 흘러서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예수께서 어느 길거리를 지나시는데 나인이라 이름하는 동네에 갔더니 상여 하나가 옵니다. 죽은 사람을 어깨에 멘 사람들이 울며 통곡하며 옵니다. 남편을 잃은 과부, 당시 과부는요 먹고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지탄을 받습니다. 이 과부한테 하나 밖에 없던 독자가 죽었습니다. 남편 죽고, 독자도 죽고...눈물의 양, 통곡의 소리, 뭐 상상을 안 해도 가능하지요. 예수께서 오셔서 너무 불쌍해서, 이 불쌍하다는 말은요 예수의 가슴이 찌어질 정도로 불쌍해서 생애를 중단시키고 손을 얹어서 죽은 자야 일어나라.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이야기입니다. 왕도 고침을 받았고, 죽은 자도 살아났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고, 아팠다가 나음을 받은 두 이야기입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이 말씀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한테 전해주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사람은 아프고 죽는다. 요즘에 생명학 이라는 학문이 없지요. 새로 죽음학이런 학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모든 학문은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합니다.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과학적으로 분석이 가능하고, 학문적으로 증명이 가능해야 학문으로서 자격이 있습니다. 죽음학? 받아들이시나요.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죽음학이 성립합니까? ‘모두가 죽는다’ 만고의 진리입니다. 입증도 필요 없고, 죽습니다. 언제 죽는가는 모릅니다. 죽음학이 성립하면, 생명학도 성립해야 되겠죠? 살고 있으니까요. 어떻게 살고 있느냐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이 예수께서 오늘 사도바울을 통해서 답변하고 계십니다. 누가 히스기야왕을 낫게 한 줄 아느냐? 누가 죽은 자를 살린 줄 아느냐? 죽은 자가 스스로 살아 나는 것도 아니고, 히스기야왕이 스스로 일어난 것도 아니다. 오늘 여러분이 봉독해 주신 말씀에서 답을 찾아볼게요. 디모데후서 1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행실 때문이 아니요.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된 것입니다. 생명은 나 때문에 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와 계획 때문에 제가 사는 겁니다. 반대로요, 죽음은 나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계획 때문에 죽습니다. 죽음 속에, 생명 속에 누가 있어서 그러냐하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태어날 때, 몸으로 태어났고, 혼을 갖고 태어났다고 그러는데, 성경말씀에 보면 우리가 태어날 때 사람이라 이름하는 몸속에 하나님의 생명의 입김이 들어가서 저희가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것 믿으시죠? 저한테 혼이 있고, 정신이 있습니다. 제가 만든 게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제 속에는 여러분 속에는 하나님의 입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아픈 자 낫게 했는줄 아십니까? ‘자기 자존심’ 때문에 하나님이 왜 죽은 자 살린 줄 아십니까? 죽은 자 속에는 자기의 혼이, 하나님의 입김이 죽으면 안 됩니다. 죽은 자 살립니다. 하나님의 자기 존재 방식입니다. 사람이 내 힘 가지고 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존재를 위해서 사람을 살립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가 자식을 낫을 길을 백방으로 찾습니다. 남편이 아프면요, 아내가요 무슨 수를 쓰던지 낫게 할 방법을 찾습니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자식이 아픈 하나님은 낫게 하려고, 살리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자기 자식 속에 자기의 DNA를 심어 놨거든요, 자기 혼을 심어 놨거든요. 자기의 혼 때문에라도 사람 살려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살려줍니다. 죽음 속에, 생명 속에도 하나님의 혼이 영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겁니다. 가난한 사람이 저한테 한 입 달라고 애걸하면 제 마음이 감동해서 한 입을 줍니다. 누가 불렀느냐하면 가난한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입김이 내 감동을 통해서 나한테 욕구해서 제가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겁니다.
세상은 홀로 사는 것 같지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갑니다. 이런 세상을 사는 여러분 신앙이 무엇인지 알고 살아갑시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강단에서 목사가 하는 소리 성경하는 소리로만 알고 계시죠? 제가 한 과학자 이야기 할까요? 철저하게 과학적인 사고에 평생을 바친 사람 애플사를 만든 스티브잡스입니다. 스티븐잡스에 대한 이야기 언론을 통해 들으셨죠? 철저히 과학자, 기술자, 발명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아닙니다. 불교신자입니다. 우리처럼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을 하는 채식주의자입니다. 생선까지만 먹는다고 합니다. 스티브잡스라고 하는 사람이 죽어서 온 세상에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이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어 보면요, 하나님은 믿지 않으나 이름 없는 그리스도인, ‘익명의 그리스도인’ 같아요. 신앙 없는 신앙의 사람 같아요. 이 사람 하는 말입니다. 특히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했던 이야기입니다. 늘 갈망하고, Stay hungry! 우직하게 살고 Stay foolish! 그러니까 항상 추구하고, 한번 뭘 만들었다고 멈추지 말고 계속추구하고. 그리고 여러 군데 돌아다니지 말고, 한 우물좀 바보같이 파고. 그랬더니 아이폰이 나왔습니다. 그 뜻이겠죠.
이 말할 때 배경은 이렇습니다.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난 다음에 스티븐 잡스가 마지막 성공해 놓고서 하는 말입니다. 한 우물만 팠더니, 그리고 계속해서 추구했더니 실패를 넘어서 성공을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평소 하는 이야기 중에 제 마음을 감동시킨 말이 있습니다. 죽음이 무엇이냐 하면? 생명이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입니다. 죽지도 않고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마 예견하고 했겠지요? 이 사람도 아마 죽음을 담 넘는 과정으로 받아 드리니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분이 유명한 것이 무엇이냐고 하니까? 기술과 다른 사람 말로 인문과학, 기술과 예술을 잘 적합한 분이다. 이 분이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저는 기술자인데요, 과학적 기술자입니다. 기술이 무엇이냐 하면? 본래부터 있는 인간의 욕구를 아름답게, 우아하게, 세련되게 만들어 주는 것을 기술이라 이름합니다. 인간의 욕구 충족이 기술입니다. 아이폰이 그렇지요? 그런데 최고의 작품은 그런 기술 작품이 아니라.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아직은 만져보지 못했으나 나한테 좋을 거라 믿고 있는 미래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이 진짜 기술입니다. 그러면 기술이라고 말하기보다 예술이라고 말해야 하겠죠. 내 입장은 신앙이라 말하면 되겠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 심장에서 요동치고, 그 요동이 내 머리로 와서 감동을 일으켜서 만드는 작품. 내 마음이 먼저 요동을 치고 내 머리까지 올라와서 감동을 일으키면 그것은 뭐가 나옵니다. 오늘에 국한된 삶이 아니고, 내일, 모르는 내일에 과감하게 뛰어드는 마음 여기서 작품이 나오면 그 작품이 예술적 기술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은 사실은 기술자이면서도 예술을 사랑한 사람 같습니다. 현실에 충실하면서도 현실을 뛰어넘는 혜안을 가진 사람 같습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고, 가슴으로 뛰면서 감동을 생각한 사람 같습니다. 감동을 상품화 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만이 현재 우리가 좋아하는 거 무엇인지 찾았다고 발명했다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내일 좋아할 것, 미래에 좋아할 걸 찾아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훌륭한 기술일 겁니다. 이걸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과학자에 한 진술이기는 하나 우리는 이 속에서 하늘에 주신 하나의 새로운 생명을 받을 수도 있다. 그게 뭐냐 하니까, 우리가 매일 매일 살아가는 모든 일상 속에 우리가 모르는 그 무언가 새로움이, 뛰어넘는 새로운 것이, 초월하는 무엇이 항상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고 계신다.
여기서 살면서 보람 있고, 행복해 할 수 있는 요건은 내일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내일의 약속이 있으면 오늘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내일은 염려 말라. 내일의 행복을 오늘 주마. 오늘 디모데서 말씀 속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 있는데, 축복은 비겁한 영이 아니라 능력이고, 사랑이고, 절제의 영이다. 무슨 절제인줄 아십니까? 여러분에게 권력 줬다고, 권력을 다 사용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많은 물질적 축복을 줬다고, 다 혼자 쓴다고 행복한 거 아닙니다. 건강을 줬는데, 혼자만 다 이용한다고 행복한 거 아닙니다. 절제는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다 쓸 수 있지만, 덜 쓰는 절제. 절제를 못하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내일까지도 살아갈 수 있으면 비겁하지 않은 생명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지금 무능해 보입니까? 내일은 잠재적 능력이 있습니다. 능력을 사랑하는 사람, 내일의 능력을 사랑하는 사람, 내일의 기쁨을 찾는 사람. 이 사람은 비겁한 영이 아니라 생명의 영입니다. 오늘 복되게 살면 내일도 복됩니다. 내일의 약속이 오늘을 복되게 만듭니다. 오늘 노래하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나누며 보람되게 살 수 있으면 내일의 행복이, 내일의 하나님 나라가 오늘임합니다. 혼자 살지 마시고, 같이 나누고 사십시다. 하나님 나라, 내일 이루어질 나라가 아니라 오늘 움트는 나라입니다. 행복, 보람, 의미, 모든 것이 오늘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지금 이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 만나시죠, 하나님 품고 사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