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특별기고] 짐승의 수 ‘666’과 로마의 제국주의(묵 13:15-18)

이병학·한신대 신학과 교수

한미 FTA 국회 비준 반대를 신학적으로 지지하는 한신대 이병학 교수가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수 ‘육백육십육’을 중심으로, 제3세계 신학자로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여 시장 경제적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성서해석에 관한 기고글을 보내와 전문을 싣는다. - 편집자주

I. 서론적 성찰

▲이병학 한신대 신학과 교수. ⓒ베리타스 DB

요즈음 한미 FTA 국회 비준을 반대하는 대중적 집회들이 연일 긴박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 무역조약은 한국의 운명을 결정지을 치명적인 위험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경제적 세계화와 경제적 블록화는 세계 도처에서 수많은 실직자들과 희생자들을 생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세계화는 제삼세계의 힘없는 정부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억압하는 제국주의의 새로운 얼굴이다.
 
국제 금융 기구들로부터 여러 해에 걸쳐서 단기 융자와 장기 융자를 받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의 채무국들은 시장 개방의 결과로 인한 지역 경제의 황폐화와 엄청난 부채의 증가가 야기한 1980년대의 외환 위기의 해결책으로 지역경제를 완전히 황폐화시키는 “구조 조정 프로그램”과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받아들여야만 하였다. “구조 조정 프로그램”이라는 용어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그리고 지구적 기업들의 욕구에 일치하게 지역 경제를 완전히 개편하는 것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다. 한국 정부가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의 구제 금융과 구조 조정 프로그램을 받아들인 이후 한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고, 또는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조기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여러 해 전에 해고된 한 여성 노동자는 동료들의 정리 해고를 결정한 회사의 방침을 철회시키기 위해서 조선소의 35 미터 높이의 크레인 위에 올라가서 오늘로 300일째를 넘기면서 아직도 항의하고 있다.
  
경제적 세계화는 국제 금융 기구들과 무역조약을 통해서 민족 국가의 정부들의 고유의 주권을 지구적 기업들에게로 점진적으로 이동시켜왔다.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협정의 발효에 따라서 1945년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이 설립되었으며, 1948년에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이 설립되었다. GATT의 권력의 핵심은 가맹국들에게 자국의 법률, 규정, 그리고 행정적 절차를 GATT의 본문에 일치시키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1986년부터 시작된 일련의 우루과이 라운드(Uruguay Round) 협정에 의해서 1995년에 GATT를 대체하여 설립된 세계무역기구(WTO)는 GATT의 권위를 훨씬 더 강화시킨 제도적 장치이다. 세계무역기구는 지역 경제의 독립을 국내법으로 보호하는 체제를 지구적 자본에 의해서 명령된 체제로 변경시키기 위한 구조를 만들었다. 따라서 지구적 기업들은 기업의 이익에 장애가 되는 국내법들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서 민족 국가의 정부들을 국제무역기구에 제소할 수 있다. 한미 FTA는 역시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ISD)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한번 개방된 수준은 어떠한 경우에도 예전 상태로 되돌려질 수 없게 하는 이 무역 조약의 역진방지 조항(=래칫 조항)은 한국에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세계화의 주창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도그마처럼 신봉하면서 전파하는 지배적인 담론은 다음과 같다: ① 국민총생산에 의해 측량되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인간의 진보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② 정부의 규제가 철폐된 자유 시장이 가장 효율적이고 사회적으로 최적의 자원 분배를 초래한다. ③ 경제적 세계화는 경쟁을 자극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소비자 가격을 하락시키고,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며,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④ 역할과 자산을 정부로부터 개인적인 분야로 이동시키는 사유화가 효율성을 증진시킨다. 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소유권과 계약을 보호하고 상업의 추진에 필요한 하부구조를 제공하는 것이다.
 
세계 도처에 깊숙이 침투한 이 신자유주의적 담론은 기만적이다. 아담 스미스(1723-1790)는 자유 무역을 식민지 인민들이 반항하는 제국의 독점가들의 요새로 보았기 때문에 자유 무역을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그가 실제로 구상하였던 경제적 환상은 규제가 완전히 철폐된 자유 시장 혹은 자유 무역이 아니라, 구매자와 매매자가 가까운 범위에서 거래하는 지역 시장이었다. 오늘날 시장주의자들이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이라는 용어를 자주 애용하고 있지만, 그 용어는 1776년 런던에서 초판으로 출판된 그의 방대한 저서인『국부론』에서 단 한번 사용되었다. 그는 그 책에서 한 개인이 자기 자본을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외국에 투자하지 않고 국내 상업에 투자하는 것이 본래 자기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취업의 기회와 소득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공익을 증진시키는 데에도 기여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힘없는 정부들에게 강요된 규제가 없는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에서는 그러한 작동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자유 시장과 자유 무역을 선전하는 제국의 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누구나 민주주의 사회에 부적합한 이단으로 내몰릴 수 있으며, 또한 이로 인해서 자신의 직업과 경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신학계에서도 예수가 로마의 제국주의에 의해서 처형된 희생자이지만, 반제국주의적 시각의 신약성서 연구는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연구는 불온한 것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심지어 지구적 자본과 시장의 제국을 섬기는 “기독교적” 목사들과 신학자들이 있다.
 
요한묵시록 13:15-18은 1세기 말엽의 로마제국의 제국주의적 경제 체제에 대한 고발과 기독교적 공동체의 저항을 반영하고 있다. 나는 이 본문을 주변화된 약자들과 희생자들의 눈으로 읽고 해석하고자 한다. 나는 이 작은 성서연구가 오늘의 남녀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구적 자본과 시장의 제국에 저항할 수 있는 힘과 의식을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II. 로마의 제국주의의 상징으로서의 육백육십육

밧모 섬에 반란자로 유배된 요한은 두 짐승들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묵 13: 1-10)은 제국의 짐승으로서 전 세계를 식민지화하기 위해서 제국주의를 관철하는 로마제국을 상징한다. 그 짐승의 모든 권력은 천상적 전투에서 패배하여 치명상을 입은 채로 하늘에서 추방당하여 지상으로 내려온 용으로부터 주어졌다. 그리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묵 13:11-18)은 식민지의 짐승으로서 제국의 짐승으로부터 정치적 권력을 부여받고 제국을 섬기고, 제국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합법화하고 선전하는 식민지 본토의 토착 엘리트들을 상징한다. 식민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제국의 황제예배에 참여하고 제국의 담론을 수용한 것은 식민지의 짐승의 선전과 협박의 결과였다.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난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13:15-18).

땅에서 올라온 짐승, 곧 식민지의 짐승은 유혹과 압제를 통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예배하도록 설득하였다. 여기서 사람들의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가 찍혀 있다는 것은 동물들이나 노예들에게 찍힌 물리적 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짐승의 표가 찍힌 “오른 손”은 제국에 충성하는 우상 숭배자들의 행위를 의미하고, “이마”는 그들의 생각을 의미한다. 짐승의 표가 찍힌 사람들은 생각과 행위를 통해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곧 제국의 짐승을 예배하는 우상 숭배자들이다. 짐승의 표는 제국의 담론을 의미하는 은유이다. 제국의 담론은 짐승을 예배하는 사람들의 행위와 생각에서 식별된다. 제국의 담론은 짐승 예배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시장에서 사고팔 수 없을 정도로 로마의 경제계에 깊숙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므로 짐승의 추종자들은 제국의 권력구조에 순응하고, 또 스스로 협력한다. 그들은 매매가 이루어지는 제국의 시장에 성공적으로 참여하여 이익을 얻는다. 반면에 짐승의 표가 없는 그리스도인들은 시장에서 배제되어 사거나 팔 수 없었다. 이것은 그 당시의 경제적 활동은 지배적인 담론에 대한 순응과 동화를 통해서만 가능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예배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신론자로 간주되어 박해를 당하였고 심지어 처형당하기도 하였다. 
 
짐승의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17절)이다. 요한묵시록의 저자 요한은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18절)고 말한다. 놀랍게도 그가 지금까지 짐승에 대해서 말해온 것은 자연의 동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 혹은 인간이 만든 구조에 관한 것이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그런데 짐승의 수인 “육백육십육”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의 모든 서구 신학자들은 육백육십육이 네로 황제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네로 황제(Νερων Καισαρ)의 히브리어 음역인 רסק ןורג을 게마트리아(gematria) 방식으로 계산하면, 그 이름의 값이 육백육십육이 되기 때문이다. 게마트리아 방식은 고대인들이 그리스어나 히브리어의 알파벳 문자에 숫자적 값을 부여하여 어떤 단어를 숫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즉, 이 방식은 히브리어의 알파벳 순서의 처음 아홉 문자에 1부터 9까지의 수를 차례로 부여하고, 그 다음 아홉 문자에 10부터 90까지의 수를 부여하고, 그리고 그 다음 아홉 문자에 100부터 900까지의 수를 부여한다. 이 방식을 네로 황제에 적용하면 ג=50, ר=200, ו=6, ן=50, ק=100, ס=60, ר=200이다. 이 숫자들을 합하면 666이 된다. 물론 요한묵시록의 저자 요한은 그리스어 용어를 히브리어로 그리고 히브리어 용어를 그리스어로 음역할 정도로 두 언어에 익숙하다(9:1; 16:1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주장의 문제점은 게마트리아 방식으로 계산된 육백육십육이 네로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사람들의 이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대 사회에서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소수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요한의 수신자들이 게마트리아 방식에 익숙하였을 것으로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자들은 하느님이 칠일 동안에 창조를 완성한 것처럼(창 1장), 유대교적 전통에서 칠이라는 숫자는 완전을 의미하는 반면에, 육이라는 숫자는 완전에 미달하는 불완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육백육십육(666)은 요한이 짐승의 불완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육이라는 숫자를 세 번 겹쳐서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두 가지 해석들이 학계에서 정설로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제삼세계 신학자로서 육백육십육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거의 모든 숫자들은 구약과 연관이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요한묵시록에서 자주 나오는 천이백육십일 혹은 “마흔 두 달”(=1260일)에서 마흔 둘이라는 수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서 마흔 두 곳에 진을 친 후에(민 33장) 마침내 약속의 땅에 들어간 사실에서 유래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의 “육백육십육”은 역시 구약성서로부터 해석될 수 있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육백육십육”이 구약성서에서 다음과 같이 두 번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요 그 외에 또 상인들과 무역하는 객상과 아라비아의 모든 왕들과 나라의 고관들에게서도 가져온지라”(왕상 10:14-15).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요 그 외에 또 무역상과 객상들이 가져온 것이 있고 아라비아 왕들과 그 나라 방백들도 금과 은을 솔로몬에게 가져온지라”(역하 9:13-14).

내용상 일치하는 이 두 인용문들에서 언급된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는 솔로몬이 그의 왕권의 번영기에 조세로 징수한 액수였다. 솔로몬 왕은 무거운 조세로 인민을 수탈하여 자신의 재산을 증가시켰고, 사치스러운 생활하였고, 무기를 만들고, 여러 이방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고, 그리고 무역을 통해서 이교적 우상숭배의 문화를 수용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모두 솔로몬 왕국의 분열의 원인들이 되었다.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의 무게는 20톤이 넘는다. 그가 그처럼 엄청난 양의 금을 조세로 징수하였다는 것은 솔로몬 왕국의 화려함의 이면에 인민의 피를 짜내는 경제적 착취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열왕기상과 역대기하에서 언급된 “육백육십육”은 솔로몬 왕권의 경제적 억압과 불의를 비판하고 고발하는 상징적인 수로 억눌린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던 것이었을 것이다.
 
로마제국은 로마의 평화를 선전하였지만, 그것은 압제와 착취로 유지되는 거짓 평화였다. 요한묵시록이 작성되었을 당시의 지배자인 도미티안은 황제예배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무신론자들로 규정하고 그들을 세련된 방법으로 박해하였다. 그는 높은 조세와 재산 몰수와 배제를 통해서 그들을 압박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한은 전 세계를 군사적으로 정복하고, 정치적으로 억압하고, 그리고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로마의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제국의 담론을 비판하기 위해서 "짐승의 수" 혹은 "짐승의 이름"을 “육백육십육”이라고 풍자적으로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요한은 그의 수신자들에게 짐승의 수를 알기 위해서 지혜를 가지라고 권고하였는가? 그것은 그들이 짐승에게 저항하기 위해서는 짐승의 위장된 제국주의 체제가 구약성서에 언급된 육백육십육이라는 숫자로 풍자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지혜, 즉 영적 지각력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요한묵시록의 육백육십육은 세계를 식민지화하고 인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로마의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수로 이해되어야만 한다고 본다. 
 
III. 맺는말

 요한묵시록 13:15-18은 경제적 제국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의 현실을 분석하고, 오늘의 짐승을 호명하고, 그를 이길 수 있는 영적 힘을 제공한다. 놀랍게도 요한묵시록이 집필된 1세기의 소아시아의 역사적 상황과 오늘의 상황 사이에는 아주 비슷한 유사성들이 있다. 오늘의 짐승은 지구적 자본과 시장의 제국이다. 오늘날에도 지구적 자본과 시장의 제국의 표가 없는 사람들은 세계 시장에서 배제된다. 그 당시처럼 오늘날에도 지구적 자본과 시장의 제국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은 패배당하고, 배제당하고, 빈곤과 때 이른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다. 오늘의 짐승은 그 당시의 짐승보다 더 탐욕스럽고, 그리고 더 폭력적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짐승의 권력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지구적 자본과 시장의 제국이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오늘의 짐승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그들은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을 거부할 것이며, 짐승에게 협력하지 않을 것이며, 그리고 대지의 버림받은 자들과 연대하여 경제적 제국주의에 맞서면서 짐승에게 저항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증언의 힘으로 용과 그의 무리를 정복한 순교자들과 죽은 증인들이 하늘에서 하느님과 어린양을 예배하고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는 것을 듣는다면, 그리고 땅을 망하게 하였던 로마의 제국주의자들과 부역자들을 심판한 하느님의 마지막 심판을 정의로운 심판이라고 축하하는 탄성 소리를 듣는다면, 그들은 미디어의 선전을 통해서 날마다 주입된 제국의 담론의 마취에서 풀려나서 지구적 자본과 시장의 제국에게 충성하는 우상숭배를 거부하고 오직 하느님과 어린양 예수에게만 충성하는 참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다.
 
오늘날 급변하는 사회에서 경제적 제국주의의 희생자들은 망각되고 배제되고 있다. 그렇지만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부활을 기억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자들의 고난과 투쟁과 희망을 기억하고, 그들과 정신적으로 연대하여 그들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는 지구적 자본과 시장의 제국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비폭력적으로 투쟁해야만 한다. 폭력은 더 큰 폭력으로 극복되지 않는다. 짐승을 이길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무기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말씀에 의지해서 불의에 저항하는 소박한 사람들이다. 기도하고, 노래하고, 항의하는 무력한 자들의 힘이 세계를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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