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충범의 길에서][8][아, 아, 월출산]

이충범·협성대 신학과 교수


정말 맛있게 늦은 점심을 실컷 먹고 감사한 마음으로 식당을 나섰다. 왠지 불안, 불안했는데 식당을 나서자마자 정말 반갑지 않은 님을 만났다. 이제까지 그나마 이 정도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막바지 장마철이라 나대지 않던 해님 때문이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서자 그간 태양을 솔찬히 가려주던 구름들이 거의 실종되어 있었다. 비켜버린 구름들 사이로 태양이 시커먼 아스팔트 위에 맹렬히 내리쬐고 있었다. 2번과 함께 가다가 분리된 13번 국도는 2번처럼 자동차 전용도로인데다 오르막길이었다. 구름이 다시 나타날 때까지 지체할 수 없기에 국도로 올라타서 걸어보지만 고통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길은 훤하게 뚫려 있지만 예상치 못한 난코스였다. 태양은 모자 속에 숨긴 내 정수리를 사정없이 때려대고 상의는 땀으로 젖고 또 젖었다. 내가 살던 미국 같았으면 등이 다 타든 말든 웃옷을 다 벗어 던졌겠지만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발의 뼈가 다시 쩌렁쩌렁 울리는데다 지속적인 오르막이라 더 큰 압력이 느껴졌다.

배낭 속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켰다. 집을 떠날 때 가족들에게 전화통화가 되지 않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떠났다. 나 역시 급한 일이 생기거나 위급한 상황이 없으면 전화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 지겨운 디지털문명에서 며칠이나마 벗어나고 싶었던 내 생각은 채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었다. 간단하게 아내에게 문자를 했다. 전화통화를 싫어하는 나를 잘 아는 아내가 곧바로 격려 답문자를 보내왔다. 오고 간 문자의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가장 힘들고 고단할 때 소통가능한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을 잊을 수 있는 얼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었다. "그래, 나에겐 그런 가족이 있다!"라는 확신과 믿음이 다시 그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걸을 수 있게 했다. 지나가던 차들은 속도 모르고 창문을 내리고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질렀다. 어떤 아이는 내게 사탕을 던져 주기도 했다. 평소 친절한 나였지만 더위에 지쳐 모든 것이 귀찮아 모른 체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에 구원의 손길이 내게 다가왔다. 청풍휴게소였다. 

▲이충범 협성대 신학과 교수. ⓒ베리타스 DB
부리나케 휴게소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집어 입에 넣었다. 설탕과 얼음이 들어가자 살 것만 같았다. 내친김에 한 개 더 입에 넣자 주변이 보였고 내 눈엔 자외선차단 크림이 들어왔다. 찬물도 한 병 사서 배낭에 끼고 휴게소를 나오자 수도가 보였다. 찬물로 실컷 머리를 감고 얼굴을 자외선차단 크림으로 떡칠을 해댔다. 잠시 앉아 한숨을 돌리면서 지나가는 차를 보는데 그제야 내 눈에 터널이 들어왔다. 풀치터널이었다. 이건 웬 또 횡재인가 하는 생각에 지도를 다시 펼쳤다. 다행이었다. 삼남대로는 13번 국도로 이어지다가 풀치터널 직전에 국도와 잠시 이별을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조선시대 어르신들이 다니던 옛 고개 아래 현대문명은 터널을 뚫어 놓았던 것이다. 나는 쾌재를 불렀다. 터널을 우회하여 작은 구도로를 통해 이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이 용광로 같은 한여름의 국도를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도 큰 기쁨이었다. 그래서 국도를 내려와 옛 어르신들이 다니던 누릿재로 올라섰다. 

고요하다 못해 이건 적막이었다. 작은 도로 양편엔 연신 꿩들이 놀라 뛰어올랐다. 깊은 숲에서 부는 바람은 에어컨처럼 시원하였고 상쾌하였다. 여기저기 이름 모를 야생화들과 무덤의 사자(死者)들만이 나를 반겼다. 너무 적막하여 어떤 곳에서는 섬뜩한 기분도 느껴졌다. 이렇게 걷고 있는데 멀리서 나지막한 차량소리가 나더니 나를 휘익 지나 멈춰 선다. 경찰차였다. 순경아저씨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씩 내밀더니 "수고가 많소"하고 인사를 한 후 다시 출발한다. 이내 두 분의 경찰은 그늘 아래 차를 세우더니 좌석을 젖히고는 낮잠을 청하는 듯 했다. 아마도 근무 중 피곤하면 가끔 이 호젓하고 시원한 곳에 와서 잠시 눈을 붙이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올라가자 목장이 나타났다. 인적은 보이지도 않는데 개들만 요란하게 짖어댔다.

드디어 고갯마루에 올라 내리막길을 만났다. 한숨을 돌린 후에 내리막을 천천히 내려오면서 즐거운 상상에 빠져본다. 적어도 백 년 전쯤? 그때는 아마도 이 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강진에서 영암으로, 영암에서 나주로 여행을 했을 것이다. 또 그 멋진 동학군들도 이 길을 통해 이동을 하거나 이 길에 매복을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차 한 대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이지만 당시엔 이 고갯마루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떡이나 먹거리를 팔던 노점상도 있었을지 모른다. 여하튼 그렇게 오래된 길, 하지만 지금은 사람의 발길이 거의 끊겨버린 길을 혼자 걸어 내려오는 맛에 발의 고통을 많이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길 옆에 세워진 작은 비(碑
) 하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아니, 이거 뭐야?" 거기엔 나의 본관의 선산임을 알리는 세장비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놀라울 뿐이었다. 이곳에서도 나의 조상들이 모여 살았었나보다. 전화를 꺼내 궁금증을 풀어보려는 생각이 살짝 스치자 다시 우울해졌다. 이런 궁금증이 생기면 얼른 전화해서 묻던 아버님이 안 계시다는 사실을 깜박한 것이다. 전화기를 꺼낸 김에 최초로 전화기 카메라로 세장비 모습을 담았다. 왠지 모르게 내가 이곳에 온 것은 그냥 수많은 우연 중에 하나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내려오자 마을이 나왔고 거기서 다시 국도로 들어서야만 했다. 오늘은 비록 조금 이르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영암읍에서 묵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이 더위에 나주까지 20여 킬로미터를 더 걷는다는 것은 무리였다. 국도로 들어서서 영암까지 마지막 힘을 내며 걷기 시작하면서 무심코 왼쪽 하늘을 바라보았는데 나는 그만 쓰러져버리는 줄 알았다. 구름에 뿌옇게 가려 있던 월출산, 그 월출산이 내 눈 앞에 그 완벽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 주여!" 내 입에서는 그만 모태신앙인으로서 정신 못 차릴 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그러나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쓰지 않으려고 해서 생소해져버린, 그 말이 나와버렸다. 

"저건 신끼(神氣
)다, 신끼......"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는 유명하다는 우리 땅의 산하를 많이 다녀봤다. 영동과 영서를 중심으로 다니긴 했지만 그래서 산이라면 좀 아는 체할 정도는 된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동안 월출산을 목포 유달산 정도로 상상하고 있었다. 어릴 때 흥얼거리던 하춘화의 "달 타령"도 이런 나의 잘못된 이미지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최초의 체험이었다. 평원 지역에 깎이고 깎이다 못해 붙어 있는 기암석들의 돌무덤, 그 거대한 돌무덤에서 신끼, 한반도 남부의 토속적 신끼를 마구 뻗어내고 있는데 정말 짜릿했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쌩쌩 차가 지나가는 도로에 서서 월출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차마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이때부터 발과 다리의 통증은 완벽히 사라졌다. 오히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걷다보니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월출산의 모습은 변화무쌍했다. 걷다가 눈에 박히는 장면이 나타날 때는 국도변에 누워서 한참 산을 바라보다 다시 걷곤 했다. 그러다 영암읍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이것도 또 놀라움이었다. 읍이 위치한 곳 주변을 둘러보니 영암읍은 그야말로 성스러운 좌대에 수줍게 누워 있는 신비한 여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참 이상했다. 여기 왜 이러지? 무식했던 나는 여행을 다 마치고 영암에 대해 공부하고 나서야 내가 느꼈던 그 기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영암이 영(靈
, spirit)암인지 말이다. 서서히 저무는 해거름 속에서 나를 감싸 안은 월출산의 기운을 따라 나는 그 수줍은 여인의 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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