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분 :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 발제문
발표자 :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발표 일시/장소 : 2011년 10월 14/새문안교회
자료출처 :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제가 지난 7월에 “동물 사랑, 식물 사랑, 자연 사랑, 사람 사랑” 이라는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김영한 박사님이 그 글을 읽고 오늘 발표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발표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7월 중순에 쓴 글을 거의 그대로 인용하면서 발표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동물과 식물과 자연과 사람을 조금씩, 조금씩 사랑하며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이곳 저곳에서 개들을 만나면 가까이 가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먹을 것을 주곤 했습니다. 물론 식당에서 음식을 먹은 다음 언제나 남은 음식을 비닐 봉지에 싸 가지고 다니다가 길가나 집 근처에서 만나는 개들에게 다가가서 먹을 것을 주곤 했습니다. 사실 저는 오래 전부터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음식 남기는 것을 큰 잘못이라고 가르치며 음식을 남기지 못하게 했습니다. 제가 만난 개들은 그들의 배경이나 신분이나 모양이나 성격과 상관 없이 제가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먹을 것을 주면 곧 부드러워져서 반가움을 표시하며 먹을 것을 받아 먹곤 했습니다. 좀 사나워 보이는 개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으며 먹을 것을 주면 곧 사나운 태도를 바꾸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도 중국에서도 저는 국적에 상관 없이 모든 개들에게 다가가서 음식을 주곤 했습니다.
요사이 한국에는 전처럼 길가나 집 근처에서 개들을 많이 만날 수는 없지만 중국 연변 지역에는 지금도 개들이 길 거리와 집 근처에 많이 있습니다. 제가 거의 매년 연변지역을 방문하여 고아 아이들을 돌아보곤 하는데 그곳에서 만나는 개들에게도 음식을 주곤 했습니다. 최근에 제가 음식을 먹은 후 남은 음식을 비닐 봉지에 넣자 저와 동행하던 현지인이 개들에게 주려고 하느냐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했더니 작년에도 제가 개들에게 먹을 것을 주곤 해서 그렇게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훈춘의 어느 농장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식탁에 놓여있는 남은 음식들을 봉지에 싸 가지고 농장 이곳 저곳에 있는 크고 작은 개들에게 나누어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 개들이 제가 다시 지나가면 저를 바라보면서 더 달라는 애타는 모습과 소리를 나타내 보이기도 했습니다.
개에 대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요사이 한국에는 전처럼 길 거리나 집 근처에서 개들을 많이 만날 수는 없지만 그 대신 길 거리나 집 근처에서 고양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식당에서 싸 가지고 나온 남은 음식들이 자연히 개들에게서 고양이들에게로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개와는 좀 다른 동물이라 쓰다듬어 주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모두를 경계하는 좀 예민한 동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먹을 것을 주면 아주 좋아합니다. 달려 들면서까지 때로는 소리를 지르면서까지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수지 집 앞에 조그만 산이 있는데 그 산에 사는 고양이들 대 여섯 마리가 있습니다. 제가 언제부터인가 고양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기 시작했는데 제가 외출했다가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차 소리를 알아듣고 고양이들이 달려옵니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비닐 봉지에 싸 가지고 온 고기나 생선 남은 것들을 고양이들에게 던져주면 모두 달려 들어 맛있게 먹습니다. 음식 남은 것들이 없을 때는 차 트렁크 속에 넣고 다니는 참치 캔을 뜯어서 던져주곤 하는데 고양이들은 참치를 그 무엇보다 제일 좋아합니다. 보통 음식을 던져주면 입에 물고 어디론가 뛰어 가서 먹은 다음 다시 와서 먹는데 참치를 주면 뛰어가지도 않고 여러 마리의 고양이들이 그 자리에 함께 머물면서 국물까지 다 먹어 치웁니다.
몇 년 전에 일본에 며칠 다녀온 일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일본 교회의 목사님들이 저를 환송하며 식사 대접을 극진하게 했습니다. 일본에서 보통 때는 남는 음식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그날엔 식탁에 남은 음식이 많았습니다. 저는 습관적으로 남은 생선들을 비닐 봉지에 싸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목사님들이 그것을 왜 싸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맛있는 일본 음식을 한국에 있는 고양이들에게 가져다 주려고 싼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코리언 고양이들이 자파니즈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남은 음식을 모두 다 싸 가지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까지 무사히 가지고 왔습니다. 수지 집에 도착하자 마자 일본에서 가지고 온 생선 음식을 한국 고양이들에게 건네주었더니 너무너무 맛있게 먹는 것이 아닌가! 아마 무슨 잔치 날 음식인줄 줄 알고 맛있게 먹었을 것입니다.
개들과 고양이뿐은 아닙니다. 저는 이곳 저곳을 다니며 새들에게도 먹을 것을 주곤 하는데 새들도 먹이를 주는 저에게 달려 듭니다. 남아공의 높은 산에서도, 모스크바의 호텔 근처 나무숲에서도, 제주도의 숲 길에서도, 서해 바다의 뱃길에서도, 부산의 해운대 해변에서도, 아니 수서 사무실 근처에서도 새우깡 같은 새들의 먹이를 던져주면 새들이 떼를 지어 저에게 달려듭니다. 해운대 해변에 갈 때마다 새우깡을 몇 봉지씩 사서 해변의 갈매기와 비둘기들에게 던져주곤 하는데 해변의 갈매기와 비둘기들이 떼를 지어 저에게 달려들곤 합니다. 해변의 비둘기들 두 세 마리가 아예 새우깡을 던져주는 제 팔 위에 함께 올라 앉아서 새우깡을 받아먹곤 합니다. 그러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제 팔 위에 앉아서 새우깡을 받아 먹는 두 세 마리의 새들을 구경합니다.
사람들은 물론 동물들도 자기들에게 친절한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펴며 먹을 것을 주려고 하면 그것을 즉시 알아차리고 달려듭니다. 저는 작년(2010년) 늦은 여름에 제주도 바다에서 재미 있는 경험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늦은 여름이라 바다에 들어가기가 좀 서늘했지만 산과 바다를 아주 좋아하는 저는 바다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서늘한 제주도 바다에 들어가서 한참 수영을 하는데 손 바닥 크기의 물고기 한 마리가 제 옆으로 다가와서 제 옆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저는 그 물고기를 저의 두 손 안에 넣었습니다. 물론 물 안에서였습니다. 그 물고기는 제 두 손안에서 한참 동안 조용히 있더니 옆으로 들어 눕는 것이 아닌가! 조금 후에는 마치 잠을 자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물고기를 바다에 놓아주고 저는 헤엄을 쳐서 한 10미터 이상 되는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런데 그 물고기가 다시 제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다시 그 물고기를 저의 두 손 안에 넣었습니다. 물론 물 안에서였습니다. 그 물고기는 제 두 손안에서 한참 동안 조용히 있더니 다시 옆으로 들어 눕는 것이 아닌가! 조금 후에는 다시 잠을 자는 것과 같았습니다. 저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물고기가 지금 너무 피곤해서 이러는가?” “지금 이 물고기가 엄마를 잃은 것은 아닌가?” “지금 이 물고기가 집을 잃은 것은 아닌가?” 그래서 저는 그 물로기를 두 손 안에 넣은 대로 해변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해변 얕은 물에 그 물고기를 놓아주었습니다. 여기서 좀 쉬든지 엄마를 찾든지 집을 찾아가라고 타일렀습니다. 물고기도 친절하게 대하면 그렇게 순해지는가?
그러면 이제 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합니다. 저는 식물과 꽃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강변교회에서 목회할 때는 제 사무실에 각종 식물과 꽃들이 싱싱하고 아름답게 자라고 있었고 은퇴한 후 지금 있는 수서 사무실에도 식물과 꽃들이 싱싱하고 아름답게 자라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는 란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와 꽃들이 제 사무실에서는 아주 싱싱하고 예쁘게 잘 자랍니다. 5,6개월마다 란들이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강변교회 사무실에 있을 때는 꽃을 피우기가 어려운 행운 목까지 꽃을 피웠는데 그 짙은 꽃 향기가 사무실 방안은 물론 사무실 주변에까지 한 주간 이상 진동했습니다. 나무와 꽃들에게 관심과 사랑의 손길을 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산들과 바다와 자연을 아주 좋아합니다. 저는 은퇴 후 지난 3년9개월 동안 주일마다 또는 주중에도 전국의 흩어져 있는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여 예배 드리며 설교를 하고 있는데 충청도와 전라도와 경상도와 강원도와 거제도 등지에 펼쳐져 있는 산들과 울창한 나무 숲을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했습니다. 저는 가끔 바람에 몸이 흔들려 춤을 추는 울창한 나무 숲을 바라보면서 울창한 나무 숲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시편 148편을 속으로 읊기도 했습니다.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과 기는 것과 나는 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과 의 모든 사사며 청년 와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찌어다”(시148:9-13).
저는 산들과 해변을 거닐 때마다 거의 잊지 않고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산 속이나 해변에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을 주워가지고 오는 일입니다. 산을 올라갈 때는 커다란 쓰레기 봉지들을 주머니에 넣고 올라갑니다. 설악산 비룡 폭포를 오르고 내릴 때도, 제주도의 해변이나 숲 속을 거닐 때도. 서해안 외목 마을의 산을 오르고 내릴 때도, 태국의 해변을 거닐 때도, 사할린의 숲 속을 거닐 때도, 저는 쓰레기를 주워가지고 오곤 했습니다. 설악산 비룡 폭포를 오르고 내릴 때 쓰레기를 담은 커다란 봉지를 가지고 내려올 때마다 산 아래 상점 주인들은 저를 바라보면서 오늘도 쓰레기를 주워가지고 오느냐고 인사를 건네곤 했습니다. 외목 마을의 산을 내려오면서 쓰레기를 담은 봉지를 산 아래 파출소 쓰레기통에 넣자 파출소의 경찰이 저에게 다가와서 고마워하면서 저의 이름과 직업과 주소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웃으면서 알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해 뜨거운 여름 태국 좀티엔의 해변을 거닐면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해파리 이백 여 마리를 김종군 목사와 함께 잡아다가 근처 호텔 관리인에게 준 일도 있었는데 너무너무 고마워했습니다. 구 소련 선교대회가 열린 사할린의 숲 속을 날마다 고 이중표 목사님과 함께 거닐면서 친밀한 교제를 나눈 일이 있었는데 그 때도 매일 쓰레기를 주워서 가지고 내려오곤 했습니다. 저는 쓰레기를 주워가지고 올 때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자연을 조금이라도 깨끗하고 아름답게 돌아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국내외의 호텔에 며칠 동안 묵을 때는 침대나 수건을 갈지도 말고 청소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Do not clean” 이나 “Do not disturb”라는 푯말을 반드시 문밖에 걸곤 합니다. 사실 집에서는 침대의 이불이나 시트를 매일 갈지도 않고 수건도 매일 바꾸지도 않습니다. 저는 집에서도 수건을 이틀 동안 씁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수건들을 골고루 사용하면 삼 사일 정도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침대의 이불이나 시트나 수건들을 매일 세탁하면 그만큼 물이 오염될 것이고 지구가 오염될 것입니다.
사람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합니다. 저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설교나 강의보다는 순수하고 따뜻한 관심과 배려와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수하고 친절한 관심과 배려와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과 말을 아름답게 변화시키고 있음을 저는 세계 여러 곳에서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일이 많습니다. 사랑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도 적대적인 세력도 다 녹입니다. 사랑보다 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배우고 또 배우게 됩니다. 자연 친화적 그리고 사람 친화적 사랑의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 가장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시148: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