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큰 믿음

2011년 10월 16일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49:1-6

너희 섬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너희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이미 모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태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셔서, 나를 주님의 손 그늘에 숨기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로 만드셔서, 주님의 화살통에 감추셨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아, 너는 내 종이다. 네가 내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에는, 내가 한 것이 모두 헛수고 같았고, 쓸모 없고 허무한 일에 내 힘을 허비한 것 같았다. 그러나 참으로 주님께서 나를 올바로 심판하여 주셨으며, 내 하나님께서 나를 정당하게 보상하여 주셨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주님께서는 나를 그의 종으로 삼으셨다. 야곱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불러모으시려고, 나를 택하셨다. 그래서 나는 주님의 귀한 종이 되었고, 주님은 내 힘이 되셨다.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내 종이 되어서,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고 이스라엘 가운데 살아 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네게 오히려 가벼운 일이다.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미치게 하려고, 내가 너를 ‘뭇 민족의 빛’으로 삼았다.” 아멘.

고린도후서 6:14-18

믿지 않는 사람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마십시오. 정의와 불의가 어떻게 짝하며, 빛과 어둠이 어떻게 사귈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떻게 화합하며,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더불어 함께 차지할 몫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떻게 일치하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며, 그들 가운데로 다닐 것이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가운데서 나오너라. 그들과 떨어져라.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라. 나 주가 말한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너희의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나 전능한 주가 말한다.” 아멘.

마태복음서 16:21-28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였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께 대들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또 사람이 제 목숨을 되찾는 대가로 무엇을 내놓겠느냐? 인자가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인자가 자기 왕권을 차지하고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 아멘.
 
설교문

성가대 찬양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언젠가 교회연합 잘하는 마음씨를 가지고 희랍정교회 신부님 모시고 희랍정교 영성에 관해서 예배도 드리고, 강의도 들었던 것 기억하실 겁니다. 이번 수요일은 천주교에서 신부님 오셔서 강론도 하시고, 초대교회에 있었던 그레고리안 찬트도 직접 연주 하시고 하실 겁니다. 종교개혁 주일도 얼마 있으면 맞게 되는데요, 한 때 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하면 서로 부패한 걸 척결하고 싸우기도 하고, 갈라지기도 하고 그래서 개신교가 생겼습니다. 다 상처를 아문 다음에는 이제 서로 좋은 것 가지고 합할 때가 됐습니다. 합해서 좋은 걸 이루어야 되겠는데 그런 입장에서 이번 수요예배에는 종교개혁을 앞두고 천주교 신부님 모시고 찬송으로 같이 노래하고, 또 아름다운 말씀 듣는다고 생각하시고 연합운동을 위해서 많이들 참석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런 것 저런 것 생각하면서 한국교회, 한국사회, 동시에 세계교회를 늘 머릿속에 생각하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 과거에 외국을 많이 다녀 보신 분들, 또 어려웠던 시절에 외국경험을 해보신 분들 오늘 저하고 마음으로 대화한번 해봅시다, 짤막하게라도. 제가 70년대에 외국을 나가서 있다 왔는데, 그때 나가보니까 아주 희망 속에 나가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독일교회 목사로 가서 6년 일을 하고, 좀 더 있다 왔습니다. 그 때 저는 많이 흡족했지만, 막상 독일교회 가서 목회할 때 이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독일교회 목사와 똑같이 권리도 있지만 의무가 있어서 독일계 학교를 찾아가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독일목사와 똑같이 의무화되어 있는 성경과목을 가르친 일이 있습니다.

학년은 다 다른데요, 갈 때마다 제가 질문해요. 한국에서 온 목사니까, 내가 질문하나 하마. 때로는 세계지도 가지고 가고, 그곳에 있으면 벌려 놓고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 이렇게 물어요. 손은요, 얼마 잘 드는지...무조건 손부터 듭니다. 가리키라고 그러면 일본 밑에 있는 섬을 가리키고, 인도네시아 옆에 있는 뭐가 있나, 베트남 밑에 뭐가 있나 이러지. 한국을 제대로 짚지 못해요. 제가 정확한 기억은 못하겠는데, 한 6년 일하는 동안에 정확하게 한국을 지도에서 지적한 사람이 1건인지 2건 정도로 기억합니다. 한국을 몰라요. 그 때 제 마음속에 한국을 모르는구나.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입국하려고 하면 우리 여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입국비자는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의심이 간다고 한줄 옆으로 쫙 세워요. 저도 옆으로 섭니다. 그때 여러분 비참한 마음 아십니까. 통과도 못하고 옆에 쭉 서가지고. 소위 제 3세계의 설움입니다. 제가 그렇게 하면서 70년대를 지냈습니다.

그 시절을 아는 사람은 아마 지난주간에 있었던 보도에 놀라지 않았습니까. 예상은 했지만. 미국에서 자유무역협정이 통과 됐다고. 제가 신문을 보면서 이렇게 느꼈습니다. 언제 이 나라가 커서 여기까지 왔나. 물론 논란을 많습니다만. 제가 설교에서 논란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가만히 보니까. 자유무역협정하면 미국은 미국대로 자기 이익 있으니까 하는 거구요. 우리는 국익 때문에 합니다. 국가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국하고 하는 것이 국가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고 추진했구나.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런데 제가 보니까요. 통과 된걸 보니까. 상원에서는 83이 찬성이고, 15가 부고. 하원에서는 찬성이 278, 반대가 151 이렇게 통과 됐더라고요. 곧 우리도 해야 할 텐데, 우리 국회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찬성, 반대 굉장할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건 찬성이 몇 표냐 하는 이야기는 국가이익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고요, 반대는 한국이 조금한 나라이지만 미국하고 무역해가지고 손해 본다, 그래서 반대하는 겁니다. 전부가 아니라 부분별로요. 반대하는 사람이 하원에서 151표나 된다. 제가 그걸 보고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제가 조금 역설적인 이야기예요. 전부 찬성했으면요, 한국 우습게 보는 겁니다. 반대 뜻은 뭐냐면, 조금한 나라이지만 한국하고 교류해서 손해 볼 수도 있다. 자동차 등등. 그래서 반대하는 거 아닙니까. 제가 그래서 70년대 경험을 가지고 하는 말입니다. 반대표 나오기 잘했다. 그 만큼 우리를 알아준다. 우리 국회도 다 찬성하지 말고, 반대 좀 있었으면 좋겠다. 찬성도 많이 하고. 그러나 합리적이고, 깨끗한 투표를 했으면 좋겠다. 이제는 70년대 한이 다소나마 없어진 것 같습니다. 올림픽도 했지요, 앞으로 동계 올림픽도 있지요. 그러면서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 과거에 외국에 있을 때 아시아 문제 그러면 중국이 다 압니다. 그 때 형편없었는데도. 일본, 선진 중에 선진국입니다. 문화, 역사, 언어 모든 것을 얼마나 선진해놨는지요 일본은 완전 선진국입니다. 중국도 뭐 거대한 나라고요. 또 어느 나라를 아느냐? 인도네시아, 유럽은 잘 압니다. 한국은 몰라요. 인도 잘 압니다. 베트남 잘 알고, 필리핀 잘 알고. 그런데 한국은 몰라요. 왜 그런가 하고 봤더니, 이런 나라들은 서구의 식민지 국가 이었습니다. 그래서 잘 알고요, 우리는 그 식민지 아니 여서 모르고, 강국도 아니었고.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랬습니다. 오늘의 상황에서 저는 무역만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세계를 살아가면서 종교, 언어, 문화, 스포츠, 예술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향해서 가슴을 펼치고 살아야 될 때가 됐다. 그러면 우리가 각오해야 할께 있습니다. 강대국가 협정을 한때, 어느 분야는 현재 우리가 손해인 분야가 있습니다. 농민도 손해고, 다 손해입니다. 또 이득이 남는다고 생각하는 분과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 이렇게 결심하면 좋겠습니다. 지금 손해 본다고 해서, 매일 10년 뒤까지 우리는 계속 손해일꺼다. 이렇게 패배주의적 심정 가지고 나설 필요 없습니다. 잿더미에서 일어난 나라 아닙니까. 이렇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또 지금 이득 본다고 이대로 가면 내년, 내 후년까지 가서 우리나라는 계속 무역권에서 이득을 볼 것이다. 교만한 마음도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가변적이라서 지금의 난관을 이겨가되 미래 지향적으로 힘을 모아 가자. 그만한 저력을 우리는 받고 있고요. 하나님이 그 만큼 알아서 택했습니다. 이 나라를, 이 민족을, 하나님이 사랑해 주시기에 앞으로 전망은 밝다.

그러면서 제가 설교 준비를 하려고 이사야서 본문을 읽어 봤습니다. 이사야서 본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에서 고생할 때 많은 사람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역경을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일제 때 해방 달라고 기도한 것 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답입니다. 내가 해방시켜주마, 다는 못 시켜도 해방시켜서 너희들을 고국으로 보내주마. 그런데 해방 받는 게 조금 가볍고, 해방 받는 다음에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너희들은 온 세상 백성들에게 나를 대신한 빛이 되어달라고 책임감을 주어서 해방시킨다. 이 책임감은 무거울 것이다. 저는 이스라엘 백성을 존경합니다. 나라도 존경하고, 백성도 존경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좋아서 택한 거 아닙니다. 이스라엘 보고 네가 예쁘니까 택했다가 아니라 너를 택한 목적은 세계만방에 가서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그리고 뭇백성의 빛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을 믿는 모범자가 되라고 해서 택했지. 이스라엘을 아무 까닭 없이 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우리만 택했다고, Sola 우리만. 철두철미하게 믿었습니다. 남이 아니라 우리만 택했다고.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닙니다. 이스라엘만 택했으나, 도구로 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많이 받아서요, 이 천년 동안 나라 없이 지냈습니다. 1948년, 지금 이스라엘 땅에 나라 건설한지 최근 일입니다. 저는 성경말씀 읽으면서 이스라엘 관한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맙지만, 이스라엘이 우리나라의 본보기가 됩니다. 하나님 선지자 통해서 그렇게 말해도, 역사를 통해서 심판을 내려도, 은혜를 베풀어도 자기만 잘났다고, 나만 살면 된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택한 백성이라 포기는 안하시지만, 역할은 다른데 주십니다. 결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예언자를 보내서도 안 되니까, 직접가자. 내가 갈 수 없으니, 내 아들 내 분신이 간다. 예수가 왜 오신지 아십니까? 이스라엘 가지고는 온 백성에게 복음을 전달 할 수 없다. 예언자 가지고 안 된다. 예수를 보내서 하신 말씀이 예수께서 오셔서 복음의 전투가 되셨습니다. 예수 말씀입니다. 나는 와서 이스라엘 다시 택하겠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지금 이스라엘 말고, 내 복음을 믿는 모든 민족은 다 이스라엘로 택하마. 여러분 우리가 신앙고백으로 우리도 21세기 이스라엘 갔습니다하고 고백하는 것은 예수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 말씀이 이스라엘은 이제부터는 단수가 아니다 이스라엘은 복수다. 망망 어디든지 하나님의 복음을 믿기로 결단하면 이스라엘이다. 또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보통명사입니다. 누구나 이스라엘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이스라엘이라고 고백합시다. 앞으로 올 시대에 이스라엘이 돼서 우리는 택해주신 하나님이 이제 우리한테 만백성을 구원할 도구로 선택했다고 그렇게 믿고 기도하고 찬양합시다. 홀로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산다는 뜻 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온 세계를 구원할 방법으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택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만백성이 구원 받으려고 하면, 죄는 사함 받아야 한다. 홀로 죄사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택한 백성에게는 죗값을 물리지 않겠다. 나 자신이 죗값을 지마. 십자가는요, 예수가 죽었단다 그게 아니라. 제 죗값을 지고, 우리의 죗값을 지고 예수께서 대신 죽으셨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이 이야기를 만방에 전해라. 죗값을 치룬 십자가를 믿으면 그 믿음에서 부활의 영광이, 새 생명의 영광이 보장된다. 저는 경동교회 단에 서면서 늘 감동적인 장면을 제가 호흡하면 삽니다. 여러분 앞에 있는 십자가 있지요. 이 십자가가 우리를 만백성의 빛으로 택하겠다는 약속의 표징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겠다는 표징입니다. 굉장히 크지요. 이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건축학적 의미는 제가 잘 모르지만, 신학적 의미와 신앙적 의미는 분명히 압니다. 이 교회는 어떻게든 지어 졌든 간에 앞에 십자가가 지성서고, 나갈 때 가운데 문의 색으로 된 형형색색 십자가가 보입니다. 두 십자가 사이에 있는 건축이 경동교회 본관입니다. 십자가에서 시작하고, 십자가에서 끝납니다. 우리는 그 안에 삽니다. 결혼 주례 때마다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만, 성경말씀데로 모이는 교회는 창조하는 교회는 감동하고 기도하는 교회는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기도합니다. 그래서 모였습니다. 모였다가 흩어질 때, 나갈 때는 주님의 십자가도 못 가져가고, 대신 오늘 성경말씀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작은 십자가 하나씩 지고 나를 따라 오라. 여러분 가실 때 그 십자가 바라보며 가시기 바랍니다. 주님 말씀이 우리는 예수가 진 십자가를 질 자격이 없습니다. 여기 앉은 여러분이 세계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저도 세상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건 하나님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누구를 구원해야 되냐면 저 자신을 구원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주 진실하십니다. 인간 중에 잘났다고, 세계 구원한답시고, 나라 구원한답시고 십자가 질 생각마라. 그건 허무입니다. 가식입니다. 그건 하나님만 지십니다. 하나님한테 가장 진실한건 너한테 준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자기 구원도 못한 사람이 세상을 구원한다고요, 말도 안 되지요. 자기를 구원할 십자가를 지어라. 그래서 가시면서 이 십자가 지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이 십자가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우리가 새길게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무게로 제면 저게 얼마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굉장히 무거울 껄요. 각자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고, 이 십자가의 무게는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십자가 무게가 무겁더라도 지실 각오는 되어 있습니까? 질 각오가 안 되어 있으면 부활을 꿈꾸지 마십시오. 새 생명을 얻고 싶은 희망이 있습니까. 무게가 무겁더라도 주어진 십자가 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십자가 무게만큼 질 수 있는 각오가 이것이 믿음입니다.

제가 아파보니까 느끼는 거예요. 아팠다가 난다. 그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아픈 중간에 낫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합니다. 노력 하나하나 속에 이미 나중에 받을 치유가 아픔 속에서 꿈틀거리고 자라고 있어서 마지막이 되면 열매 맺는 겁니다. 성공한 사람이 열심히 해서 성공이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고요, 성공은 실패라는 그런 노력 속에서 차츰차츰 익어가서 열매는 맺는 것이 성공입니다. 성공하고 치유 받는 것이 갑자기 생기 것이 아니라 이미 아픔과 힘든 속에서 무거움 속에서 자라가고 싹트고 있었다.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십자가 아래에서, 십자가 속에서 부활의 영광이 꿈틀거리고 싹트고 있습니다. 그런 부활을 아십니까? 그 십자가를 지겠습니까, 안지겠습니까. 아무리 무거워도 집시다. 나의 십자가가 있고, 내 이웃의 십자가 있고, 이 나라의 십자가도 있습니다. 함께 지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함께 져주십니다. 오늘 말씀이 누구든지 이렇게 지지 않으면 나를 따라올 자격이 없다. 십자가 지고 가면요, 십자가속에서 움터나는 생명의 은혜를 여러분이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 나라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입니다. 그래서 우리보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십자가 지고 따라오라. 단 십자가 지는 사람한테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있습니다. 나는 내가 택한 사람한테, 내가 택한 백성한테, 내가 택한 가정한테 내가 항상 함께 있으마. 전제조건입니다. 항상함께있으마. 무슨 말로 표현해야 하는냐? 사도바울의 말을 빌어서 ‘당신들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성전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함께 계신 곳이 성전이지. 잘 비워놓는 곳이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는 곳은 성전이 아닙니다. 건물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 그곳에는 십자가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 성전은 이렇게 움직이지 않는 성전도 있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돌아다니는 성전, 걸어 다니는 성전, 달리는 성전, 노래하는 성전, 이것은 살아 움직이는 성전입니다. 이 성전이 오늘 사도바울이 말한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러니 성전은 십자가를 등에 지고, 그 다음에 하늘나라를 향해서 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말하려고 하는 목적 속에는 각 자 사람이 자기 십자가를 지십시오. 그러면 구원받습니다. 그 뜻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 속에 주님의 십자가를 포개어 사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십자가를 포개어서 살고 있습니다. 작은 믿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거지만, 큰 믿음은 주님의 십자가와 내 십자가를 포개서 사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예수님 말씀이 십자가가 무겁지 않다. 자기가 지어 주시니까.

신앙이란, 바로 주님을 위해서 생명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데, 부활생명을 함께 나누는 결단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이렇게 간구합니다. 각자 주어진 십자가 무겁더라도 마다하지 마십시오. 그 속에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생명의 영광이 담겨져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마다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서 저 분이 십자가 지셨습니다. 함께 지면 자신도 새로워지고, 세상이 새로워집니다. 그래서 부름 받는 거 아닙니까. 새로운 이스라엘, 새로운 이스라엘 사람, 오늘 우리가 앉아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예배합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 받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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