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경동교회] 항상 개혁하는 말씀

2011년 10월 30일 설교자 박종화 목사

성경본문
 
  
이사야서 62:10-12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려라. 보아라, 주님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신다. 딸 시온에게 일러주어라. 보아라, 너의 구원자가 오신다. 그가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그가 찾은 백성을 앞장 세우고 오신다. 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분의 백성’이라 부르며 ‘주님께서 속량하신 백성’ 이라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너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사랑한 도성’ 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도성’ 이라고 부를 것이다. 아멘.

로마서 1:16-17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이 복음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믿는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 속에 나타납니다. 이 일은 오로지 믿음에 근거하여 일어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 아멘.

마태복음서 10:26-33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덮어 둔 것이라고 해도 벗겨지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라 해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지붕위에서 외쳐라. 그리고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서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 사람을 부인할 것이다.” 아멘.
 
설교문
  
저희들이 예배 올 때마다 말씀을 읽고, 듣고 그러지요? 또 찬송도 성가대 부르고, 우리 아까 시작할 때 피난처 이신 찬송도 불렀고요. 가만히 떠들어 보면요, 저희들이 이렇게 찬송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 들을 수 있는 것이 교회 오고, 예배 보면 그렇게 당연히 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실 텐데요,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종교개혁 덕분입니다. 가끔 우리교회에 외국에서 사람들이 와서 예배보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경동교회 갔더니, 독일, 오스트리아 애국가 부르네. 창립기념일에 부르는 노래가 그렇습니다. 오늘 같은 노래는요, 영국 사람들이 여기에 와 있으면 우리나라 애국가 부르는구나. 그럴꺼예요. 그런데 곡만 같고, 가사는 조금 다릅니다. 이것도 어느 나라에서 만든 노래이지만, 그 날 고유물이 아니고, 모두다 감동 있게 부르시면 감동으로 부르는 찬송이 됩니다. 성가대 찬송 독일 찬송이지요. 그러나 아름답게 불러서 오늘 우리가 감동을 받습니다. 경동교회가 만든 찬송가집 뒤에 보면 100곡을 따로 모아서 경동찬송가라고 이름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교회가 부르는 짧고 간단한 예배용 찬송인데, 우리가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습니다. 불렀더니요, 다른 교회에 다니신 분들이 오셔가지고 “아 경동교회는 천주교회처럼 부르네” 그러시더라고요. 천주교회 것이 아니고, 전세계가 자유롭게 부르는 고전적인 찬송들입니다. 그런가하면 제가 아프리카나, 남미 쪽을 방문해 예배를 참석해 보면 우리노래 부르네. 혹시 경동찬송 다시 쳐보시면요 우리나라 사람이 작사 작곡한 찬송이 몇 곡 있습니다. 이게 아프리카에서 잘 부르고, 남미에서 불러지는데. 제가 인도네시아 갔다가 주일 날 예배 참석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아리랑~아리랑 아라리요”를 구성지게 부르는데 너무 은혜 스럽게 불러요. 그래서 제가 이상하다고 그랬더니, 아리랑 곡이 너무 좋아서 거기에다 신앙의 가사를 붙여가지고 찬송가로 부른답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택은 자유입니다. 어느 곡이든지, 어느 말씀이든지 가져다가 우리가 감동받은 데로 가사 만들어 곡을 붙이면 찬송이 됩니다. 말씀을 읽었습니다만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성경을 듣기만 할 때 하고, 제가 직접 성경책을 펴고, 강단에서 읽고, 집에서 읽고 할 때 말씀이 주는 감동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게 자동적으로 간단한 것 같지만, 사실 500년 전 종교개혁인 만들어 놓은 결과물입니다. 이렇게 보면 종교개혁이 앞으로 6년이 지나면 500주년이 됩니다. 이 기간 동안 이어오면서 종교개혁은 찬송도 열었고, 말씀도 열고, 설교도 열고, 사는 것도 열고, 모든 것을 열어서 서로 소통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입니다. 그렇지 않고 마르틴 루터라는 사람이 나와서 교회개혁을 했다더라. 그것도 맞기는 맞는 말인데, 그것하고 우리하고 지금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하고 상관있는 종교개혁이 되려고 한다면 종교개혁이란 마음껏 열어서 공간도 뛰어넘고, 시간도 뛰어넘어서 오늘 우리가 한 분이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깊은 은혜를 듣고 감사하고 감동한다 이 길을 열어 준 것이 종교개혁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오늘 저희들이 종교개혁예배를 드리면서 무언가 깊은 것을 다시 새겨야 됩니다. 모든 것이 역사적 사건이지만, 그 본래 뿌리는 성경말씀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독일대사를 만났더니 이런 제안을 해요. 경동교회가 자매교회니까, 앞으로 독일에 방문할 일 있으면 그냥 방문하지 말고 이런 명목으로 왔으면 좋겠다. 독일정부와 교회가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2008년부터 새로운 기간(term)을 시작했습니다. 영어로 하면 루터스 데케이드(Luter`s Decade), 루터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10주년 입니다. 그래서 그걸 왜 독일정부가 하느냐 그랬더니 아니 종교개혁이 교회 것 입니까. 전 나라꺼지. 그러면서 하는 말이 경동교회가 독일 방문하시면 그냥 방문하지 마시고, 종교개혁 기념 10주년 기념행사로 오셨다고 생각하십시오. 종교개혁은 여러분에게도 열려 있습니다. 저는 참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그래 보시죠. 그때까지 갈 때는 나도 종교개혁 운동의 한 일안으로 간다. 제가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종교개혁은 한 때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장소에서 생긴 사건이지만, 그것이 갖고 있는 효과는 엄청나서 오늘 우리도 종교개혁 주일 기념예배를 드립니다. 왜 그런가요? 저는 종교개혁 때문에 개신교가 생겨난 건 사실입니다. 경동교회도 종교개혁이 없었으면 출범을 못했겠죠. 그런데 종교개혁 주일에는 꼭 개신교만 기념주일을 갖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천주교도 기념주일을 가져야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요.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당시 천주교)의 엄청난 부패상이 폭로가 되고 교회가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개신교라는 이름의 교회가 태어났지만 개혁의 대상이 됐던 천주교에서는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우리도 살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도 뼈를 깎고 새롭게 개혁을 하자. 그래서 종교개혁이 있자마자 천주교(당시 중세기 교회)에서는 소위 종교개혁에 대답하는 방식의 반종교개혁이 생겨납니다. 여러분이 역사를 배우시면 reformation의 종교개혁이 있고, 거기에 반대하는 방식으로 counter-reformation 아니겠습니까. 그건 뭐냐면 천주교 자신이 자기를 되살리는 것입니다. 제가 다른 건 말씀드리지 않겠지만, 우리교회는 건축이 아름답지요. 중세교회는 고딕 건축이 아직 없었습니다. 천주교가 하는 말이 우리는 비록 비판받고 난리가 놨지만 다시 교인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건축을 바꾸자. 사랑하는 건축가 여러분, 마음대로 교회 지붕 올리십시오. 그래서 고딕건축이 생겨났습니다. 노래도 그레고리안 차트만 하던 걸 이제는 마음대로 융성하고, 풍부한 노래를 지어서 찬송하십시오. 오늘은 개신교 노래이지만, 엄청난 종교음악이 반종교개혁의 물결로 생겨났습니다. 중세기에는 하나님, 예수 그림을 못 그리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불경하다고요. 그러나 마음대로 그리십시오. 이 사건 이후 엄청난 종교 미술이 우리사회에 등장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 귀하므로 비판하면 안 됩니다. 신앙 없이는 모든 학문도 불가능 합니다” 이렇게 말했다가 다시 저항을 받고 마음대로 인문학도 연구하시고, 사회학도 연구하시고, 정치과학도 하시고.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만 전제로 마음대로 학문도 계몽하십시오. 소위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번창합니다. 이런 걸 보면서요, 사실은 천주교도 종교개혁 덕분에 부패 사슬을 끊고 새로운 교회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종교개혁에 감사할 일입니다. 얼마나 고맙습니까. 이제 와서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당시 있었던 이야기만 가지고 종교개혁 500주년 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고요.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걸 통해서 하나님이 엄청난 역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나고 났더니 오늘날 우리 개신교가 종교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하는 우리교회가 거꾸로 교회 타락했다. 교회가 존속해야 하는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교회라고 하느냐고 한국사회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는 지경까지 갔습니다. 그러면 종교 개혁해야죠. 뭘로 해야 됩니까. 해야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다시 개혁의 깃발을 올려야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오늘 이사야서, 마태복음, 로마서 모두 같은 말씀인데요. 우리가 다시 한 번 새겨 봐야 합니다. 루터라는 사람이 나와서 개혁의 불길을 던졌습니다. 1517년 10월 31일 내일입니다. 우리시간으로 내일 아침 10시가 되면 지금 비텐베르크라고 하는 조금한 소도시입니다. 동독지역에.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교회이름이 성곽교회입니다. 교회가 우리교회보다 조금 작습니다. 그 교회의 정문에 면죄부를 파는 것이 얼마나 비신앙적인 것인지를 중심으로 해서 95개조 조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을 손으로 써서 붙였습니다. 일종에 대자보입니다. 그런데 이미 비텐베르크라는 곳에는 중세의 1500년대 초에 대학이 세워지는데, 대학에서 공부하다가 교수나 학생들이 학문적으로 토론 할 것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비판할게 있으면 글을 써서 대자보를 교회에 붙였습니다. 이 교회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대학교회입니다. 그곳에 붙이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읽으면서 학문토론을 하는구나, 사회문제 토론하자는 구나하고 토론 제목이 붙은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큰 파장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1517년 10월 31일에 붙인 95개의 대자보는 달랐습니다. 이를 붙인 사람은 비텐베르크 대학의 성서학 교수, 수도원 수도사 출신의 마르틴 루터 였습니다. 그 붙인 것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가지고요, 전 독일에 퍼졌는데 당시 기록에 보면 14일 만에 95개조 논문에 관한 소문이 전 독일에 퍼졌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요즘 같으면 트위터, 핸드폰을 통해 30분도 안걸리지요. 옛날에는 엄청나게 걸렸는데, 2주일 만에 전독일에 알려졌다. 그 만큼 파급력이 컸습니다. 혼자 컸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상황을 잠깐 말씀드리면 루터가 종교개혁하기 전에 콜럼버스라는 사람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소식을 유럽 땅에 전해왔습니다. 세계가 로마제국만 있는 줄 알았더니 신대륙이 있구나. 엄청난 변화입니다. 구텐베르크가 우리 세종대왕보다 조금 늦게 인쇄 활자를 발견했습니다. 인쇄술을 가지고 성경이 독일말로, 이태리말로, 불란서말로, 인쇄되기 시작합니다. 모든 사람이 성경을 접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뭐냐 하니까. 폴란드의 사제이면서 천체 물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코페르니쿠스입니다. 이 사람이 나와서 하는 말이 1504년이지요. 처음으로 종교개혁 10년 전에 여러분 세상은 지구가 중심이고, 그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행성이 도는 게 아니고요.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는 행성의 하나로 태양의 둘레는 돕니다. 소위 지동설을 이야기 합니다. 혁명적인 변화가 모든 사람들 속에 들어왔습니다. 그런가 하면 루터가 종교개혁 하기 한 60년 전에 로마의 한쪽인 동로마의 수도 이스탄불, 이스탄불이 옛날 콘스탄티노플입니다. 그 전 이름은 비잔틴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보배였는데, 동로마 제국의 보배였는데 터키의 회교도들에게 점령을 당합니다. 로마 제국이 망합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 속에서 세상은 변화해야 되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마음도 넓어져야 되고, 세상은 넓고, 비판의식과 개방의식이 싹튼 겁니다. 그래서 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타고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였을 때 옛날과는 전혀 다른 반향을 일으킨 겁니다. 사실 왜 독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느냐하면 독일이 하나님이 택한 지역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요. 교황청 입장에서 볼 때 제일 말 잘 듣는 지역이 독일이었습니다. 그 말은 뭐냐 하면 블란서와 스페인은 자기 민족주의가 커가지고 왕이 왕권을 강화하고 있었고, 교황의 말을 잘 안 들었습니다. 독일 속에 있는 게르만족들은요 왕이 한 사람이 아니고, 기록에 보면 천백개가 넘는 소위 지방영주들이 연합으로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단일 세력이 없는 거예요. 그 힘을 교황이 다 행사하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까 게르만 민족들은 예수를 제일 잘 믿고요. 교회를 통치하고. 교황청은 제일 통치하기 좋고. 그 말은 뭐냐 하면 교황청이 제일 못 된 짓을 독일에서 많이 했습니다. 면죄부 판매가 시작됩니다. 면죄부는 스페인이나 블란서쪽에서는 전혀 팔려고 엄두도 못낸 사건이 독일 지역에서만 팔기 시작했습니다. 힘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일 충성된 종들이 독일 사람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면죄부를 팔면서 파는 사람들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성도여러분 교회 오셔서 면죄부를 사세요. 면죄부 사기 위해서 헌금 통에 동전을 딸랑딸랑 떨어뜨리면 그 소리를 연옥에 있는 여러분 조상이 듣고 죄가 탕감을 받습니다. 어떠세요? 우리가 내는 헌금으로 우리 조상이 죄를 탕감 받는 답니다. 그 뿐이겠어요. 현재 지은 죄도 헌금을 내면 탕감 받습니다. 과격하게 이야기하면 이정도로 교회가 타락했고. 게르만 민족이 예수를 잘 믿고 순박했는데, 그 만큼 교황청에서 활용을 했습니다. 대주교 취임하려고 하면 엄청난 뇌물을 받쳐야 했습니다. 주교뿐 아니라 신부로 취임하려고 하면, 6달치 봉급을 상부에 헌납 해야만 신부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교회가 아니지요, 매관매직 면죄부 판매. 그러면 하나님은 역사 안하십니다. 어떻게 그런걸 교회라고 두고 하나님이 역사하십니까. 루터는 잘 몰랐습니다. 이런 상황에 95개조 붙이려고 한 게 아니라 불만이 많아서 이 불만을 어떻게 표출할까만 가지고 공부하고 연구했는데, 이 사람은 자기 인생에 중요한 경험을 합니다. 22살 때 법대 학생이었습니다. 자기 친구하고 둘이 학교를 갈려고 가다가 갑자기 친구가 벼락을 맞습니다. 자기는 살고 친구가 죽었습니다. 그 때 루터가 한 기도가 있습니다. 안나여(수도원에서 부르던 하나님 명칭입니다)! 저를 구해주셨으니 감사합니다. 목숨만 살려 주세요. 제가 수도원에서 가서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그 때 서약을 합니다. 법과대학에서 공부를 하다가 수도사가 되기로 바꿉니다. 중요한 건 뭐냐면요 그 당시 루터가 고백입니다. 내가 벼락을 맞고 살았는데, 그 때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을 보고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회개하지 않고 죽으면 하나님 나라 못 가는데, 회개할 것이 많은 저를 살려주셔서 회개하고 죽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말씀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다 죽습니다. 시간이 언젠가는 다르지만, 누구나가 죽는다는 걸 알고 살아갑니다. 어떻게 죽으면 행복합니까? 안 죽으면 행복합니까? 그런 행복은 없습니다. 다 죽으니까요. 사실은 제가 죽음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죽기 때문에 불안하게 아닙니다. 제가 죽으면 죽음이 복된 죽임이 될까. 제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지 않고 또 살아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이어 받을 수 있을까. 결국 죽음을 잘 준비한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지만, 죽음 준비가 잘 못 됐다고 믿으면 죽음이 두려운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루터는요 내가 죽는 것은 하나님 뜻이라고 맡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죽으면 내가 정리 못하고 죽지 않습니까. 회개 못하고 죽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셔서 하나님의 의는 잘 못된 사람은 벌하고, 잘 된 사람만 축복주시는 것이 하나님이시고, 그것이 하나님의 의 그렇게 믿어 왔는데. 오늘 제가 죽으면 큰일 날 뻔했는데, 저를 살려서 좋은 일 하고 죽음을 준비하고, 죽음 이후의 생명 준비하라고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루터의 기도는 그런데요, 이 기도가 제가 보기에는 올바른 기도라고 믿습니다. 여러분들 그렇지요? 죽음자체를 두려움게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죽으면 어떻게 될까가 두려워서 그렇지요. 여기 로마서를 다시 읽어보고 루터가 결심을 합니다. 하나님 이 땅의 모든 불의가 가슴이 아프지만, 저는 하나님의 의는 뭐라고 믿어느냐 하면 루터의 고백입니다. 교회가 대대로 가르쳐준 하나님의 의, 사람의 의와 다릅니다. 사람의 의는 뭐냐 하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는 의를 중세기 내내 지켜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버드 대학 강의를 읽어보면 의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 진행되어온 인간의 의를 설명한 것뿐입니다. 뭐냐 하면 모든 인간에게는 자기가 차지할 몫이 있습니다. 물질적인, 영적인, 신비적인 이 몫은 공평하게 주어졌습니다. 이 몫을 제대로 주는 것이 의고, 정의이고, 이 몫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 의입니다. 불의가 뭐입니까. 남의 몫을 빼는 것, 자기 몫을 못 차지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불의입니다. 이걸 찾아 주기 위해 정치, 경제, 모든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본래 의에 목적입니다. 교회서는 이걸 받아서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면, 하나님의 의도 있는데, 하나님의 의란, 이렇게 자기가 가진 자기 몫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제도는 하나님이 벌하시고, 못 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부치기시고, 남에 것 뺏는 사람은 처벌하신다. 뺏는 사람 잘못한 사람을 죄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란 못된 일을 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하나님이시고, 그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루터가 그렇게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무서운 거다, 처벌하는 거다, 책벌하는 거다, 심판하는 거다. 늘 고민에 빠졌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읽고 루터가 바꿉니다. 하나님의 의는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벌주시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는 죄를 범한사람의 죄를 책벌하여 새로 나게 만들어서 구원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루터야 죄 때문에 고민만 하지 말고, 죄에 대한 책벌을 받고, 거듭나서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에 들어가라. 거기까지 이끄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걸 루터가 발견하고, 어떻게 의를 차지할 수 있습니까. 교회의 가르침은 헌금해서 면죄부 사면 구원받는다는 것에 대해 아니다. 열심히 선을 행하면 구원 받는다. 아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받는 구원은 제가 만들면 되잖습니까? 제가 돈 주고 사면되잖습니까? 부족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제가 좋은 일 해서 상쇄하면 되잖습니까? 결국 구원은 하나님이 준다고 말만했지 사실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면 그 구원은 인간 산물이지, 하나님의 은총은 아닙니다. 이것이 루터가 자기 형편을 보고 느낀 실존적 고백이었습니다. 의는, 구원받는 사람은 뭐로 받느냐하면은 선행이나, 인간의 의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만 받는다. 인간의 공로가 개입되면 부정이다. 다른 말로 구원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지, 인간이 만든 선행으로 구원받는 게 아니다. 그래서 오늘 이야기가 이렇습니다. 너무 선행이라는 말 사람이 하는 말을 강조하다 보니 타락했으니, 이것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루터는 중간의 입장을 취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만 취합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혜로만,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오직 성경 말씀으로만. 이 말은 무슨 뜻이냐면 인간의 죄악과 과욕과 욕심을 버립시다. 이런 뜻에서 오직 성서만, 오직 은혜만, 오직 믿음만 이랬습니다. 다시 루터가 고백을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무 일도 안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줄 알았는데 그런 뜻은 아닙니다. 인간의 죄악을 없애야 합니다. 루터가 고백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진실로 믿는 사람은 성령이 오셔서, 진실 된 믿음으로 인해서 인간이 상상도 못하는 사랑과 인간의 선행이 믿음에서 우러나오도록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믿음은 헛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선행은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이 같이 하셔서 믿는 자에게 올바른 믿음을 주게 하고, 믿는 자의 귀결로 선행과 좋은 일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로마서에 대한 루터의 확신이었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보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나를 믿는다고 고백하면, 나도 당신을 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그 말은 내가 성령을 통해서 여러분과 함께 할 테니, 나와 함께 믿고 구원받고, 나와함께 선한일 하고 사십니다. 제가 여러분한테 부탁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루터가 됩시다. 뭐냐면? 하나님 열심히 믿고 구원 받읍시다. 열심히 믿는 사람은 성령의 은총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 땅에서 의롭고, 선하고 좋은 일을 위해서 헌신해야 됩니다. 일하고 믿는 것으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일이 아닙니다. 성령은 믿게 하고, 믿는 자에게 선행을 행하게 하고,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시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루터는 이것이 진정한 신앙의 개혁입니다. 오늘 개혁하십시다. 개혁하고 살면은 새로움이 주어집니다.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오늘 우리가 받는 이 모든 구원이 사실은 매일 매일 지탱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루터의 실존적인 고백을 하나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성령을 통해서 믿음 가지고, 선행을 통해서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살라고 하셨습니다. 세 개의 나라가 이 세상에 있습니다. 첫 번째 나라는 국가라 이름하는 큰 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 나라 비슷하게 살아야 합니다. 또 하나가 있습니다.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닮아서 살아야 합니다. 또 하나가 있습니다. 가정입니다. 루터는요, 가정이 하나님 나라의 행위다. 그런데 나 같은 신부가 하나님 나라 못 가지게끔 결혼을 막았다. 뭐 핑계인지 모르겠습니다. 결혼 안하신 분들에게 죄송합니다만 루터의 말입니다. 나도 가정을 만들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룰 은혜와 축복이 있다. 그래서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할 때 보면 나를 결혼 못하게, 하나님 나라 못 만들게 하는 사탄을 물리치기 위하여 나는 결혼한다. 그래서 결혼이 행복했던가 봐요. 오늘 루터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고 성령을 받으면 올바른 행실로 나타나는데, 먼저 가정에서 교회에서 나라에서 온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믿으세요, 그리고 성령을 받으세요. 선한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여러분 이 복음이 여러분 복음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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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수구 진영에 대한 엄격한 심판 있어야"

창간 68년을 맞은 「기독교사상」(이하 기상)이 지난달 지령 800호를 맞은 가운데 다양한 특집글이 실렸습니다. 특히 이번 호에는 1945년 해방 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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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교수는 '사이-너머'의 신학자였다"

장공기념사업회가 최근 고 숨밭 김경재 선생을 기리며 '장공과 숨밭'이란 제목으로 2025 콜로키움을 갖고 유튜브를 통해 녹화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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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된 반공 담론, 이분법적 인식 통해 기득권 유지 기여"

2017년부터 2024년까지의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기독교 연합단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반공 관련 담론을 여성신학적으로 비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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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성 중심 신학에서 영성신학으로

신학의 형성 과정에서 영성적 차원이 있음을 탐구한 연구논문이 발표됐습니다. 김인수 교수(감신대, 교부신학/조직신학)는 「신학과 실천」 최신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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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신학, 세계 신학의 미래 여는 잠재력 지녀"

안병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하엘 벨커 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 조직신학)의 특집논문 '안병무 신학의 미래와 예수 그리스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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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도 자라난다"

한국신학아카데미(원장 김균진)가 발행하는 「신학포럼」(2025년) 최신호에 생전 고 몰트만 박사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전한 강연문을 정리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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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위기는 전통의 사수와 반복에만 매진한 결과"

교회의 위기는 시대성의 변화가 아니라 옛 신조와 전통을 사수하고 반복하는 일에만 매진해 세상과 분리하려는, 이른바 '분리주의' 경향 때문이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