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세계화 시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며 인간 소외 현상 등 비인간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알게 모르게 지배 이념에 복속된 신앙인들의 해방을 가져오는 일이 신학 또는 신앙의 고유의 할 일임을 확인한다.- 편집자주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에베소서 2장 2절)
▲성공회대 손규태 명예교수는 이 시대 공중 권세자를 "악마적인 세력으로,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명명했으며 보다 직접적으로 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체제’라고 정의했다. ⓒ베리타스 |
세상 풍조를 따르거나 공중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은 순종이 아닌 불순종의 아들들이나 행하는 것임을 위 성서 본문의 기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에 따르면, 오늘의 상황 속에서 세상 풍조나 공중 권세를 잡은 자라 할 수 있는 당대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지 않는 신앙인들은 성서적 가르침을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손규태 박사(성공회대 명예교수)는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직무유기를 넘어 불순종의 아들들로서 지배 체제의 추종자들까지 양산해 내고 있다는 강도높은 비판을 전개했다.
이 시대 공중 권세자를 "악마적인 세력으로,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라고 명명한 손 박사는 보다 직접적으로 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라고 정의했다.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해 기독교가 자본과 결탁함으로써 나타난 어두운 면을 오랜 기간 연구하여 『세계화 시대 기독교의 두 얼굴』(한울아카데미)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대한기독교서회) 등의 책을 내기도 한 손 박사에게 비친 기독교의 모습은 어땠을까. 기자는 4일 성공회대 교정의 한 카페에서 손 박사를 만났다.
- 이 시대 지배 이데올로기인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는 아시다시피 그 시작을 1980년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때 사회주의권이 붕괴되지 않았습니까? 사실 원래 자유주의라는 말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썼던 말이에요. 유럽, 특히 독일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이 과거에는 진보적이었거든요. 당시에는 자유주의자들이 누구하고 결합했냐 하면 바로 사회주의자들 하고 결합을 했었어요. 그런데 자유주의가 1980년대 초 사회주의와 연정을 깨고, 보수적인 기독교와 연정을 맺는데 당시로서는 굉장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자유주의자라는 사람이 진보였는데 그때부터 자유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의 품에 뛰어들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구자유주의자들이 진보적 성향을 띤 반면, 신자유주의자들은 보수적 성향을 띠기 시작하게 된 것이죠. 80년대를 기점으로 구소련이 붕괴되고, 무역이나 이런 것도 국가단위에서 WTO체제가 형성되면서부터는 국제단위가 되었습니다. 국가주의가 국제주의화 되어 당시 우리나라에 미국 기업인 세븐일레븐 등이 들어오기도 했죠. 국민국가 중심에서 세계화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게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입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말할 수 있는게 산업자본에서 금융자본으로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이게 핵심적인 것인데요. 옛날에는 산업자본으로 물건을 만들어 많이 파는 게 벌이였는데, 87년부터 돈 놓고 돈 먹는 금융자본 시대가 도래하게 된 것입니다.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데 이것을 소위 신자유주의라고 볼 수 있겠죠.”
- 신자유주의와 한국교회와의 관계를 성찰해 본다면.
이 대목에서 손규태 박사는 한국교회가 이미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란 공중 권세 앞에 무릎을 꿇고 순응하고 있음을 전제로 주장을 전개해 나갔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자본주의적 기독교로 확 돌아서게 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산업화를 시작하는 시점이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사실 한국의 대다수 목사들은 청교도적 영성을 겸비한 한경직 목사를 목회 멘토로 삼았어요. 심지어는 설교 시간에 한경직 목사의 평양 사투리까지, 발음까지 모두 따라했으니까요. 옛날에는 목사들이 설교하면 참 한경직 목사 흉내를 많이 냈어요. 그런데 산업화 시대부터 순복음 조용기 목사가 들어오자 얘기가 달라집니다.
조용기 목사. 그 사람은 하여튼 무한경쟁을 강조했어요. 교회를 세우는 데 있어서 말이죠. 한경직 목사의 영락교회 스타일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나도 신학생 때 텐트치면 구름떼처럼 몰려든다기에 가서 본 적이 있었어요. 가만히 보니 무슨 훈련을 시켜 보내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거 있잖아요. 하면 된다는 신앙 말이죠. 미국의 대형교회를 만든 수정교회 담임목사 로버트 슐러의 스타일을 본떠서 그대로 배워가지고 들어온 거였어요. 설교도 그렇고, 교회 관리하는 것도 그렇고 신자유주의가 하는 방법 중 하나인 다단계 판매를 연상시키는, 그런 훈련 프로그램들을 도입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도들을 모아서 신자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관리자는 구역장이란 것을 두는 것이고요. 구역장은 다단계 판매 리더와 마찬가지예요.
다단계 판매라는 게 자본주의에 있어 최고로 발달한 판매 방식 아니겠어요. 지금 돈이 없냐? 그러면 꿔서 사라 이것 아닙니까? 그게 신자유주의가 하는 판매 방법이죠. 모든 사람을 다 빚쟁이로 만드는 거예요. 우리나라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과도 맞물립니다. 학생들에게 등록금이 없느냐 꿔서 해라. 주택을 구하는 이들에게 전세자금이 없느냐 꿔서 해라 이것입니다. 그 정책대로라면 꾸지 않고 빚 안지고 살아갈 방도가 없지요. 일부 가진 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빚쟁이로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보자면 지금 아마 순복음 신앙 생활도 하나님 나라를 미리 꿔서 마치 지금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교회 나오는 사람들은 열심히 신앙 생활해서 그 빚을 갚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이렇듯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교회 설립을 전후로 기독교 신앙이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와 결합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이곳 저곳에서 대형교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죠. 그때부터는 한국의 많은 목사들이 모두 조용기 목사의 스타일을 좇아가기 시작했어요. 자본주의 맘모니즘이 완전히 교회를 장악해 버린 것이죠. 그때부터 한국교회에서 예수의 정신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던 산업선교마저 싹 없어지게 되었어요. 하면 된다 신앙의 로버트 슐러 목사의 운영 방식을 잽싸게 갖다 쓴 조용기 목사의 교회 운영 방식이 낳은 결과인 것입니다. 큰 교회 짓고 꿩 잡는 게 매라는 거죠.
적어도 교회를 부흥시키려는 부흥사들은 종말론 이런 것을 얘기하면서 청교도 정신이라도 강조했는데 조용기 목사에게는 종말론이 싹 없어졌죠. 신앙인들이 현세적 축복에만 눈을 돌리게 합니다. 그게 다 자본주의 축복이죠. 삼박자 구원이다 뭐 이런 것이 또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축복을 근거로 한 샤머니즘적 요소하고 결합을 하니까 신앙인들이 현세적 축복에 더 의존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죠.”
- 한국교회에 뿌리까지 스며든 신자유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성서적 전통에 근거해서 분석해본다면.
“율법이죠. 율법을 구별해 보면 율법은 크게 제사법, 즉 제사를 어떻게 드리고, 그 안에다가 제물을 어떻게 바치는 제사법이 제일 많아요. 그 다음에 율법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게 성결법입니다. 몸을 어떻게 깨끗이 해라. 어떤 짐승은 먹지말라든지 아기를 낳았을 때 남자 아기를 낳으면 7일 동안 부정하고 여자 아기를 낳으면 14일 부정하다든지 그런 것이 있어요. 마지막 세 번째가 사회법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거든요. 부모를 공경하라든지, 간음하지 말라든지, 살인하지 말라든지 말이죠.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법입니다.
예수는 이러한 법들을 어떻게 봤느냐 가만히 살펴보면 예수는 제사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오히려 제물을 바치려고 성전에 가다가 네 이웃하고 잘못된 관계가 있는 게 생각나거든, 이웃 사람에게 가서 먼저 화해하고 그리고 나서 제물을 바치라고 합니다. 그것은 뭐냐면 제사법 보다 사회법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옛날 유대교가 율법을 지켜서 복잡하게 제사를 지내지만, 우리는 그렇게 복잡하게 하지 않잖아요. 결정적으로 예수께서 친히 제물이 됨으로써 모든 제사를 철저하게 지냈기 때문에 다른 제사를 열심히 지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또 놀라운 것은 정결법, 성결법에 얽힌 이야기인데 예수의 제자들이 밖에서 들어와 손도 안 씻고 밥을 먹어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네 제자들은 왜 율법에 써있는데 성결법을 안 지키느냐고 따집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입으로 들어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오는 게 문제라는 것이죠. 너희들은 너희들 입에서 말할 수 없이 나쁜 생각과 말이 나오는데 그게 문제라고 꼬집습니다. 마치 성결법을 무시하는 것처럼 얘기를 하고 있지요. 그야말로 예수는 제사법하고 성결법을 거의 무시합니다. 인간과 인간 문제를 다루는 사회법이라는 것을 굉장히 철저하게 지키게 하는 거예요.
마태복음을 보면 누군가 오 리 가자고 하면 십 리 가라는 것입니다. 속옷 달라면 겉옷까지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사회법을 강화하고, 철저히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의 형식적인 기독교가 아니고, 철저한 섬김의 종교를 예수께서 얘기한 것이죠. 섬기고, 약자를 돌보는 게 기독교 정신이 아닙니까? 교회도 그렇게 가야 하는데 정치를 하겠다고 야단이고, 큰 교회 만들어서 으뜸이 되겠다고만 집착하니 문제 아니겠어요. 교회는 섬김과 봉사, 가난한 사람하고 연대를 하는 것에서 그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엉뚱하게 권력을 부를 축적하겠다는 것은 섬김의 모습이 아닌,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에 불과하며 교회가 교회이길 포기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부추기는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목표를 성취한 극히 소수를 제외하고는 철저히 배제되고 소외되는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을 치유하고 연대해야 할 책임이 교회에도 있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근원적으로 소급하여 맘몬과 결탁한 한국교회가 종말론적 미래를 말하기는커녕 현세적 축복, 그것도 자본의 축복만을 강조해 기복 신앙을 조장하고 있다는 날카로운 비판도 보탠 것이다.(계속)
손규태 박사는 한국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합신학대학원 및 한신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신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성공회대 명예교수이자 본지 편집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