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포도원 품꾼 비유가 신자유주의 체제에 갖는 함의는”

신자유주의와 교회의 관계를 묻다(상)- 손규태 박사편

▲성공회대 손규태 명예교수는 예수의 포도원 품꾼 비유가 주는 함의를 "업적주의를 줄이거나 완전히 없애려는 의도를 갖는" 예수의 가르침이라고 해석했다. ⓒ베리타스

오늘날 세계화 시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며 인간 소외 현상 등 비인간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알게 모르게 지배 이념에 복속된 신앙인들의 해방을 가져오는 일이 신학 또는 신앙의 고유의 할 일임을 확인한다.- 편집자주

예수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태복음 20장 1∼16절)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시장 제일주의 원칙이 성서의 가르침과 위배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먼저 온 사람은 포도원에서 하루 종일 수고하고도 나중에 온, 그것도 일 마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온 사람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 약속한 한 데나리온으로 말이다.

손규태 박사(성공회대 명예교수, 본지 편집고문)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게 기본적으로 업적 위주의 사회라는 점을 직시하며 이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그런 사회와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더 나아가 거꾸로된 사회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수의 포도원 품꾼 비유가 경제 제국주의 하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주는 함의를 분석했다.

- 예수의 포도원 품꾼 비유는 오늘의 현대인들에게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라는 게 기본적으로 업적 위주의, 공로 위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겠죠. 잘하는 만큼 많이 받아 챙기는 거예요. 그게 자본주의이고, 기본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업적주의가 낳은 폐단들이 우리 주변에 산적해 있는 게 문제입니다. 성공신화를 만들어 내는 일부는 거대한 부를 독점하는 반면, 업적 위주의 사회가 낳은 경쟁에서 밀려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난을 면치 못하며 인간의 존엄한 권리마저 위협받습니다.

이러한 업적주의를 줄이거나 완전히 없애야 하는데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상징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시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포도원에 먼저 와서 일한 사람이나 나중에 와서 일하는 사람이나 약속한 한 데나리온씩 손에 쥐어 줍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을 아침에 온 사람이나 한 시간 전에 온 사람이나 챙겨주어야 하는게 옳다고 보신 것 아니겠어요? 한 시간 전에 온 사람이라고 십분의 일 데나리온을 받는다고 칩시다. 그것으로는 인간답게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방향을 바꿔 말하면 예수는 먼저 온 자에게 선행을 베풀 근거를 주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아요. 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이겨냄으로써 다른 한 사람, 즉 나중 온 사람의 생명을 보존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나’와 ‘너’가 서로 협력해서 더불어 사는 공존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마틴 루터가 말하기를 공로로, 업적으로 구원 받는 게 아니라고 강변합니다. 은혜로 받는 것이며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게 개신교 전통이죠. 돈이 많으나 적으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능력있는 사람은 잘 살고 능력없는 사람은 못 살고 그렇게 만들면 안됩니다. 능력없는 사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 조건을 능력있는 사람이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공공성을 실현하는 길이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손규태 박사는 공공성의 실현이 곧 하나님 나라 건설과 직결된다고 봤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 이상은 비단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교회나 그리스도인들만의 독점적 과제가 아니라며 특정한 종교나 교회라는 틀에서만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전세계와 전체 인류를 위해서 그들 인류와 더불어 실현하시는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선교사업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보편적 세계통치의 내용이고 목표이며 전체 인류에게는 보편적이고 공공적 성격을 띠는 개념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 특정 국가나 종교가 독점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것처럼 공적 성격을 띤 개념이고 이 세계에서 인간들 사이의 제반 관계들, 특히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관계들을 모든 사람에게 열린 관계에서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성서적 전통에서 공공성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면.

“근원적으로 소급해 들어가자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서부터 찾을 수 있죠.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만물이 공유하고 있는 신적 본체인데 그 내용은 사적인 것, 어떤 숨겨진 것, 어떤 접근 불가능한 것, 어떤 특권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이 공유하고 있는 것, 드러나 있는 것, 접근 가능한 것, 보편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전처럼 인간만이 갖는 어떤 특권적인 것으로 파악해서는 안 되는 것이거든요.

이렇게 볼 때 하나님의 형상을 가장 적절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개념은 모든 생물이 공유하고 있는 공공성이라고 할 수 있겠죠. 왜냐하면 창조에서 만물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은 누구에게나 개방적인 것이고 개방적인 것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공공성은 성서가 말하는 ‘타락’에서도 찾아 볼 수 있을 거예요. 성서에 나타난 아담의 타락이라는 상징적 사건이나 인간의 죄 된 성품이 보여주는 것은 인간들이 하나님이 만든 모든 것, 즉 공적인 것을 사유화하고 독점화하고 탈취하고 점령하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담의 타락사건은 하나님의 공공성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인간세계의 공공성에 도전한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아담은 하나님이 금지한 생명나무의 과일 탈취를 통해 그에게서 소외되고 그 아들 가인은 동생 살해를 통해 동생의 생명을 빼앗아 그 동생으로부터 소외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 즉 공공성을 파괴해 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의 죄와 탐욕으로 인하여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 즉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은 그야말로 요한복음에 나타나 있는 대로 전체 인류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공공성을 파괴하고 지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의지의 사건이었어요. 인간들이 죄와 사망, 하나님의 형상인 공공성을 버리고 사적 이익에 빠져 생기는 인간들 사이의 제반 갈등들을 구원하시고, 해방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 가능한 세상, 하나님 나라 이상을 위한 공공성 실현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을 당장 무엇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여러 사역들이 있겠으나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를 기본체제로 인정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제도 개선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봅니다. 모든 권력과 부를 가능한 한 함께 나누어 사용할 수 있도록 국제법이나 국내법 그리고 제반 제도들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미 FTA에 대한 재고도 포함해서 말이지요.

또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사람의 의식은 존재를 결정합니다. 사람들의 의식을 개선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위에서 언급한 제도나 법이 따라 올 수가 없는 것이죠. 교회는 이러한 면에서 공공성 교육의 열린 마당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공공성이 실현되는 사회는 높은 도덕적 의식을 요구하는데 교회부터가 높은 도덕적 기준을 세우고 도덕적 신앙인을 기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봐요.

또 한 가지 교회는 치유 사역에 대한 근원적 점검이 필요합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가 양산해 내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힐링하고, 돌보는 역할을 교회가 수행해 내야 합니다. 동시에 역동적인 사역도 펼쳐야 합니다. 예수의 성전 정화 사건에서 보이듯 공분심을 상실한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킬 힘도 능력도 없는거나 다를바 없습니다. 순교자적 정신으로 싸워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의 잘못된 것들을 고쳐 나가게 해야 하는 것이죠. 선한 사마리아 비유에서 강도 만난 이를 치유하고 돌보는 일도 중요하나 그에 못지 않게 강도를 잡아내고 나아가 없애는 운동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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