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에 일본의 정신사를 세팅해준 왕인박사, 그가 영암출신이었다. 화랑도가 단순히 육군사관학교가 아니듯이 박사 역시 단순히 관직명은 아닐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일본서기』는 그를 단순히 박사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다른 책에는 그를 왕(王)이라 묘사하면서 우이고수라고 부른다. 우이(宇爾)는 우주, 즉 하늘이라는 뜻이기에 그는 하늘의 고수이므로 매우 종교적인 직책을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도선 역시 이곳 출신이었다. 도선이 누구인가? 통일신라 말 최고의 고승이자 예언자로서 풍수지리서의 교과서인 『道詵秘記(도선비기)』의 저자 아니던가? 이곳이 고대국가 전 마한 지역이었으니 가야와는 또 다른 스피릿을 갖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쯤 되면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느꼈던 그 기운을 대충 알 것 같다. 영암은 아직 영적인 고장이었다.
▲이충범 협성대 신학과 교수 ⓒ베리타스 DB |
나보다 서너 살 많을 것 같이 보이던 이분은 놀랍게도 환갑을 넘긴 분이었는데 서울, 그것도 강남에 살던 대기업 출신 엘리트였다. 회사를 퇴직한 후 자녀들 모두 출가시키고 부인의 고향인 영암에 내려와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지 채 3년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오전엔 산악자전거를 타고 월출산을 오르내리고 오후엔 가게를 열고 치킨을 튀겨 팔고 있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와 이웃에 있는 고교 출신이고 내가 다닌 대학의 맞수 대학출신이라는 점이 그분과 나를 쉽게 친밀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이분은 이북출신이셨는데 영암과 월출산을 무척 사랑하는 분이었고 나에게 영암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나는 뚝딱 치킨 반 마리와 콜라 2병을 먹어치웠다. 아마 건강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한 병 더 마셨을지도 모를 만큼 갈증과 당분부족이 심했다. 어서 숙소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거대한 덩치의 두 사람이 들어왔다. 그 중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는데 나는 그만 찔끔하고 말았다. 그는 보기만 해도 겁이 날 정도의 강렬한 인상을 한 사내였다.
그 사내는 들어오자마자 주인아저씨를 향해 “형님, 여기 생맥주 두 잔!”하며 주문을 했고 큰 잔에 맥주를 갖다 주자마자 단숨에 숨 한 번 쉬지 않고 그 큰 맥주잔을 비웠다. 나는 괜스레 불안해져서 빨리 여길 빠져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주섬주섬 배낭을 챙겼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그 사내에게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서울서 오신 분인데 전라도 체험을 하신다고 하네. 교수시라는데 해남서 여기까지 걸어왔단다. 영암서 하루 주무신다네.” 그러자 그 남자는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와 묻지도 않고 내가 앉은 테이블에 앉더니 “반갑소, 영암 첨이지라?”하고 손을 내민다. 솥뚜껑만한 거친 손은 그러지 않아도 웬만한 여자 손보다 작은 내 손을 완전히 감싸 쥐었다. 만약 삼국지의 장비나 여포를 볼 수 있다면 아마도 이 사람처럼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리부리한 눈, 커다란 덩치, 짧은 목, 엄청나게 큰 손, 게다가 팔뚝 여기저기에 상처와 문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잘생겨 보이면서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인물이었다. “이거만 드셔서 되것소”하며 배부른 것을 사주겠다며 뭘 또 시키려고 하기에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마침 주인아저씨가 종이컵에 커피를 내왔다. 그렇게 앉아서 우리는 잠시 서울 이야기를 했다.
내 예상대로 이 사내는 조폭출신이었다. 그러나 그 성품과 생김새는 장수 같았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서울 올라가 커다란 조직에서 일을 보다 위치가 어느 정도 올라가자 그 생활에 염증을 느껴 귀향한 사람이었다. 서울 생활을 오래 한 터라 서울출신 주인아저씨와 막역하게 지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서울생활을 통해 심한 트라우마를 많이 갖고 있었다. 그에게 서울사람은 인간을 이용만 하는 여우같은 놈들, 돈 몇 푼에 의리 없이 동료를 팔아먹는 배신자들, 호남사람 차별하는 놈들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여기가 좋다고 걸어 다니는 나는 신기한 동물이었다. 두 분과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나는 매우 불안했다. 이 작은 읍에서 잘 만한 여관을 찾아야 했고 또 이틀 치 빨래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 사람이 함께 들어왔던 젊은이를 불러 나를 데려다 주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자기 명함 한 장을 주며 숙소에 들어갈 때 프론트에 보여주라고 하면서 우락부락한 눈에 정을 가득 담아 인사를 건넨다. 김*수씨, 그 역시 이 여행에서 내가 잊지 못하는 한 사람이었다.
덩치가 산만한 젊은 녀석이 나를 차에 태우자 주인아저씨와 김*수씨는 밖에 나와 손을 흔든다. 그리고 차는 다시 읍내 외곽으로 향하더니 “이런 곳이 있었나?” 할 정도의 으리으리한 모텔 앞에 섰다. 새로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다. 들어서자 널찍한 로비에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나를 맞았다. 소심한 나는 이거 엄청 비싸면 어쩌나, 그냥 다시 나가서 값싼 여관을 찾을까 하는 생각부터 괜히 이 명함 내밀었다가 망신만 당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까지 스쳤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직원의 인사에 무턱대고 명함을 주었더니 의외로 직원이 “아, 김사장님 손님이시군요, 서울서 오셨나요?”하고 친절히 묻는다.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을 했더니 직원 입에서 “만 원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좀 당황했다. 그래서 다시 모기 목소리만한 톤으로 물었다. “얼마요?” 두 번 들어도 대답은 만 원이다. 그때부터 내 목소리와 태도는 급변했다. 허허허, 당당하게 웃으며 “이래서 어디 남겠나?” 슬쩍 반말을 섞어 가면서 호주머니에서 만원을 내줬다. 키를 받고 방에 가서는 더 놀랐다. 두 사람이 자도 널찍한 큰 더블침대, LCD 대형 티브이,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 등 없는 것이 없었다. 욕실 문을 열어보고 또 놀랐다. 대형 월풀 욕조에 스파라니! 이 정도면 수도권 무궁화 다섯 개짜리 호텔보다 훨씬 좋았다. “아, 이거 웬 횡재인가? 오래 된 시골 여관도 2만원 혹은 2만 5천원인데, 단돈 만 원의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오늘의 고통이 이 하룻밤의 호강으로 다 상쇄될 것만 같았다.
인터넷이 되는 컴퓨터가 나의 유혹이었다. 그래서 눈 질근 감고 우선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빨래를 시작했다. 얼른 해서 널어놓고 보니 정말 세상 숙제 다 끝낸 것처럼 시원했다. 그리고 뜨끈한 욕조에 몸을 담그니 천국,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는 것 무엇이든지 들어준다고 하시면 나는 정해둔 말이 있다. 금은보화도, 화려한 궁전도, 최고의 스포츠카도, 천상의 미녀도 아니다. 추운 날 뜨거운 물에 들어갔을 때의 그 느낌, 영원히 그 느낌대로 살게 해달라고 할 것이다. 비록 더운 여름날이었지만 적당한 온도의 탕 속의 안락함은 최고였다. 그렇게 목욕을 즐기고 티브이를 보면서 로마 귀족의 흉내를 내보니 정말 행복했다. 행복? 그거 정말 별거 아니다. 조금만 양보하면 행복이란 아주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